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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사한 봄날의 서울산 나드리
[3]북악산
언제 : 2022. 4. 26(수) 맑음
누가 : 초등 후배들(구0완 김0수)과 나
어디를 : 안산(무악, 금화산, △295.9) : 서대문구 봉원동 연희동 홍제동 현저동 영천동
인왕산(△339.9, 우백호) : 서대문구 홍은동 홍제동, 종로구 무악동 누상동 신교동 청운동 부암동
백악산(백악, 북악산, 342.5, 북현무) : 종로구 청운동 삼청동 부암동 신영동 평창동
얼마나 : 약12km 7시간(쉬는 시간 포함)
필요지도(지도를 클릭하시면 선명한 큰지도로 보실수 있습니다)
진행경로
서대문구 봉원동 금화터널인근 들머리-봉원사-안산-하늘다리-인왕산-창의문(자하문)-백악-청운안내소-곡장-백악 삼청터널-말바위전망대-혜화문-낙산-동대문 날머리 대신 말바위전망대에서 녹산약수터-우정의공원-한성대입구역으로 진행
이제부터 백악(북악산)이다
고갯마루서 좌쪽으로 나가서 북악하늘길을 따라도 되고
우쪽으로 내려가 자하문으로 올라
이후 사람죽이는 1000계단 급경사 성곽길을 따라도 된다
김신조간첩사건때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 동상이 있는 곳에서
좌쪽 자하문에서 갈길을 정하는데
성곽길은 예전부터 다니던 길이라
이번에 새로 개방한 길로 올라가보기로 결정하고
자하문을 통과 암문을 또 통과하면 북악하늘길이다
자동차도로를 따라도 되지만
좌쪽 동네길로 들어가면 자동차 걸리적거리지 않고
편하게 오를수 있다
우쪽으로 그북악하늘길을 지하통로로 나가
개방한 철책 울타리를 통과하면
능선 좌쪽 사면길로 목조데크계단길이 한도끝도 없이
청운안내소까지 이어진다
그길이 싫다면 북악하늘길을 따라 직접 여기까지 와도 된다
여기서 각자 방문목걸이를 받아야한다
신분증은 없어도 누구나 준다
아마도 그 방문목걸이를 받으면 반납을 해야하므로
뻘짓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전산운영 경비와 인력이 2명씩 배치되어있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오후 4시 이후는 통행금지다
결국 완전개방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미아리고개로 가는 누진봉은
군부대라 오를수가 없고
그 밑 북악하늘길 팔각정까지만 갈수 있는 것 같다
또 끝없는 목조데크계단길로 성곽으로 올라서
우쪽으로 오르면 김신조총알받이 소나무를 지나
약간의 공터인 정상으로 올라서면 조그만 백악산 정상석이 있고
북악산옛모습으로의복원비도 있고 커다란 바위가 있어 오르면 조망이 좋지만
안오르면 조망은 하나도 없는 답답한 곳이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라
사복군인인지 경찰인지 경비를 하고 있으며
사진도 찍어주고 물음에 대답도 하는 안내원 노릇을 하고 있다
백악이라고 부르는 이유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북악산의 옛이름인 백악이란 이름을 찾아준 것이 고맙다
단지 백악산이라고 한 것이 조금 걸린다
왜냐하면 산경표에는 백악산이 아니라 백악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님들은 같은 의미의 두글자를 겹쳐서 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즉 산이란 것은 그냥 보편적인 산이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악은 험악한 바위산을 부르는데 많이 쓰고 있었으며
그 뒤에 다시 산자를 붙이지 않았지만 전부다 그런 것이 아니라
들쑥날쑥해서 딱히 어느 것이 맞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험한 높은 산을 보통 악자를 쓰는데
굳이 그 뒤에 보편적인 산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몇 개 예를 들어보면
설악산이 산경표에는 설악이라 했고
97년뒤인 대동여지도에는 설악산이라 했다
오늘 가는 안산은 산경표에는 무악이라 했고
도성도에도 무악이라 했으나
대동여지도에는 아예 명칭이 없다
오늘 가는 백악산은 산경표에는 백악이라 했고
