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 연등을 밝히는 까닭은?
부처님 오신날 연등을 밝히는 까닭은?
“부처님, 부처님, 우리 부처님!
하늘에 계신가요~
땅에 계신가요~?
아니야~
아니야~
내 마음에 있지요~뿅!”
이는 꽤 오래된 일이지만 내가 한 때 순천 조계산 승보종찰 송광사(松廣寺) 수선사(修禪社)
선방에서 여름 하안거수행을 할 때에 마침 송광사 견학을 위해 찾아왔던 순천 유치원생들에게
대웅전에서 가사장삼을 수하고 너울너울 춤사위를 보이면서 깨우쳐 주었던 내가 손수 지은
동요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다.
“노오랑 꽃 달맞이~
풀 숲속에 피었네~
노랑나비 날아와~
친구인 줄~
뽀!뽀!뽀!~~
아니아니~
화가 나~
꿀도 잊고 간다네!~~”
지금 음미해 봐도 참으로 동심에 젖어드는 어여쁜 노랫말이다.
당시 유치원생들이 입고 온 노오란 원복과 함께 어우러져 아이들과 나는 송광사 대웅전에서
신명나게 까불고(?) 놀았다.
아마 부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사찰들과 신행단체들은 등불을
밝히고 시가행진·무대공연 등 다채로운 축하 행사들이 펼쳐진다.
사물놀이 풍악과 부처님을 찬탄하는 찬불가 등 이 날 만은 적어도 온 누리에 극락정토 화장
세계가 따로 없다.
그 옛날 한반도는 삼국시대와 고려를 걸쳐 거의 1000년이 넘도록 불교를 신앙하는 국가로
이어져 왔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팔관회와 연등행사가 대궐을 비롯, 저자거리까지 커다란
민족대행사로 펼쳐진 것이 사실(史實)이다.
오늘날 우리 민족의 흥과 끼를 우리의 DNA 속에 깊숙이 자리잡게 하고 전통문화와 모든 생활
풍속도의 중심에는 불교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문화유물들을 외침에 의해 빼앗기고 강탈당했지만 아직도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국보와 보물들은 거의 70~80%가 불교문화재에 속한다.
이토록 막중한 영향력을 끼친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그 분은 어떤 분일까?
석가모니는 우선 저 멀리 인도땅 카빌라제국에서 슛도다나(정반왕)와 마야부인을 부모로 하여
태어나셨다.
인도 사성계급의 하나인 크샤트리아 왕족의 태자였으며 이름은 ‘고오타마 싯달타’이다.
어렸을 적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의 손에서 자란 싯달타는 나무 그늘아래
홀로 앉아 사색하기를 즐겨하였다.
나이 19세가 되어 이웃나라의 어여쁜 공주와 결혼, 아들 라훌라를 낳았지만 그는 언제나
인생의 궁극적인 생로병사의 화두에만 관심이 많았다.
급기야 29세에 큰 결심을 하고 출가(出家)를 단행하여 히말라야 산속 우루빌라 숲으로 들어가
설산수도 6년간의 고행 끝에 니련선하 보리수하에서 무상정등정각의 큰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이 되셨다.
그가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앉혀놓고 최초로 설법한 초전법륜은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내용인데, 인간의 삶속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괴로움의 해결’에 있다는 것이다
그 괴로움은 집착에 원인이 있으며 이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려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3가지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써 8정도의 해법을 제시했다.
8정도의 가장 기본이 정견(正見), 곧 올바른 판단력이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이다
석가탄신을 맞이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과연 나는 하루하루를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물어보며 스스로를 살펴봐야 한다.
세상이 온통 고해(苦海)일지라도 비리에 물들지 말고 연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며 초파일에 연등을 밝히는 이유이다.
사월 초파일에 가족과 함께 가까운 사찰을 찾아 연등을 밝히는 마음은 종교를 떠나 참으로
아름다운 미풍양속임을 잊지 말자.
글/광주매일신문(광주대각사주지/퇴허자스님)
첫댓글 관세음 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