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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글을 읽기 전에 " 故 오금자 할머니께서 천상에서도 소녀처럼 詩를 쓰며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기도드립니다.♥
2015년 03월 03일 (화) 봄비 내림(추가)
이 글은 2014년 02월 09일 오금자 할머니 집을 방문한 사진-일기입니다. 할머니는 2014년 05월 12일 두 번째 시집을 발표하지 못하고 하늘로 떠나셨습니다. 오금자 할머니는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편입을 결심(어머니와 살아오면서 써 놓은 일기 글을 묶어 책으로 만들어 드리는 일)하게 한 심덕(心德)의 주인공이십니다. 우리 모두 '오금자 할머니의 연세가 되기까지' 글을 쓰려면 아직도 몇십 년을 더 글을 써야 합니다. 문학을 즐겨야 하는 이유죠.^^
♡ 휴일 늦은 아침, 모처럼 여유를 부리며 일어나니 창밖에는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수놓았다.(제가 사는 아파트입니다.) 지난가을 상수 머리까지 싹둑 잘린 느티나무가 상처로 끙끙 앓는 듯하다. 사람들이 저렇게 매정할까? 작은 가지만 드러내도 충분할 것을 나무 몸통 부분까지 자르다니!
'92세 소녀 시인'을 찾아뵙는 날,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있을까. 마치 유명 연예인을 만나기라도 하듯이 한마디로 분위기 짱이다.ㅎㅎ 홍합을 우려낸 국물에 작은누나가 설 명절에 가져다준 손만두와 떡을 넣어 떡만둣국을 끓여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하고 할머니께 전화드렸다.
" 누구세요? "
"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 팬이에요. 점심식사 하셨어요? 할머니 지금 누구랑 뭐하고 계세요? "
" 강아지랑, 새들이랑, 꽃들이랑... 늘 그렇게 지내요. 우리 집은 아주 식구가 많아요. "
" ㅎㅎㅎ 알겠어요, 할머니. 저 오늘 할머니 집에 놀러가도 괜찮을까요? 할머니 기(氣)를 받고 싶어서요.
그리고 할머니 책(詩집)에 싸인도 받고 싶고. 음~ 할머니 얼굴도 보고 싶고. 정말 괜찮겠어요? "
" 괜찮아요. 놀러오세요. 그런데 길이 안 좋아요. 좀 전에 나가 올라오는 길에 눈을 쓸기는 했는데... "
" 괜찮아요. 할머니, 길에 눈은 다 녹았어요. 편안히 계세요~. 제가 근처에 가서 전화 드릴께요~ "
전화를 끊고 방문 준비를 시작했다. 할머니가 쓴 시집은 작은 배낭에 넣고 토요일 퇴근하며 사 온 호박엿과 딸기는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현관을 나섰다. 주차된 차에 올라 소양강 다리를 건널 즈음 불현듯 생각이 스친다. '눈이 내려 길도 미끄러운데 행여 내가 찾아간다고 할머니께서 옆 마을 마트에 찬거리라도 사려고 나오시다가 미끄러져 다치기라도 하신다면...!'
생각이 떠오르자 퇴근길에 자주 들르는 NH-마트로 향했다. 할머니 식성을 잘 몰라 일단 고등어 한 손과 두부 한 모를 사 차에 올랐다. 행여 할머니가 붙잡고 밥을 먹고 가라면 뿌리칠 수도 없고 불청객의 죄송스러움에 같이 식사 준비를 도와드릴 마음이었다. 호숫가를 따라 시원하게 뚫린 46번 경춘국도를 달린다. 목장의 양 떼 무리처럼 나무들은 가지마다 하얀 눈꽃 송이를 소복소복 피웠다. 북한강 강변을 따라 강촌으로 이어지는 길. 강 건너 산자락 아래 옛 경춘선 철로에는 레일바이크를 타며 휴일을 즐기는 이들이 잘 다녀오라는 듯 손을 흔든다.
