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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가 나의 왕을 세웠다
[시2:1-12]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설교 요약)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분노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서로 상의하고 연구하며 악한 짓을 꿰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무엇보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천군 천사를 보내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인간들을 진멸시키시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것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하나님의 왕을 세우셨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왕을 세웠다는 게 대관절 무슨 뜻이냐? 왜 왕을 세웠다고 할까? 이 왕을 세웠다고 하는 사실은 겁나고 두려운 일이다. 왕이 노쇠하여 나라 일을 살피기 어려워졌을 때 빨리 후임 왕을 세워주지 않으면 왕의 아들들은 서로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싸움을 한다. 그래서 첫째로,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할 때 어떤 특징이 있는지 먼저 살펴야 된다. 이 왕은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는 그런 왕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분이었다.
그리고 또 나의 왕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 무슨 왕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너희의 왕을 세웠다가 아니라 나의 왕을 세웠다고 하신다. 그리고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낳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나님의 왕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아들을 낳아 놓으시고 아들을 가리켜 너는 나의 왕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왕은 당장 세상에 내려가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싹 다 쳐 죽이고 벌을 내리시는 그런 왕이 아니시다.
그러면 이방의 왕들은 누구냐?
본문에서 말하는 이방 나라들을 에돔, 모압, 암몬, 애굽, 앗수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이방나라는 유대인들이다. 내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실상은 이방인들이다. 하나님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그를 대적하여 죽인 자들이 이방인들이었다. 그들이 유대인들이다. 이방인들은 사실 예수님에게 별로 상관도 안 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두렵고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고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예수님과 아주 깊은 관계를 가져야 된다. 주님 앞에 나가면 내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다 고백할 수 있는 사이가 돼야 한다. 이 세상에 환난이 끝없이 쏟아지고 큰 위험이 계속 찾아오지만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분은 나의 피난처시다. 그분은 나의 바위시다. 그분이 나의 안식처가 되어 주신다. 그래서 주님께 피하는 자는 이 세상을 넉넉하게 이겨나가는 사람이지만 주님께 피하지 않고 인간들을 따라서 살아가려고 하면,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상이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더욱 주님께 피하는 사람들 이 되어야 한다.
6. 요한복음 3장 16절의 신비
나균용 목사님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요약)
구약성경 전체에 흐르는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신약은 독생자를 통해서 모든 복이 임한다. 따라서 독생자를 아는 것이 성경에서도 제일 중요한 질문이다. 빌라도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거기에 대해 뭐라고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되고 사람의 인생에 일생의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도 결정된다. 그래서 독생자를 잘 알고 잘 섬기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을 받는다. 요한복음3:16절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 그래서 독생자를 주셨다. 독생자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큰 사랑이다. 돈을 한 보따리 떨어뜨려 주신 것이 사랑이 아니고 독생자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내 육신을 건강하게 만드셔서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 10개를 따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 나에게 독생자를 주신 것이 사랑이다. 독생자를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되고 인생을 아름답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하고 같이 짝을 이루는 말씀이 요한일서 3장 16절이다. 요한일서 3장 16절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 사랑을 알아서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것이 요한일서 3장 16절이다. 내 가족을 위해서도 내 자식을 위해서도 목숨을 버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이웃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가 있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면 그 사랑이 내 마음에서 불타게 되면 우리는 이웃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마태복음 4장 17절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면서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드디어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세례를 받으신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세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첫 번째 하늘이 열리고 두 번째,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고, 세 번째 17절 말씀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음성이 들려왔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첫째, 하늘이 열려지는 복을 받아야 되고 둘째, 성령이 강림하여 성령 충만해지는 복을 받아야 되고 셋째 하나님의 음성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
마가복음 3장 14절부터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밤새워 기도하시고 열두 제자를 불러서 세우신다. 3장 14절과 15절에 열두 제자를 세우신 목적을 세 가지로 설명하신다.
첫째, 이는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제자들을 왜 부르셨느냐?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둘째,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전도하러 보내려고 제자를 부르셨다.
셋째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이런 능력도 주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말씀을 마음에 자꾸 새겨야 된다. 하나님이 나를 제자로 택하시면 이 세 가지, 즉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려고 나를 제자로 택하신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느냐? 함께 하시지 않느냐? 반대로 내가 주님과 함께 있느냐? 함께 있지 않느냐? 이것이 복음이다. 임마누엘이 복음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씀이다.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 몸을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러니까 핵심은 성령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하신다. 즉 이 성경이 어떤 책이냐 하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딤전3:16절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경건을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시켜 설명하고 있다. 경건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하나님의 비밀 곧 그리스도 이렇게 참 놀라운 일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신다. 이렇게 해서 쭉 계시로까지 3장 16절을 찾아보면 거기만 해서도 큰 은혜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엄청난 약속을 하신다. 너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원수가 되게 한다. 그래서 뱀의 후손은 너의 후손에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인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메시야를 약속하신 말씀이 창세기 3장 15절이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이름을 저에게 알려주세요. 내가 내 백성들한테 가면 분명히 내 백성들이 물어보기를 너를 보낸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 하나님이 누구냐? 하고 물을 텐데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신다. 출애굽기 3장 15절에 가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전해라 그 앞절인 14절에서는 스스로 있는 자, 15절에서는 야훼로 나온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생각하실 때는 I am 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네가 백성들한테 가서 말할 때는 하나님을 지칭해서 말할 수 없으니 여호와라고 전해라. 그래서 출애굽기 3장 15절 말씀에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로 나타난다. 성경에 나오는 3장 15절, 16절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새롭게 배우며 깨닫고 또 은혜를 받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7. 가인과 아벨의 추수 감사절
나균용 목사님
[창4:1-8]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설교 요약)
성경에 보면 제일 처음 나타나는 추수감사절이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나타난다. 둘 다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안 받으셨고,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셨다. 가인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나, 하나님이 왜 내 제사를 안 받으셨을까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기뻐 받아주시는 그런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동생 아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동생을 쳐죽였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도 추수를 하고 나면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우리 조상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가을철에 추수를 하게 되면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추수를 이루어 주신 것을 감사하고, 그래서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앞에 똑같이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어떤 사람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어떤 사람의 제사는 하나님이 안 받아주시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경고로 받아야 한다. 다 같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만, 하나님이 우리 제사를 받아주시면 우리는 오히려 순교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고, 하나님이 우리 제사를 안 받아주시면 우리도 가인처럼 악인이 되어 의인을 박해하고 의인을 죽이고 오히려 더 타락하는 불행한 자리에 떨어질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기억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제사를 받아주시기를 당부해야 하겠다.
