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001년) 4월 말과 5월 초에는 일본인들이 황금연휴를 맞아 우리나라에 대거 몰려왔다. 일본인들은 작년 한 해 동안 247만 명이 해외관광에 나섰는데 그 중에서 한국을 가장 많이 찾았다고 한다. 최근 수년 동안 엔고(円高:일본어로는 えんだか)와 일본문화 개방 물결을 타고 가장 가까운 나라인 우리나라를 가장 선호하여 3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고 한다. 특히 5월초의 일본의 황금연휴 기간에 러시를 이루어 항공편은 특별 전세기를 운항해야 할 정도로 관광 성수기를 구가했다. 한국 관광은 20대 직장 여성 층과 가족여행이 주도하고 있는데, 일본인들이 매력을 느끼는 우리나라의 관광 상품은 쇼핑 · 미용 · 불고기 등의 식도락이라고 한다. 본래의 목적인 볼거리(관광) 보다는 값싸게 물건을 사고 멋도 내고 혼모노(本物)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는 실속파들이다.
'国民の祝日(しゅくじつ)' 라 일컬어지는 일본의 국경일은 공식적으로는 1년 동안에 15일간이다. 달력에는 빨간색의 휴일로 표시되지 않은 비공식적인 연휴를 포함하여 1년 동안에 세 번의 대형 연휴가 있다.
그런데 15일간의 국경일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7일간은 천황 또는 황실과 관련이 있는 날이다. 일본에서는 황실과 천황의 존재는 절대적이고 성역처럼 여기고 있다. 물론 겉으로는 천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한 명칭이다. 그러나 그 이면 또는 유래를 살펴보면 황실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천황 덕분에 1주일의 휴일을 갖게 된 것이다. 즉 건국기념일(建国記念日), 녹색자연의 날(綠の日), 바다의 날(海の日), 경로의 날(敬老の日), 근로감사의 날(勤勞感謝の日), 문화의 날(文化の日), 천황탄생일(天皇誕生日)이 그러하다.
● 건국기념일은 초대 천황인 神武천황이 B.C.660년 음력 1월 1일에 일본은 건국했다는 날인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메이지시대에 태양력으로 환산하여 양력 2월 11일을 건국기념일로 정했다.
● 녹색자연의 날은 현재(平成)의 천황인 아키히토(明仁)의 아버지인 히로히토(裕仁)천황의 생일이라서 국경일이었는데, 1989년 죽을 때까지 63년간의 오랜 재위기간을 휴일로서 몸에 배인 일본인들에게는 여전히 휴일처럼 여겼다. 그래서 천황의 생존시 생일날에 나무를 많이 심었다(→ 植樹祭)는 것을 착안하고, 마침 자연환경보호가 이슈로 등장한 시대의 흐름에 맞춰 녹색자연의 날이라고 이름짓고 계속해서 휴일로 지정했다.
한편 일제시대에 천황의 생일(4월 29일)은 축하 행사가 일본 국내 외에서 거국적으로 열렸기 때문에 우리나라 애국지사들의 의거일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윤봉길(尹奉吉)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상해(上海) 홍구(虹口)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을 비롯한 수뇌부의 요인을 폭살 또는 중상을 입힌 쾌거의 날이기도 하다.
● 바다의 날은 메이지(明治)천황이 1876년 등대 순시선인 메이지마루(明治丸)를 타고 동북지방을 항해한 후 요코하마(橫浜)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기념하여 1996년에 휴일로 지정했다. 당시 5월과 9월 사이에 공식적인 휴일이 너무 사이가 멀어 삭막하다는 여론과 바다의 중요성이 제기된 시대의 추세 속에서 중간에 휴일을 추가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천황과 관련이 있는 휴일을 찾은 것이다. 메이지마루는 지금도 기념물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 경로의 날은 쇼토쿠(聖德)태자가 오늘날의 양로원(老人ホ-ム)과 같은 시설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경로사상의 故事에서 유래하여 날짜를 잡았다고 한다.
● 문화의 날은 원래 메이지천황의 생일로서 특별히 텐쵸세츠(天長節)로 불리는 당시로서는 최대의 국경일이었는데, 천장절을 의미가 좋은 문화의 날로 바꿔서 휴일로 지정했다. 또한 1946년에는 일부러 위대한(?) 메이지천황의 생일에 맞춰 일본국 헌법을 공포했다고 한다.
● 근로감사의 날은 원래 일본 황실에서 햇곡식이 나오면 천황가의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니이나메사이(新嘗祭)에서 유래하여 날짜를 잡았다고 한다.