20여 분 달렸을까? 저 멀리 언덕 위에 할머니가 알려준 파란색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주섬주섬 준비한 먹거리를 담아 들고 열린 대문을 밀고 할머니 집으로 오른다. 전화를 드리기로 했지만, 혹여 전화를 받고 달려 나오시다가 미끄러져 다치기라도 하면 싶어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마당 한 귀퉁이에서 늙은 백구가 짖어댄다. 그리곤 아직 어린 티가 채 가시지 않은 황구가 달려 나와 겅중겅중 뛰어오르며 온갖 애교로 반긴다.
♡ 할머니가 산자락에서 야생동물과 친구처럼 가족처럼 지낸다는 방송이 나가자, 몰지각한 사람들이 멧돼지 사냥을 나와 춘천시에 특별히 의뢰해 '수렵 금지'라는 걸개 글까지 대문에 붙여 놓았다. 헐머니가 사냥꾼의 총소리에 얼마나 놀라셨을지.참 몰지각한 사람들이다. ^^
♡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길. 미끄러운데 할머니는 눈을 쓸어놓았다. 옆에 기다란 밧줄은 미끄러운 길에 붙잡고 다니시라고 가족들이 만들었다고. 할머니는 이곳에 자리 잡아 30여 년 살고 있다고 하셨다. 그동안 심은 나무들은 훌쩍 자라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 할머니가 아끼는 백구는 목줄에 묶여 달려 나오지 못하고 컹컹 짖어대기만 했다. 그런데 지난해 할머니 집에 왔다는 애송이 황구가 달려 나와 반갑다고 얼마나 애교를 떠는지, 집으로 오르는 내내 겅중겅중 뛰고 매달리며 좋아 어쩔 줄 모른다. 할머니는 "얘는 너무 촐랑대고 까불어 이쁘지 않다." 고 했다.ㅎㅎㅎ
♡ 할머니가 좋아하는 백구. 백구는 이미 평균 수명을 넘긴 지 오래된 가족이란다. 백구가 먼저 죽어야 당신 손으로 묻어주고 자신도 편안히 눈을 감는다,며 걱정하셨다. 생명을 존중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할머니의 여린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 할머니가 하늘로 떠나기 전 '백구'가 먼저 삶을 마감해 할머니께서 백구를 집 근처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이 소식은 할머니 집에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선생님이 우연히 마티즈를 끌고 우리 업소를 방문하여 알게 됨. (2015년 03월 03일 추가 기록함)
♡ 주방 뒤로 드나드는 출입문 앞에 털신이 놓여 있다. 언젠가는 저 털신도 이별의 아픔으로 다가올 텐데 하는 연민에 담았다. 평균 수명을 훨씬 넘긴 할머니에겐 분신처럼 느껴지는 신발이지 싶다. 지난해 가을 하늘로 떠나신 울 엄니 신발도 신발장에 간직해 두곤 엄니의 고향 마을을 찾을 때면 나랑 동행하곤 한다.
