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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지김상옥열사동상(漢志金相玉烈士銅像)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대학로공원 내) | ||
건립기관 | 범종교3·1정신 현창운동 추진운동회 | ||
관리기관 | 범종교3·1정신 현창운동 추진운동회 | ||
시설규모 | 높이 6.35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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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한지김상옥열사동상(漢志金相玉烈士銅像) 의열단원으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적한 한지(寒地) 김상옥(1890∼1923)열사의 동상이다. 20세때 동흥 야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운동을 전개하면서 이종소, 임용호, 손정도 등과 사회계몽·민족독립을 결의하고 실행하였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남과 함께 윤익중·정설교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혁신단을 조직하고 기관지(혁신공보)를 발행, 배포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20년 봄에는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과 만나 암살단을 조직하여 적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의 직접 행동으로 독립운동을 타개해 나갈 것을 계획하였다. 8월에는 미국의원단 일행이 서울에 들어오는 기회를 이용하여 한우석 등과 함께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의원단의 서울 도착 전날에 일부 동지들이 피체됨에 따라 실패로 돌아갔다. 선생은 일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여 그해 10월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김국·이시영·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지도와 소개로 중국의 지사들과 교유하면서 조국독립을 위한 투쟁을 모색하였다. 1921년 일시 귀국하여 군자금 모집과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하였고, 다시 1922년 겨울 의열단원으로 폭탄, 권총, 실탄 등의 무기를 휴대하고 동지 안흥안·오복영 등과 함께 서울에 잠입하였다. 이때 의열단장 김원봉을 통하여 서울에 있던 의열단원 김한과의 연락 협력을 당부받기도 하였다. 1923년 1월 12일 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후 일경의 추격을 극적으로 따돌리며 10여일간 은신하다가 1월 22일 종로의 은신처에서 일경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가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첫댓글 이분의 동상은 마로니에공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