● 천황탄생일은 지금의 천황 헤이세이(平成)시대인 아키히토의 생일로 국경일이다.
'대형 연휴'와 '비공식 연휴'
일본의 휴일 관행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앞에서 언급한 세 번의 대형 연휴 속에는 비공식 휴일도 있고, 대체휴일도 있다.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첫 번째의 대형 연휴는 4월 말과 5월 초에 걸쳐있는데, 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는 중간과 앞뒤로 일요일도 끼어있기 때문에 하루걸러 휴일, 이른바 '징검다리(飛び石) 휴일'이라서 아예 1주일 또는 10일 동안 연휴로 하는 곳도 많다. 그래서 'ゴ-ルデン ウイ-ク(Golden Week)' 또는 '대형 연휴(大型連休, おおがたれんきゅう)'라고 부른다. 또한 이 황금연휴 기간을 이용하여 수많은 일본인이 해외 나들이를 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인 우리나라로서는 관광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는 데, 이 때는 비행기나 호텔이 초만원을 이룬다.
두 번째의 대형 연휴는 비공식적인 휴일이다. 8월 15일은 'お盆(ぼん)'으로 이 날을 전후해서 여름철 휴가를 겸해 3∼7일간을 휴무하는 곳이 많다. 한국의 추석과 비슷해서 고향을 찾는 귀성객과 성묘객으로 교통 기관은 초만원이고 대도시는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지만, 달력에는 전혀 휴일로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일본어로 귀성은 さとがえり(里帰り) 또는 きせい(帰省)라고 하며, 성묘는 はかまいり(墓参り)라고 한다. 비공식 휴일로 된 것은 맥아더 원수가 일본을 통치할 때(GHQ) '오봉(お盆)'은 특정 종교인 불교 행사라 하여 휴일로 지정하는 것을 불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날은 우연하게도 일본이 항복한 날과 겹치기 때문에 '패전기념일'이기도 하다.
세 번째의 대형 연휴는 연말과 연시로 이어지는 비공식적인 연휴다. '망년회(忘年會)'와 '신년회(新年會)'로 이어져 회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12월 28일경부터 새해 1월 3일경까지는 아예 휴무를 하거나, 근무를 하더라도 정상 업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경의를 표하기 위해 단순히 인사치레로 방문한다는 소위 '효케이호몬(表敬訪問)' 기간으로 각 거래처에 '새해인사 다니기(新年あいさつ回り)'에 바쁘고, 저녁에는 각종 술자리 모임이 줄을 잇게 된다.
'대체 휴일'
일본에서는 국경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ふりかえ(振替) 휴일' 이라 하여 다음날인 월요일에 대체해서 쉰다. 왜냐하면 될 수 있는 대로 휴일을 연장하여 소비를 촉진하려는 고육지책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1989년 쇼와(昭和)천황의 뒤를 이은 헤이세이(平成)천황의 등극과 더불어 시작된 일본의 경제불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 '平成不景気' 라고 부른다. 'バブル経済の崩壞' 즉, '거품경제의 붕괴' 이후 국민들이 돈을 쓰지 않아 경기가 더욱 침체되자,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주휴 2일제(週休二日制)를 도입했다. 1999년에는 국민들에게 무료로 '商品券(しょうひんけん)'을 배포하여 소비 활성화를 꾀하기도 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의 무역역조(貿易逆調)에 의해 미국의 압력이 가중되자 노동시간을 줄여 생산량의 감소 조치로 무역 마찰을 해소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2000년부터는 '성인의 날(成人の日)'과 '체육의 날(体育の日)'을 아예 연휴로 하기 위해서 1월과 10월의 '두 번째 월요일'로 하기로 법령을 고쳐서 시행하고 있다. 즉, 연휴에서 3일 연휴(土 · 日 · 月)로 확대하여 경기 부양도 하고 국민에게는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명분으로 내세워 가급적 연휴로 쉬게 하는 것이 작금의 추세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석가탄신일' 이나 '크리스마스'는 휴일이 아니며, 선거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요일에 실시한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 새로 경축일 지정을 희망하는 날로서는 히나마츠리(ひな祭り : 3월 3일), 어머니의 날(母の日 : 5월 제2일요일), 노동절(メ-デ- : 5월 1일), 세츠분(節分 : 立春 전날), 태평양전쟁 개전일(太平洋戦争開戦日 : 12월 8일), 크리스마스(クリスマス : 12월 25일) 등이라고 하는데 외국과의 전쟁 개전일을 경축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생각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