♡ 남서쪽으로 난 거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현관 입구에 낯익은 주검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랑새, 청설모, 호랑나비, 새알이 든 둥지다. 모두 할머니 집에 찾아오던 친구들인데 어느 날 원인도 모른 채 죽어 안쓰러움에 두고 보신단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아름다움이 있다면 바로 이런 마음 씀이 아닐까 싶다. _()_
♡ 거실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키우는 초록이들이 창가에서 해바라기하고 있다. 며칠 전 시집을 출판하며 가족들이 보낸 화분도 리본을 달고 반긴다. 로즈마리도 소담스레 자리해 손으로 쓰다듬으며 향기를 맡으니 얼마나 향기가 그윽하던지!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의 바지런하고 아기자기한 솜씨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 할머니가 시를 쓰고 잠을 청하는 안방. 창가에 숲이 우거져 있다. 창밖에 희미하게 보이는 배경이 북한강 건너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이 자리한 검봉산이다. 산자락 아래 북한강이 흐르고 옛 경춘천 철길은 낭만을 노래하던 연인들의 하룻밤 아름다웠던 추억 여행을 곱게 간직한 채 레일바이크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할머니는 창가에 놓인 침대에서 잠을 청하면서 달님과 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이야기를 시로 남겼다. 아! 스무 살만 젊으셨어도 '누나'라고 부를 텐데! 곳곳에 소녀처럼 뚝뚝 묻어나는 감성에 말이다.ㅎㅎㅎ
♡ 할머니가 주방으로 커피를 타러 간 사이 안방 곳곳에 묻어 나는 할머니의 오밀조밀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안타깝게도 할머니 집에 컴퓨터가 없어 이 글도 할머니가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오시면 보여드릴 생각이다. 할머니는 저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쓴다고 했다. 창가에 놓인 화분들도 할머니가 아끼는 가족이다. 창밖에서 엿보는 숲속 나무들도, 새들도, 꽃들도 모두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할머니의 시심(詩心)으로 태어난다. ^^
♡ 할머니는 당신의 삶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시는지 책상 위에 무거운 제목의 시집 한 권이 놓여있었다. 90여 년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 무엇이 할머니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까? 삶에 대한 미련? 곁에 둔 반려동물에 대한 연민? 할머니는 요즘 들어 부쩍 돌아가신 부모님과 오빠(할머니는 오빠가 다섯 있고 고명딸이자 막내임)들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할머니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은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치악산 자락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보니 당시 할머니께서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하신 듯하다 (2014년 5월 12일?에 하늘로 떠나셨다니 내가 방문하고 석 달 후에 부모님과 오빠들을 만나러 가셨다. 2015년 03월 03일 추가 기록함)
♡ 창가에 둔 작은 화분. 할머니의 고마운 사랑을 아는 듯 건강한 모습이었다. ' 어서 빨리 봄이 돌아와 꽃을 피워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지'하는 듯하다. 창밖에 멀리 산자락이 마주 닿은 곳에 옛 강촌역이 자리하고 있다. 한때는 경춘선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고요한 숲속에서 백설 공주처럼 잠든 금자 할머니의 단잠을 깨웠지 싶다.^^
♡ 벽에는 할머니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과 작고한 남편(우측)의 사진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공교롭게도 할머니의 남편인 할아버지가 나와 같은 동성동본에 시댁 사촌 조카들이 같은 돌림자(이름) 쓰고 있다, 라며 할머니는 나를 보고 '막내아들' 하나 더 생겼다며 좋아하셨다.
생전의 '할아버지는 살갑지 않았다'며 나를 보고 '최' 씨가 아니라는 듯 놀라는 표정이었다.ㅎㅎ 할머니는 '최' 씨가 차갑고 사무적이라 교육자였던 남편이 집안일에는 무관심했다고. 할머니의 아버지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황제의 근위대 대장이었고 어머니는 대한제국 숙정 부인 칭호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아버지가 세운 보통 학교(춘천초등학교)와 춘천여고를 졸업 후 국비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여자의 몸으로 농촌부흥운동(계몽)을 지도하셨다고 했다.
♡ 침대 곁에는 할머니가 즐겨 보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고 책꽂이 옆에는 자녀들이 받은 각종 학위 패와 지구본, 디지탈 시계가 조용한 안방을 지켜주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SEE' 라는 제목을 단 작은 잡지가 놓여있었는데, 책 내용이 짐작되었지만, 할머니의 잠자리여서 손을 대지 않았다.^^
♡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작은 책상 위에는 원고를 정리한 듯한 종잇장들이 있었는데, 차마 펼쳐보지 못했다. 벽면에는 할머니가 언론에 보도된 신문을 스크랩하여 액자에 담아 놓았다. 할머니의 유명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출판사에서 후속편을 내자고 자꾸 졸라대서 걱정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 할머니, 벌써 1집은 초판 2쇄에 들어갔어요. 출판사 사람들 다 장사하는 사람들이에요. 할머니가 인세 받아 사는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평소처럼 지내세요. 그러다 병나세요. "
" 난 아무것도 몰라~. 그저 그 사람들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 책값도 할머니 얼마로 할까요? 해서 한 오천 원 했더니 그런 책값은 없다며 자기네가 알아서 했어. "
할머니께 내가 서점에 별도로 주문해 들고 간 시집을 보여드리며 2쇄 나온 책이라고 하니 깜짝 놀라셨다.
