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수구들이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해도 침묵하는 행태를 보면 그들에게 미국이라는 허상만 있고, 인간답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꼬집었습니다. 오늘은 박정희의 업적인 안전불감증의 뿌리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안전불감증이란 안전에 대해서 어떠한 의식 결함, 구조적인 결함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한국병(거의 다 박정희 시기에 만들어진 게 절대 다수임)의 일종입니다.
안전불감증 참사의 효시는 1970년 4월 8일 수요일, 홍익대 근처에 있는 와우산(서울특별시 마포구 창전동)에 있는 와우 시민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건입니다. 이 사고로 인해서 사망자 32명, 부상자는 38명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가 발생한 이듬해 크리스마스(토요일), 대연각(신세계 백화점 본점 바로 맞은 편, 또는 우리은행 본점 대각선 지점에 있음)호텔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도 역시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에 비견할 만한 정도로 인명피해가 났는데, 사망자는 168명이고 부상자수는 68명이었습니다.
그리고 1977년 11월 11일 금요일, 전라북도 익산에서 발생한 이리역 열차 폭발사건(사망자 56명<실종자 7명 포함>, 부상자 1010명)도 빼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건도 안전불감증의 연장선 상에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대표적인 안전불감증 사고는 1981년 5월 14일 목요일, 경상북도 경산시 경부선 고모역에 있었던 열차추돌사건입니다(사망자 55명, 부상자 243명)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안전불감증에 의한 참사가 매년 1번 이상씩 나올 정도 였습니다.
1992년 7월 31일 금요일, 공사중이었던 신 행주대교 붕괴
1993년 1월 7일 목요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주상복합상가 화재붕괴(사망자 28명, 부상자 48명)
우암상가 붕괴사고가 난지 80일 후인 3월 28일 일요일, 경부선 부산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탈선전복사건(사망자 78명, 부상자198명)
열차 전복사고가 발생한지 120일 후(우암상가 붕괴사고가 난지 200일 후)인 7월 26일 월요일, 전라남도 해남에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망자 68명, 부상자 45명)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가 난지 76일 후(우암상가 화재붕괴사고가 발생한지 276일 뒤, 부산 구포 열차탈선사고가 난지 196일 후)인 10월 10일 일요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일어난 서해페리호 침몰사고(사망자 292명, 구조자 70명),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성수대교붕괴사고(사망자 32명, 부상자 17명)
성수대교 붕괴사고 난지 3일 후(10월 24일 월요일)에 충청북도 충주시 충주호에서 유람선이 불타는 사고(사망자 26명<실종자 1명 포함>, 부상자 33명)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고가 난지 38일 뒤인 12월 7일 수요일(성수대교 붕괴사고가 난지 41일 후),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 도시가스폭발사고(사망자 12명, 부상자 101명)
1995년 4월 28일 금요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대구백화점(현재 롯데백화점) 근처에 가스폭발사고(사망자 101명, 부상자 202명)
대구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난지 61일 뒤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6월 29일 목요일, 사망자 508명<실종자 6명 포함>, 부상자 937명)
붕괴사고가 발생한지 24일 후(대구도시가스폭발사건이 일어난지 85일 후), 전라남도 여수에 시프린스호 기름유출사고가 있었습니다(1995년 7월 23일 일요일).
4년 후, 경기도 화성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참사(1999년 6월 30일 수요일; 사망자 23명, 부상자 6명)
씨랜드참사로부터 딱 4개월(123일) 뒤인 10월 30일 토요일,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 모 지하 호프집에서 화재참사(사망자 52명, 부상자 56명)가 있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이러한 참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2003년 2월 18일 화요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있었던 방화사건(사망자 192명, 부상자 148명)
2006년 개천절(화요일), 서해안 고속도로 서해대교 상에서 29중 추돌사고(사망자 11명, 부상자 53명)
2008년 1월 7일 월요일(하필 우암상가 화재붕괴 사고일과 같음), 경기도 이천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참사(사망자 40명, 부상자 10명)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가 일어난지 34일 후에, 2008년 2월 10일 일요일(설날연휴 마지막 날),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참사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안전불감증에 의한 참사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데,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원인의 뿌리는 바로 박정희식 스타일에 기인합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얻었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점을 감추기 위해서 경제개발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업적을 그것으로 통해서 실현시키려고 하다보니 조급증(저는우리나라 사람이 원래부터 조급증적인 성격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믿고 싶지 않습니다)을 유발시켰다고 봅니다. 박정희 시대에 최초의 안전불감증 참사인 와우아파트 붕괴사건만을 보더라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안전불감증으로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사실은 결과주의를 확산시켰다는 점입니다. 세상의 이치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한 결과만을 본다면, 어떻게 해서 결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서 무시하기 쉽다는 겁니다. 마치 뿌리없는 식물이 생장하는 것과 같습니다(식물은 뿌리가 없으면 당연히 말라 죽습니다). 그래서 결과주의의 목적은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어떠한 원인이나 과정이 불순해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에도 맹점은 있습니다.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과정 상에서 순수하지 않으면 나쁜 결과물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성수대교 붕괴사고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통해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흔히 넷상에서 고담대구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무슨 말이냐면 대형 참사가 나는 곳이 대구다라는 뜻입니다(지역감정을 조장할 목적이 아닙니다). 1990년대 이후로 일어난 대형 참사 사고를 보면 대구에서 일어난 게 인명피해가 컸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름을 붙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담대구라는 명칭이 붙여진 원인을 찾으면 위에서 언급한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폐해에다가 그의 딸인 박근혜의 근거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이곳에서 참사가 일어나도 그를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또한 대구에서 참사가 일어나면 박근혜는 유족들을 위로할 자격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그가 참사피해유족들을 위로하는 것 자체가 안전불감증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임).
또한 한나라당은 안전불감증에 대해서 비방할 자격도, 이유도 없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 당인 민주공화당에서 이런 고질병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이천화재 참사를 보면, 한나라당의 작태를 보십시오! "노무현 정권의 인재다!" 그들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위선적인지를.
안전불감증 참사에 대해 조중동의 보도행태를 까발리겠습니다. 남조선판 로동신문들을 보면 사건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특집을 내보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이 나면 사건의 당사자만 비판하지, 안전불감증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지 여흘정도 지나면 냄비근성을 유도합니다. 그러한 행태는 제2의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안전불감증은 한국병의 대표이며, 박정희 경제개발의 폐해물입니다. 박정희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경제개발의 치적에만 신경쓰지 정작 국민들이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병으로 통해 이러한 참사에 의해 희생되는 것이 아깝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럼 그러한 사람들이 안전불감증 때문에 일어난 참사를 겪게 되도 신을 맹신하면 이성적인 인간이 절대 아닙니다.
동지여러분, 안전불감증을 없애는 길은 박정희의 죄상을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주민등록번호제도를 까발리겠습니다.
첫댓글 강력추천,동감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감사.
결과가 저렇게 나오는대도, 건설사들의 건축 형태, 규제, 법규가 수정,보완 되지 않는거죠! 죽어가는 국민만 너무 너무 불쌍합니다. SK 는 건설붕괴 원인을 밝혀야지,, 조사를 못하게 출입을 막는다고 합니다. 기가 막혀서,,,, 사람 목숨을 정말 뭘로 보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