도성도에도 백악이라 했으나
대동여지도에는 아예 명칭이 없다
그리고 오늘 가는 산들의 모산인 북한산은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는 삼각산이라고 했으나
내가 어느 책에서 본지는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부아악으로 불리워졌다
그러나 관악산은 여기저기 다 관악산이다
즉 일관성이 없지만
악으로 끝나고 산을 붙이지 않은 이름이 더 많다
제이름을 찾아준 김에
국립지리원지도에도
무악 백악이라고 수정을 해 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악은 그 이전에는 금화산이라 불렀으니
지금도 남아있는 이름으로는 금화터널이 있고
그 밑의 냉천동에는 금화초등학교가 지금도 있어서
무악이라는 지명보다는
그 이전의 금화산의 예쁜 이름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지금도 서대문구의 안산자락의 동명을 설명할 때
금화산의 이름을 넣어서 설명하고 있다
냉천동(冷泉洞)
금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냉천동은
경기대학교 북쪽지역 부근에 맑고 찬 우물이 있다하여
"찬 우물골"로 불리워지다 이하 생략
영천동(靈泉洞)
영천동이라는 이름은
금화산 중턱에 "영천"이라고 부르던 약수가 유명하여
그 이름을 따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하 생략
경복궁이 천하의 명당인 이유
작금에 풍수지리적으로 청와대가 안좋아서 이사를 간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천하의 제1명당은
음택으로는 국립현충원이 있는 서달산이고
양택으로는 조선조 500년의 궁궐인 경복궁이 있는
백악산 자락이 천하의 제1명당자리라는 점이다
왜 경복궁이 천하의명당중에서도 명당자리인지
대충 설명해보면
내가 알기로는 명당이란 명당의 조건이란 것이 있다
즉 배산임수의 지형으로서
뒤로는 산이 둘러쳐져 있어야하며 앞으로는 개울이 흘러야 한다
배산은 내사산으로 둘러쌓여야 하고
외사산이 그 내사산을 지켜주어야 하는 지형이 명당자리인 것이다
여기서 배산은 등뒤의 산으로 백악이 버티고 있고
임수로는 앞으로 청계천과 한강이 흐르고 있다
내사산을 보면
좌청룡으로는 낙산이 있고 우백호로는 인왕산이 있다
남주작으로는 목멱산이 있고 북현무로는 백악이 있다
남주작인 목멱산이 궁 앞에서 노출을 막아주고 있는 산으로 안산(案山)이라 했고
북현무는 배산의 산으로 궁을 떠안고 보호하고 있으므로 주산(主山)이라 했다
외사산을 보면
좌청룡을 보호하고 있는 아차산이
우백호를 보호하고 있는 앵봉이 학의 날개를 피고 보호하고 있으며
혹자는 멀고먼 행주대첩의 덕양산을 말하고 있으나
창릉천의 끝자락 한강변 산으로 산이 작기도 하지만
너무 멀어서 그 기가 경복궁까지 이어져 보호를 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 생각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다
남주작을 보호하고 있는 관악산을 조산(朝山)이라 하고
북현무를 보호하고 있는 삼각산을
궁을 보호하고 있는 모든 산의 으뜸이라 하여 조종산(祖宗山)이라하고
그 웅장하고 깊으며 깊이를 헤아리수 없는 조종의 위용은 견줄바가 없다
여기서 인왕산과 거의 같은 급의 암산인 안산은 인왕산권으로 보면 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성계가 정도전을 시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무학대사에게 국태민안이 영원히 계속될수 있는 도읍터를 마련하라 했다
좌청룡과 우백호가 동격으로 보호를 해주어야하는데
우백호인 인왕산은 높이가 300m가 넘는 거대한 바위산인데
좌청룡인 낙산은 높이가 100m가 조금 넘는 육산이라 비교 자체가 안된다
바로 그 백악산자락 밑에 경복궁을 만들자고 한 사람은 정도전이고
무학대사는 그런 약점이 없는 즉 인왕산 자락에 궁을 앉히면
주산이 인왕산이 되고 좌청룡이 북악산이 되고
우백호가 안산이 되므로 그 세력이 전부 동격이 되므로