♡ 안방 동쪽 벽면에 걸린 액자 속 할머니 모습. 사진 옆에 타이틀 글이 마음에 닿는다. 소녀처럼 밝게 웃는 할머니 모습에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받드는 할머니의 고운 마음과 소녀의 감성이 느껴졌다. 30여 년 세월, 할머니는 시를 쓰려고 특별히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오로지 자연과 교감하며 가슴에 다가오는 느낌을 순수한 시적 언어로 옮겼음에도 독자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울린다. 할머니의 삶이 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뜻이다.^^
♡ 오후 들어 할머니 집을 방문했는데 할머니와 온갖 수다를 떠는 동안 산자락엔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자식들이 모든 공과금을 자동이체로 해 놓아 마음이 편할 듯한데, 조금이라도 자식들에게 부담을 덜 주려고 할머니는 전기며 기름이며 모두 아껴 쓴다고 하셨다. 부모님 마음은 다 같다.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도 뭐든지 늘 아껴 쓰셨다. 휴지도 마디를 세어서 뜯어 쓰시고, 티브도 전기세 나간다고 특별히 볼 것 없으면 끄라고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다. 가난해 헐벗고 물질문명의 넉넉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아픈 역사이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정신적 유산이다.^^
♡ 할머니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할머니는 "싸인 해줄까?" 하셨다. 늘 홀로 자연과 벗하며 지내시는 할머니의 외로움을 충분히 알기에 말벗이라도 되어드리고 싶어 할머니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며 보낸 시간이 3~4시간 된 듯하다. 할머니가 앉은 똑같은 1인용 작은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할머니 앞에 젊은 내가 몸을 기대고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쑤셔대어 혼났다.ㅎㅎㅎ 다음에는 살짝 분위기 바꿔 이리저리 옮겨 가며 이야기를 해야 할 듯싶다. 싸인을 해 주신다기에 시집을 건네드렸다. 할머니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을 하시더니 천천히 또박 또박 뭔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뭐라고 쓰시나 궁금해 목을 빼 들고 넘겨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사진만 담아드렸다.ㅎㅎㅎ
♡ 남쪽 창에도 저녁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밤엔 할머니가 어떤 꿈을 꾸실까 상상해봤다. 햇살이 사라진 저녁 무렵 창밖 검봉산 자락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언제 나도 이 침대 위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할머니의 氣를 받아 시심(詩心)을 키워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다. 할머니가 허락하실래나~ ㅋㅋㅋ(아마 '후평동 막내' 라고 능히 자고 가라고도 하실 듯하다)
♡ 할머니께 딸기 한 팩, 심심하실 때 드시라고 울 엄니가 즐겨 드셨던 호박엿(청우식품) 한 봉지, 행여 길 미끄러운데 반찬거리 사러 나오시다가 넘어져 다치실까 봐 고등어 한 손, 두부 한 모 등이 할머니를 뵈러 가며 내가 준비한 것들이다. 할머니는...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딸기야 " 하며 좋아하셨다.
" 돈을 너무 많이 써 어떡해... " 하시길래...
" 할머니 모두 몇천 원짜리인데 뭘 그렇게 마음 쓰고 그러세요 " 하니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곤...
내가 안고 있던 울 엄니 사진을 건네받아 연세와 돌아가신 사연을 묻곤 사진을 보며 또 혼자 말을 잇는다.
" 왜 이런 착한 효자 아들을 두고 가셨어. 더 있다가 가시지. 아드님 눈에 밟혀 어떡해." 하며 울먹이신다.
