지리산이 숨겨둔 암자에 가까워질수록
내게 이르는 고요한 자유의 길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인문여행 에세이
〈김천령의 지리산 오지 암자 기행〉을 책으로 만나다
왜 지금 암자인가. 산속의 사찰마저도 고요함을 잃어버린 지 오래, 각박한 도시의 삶에 찌든 현대인이 찾을 수 있는 정신의 귀처는 어디일까. 더 이상 오지가 없는 시대에 산속에 홀로 핀 꽃, 암자를 찾는 것은 종교를 넘어 오래된 향기를 찾아 마음과 정신에 고요와 평온과 적정을 찾는 것일 테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암자는 누구나 한번쯤 찾아가는 휴식과 치유의 공간, 정신의 귀처가 되는 것이다.
_에필로그
10년 넘게 지리산 암자 50여 곳을 모두 탐방한 저자가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품고 있는 23곳의 암자를 배경으로 ‘참나’를 구하는 고요한 자유의 길을 모색한다.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는 금대암과 유장한 섬진강을 굽어보는 연기암이 인간 세상을 잊게 만드는 비경으로 피안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천혜의 보고로서의 지리산을 펼쳐보인다면, 푸른 눈의 현각스님이 수행했던 상선암, 오지 중 오지에 있지만 선승들의 수행처로 이름이 높은 묘향대는 번다한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처로서의 지리산을 드러낸다. 이 책은 저자가 2014년 7월부터 2015년 7월까지 1년간 《오마이뉴스》에 필명으로 연재한 〈김천령의 지리산 오지 암자 기행〉을 수정 및 보완한 것으로, 지리산 암자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단행본이다.
■ 출판사 리뷰
최고의 절경을 찾아서
이 책에서 저자도 다수 인용하듯 옛 선현들은 많은 수의 지리산 유람기를 남겼다.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지리산으로 모여들어 보고 느낀 바를 기록으로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지극히 아름다운 절경’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금대 지리’라고 불릴 만큼 금대암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풍경은 최고로 꼽힌다. 저자에 따르면 ‘금빛 연화대’(연화대는 부처상을 앉히는 자리를 뜻한다)에서 ‘금대’라는 이름이 비롯될 정도로 그 풍경이 장엄하고도 미려했던바, 금대암만큼 조선 시대 지리산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암자도 드물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연기암에 서서 굽이치는 섬진강을 굽어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흡사 피안의 세계를 마주한 듯 고즈넉하면서도 웅숭깊은 편안함이 스며든다.
일상 밖 작은 수행의 공간
20여 년 전, 한국 불교에 귀의해 ‘서양인 승려’라는 이색적인 풍경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푸른 눈의 구도자 현각스님, 그가 한국에 머물 때 수행했던 곳이 바로 지리산 깊숙한 곳에 자리한 천은사에서도 한참 떨어진 상선암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상선암에서 수행하던 현각스님이 자신의 염불 기도로 지리산에서 죽임을 당했던 빨치산의 영혼을 달래주는 신비로운 체험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그곳 스님에게서 전해듣는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찾는 일상 밖 작은 수행의 공간이 시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깨달음의 장소로 변화한 것이리라. 삼불사에서 저자는 누구나 부처와 같이 될 수 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다시 만나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모든 것은 ‘저기’가 아닌 ‘여기’, 자신에게 있다.”(242쪽)
민족의 역사가 깃든 암자
책은 지리산의 역사가 우리네 삶의 역사임을 자주 상기시킨다. 그 역사에는 특히 지배에 대한 저항, 중심에 대한 변방의 정신이 지리산 속 암자에 서려 있다. 해인사의 말사인 법계사는 고려 말에는 왜군에 의해, 대한제국 시기에는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탔다가 중창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천왕봉 부근의 천불암은 동학농민혁명 때 부상병 치료소이자 한국전쟁 중에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이었다. 본래 지리산은 왕실과 귀족의 무대가 아니라 지방 호족과 민초의 터전으로 면면히 세월을 이겨내왔다. 산세가 험해 수행을 위한 은둔의 땅이기도 했지만, 민란 세력이나 의병 혹은 화전민이나 유민 들까지 저항과 생존을 위해 굽이굽이 이어진 지리 능선 아래로 모여든 것이다. 그리하여 지리산 암자는 불교적 깨달음의 공간이 되는 동시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까지 품는 인문의 산이 된다.
지리산 암자만을 다룬 첫 책
이 책은 오로지 지리산 암자만을 대상으로 한 첫 단행본이다. 외딴곳에서 40년 넘게 홀로 수도하는 스님에게서 듣는 우번대의 유래, 살아 있던 모습 그대로의 모과나무를 구층암 승방의 기둥으로 쓴 무심의 경지가 일깨우는 자연의 멋. 단순히 스치고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닌 경건한 수행자의 마음이 묻어 있는 기행문은 지리산 암자의 유래나 스님들에게서 직접 전해들은 암자의 전설을 놓치지 않는다. 번다한 세계 바깥에 점점 자리한 지리산 암자에서 불어오는 담박한 풍경 소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속으로 추가
이 승방에는 구층암을 대표하는 특이한 구조물이 있다. 모과나무 기둥이다. 직접 보고 나면 그 기이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떠한 인위적인 조작도 없이 살아 있던 모습 그대로의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서까래와 지붕을 얹어 집을 지었다. 나무의 생김새대로 천연덕스러운 기둥을 세운 것은 서산 개심사 종루나 안성 청룡사 대웅전 등 우리 옛 건축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대패질조차 하지 않고 최소한의 손질도 하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쓴 이 무심의 경지에는 놀랄 수밖에 없다. 죽은 모과나무를 그대로 쓴 목수도 능청스럽지만 그것을 허락한 스님의 안목은 또 얼마나 통 큰가.
_모과나무의 소신공양, 구층암(191~192쪽)
연기암이 자리한 곳은 해발 530고지. 지리산 암자치고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세상으로부터 한참이나 들어온 깊숙한 곳이다. 이곳에 서면 산자락 끝으로 멀리 구례 들판과 그 들판 사이를 굽이치며 흘러가는 유장한 섬진강을 볼 수 있다. 연기암의 건물은 마치 저 멀리 있는 섬진강을 염두에 둔 듯 일제히 강을 향해 서 있다. 산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큰 암자 건물이 다소 생경스럽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아득한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피안의 세계가 있다면 아마 저런 모습일 거라고 누구든 말할 것이다.
_굽이치는 섬진강을 굽어보는 피안의 땅, 연기암 가는 길(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