궁을 지키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완벽한 명당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으면 임진전쟁이나 일제침략 같은 난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지금쯤 세계 최강국이 되어 인류평화공영에 매진하고 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성계는 같이 나라를 설계한 정도전의 손을 들어주고
무학대사를 팽시켰다
그때부터 조선조 500년은 성리학의 공리공론이 당파를 만들고
중국에 사대를 했으며
각종 난에 휩싸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악산은 화기가 세서 한강을 건너 궁까지 미치므로
광화문 앞에 해태를 만들어 그 기운을 잡게 하여
불에게서 안전을 지키려 했다
그런 약점이 있어 조금이라도 상쇄를 시키려고
인왕산 자락인 서촌에서 기거하며
완벽한 명당자리를 만들려고 노력들을 해왔으며
세종대왕이 그 서촌에서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의 전체적인 모양이
여성의 생식기를 닮은 천하의 명당자리라
자손이 천대 만대 창성할 자리라
그 모든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자리로 보는 것이다
즉 천하의 명당자리라는 것이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의 서쪽
즉 인왕산에 좀 더 가까이 배치함으로
안산의 기운까지 받으려 노력한 자리로
천하의 명당인 경복궁보다 더 한수위인 명당인 것이다
그런 곳을 어찌 남산을 주산으로 하는
국방부 자리와 비교하리요
이글은 누구를 폄하하거나 논쟁을 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 아니고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을 사심없이 적어본 것이므로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모든분들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청운대를 지나 전망대 휴게소 등을 지나며
좌측으로 누진봉 군부대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그 아래 계곡에 어마어마하게 큰 삼청각이라는 음식점 구경도 하고
곡장봉(휴암) 말바위봉(응봉)전망대에서 성곽을 넘어 혜화문을 가는
사면길로 진행하며 그 어디에도 낙산을 이야기하는
이정표나 안내판 등이 하나도 없고
혜화문 가다가 도로로 내려서기전 마지막 거대한 안내지도를 보니
아무래도 혜화문쪽이 아니고 녹산약수터쪽으로 해서
한성역쪽으로 손톱만큼 남아있는 능선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같아
빽을 해서 그리로 내려가다
부적합한지도 모르고 무조건 약수물을 한바가지 마시고 한병 받았는데
뒤따라오는 후배들은 용케도 그 안내문을 보고 안마셔서 다행이다
이구 설사가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다행이 그러진 않았다
낙산을 찾아야하는데 그 안내판에 그려져 있는 길을 따라
동네 포장길로 진행하다
각국국가 국기가 게양된 우정의공원을 지나
버스 종점에 이르니 후배님께서 더 이상 못가시겠단다
산2개만할걸 공연히 고생시킨 것 같아 얼른 알았다하고
버스종점에서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한성역에서 오늘 산행을 접는다
아무래도 진행상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집에 돌아와 그 옛날 도성도를 보니 혜화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진행을 해야 낙산이 표기되어 있고
동대문을 지나 청계천에서 산줄기는 끝난다
여기는 알고 있던 상황인데 도시화가 되어있어
산줄기 하나를 건너뛰어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즉 혜화문의 위치가
지금의 혜화전철역 인근에 있는줄 생각했던 것이
결국 지도에 표기는 안됐지만
그리로 갔어야하는 예지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늦지는 안았다
성북동 도로따라 내려가다
우쪽 능선으로 동네길을 따라 오르면 되지만