♡ 울 엄니 모습입니다. 지난해(2013년 9월 19일) 추석 연휴 나랑 전국 일주 여행할 때 어머니 고향 마을(대관령 눈꽃마을)에서. 울 엄니어린 시절 고향 마을인 대관령 눈꽃마을입니다. 금자 할머니가 울 엄니를 보시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추가로 올려드리니 헷갈리지 마세요. 어머니는 이 사진을 찍은 다음 날 자정을 좀 넘겨 경북 안동에서 뇌동맥(지주막 하) 출혈로 쓰러져 안동병원-춘천성심병원으로 후송하여 집중 치료를 받으셨으나 만 하루 만에 한恨 많은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아! 가여운 우리 엄마. ㅠㅠ
※ 바로 아래 사진들은 방문 후기 작성 뒤 별도로 추가한 글입니다.
※ 위 오른쪽 사진 중에 엄니랑 북경을 거쳐 6박7일 백두산 여행하며 담은 시기가 97년 8월이었다. 그해 9월에 개인 사업장인 오토오아시스를 열었다. 오픈하자마자 듣도보도 못한 IMF라는 놈이 찾아와 인생수업료 톡톡히 치렀다. 그래도 젊음이라는 용기 하나와 그동안 갈고 닦은 무기?가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금자 할머니가 엄니 사진을 들고 하시는 이야기에 콧날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할머니가 주신 커피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들고 간 딸기를 할머니께 건네드리자, 할머닌 내게도 하나 먹어 보라며 집어주셨다. 그렇게 할머니의 지난 세월을 들으며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를 마신 뒤 생전 울 엄니가 즐겨 드셨던 호박엿 하나를 포장을 벗겨 할머니께 건네드리니 할머니도 호박엿을 하나 집어 들고 나에게 아~ 하라고 하셨다. 쑥스러워 '그냥 주세요' 하니, 한사코 입을 '아~' 하라고 하여 따라 했더니 엿을 까서 입안에 넣어 주셨다. 살가운 내 모습에 할머니는 기분이 좋으셨던지, 벌써 마음을 열으셨다. 마치 막내아들처럼...ㅎㅎ(그때부터 할머닌 나에게 '후평동 막내'라고 부르셨다. 후평동에 일터가 있어... 그 후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 할머니는 자작시를 전화로 낭송해 주시기도 했다.^^)
♡ 주방 벽에 붙여 놓은 할머니 소개 신문 기사들. 집 곳곳에 할머니는 오밀조밀 나름 솜씨를 발휘해 꾸며 놓으셨다. 이런 정서를 지니고 있었으니 그동안 마음속에 지녔던 소녀의 감성을 90세가 넘어서도 꿈을 이루셨지 싶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할머니가 지난해 봄 3.1절 마라톤에 참여해 완주한 신문 기사다. 참 대단하신 할머니다.^^
♡ 안방에 있던 찻상을 들어 주방에 옮겨드리자, 잠시 허리를 펴시길래 담아드렸다. 주방 곳곳에도 꼼꼼하고 웬만한 젊은 살림꾼보다 정돈이 잘 돼 있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도 웬만하면 신세 지기 싫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돌아가신 울 엄니도 그러셨다. 90세가 넘은 연세에 혼자 식생활 하시기도 벅찰 텐데 오히려 나를 걱정하셨다.
" 밥은 제때 찾아 먹지? "
" 그럼요. 하루 세끼니 잘 찾아 먹어요. 그리고 음식도 잘해요. 엄마 편찮으실 때 연습을 많이 해서요."
" 김치 좀 줄까? 김치 많은데... "
" 작은누나가 해 준 김장김치 많아요,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할머니는 마음이 쓰이시는지, 자꾸 뭔가 찾아주고 싶은 표정이셨다. 가스레인지 후드 위쪽에 '불조심'이란 문구만 봐도 할머니의 꼼꼼한 정서를 조금은 느낄 수 있다.
