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렇게 저를 예뻐하신다고 옛정을 잊을 거란 바람 갖지 마세요 꽃을 볼 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원수인 초왕과는 말을 섞지 않았다네
//당나라 맹계孟棨가 쓴 《본사시本事詩》를 보면 왕유가 이 시를 짓게 된 연유를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당현종의 형인 영왕寧王 헌憲은 권세가 대단하여 수십 명의 기녀들을 가까이 두고 살았다. 그녀들 모두 기예와 용모가 뛰어났다. 영왕이 사는 곳의 근처에는 떡을 파는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 부인이 대단한 미인이었다. 욕심이 많은 영왕은 그 여인에게 한눈에 반하여 떡장수 남편에게 후히 사례하고 부인을 데려와서 다른 여인들보다 유독 아꼈다. 사례를 받았다 하나 그것은 목숨이 관계된 일이라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가 지난 후 영왕이 그녀에게 아직도 옛 남편을 잊지 못하냐 물었는데 여인은 묵묵부답 이었다. 침묵은 수긍이라 영왕은 탄식하였다. 그래도 아주 개망나니는 아닌 영왕은 떡을 파는 옛 남편을 불러 둘이 만나게 해주었다. 그러자 여인은 눈물만 흘리며 그 이를 바라보는 것이 옛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이 분명하였다.
당시 영왕의 집에는 당대의 문사 십여 명이 손님으로 와있었는데 그들은 이 모습을 보고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영왕이 시를 짓게 하자 우승상 왕유王維가 가장 먼저 고사를 인용하여 「식부인息夫人」이라는 시를 지었다. 영왕은 자성의 마음이 들어 그녀를 원 남편인 떡장수에게 돌려보내고 자신의 욕심을 접었다.
그럼 식부인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식부인은 원래 진陳나라 사람으로 성이 규씨嬀氏였는데 식국으로 출가한 후 식규息嬀라고도 불렀다. 훗날(B.C. 680) 초왕이 식국을 멸하고 그녀를 취했는데, 눈이 가을 물 같고 얼굴이 복사꽃을 닮았다 해서 사람들이 도화부인桃花夫人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초나라 궁에서 3년을 살면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언제나 입을 꼭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초왕이 이를 이상히 여겨 묻자 식부인은 두 남자를 섬긴 몸으로 죽을 수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 이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