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너무 늦었다. 여전히 제대로 된 스토킹처벌법 개정이 필요하다!
- 스토킹처벌법 개정안 통과에 부쳐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반의사불벌조항 삭제’ 등이 담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스토킹처벌법은 제정 당시부터 그 본질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기에 꾸준히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법률의 미흡함으로 인해 시행 이후에도 여성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은 연이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국회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게 개정된 스토킹처벌법 역시, 스토킹 근절을 위한 법안이라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반의사불벌 조항 삭제, 너무 늦은 당연한 개정
반의사불벌 조항은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형성하기에 애초부터 스토킹처벌법에 담기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 조항은 스토킹 행위를 강화시키는 방식, 그리고 가해자의 처벌 여부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 신변보호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으로 명확한 처벌 의사를 밝히기 어렵고, 이는 가해자들이 처벌조차 받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인권단체에서는 스토킹처벌법 제정 초기부터 해당 조항을 삭제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것이다. 반의사불벌 조항이 삭제된 것은 당연한 조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스토킹범죄에 관한 포괄적인 정의규정 필요
이번 개정안을 통해 스토킹행위 유형에 1. 정보통신망을 이용하는 프로그램 또는 전화의 기능에 의하여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이 상대방에게 나타나게 하는 행위, 2.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상대방 등의 개인정보, 개인위치정보 등을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배포 또는 게시하는 행위, 3.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방등의 이름, 명칭, 사진, 영상 또는 신분에 관한 정보를 이용하여 자신이 상대방등인 것처럼 가장하는 행위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위와 같이 개별 행위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스토킹을 처벌할 수 없다. 가해자가 스토킹처벌법에 나열된 행위만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토킹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스토킹 정의를 “상대방 또는 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감시 또는 추적하거나, 감시 또는 추적당하고 있다고 상대방이 느끼도록 하는 행위” 혹은 “기타 이에 준하는 행위”와 같이 포괄적인 정의규정으로 개정해야 한다.
피해자 범위, 생활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까지 확대 필요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 보호 대상이 피해자의 동거인, 가족으로 확대된 것은 일면 다행이나, 근본적으로 스토킹범죄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피해자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 현행 법률은 피해자를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피해자뿐만 아니라 동거하지 않는 친밀한 관계의 사람, 직장 동료 등 생활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도 스토킹범죄로 인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상대방(피해자)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피해자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
잠정조치 기간 연장 및 피해자보호명령 도입 등 지원 제도 강화 필요
2021년,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한 ‘스토킹 피해 경험 및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스토킹처벌법에 마련된 피해자 보호조치가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제재를 위해 충분한지 묻는 질문에 80%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대부분이 그 이유로 보호조치의 핵심 내용인 접근금지의 기간이 짧다는 점을 꼽았다. 개정된 스토킹처벌법은 잠정조치 기간을 기본 3개월로 하고, 두 차례에 한정하여 각 3개월의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도록 하여 최장 9개월까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 법률보다 고작 최장 3개월 늘어난 셈이다. 여전히 짧은 기간도 문제지만, 이러한 ‘임시적인 조치’로는 제대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다. 한 피해자는 “가해자 처벌 없이 접근금지 명령만 있다면 접근금지 종료 기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집요하게 가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잠정조치 기간을 확대하는 한편, 이번 개정에서 누락된 피해자보호명령을 도입하여 수사, 재판기관이 놓친 잠정조치가 필요한 사건에 대한 피해자의 직접 청구권을 보장해야 한다. 물론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제대로 된 가해자 처벌이다.
친밀한 관계 내 발생했을 경우 가중처벌 및 친족 고소 특례 신설 필요
스토킹은 전·현 배우자, 전·현 애인에 의해 가장 많이 발생한다. 친밀한 관계 내에 놓여있었기에 가해자는 피해자의 개인정보 및 취약점 등 각종 정보를 과도하게 알고 있고, 이는 스토킹을 용이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피해자와 과거에 사귄 사이였다는 사실이 감형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는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스토킹의 특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사실상 스토킹처벌법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이에 이번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친밀한 관계 내에서 스토킹이 발생했을 경우, 가중처벌할 수 있는 특례를 신설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데이트 상대·배우자·동거인·친족 등 인적 신뢰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이 스토킹 범죄 피해를 입힌 경우에는 가중 처벌해야 한다. 또한, 본인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할 수 있는 특례도 신설되어야 한다.
이번 개정이 마지막이 아니다. 정부와 입법부는 여성폭력 범죄로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의 본질을 파악하여 제대로 된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의 인권 보장을 위해 미비한 조항을 재정비하라. 그러나 법은 최소한의 것에 불과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앞으로도 스토킹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인권보장이 제대로 될 수 있는 스토킹처벌법이 집행되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피해자, 여성,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 낼 것이다.
2023.06.21.
한국여성의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