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려면 꼭 어둠이 필요하다".. 원조 별지기 다석多夕
-'저녁의 참사람' 다석 평전
다석(多夕) 류영모 평전 '저녁의 참사람'을 읽었다.
한국 초기 기독교의 큰 사상가 다석의 일대기와 그 철학사상을 아우른 것인데, 생의 후반기 40년 동안 저녁 한 끼만 먹으며 신에게로 향하는 길을 용맹정진했던 다석은 한국 사상사에 가장 유니크한 인물일 것이다.
내게 낯익은 내용은 다석의 맏아들 의상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영역, 영국 잡지에 응모해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부분. 그가 다석의 아들인 줄 처음 알았다. 또한 자상은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영역해 미국에서 출판했다고 한다. 미국 유학도 하지 않은 사람이 이처럼 출중한 영어실력을 가지게 된 것은 역시 천재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때문으로 보인다. 다석 역시 일제시대에 몰래 단파 라디오로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들었을 정도로 영어에 능숙했다.
500쪽에 가까운 이 책은 크게 보아 신학이론과 특유의 철학으로 평생을 용맹정진한 한 성자에 관한 얘기다. 이 책을 보고 나는 세상에는 크게 두 집합의 인류가 존재한다고 정리했다.
1집합- 현생의 이 삶이 영생의 한 작은 부분으로, 이걸 잘 살아내면 우주의 다른 차원에서 더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믿는 집합이다.
2집합- 현생의 삶은 이걸로 종결된다는 입장이다. 별에서 나온 원자로 이루어진 인간의 생명은 그 원자들이 빚어내는 현상으로, 그 작동이 멈추면 몸은 다시 원자로 돌아가며, 생명 현상은 사라진다. 그리고 흩어진 원자들 속에 더 이상 '나'는 없다는 입장이다.
두 집합 중 어느 것에 속할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도 후학들이 다석의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는데, 나는 더 이상 그에 대해 뭐라고 운위할 능력이 못 미치는 만큼, 우주와 천문학에도 관심 깊었던 다석의 일대기에서 다만 내 눈에 띈 문장들을 간추려 싣는 것으로 독후감에 가름한다.
일본 천문잡지를 구독하던 다석이 둘째아들 자상과 같이 자작 망원경을 만들었는데, 아마도 1930년대일 것으로 보인다. 대략 돕소니언 반사망원경으로 보이는데, 해상도가 꽤 높아 목성의 위성이 목성 표면에 드리우는 그림자까지 관측했다고 한다.
추측컨대, 한국 최초의 자작 망원경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다석이 한국 별지기의 원조인 셈이다. 천문학과 물리에도 능했던 다석이 별에 대해 남긴 어록 중 하나에 "별을 보려면 꼭 어둠이 필요하다."가 있으며, 그밖에도 우주와 별에 관해 많은 어록을 남겼다.
'저녁의 참사람' 중에서 발췌
*수를 바라보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5척의 키나 8척 키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우주에 비하면 얼마나 작겠습니까? 신체의 자잘한 것에 얽매여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우주를 살피지 못한다면, 그 눈이 어찌 높고 큰 것이겠습니까? 학교에 있을 때 천문학과 물리학을 배우고 가르쳐, 세상을 이루는 큰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니 소소한 차이들에서 마음을 쓰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단구와 생각의 크기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부귀는 식욕과 색욕의 변형이다.
*申身瞻徹 極乾元氣(신신첨철 극건원기)
沈心潛透 止坤軸力(침심잠투 지곤축력)
몸을 펴고 하늘 끝까지 꿰뚫어 태초의 기운을 본다
맘을 내려 땅끝까지 잠기게 해 지축의 중력 원점까지 내려간다
*류영모와 둘째아들 자상은 직접 연마해서 만든 반사경으로 망원경을 만들었다. 접안렌즈는 구입했고 경통은 나무로 만들었다. 별자리 그림이 그려진 받침 삼각대를 만들어 하늘의별과 성좌 그림을 일치시켜 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고안했다. 부자는 달에 있는 분화구, 토성의 고리, 목성의 위성 그림자를 그 망원경으로 관측했다. 이 자작 망원경은 1950년 6.25 때 집을 비운 동안 사라지고 말았다.