그러면 가인의 제사를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먼저 이 제사의 중요성에 대해서부터 생각을 해봐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다음에 태어난 아들이 가인과 아벨이다. 그전에 에덴동산에 있을 때에도 자손을 많이 낳아서 많은 자손이 번성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넉넉하게 상상할 수가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거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타락한 아담이 낳은 자손, 그것이 바로 가인이었고 아벨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에서 가인과 아벨이 낳은 자손들이 얼마나 있었느냐 사실 그거는 우리에게는 관심 밖의 이야기이다. 타락한 아담이 낳은 자손인 가인과 아벨, 이 사람들이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인같이 될 것인가 아벨과 같이 될 것인가 선택을 바로 해서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사람들이 돼야 하겠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실 뿐 아니라 우리도 받아주셔야 된다, 하나님이 가인과 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사를 받으셨다, 제사만 받으신 게 아니고 그 사람까지도 같이 받으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를 드리는 이 생활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신다.
하나님께서 또 이 제사를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시느냐 이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본 말이 당신이 선지자이신 것을 내가 알았으니 내가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했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했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은 겁니까? 이 여자는 예배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귀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예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내 예배를 받아주실까 이것을 마음에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이여 오늘도 우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그리고 이 제사가 얼마나 중요하냐?
가인과 아벨이 이 제사에서부터 둘로 갈라졌다고 하는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가인과 아벨이 갈라짐으로 이 세상에 인류는 둘로 나누어진다. 아벨의 후손이 될 것이냐, 가인의 후손이 될 것이냐. 예배의 실패자가 된 가인의 후손이 되지 말고 아벨의 후손이 되는 복된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에도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가인과 아벨이다. 아벨은 믿음으로 산 사람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또 바울도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제사가 이렇게 중요하다.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도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택하셔서 제사장 족속으로 삼으셨다. 또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서 우리가 이 애굽 땅을 떠나 저 광야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이런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해서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면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제사가 근본적으로 뭐가 다를까? 또 하나님이 찾으시는 제사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성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성령은 성삼위 하나님의 삼위인 성령이시고 진리라고 하는 거는 예수님이 내가 곧 진리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예수님이다. 그러니까 성부께 예배할 때 그리스도와 성령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된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느냐, 여기에 성령이 계시느냐 이 두 가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이신 영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는 예배, 성령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를 않으신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성령과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가 우리 예배에 중요하다.
히브리서에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제사가 어떻게 달랐는지 설명할 때에 아벨은 가인보다 더 믿음의 제사를 드렸다고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사에는 믿음이 꼭 있어야 한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된다. 아벨의 제사는 첫째 죄를 회개하는 제사였다. 둘째는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였다. 그다음에는 헌신하는 제사, 자기를 바치는 제사를 드렸다. 자기를 바쳤다는 얘기는 이미 죽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준비된 자만 순교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8. 신령한 사람
나균용 목사님
[고전2:11-16]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3:1-3]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설교 요약)
오늘 본문 말씀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우리 교회 안에도 이 세 종류의 사람이 뒤섞여서 살고 있다. 첫째로 등장하는 사람은 신령한 사람이다. 신령한 사람은 13절에 오직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 둘째는 육에 속한 사람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14절에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왜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느냐? 그들이 보기에 어리석게 보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사람들에게는 가르쳐줘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누구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 또한 신령한 자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자이다.
신령한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다. 또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다. 또 다른 말로 바꾸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사는 사람이다. 선지자가 누구냐? 선지자는 신령한 사람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 사람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 게 아니라, 자기 영의 인도를 따라서 살든지 마귀의 영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 자들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자연적인 인간이다. 또 다른 말로 조금 어렵게 얘기하면 생내의 인간이다. 태어났을 때 나온 그대로 전혀 변화를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변화를 받아야 한다. 그 다음에 육신에 속한 사람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다. 거듭나기는 거듭났는데 아직도 육신의 소욕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육신의 근심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육신에 매여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을 가리켜서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마땅한가? 우리는 다 생내의 인간 자연적인 인간이다. 그런데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복음을 받고 기도를 배우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변화를 받으면 비로소 육신에 속한 자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 자라가다 보면 우리가 더 큰 은혜를 받아서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육신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따라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이 사람을 신령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방주를 예비했다. 노아전에 에녹이라고 하는 사람은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다. 그러니까 신령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어도 똑같이 말씀을 하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이거는 야곱에게도 요셉에게도 다 똑같이 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은 똑같이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의 걸음을 인도하고 계신다. 이것을 늘 체험하고 이것을 늘 느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근심, 걱정, 두려움 이런 거 다 내던져 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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