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가서
동태장사나 하며 살아볼까
훤하게 뚫린 삼거리
샛바람 마시며 서성거렸다
은행의 창구 내미는 천 원권 지폐 뭉치
고액권 달라고 실랑이하다
새파랗게 질려서 강릉행 뻐스를 탔다
처음 보는 강릉거리
발 가는 대로 들어선 식당
살풍경한 난롯가에서
막국수 한 그릇 용을 쓰며 먹었다
뻐스정류장은 무성영화
낙엽 모이듯
사람들, 행선의 팻말
속초 가는 표 꾸겨 쥐고
다시 뻐스에 올랐다
동쪽이라는 것은 안다
북쪽이라는 것도 안다
어촌인지 어항인지
속초 형편 들려주던
노인네 목소리가 기억에 남아 있다
내린 곳은 설악동이었다
일금 삼천 원
관 길이 만한 민박의 방
안도의 숨 토했으나
밤은 연탄가스로 헤매었다
날이 새어
엷은 무명 자켓 깃 세우고
포켓에 두 손 찌르며
저 밑바닥
가장 깊은 곳에서
흔들려오는 오한惡寒 누르며
장엄한 해돋이 동해 앞에 선다
아아 무심한 바다여
늙은 여자가
백만 원 든 망태 하나 들고
길 잃은 강아지 모양 왔다갔다
"너 간첩이지?"
기념품 가게 여주인 눈빛 읽고
죄 없이 허둥대며 몰리는 내 꼴이라니
웃어야지
속초 가서 동태장사를 하면
가만히 내버려 두기나 할 것이든가
손주들 얼굴
쏜살같이 떠올라
허겁지겁 택시를 잡았다
대절한 택시 속의 나는 미이라
단구동 눈익은 문 앞에 내려서서
잡혀온 탈옥수같이
치악의 연봉 보며 눈물 흘렸다.
=[우리들의 시간] 박경리 시집 72~75쪽=
백만 원을 천 원권으로 은행에서 환전하셨으니,
천 원짜리가 1,000장이나...
실랑이를 할 수밖에 없었을 터.
원주→속초→강릉→속초→설악동→원주(단구동).
단구동 동쪽으로 치악산이 있지요.
시인 "김지하"가 사위가 되기 전, 서울 정릉 박경리 선생님에
유현종, 김국태와 함께 맥주를 얻어먹었다고 합니다.
1972년 10월 유신(維新) 선포 때도 정릉 박경리 선생님 댁에 갔으며
“기관원들이 잡으러 올 게 분명하니 며칠만 숨겨달라”는 부탁을 하였으나,
박경리 선생님은 냉정하게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따님이신 김영주와 김지하 시인과 결혼을 반대하였으나,
결국엔 사위가 되었습니다. 반체제 인사의 장모가 된 것입니다.
이후 박경리 선생님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눈총을 받으셨으며
손자들을 돌보며 생활하셨다고 합니다.
이 시는 그 시절 감시와 고초에 속초와 강릉 여행을 하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속초공항은 헬리콥터 공항이었으나, 활주로를 확장하여 여객기를 수용하는 공항으로 사용하였으나,활주로의 길이가 짧아서 기상이 조금만 좋지 않으면 결항이었습니다.정부는 속초공항의 대체공항으로 강릉공항은 군공항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양양국제공항을 2002년 4월 개항하였으며,저는 이태리, 노르웨이 사람들과 함께 항공기의 조종사(Pilot)와 관제사가 교신하여 안전하게 이착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항공관제용 시스템을 구축하였습니다.박경리 선생님께서 방문하신 장소를 저도 다녀왔습니다.단구동 박경리 문학공원은 수년 전에 방문하였습니다.
초등시절, 국민학교가 더 친근감이 있습니다.반공, 승공, 간첩신고...의 표어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었고,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해야 귀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출장 중, 홀로 찾아가는 주변의 문학관 방문이 저에게는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
가까운 문학관 방문해 보시는 오늘 되시길.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