♡ 전화기에 붙인 문구가 섬짓하다. '법정 스님'께서도 말빚도 이 세상을 끝내고 돌아갈 때 다 업(業)이 되어 돌아온다고 하셨다. 빚은 말이 됐든, 행위가 됐든 죽는 그 순간까지 業이 되어 돌아온다는 뜻이지 싶다. 스님은 자신이 쓴 책을 더는 출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스님께서 입적하시며 그동안 진 말빚을 다 짊어지고 가셨다. 그동안 나는 살아오며 전화기를 붙잡고 '말빚'을 지며 얼마나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을까?
♡ 90이 넘은 연세임에도 꼼꼼하게 정리정돈을 하시고 소녀 같은 감성으로 시를 쓰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다. 주로 안방에서 시를 쓰시는데, 때론 주방에서도 창밖을 바라보며 자연을 벗 삼아 글을 쓰신다고 하셨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난을 키울 만큼 고상하신 품격이 느껴지기도' 했다.
♡ 이젠 기억력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허리가 아파 힘들다고 하셨다. 냉장고 문에 건강관리 정보를 가위로 잘라 붙여놓고 몸 관리를 하실 만큼 할머니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흐트러지는 모습을 경계하셨다.
♡ 주방 내부 모습이다. 선입견이지만, 문학을 좋아하거나 예술 활동하는 사람들은 왠지 주변에 널어놓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갈 것 같은데, 할머니는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벽에는 신문에서 오려낸 각종 자료들을 정리해 붙여놓았다. 할머니는 지금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시는 듯했다. 가족들이 곁에 가까이 와 계시라고 해도 할머니는 '이곳이 너무 좋아 여기서 눈을 감고 싶어 떠날 수가 없다'고 하셨다.
♡ 상단 좌측에 풍경화는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라고 하셨다. 호랑이해에 붙인 족자를 말띠 해까지 붙어 있다고 쑥스러워하셨다. 그 아래 액자에 글들은 할머니가 쓴 시를 그림에 넣은 시화다. 또 바로 아래 오밀조밀 모아놓은 애장품들이 할머니의 성정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다. 다른 그림들도 있는데 내놓지 않았다고 했다. 채도나 원근 기법에서 보듯이 할머니의 그림 솜씨가 초보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할머니의 재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 봉평 메밀꽃축제(이효석 문화제)에 여행 가서 지은 시라고 했다. 시어에 소녀의 감성이 뚝뚝 묻어났다. 늙는 것은 조물주가 내리는 자연의 섭리라 해도 마음에 담겨 있는 정서나 감성은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대로 살아있나 보다.^^
♡ 이 시는 할머니가 집으로 찾아오는 온갖 자연의 동식물을 가족처럼 여기며 마음으로 쓴 詩다. 할머니는 자연을 사랑하고 마음으로 보듬어 안아 그것들을 시로 승화시켰다.
♡ 거실에는 여러 개의 화분에 꽃나무를 심어 기르는데, 모두 가족이라고 하셨다. 젊은 시절부터 원예와 사슴 농장을 운영하며 '농촌 부흥운동'을 하셨단다. 덕분에 관련 기관에서 각종 상도 많이 받으신 듯했다. 사진에 보면 거실 유리창 뒤로 옛 경춘천 철로가 기다랗게 줄을 긋고 그 아래 북한강이 보인다.
♡ 이 시를 읽으며 나도 엄니 생각에 울컥 목메었다. 이 시 외에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도 여러 편 있었다. 할머니 집을 방문 후 며칠 지나 전화를 드리니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시가 또 있다며 전화로 직접 낭송까지 해 주셨는데,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쏟았다.
♡ 할머니와 3시간 넘게 이야기하다가 집을 나서며 잠시 거실에서 포즈를 취해보시라니 돌아가신 울 엄니보단 연세가 퍽 아래인데도 시를 쓰는 고뇌 때문일까 지난가을 하늘로 소풍을 떠난 울 엄니보다 더 연로해 보이셨다. 아무쪼록 할머니가 오래오래 시를 쓰며 행복한 하루하루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 거실에서 남서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내려오며. 이곳은 외지에서 오는 손님들이 주로 드나든다. 할머니는 주방과 연결된 쪽문을 주로 이용하시는데, 문 앞에는 할머니의 털신 한 켤레가 놓여 있다. 주방 출입문을 나서면 개집과 닭장이 가까이 있어 오전에는 녀석들 밥 챙겨주는 등등 잠시 앉아 마음 놓고 쉴 시간이 없다고 하셨다. 암튼 부지런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시니 90세가 넘도록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처럼 보였다.