동네 한가운데 손톱만하게 남은 낙산은 다음으로
동망봉(△93.2)과 함께 답사하기로 하고
오늘은 4호선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번 모임때 오늘 하산주는 내가 모래내에 가서
50년전통 집으로 가서 사기로 했으니
구0완 후배님 제수씨를 가좌역으로 오시라고 전화를 하고
전철을 갈아타고 가좌역에서 만나
다같이 그집으로 들어가 맛있는 식사를 하며
하산주를 마시며 다음번 산행을 아예 정해버린다
7월 6일 둘째주 수요일 9시 야당역에서 만나서
심학산 둘레길 산행을 하기로 한다
전철에 짐짝처럼 떠밀려가다가
구0완 부부가 갑자기 강매역에서 내린단다
오늘 산행 잘했으니 커피 한잔을 사겠다고 하니
에고 그냥 갔으면 좋겠는데 호의를 베푼다는데
고맙기도 하고 거절할수도 없어 일단은 내렸는데
커피집이 있을리 만무하다
할수 없이 불친절한 포차 생맥주집을 갔는데
손님으로서 말한마디 꺼내다가 쥔장한테 혼나고
마눌까지 불러낸 마당에 성질 같이 부리고 나올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일대에 다른업소가 없는 줄 알고있어서 더욱이 그랬다
지금생각하니 통닭집이 한군데 있긴한데
분위기가 영아니어서 참길 잘했다
그리고 일단은 같은 동네사람 아닌가
그런데 생맥주도 없단다
할수 없이 비싼 병맥주에 맛있는 골뱅이소면을 오래간만에 시켰는데
말을 안해도 참기름을 안치고 무쳐서 맛있게 먹을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부동산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그냥 어 그래 어이구 잘했어요 하면 될 것을
평소때 내 뚜렷한 주관이 있으니
술도 약간 오른 김에 참지 못하고 버럭 큰소리를 치고 만 것이다
하고나니 민망하고 미안하고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담아 넣을수도 없구
아무튼 선배로서 분위기 없이
스타일 다 구긴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다
그넘의 부동산이야기 나오는 바람에 그리 되었으나
마음은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여 주었으면 좋겠다
다음번에 만나면 사과를 단단히 해야할 것 같다
에구 이넘의 주둥아리.........
다 둘인데 입이 하나인 것은 말조심하라고
조물주가 입을 하나만 만들었다는데 그걸 못참고 그랬으니
나이를 먹더니 참을성까지 없어진 것같아
민망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극구 미안함을 전한다
자하문(창의문) 옆모습
자하문(창의문)
북악하늘길 밑으로 나간다
한없이 올라가는 목조데계단길
청운대안내소 건물로 들어가 입산목걸이를 받고 전산체크기를 통과해야 오를수 있다
성곽을 넘으면 멋진 소나무가 있는 너른 쉼터가 나온다
1.21사태(김신조간첩단사건) 소나무 수많은 총알을 맞고도 굳세게도 살고 있다
주변 나무들이 자라 백악 정상 바위 위로 올라가야 조망이 터진다
백악 정상석
청운데 표시석
백악산사진조망도
성곽을 따라 멋진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안내목에 숙정문 나가면 촛대바위 청운대쉼터로 가는 길이라는데
청운대는 말이 안되는 방향지시판이다 지나온 길에 곡장도 있고 청운대쉼터도 있으니 말이다
말바위전망대 올라가는 성곽길
내려다본 삼청각 옛날에 요정이었는데
지금은 무엇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냥 보편적인 한식당이 되어있으려나
아님 지금도 요정처럼 기생이 나와서 수발을 들어주는 집인지 궁금타
옛날부터 서울의 부촌으로 알려진 성북동
그러나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산기슭에 토굴을 파고 사는
빈민가와 공준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혜화문으로 가는 성곽을 넘어가는 길
요런 표시띠를 잘 살펴가면서 따라간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낙산이 없다
오록스지도나 이산경표를 찾아보아도 못찾아서
여기서 헷갈리기 시작한다
우정의공원 각국국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