*별을 관찰하기에는 달 없는 그믐밤이 최고이고, 하늘이 맑은 겨울밤이 좋습니다. 사람은 하늘을 쳐다봐야 합니다. 별자리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하늘을 쳐다봐야 사람입니다. 밤에 별자리를 보면 낮보다 더 한층 우주를 느낍니다. 새로운 별이 나타날 때는 무슨 새로운 영원한 소식이 오는 것 같아 놀랍습니다.(이해 불가)
*류영모는 일생 동안 세 차례 (낮에) 금성을 맨눈으로 보았다. 천문잡지나 신문에 낮에 뜨는 별을 예보하는 뉴스가 나오면 반드시 보았다고 한다. 낮에 보이는 금성을 태백성이라 한다.(이 문장 이해 불가. 아는 분 있으면 설명 부탁합니다)
*류영모의 ‘첨성유감(瞻星有感) 칠언절구
태양은 약속하네 해와 별 운행의 뚜렷함을
궁륭은 알려주네 억조창생의 비밀 문장을
숨은 별자리의 큰 뜻을 헤아리는 섣달그믐
허공의 성령[虛靈]이 위태하고 희미하여 굳을까 두렵다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
*결국 사람의 주인은 얼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마음이 시원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아직 준비가 못된 것입니다.
*그때는 분명 석기시대였어요. 하지만 철기시대의 기구를 만든 건 바로 석기시대의 돌이었다는 사실.
*지금 여기 나를 살아라. (...) 어제라 내일이라 하지만, 어제란 오늘의 시호諡號요, 내일이란 오늘의 예명豫名일 뿐이다.
*빈탕[空]이 세상 창조의 원천이며 하느님이다.
*허공의 공상空相은 장엄합니다. 이 우주는 허공을 내타낸 것입니다. 만물이 전부 동원되어서 겨우 허공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꽃을 볼 때 보통 꽃 테두리 안의 꽃만 보지, 꽃 테두리 겉인 허공에는 눈을 주지 않습니다. 꽃을 있게 하는 것은 허공입니다. 요즘 와서는 허공이야말로 가장 다정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허공을 모르고 하는 것은 다 거짓입니다. 허공이 참이기 때문입니다.
*류영모의 맏아들 의상은 영국잡지 <인카운터Encounter>에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영어로 번역, 응모해 ‘번역 최우수상’을 공동 수상했고,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영역해 미국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군자의 허물은 일식日蝕, 월식月蝕과 같아, 잘못하였을 때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게 되고, 고쳤을 때는 다 우러른다고 했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여요.(제자 함석헌이 실족했을 때 한 훈계)
*처음과 나중이 한가지로 저녁이로다. 저녁은 영원하다. 낮이란 만년을 깜빡거려도 하루살이의 빛이다. 이 영원한 저녁이 그립습니다.
*암흑의 나머지가 빛이고
잠의 나머지 깨어 있음이고
죽음의 나머지가 살아 있음이고
하나의 나머지가 세상만물이다(사언절구)
*어떻게 이렇게 꼭 막히었는지 나고 드는 것을 도무지 몰라. 알 수 없어요. 저 얼굴(아내)이나 이 얼굴(제자 박영호)이나 많이 낯익은 얼굴인데, 도무지 시작을 알 수 없어요. 모를 일이야. 참 알 수 없어요.(죽음 직전 치매가 왔다)
*인생의 끝은 죽음인데, 죽음이 끝이요 꽃입니다. 죽음이야말로 엄숙하고 거룩한 것입니다.(1981년 2월 3일 오후 6시 30분 영면. 향년 91세. 다석은 산 날수를 계산하면서 살았는데, 이날이 33,200날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