♡ 거실에서 나와 앞마당에서 할먼네 집을 바라보며. 앞뒤로 울창하게 나무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30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처음 이사 와서는 각종 규제로 집도 마음대로 지을 수 없어 마음고생도 꽤 했단다. 집 주변이 온통 산비탈이라 화전을 일구어 농사도 짓고 각종 묘목을 심어 키워 팔기도 했다고 했다고.
♡ 예전에는 아래층에 벽이 없이 비워 두어 산짐승이 찾아와 놀다 가곤 했단다. 심지어 멧돼지도 찾아와 할머니와 같이 놀았단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3층 다락방도 보여준다고 하셨다. 난 왠지 시골집 다락방에 마음이 끌린다. 비 오는 날 다락방 창가에 엎드려 빗소리를 벗 삼아 책을 읽는 것이 어린 시절 꿈이었다.ㅎㅎ
♡ 집으로 오르는 길. 길옆에 텃밭도 있고 나무들도 무성하다. 자연이 주는 넉넉함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집. 꽃피는 봄이면 할머니와 조잘조잘 이야기꽃을 피울 날이 기다려진다. 할머니는 내가 막내처럼 느껴진단다. 할머니에겐 4남매가 있는데, 막내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그래서 이젠 내가 막내라고 했다.ㅎㅎ
※ 아쉽게도 할머니에 대한 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아 아쉽고 마음 아프다. 자연의 섭리를 누가 막으랴만! 할머니께서 2014년 05월 12일 부모님과 오빠들이 기다리는 하늘로 그리움을 찾아 여행을 떠나셨다. 아마 그곳에서도 시를 쓰실 테지! 할머니 우리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요.^^ (2015년 우리 업소에 오는 손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추가함)
♡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웅 나온 황구 녀석.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할머니는 넘 까불고 가볍게 굴어 이쁘지 않단다. 황구 말고 백구도 한 마리 있다. 녀석은 나에게 짖어대기만 해 얼굴 보기를 포기해서 사진도 없다.ㅎㅎ난 황구 같은 귀염 떠는 개가 좋다. 녀석 '문밖으로 나오지 마' 하니 길에 엎드려 있다. 눈치 하나는 빨랐다. ㅎㅎㅎ
♡ 내가 서점에 주문해 가져간 할머니의 시집에 금자 할머니는 글을 써 주셨다. 마지막 문구가 마음을 울렸다.ㅠㅠ
" 힘들 때 외로울 때 어머님 생각날 때 언제던지 오세요. "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시더니 그늘이 보인다고 하셨다. 아마 할머니를 바라보며 지난해 가을 하늘로 떠난 엄니 생각에 그리움이 잠겨 있어 그리 보이셨나 보다.ㅠㅠ
♡ 할머니가 쓴 시집이다. 한평생 가슴속에 담아왔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겼다. 가끔 할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새로 쓴 시라며 전화기에 대고 낭송까지 해 주신다. 문학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할머니. 그래서 할머니에겐 내가 막내이고 친구 같다고 하셨다. 할머니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2014년 2월 09일(일) 맑음, 간밤에 눈 내렸으나 오전에 녹음
92세 소녀 시인 오금자 할머니 집에 다녀와서...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학교에 편입하곤 정신없이 보내는 사이 그렇게 훌쩍 하늘로 떠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언젠가 우리 하늘에서 우리 어머니랑 셋이 만나 오늘 이야기하며 지내요, 고운 시 많이 많이 쓰시고요.^^ _()_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3.18 0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