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회동수원지길
회동수원지길은 2009년 부산갈맷길축제 때 부산 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길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만큼 평탄하고 쉬운 길인 동시에 수영강과 회동호의 수변이 제공하는 경관이 뛰어나다. 지난 45년간 상수원보호 차원에서 시민의 출입이 통제됨으로 인해 자연환경도 우수했기 때문이다. 13km 남짓한 이 길은 주말 평균 4,000~5,000명의 시민이 즐겨 이용하고 있다. 매화꽃이 필 무렵 이 길을 다시 걸었다.
도시철도 1호선 노포동역을 빠져나와 울산 방면으로 10분쯤 걷다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교각을 돌면서 노포수련연꽃 농장으로 우회전한다. 들머리에 해당하는 이 지점이 오늘의 1경이다. 미나리꽝 너머 양산 동면 쪽 금정산 자락과 기장 철마산 자락이 수영강을 중심으로 병풍을 쳤다. 무논에 한가롭게 놀던 청둥오리들이 인기척에 뒷걸음질 친다. 그 야성이 반갑기도 한데 기준 없는 그 경계가 섭섭하다.
- ▲ 야시골로 넘어가는 모퉁이에서 바라본 회동5경으로 수면에 그림자로 짝을 이룬 부엉산이 인상적이다. / (어래)양산 동면 쪽 금정산 자락과 기장 철마산 자락이 수영강을 중심으로 병풍을 친 회동1경.
노포 TG로 빠지는 길 아래 굴다리를 지나면 수영강과 마주한다. 수영강은 기장군 정관면 용천산에서 발원해 남서 방향으로 유하하면서 법기천, 임기천, 여락천, 송정천 등을 데리고 흐르다 회동호에서 철마천과 합류한 다음 석대천, 온천천을 데리고 수영만으로 흘러드는 총 길이 19.2km 부산 제2의 강이다. 동래부지에는 실처럼 길게 이어졌다 하여 사천(絲川)으로 부르다 수군절도사영이 들어 선 이후 수영강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구간 2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스포원 주차장 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 신천 방면으로 가야 한다. 구 신천교까지는 넉넉잡아 30분이면 된다. 여름이면 달덩이 같은 해바라기 노란꽃이 떼지어 춤추는 길이다. 플라타너스 가로수도 한 장면 한다. 거기서 횡단보도를 건너 선두구동 체육공원로를 따라 가다 신천교와 용두교를 건너야 한다. 구 신천교는 보행자 전용다리인데 수영강을 조망하면서 오갈 거리를 가늠하라고 이정표를 설치했다.
멀리 계좌산과 윤산의 자락이 겹겹으로 포개어져 있고 수영강이 목을 향해 흘러가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구간 2경이다. 길은 우측 대숲에 연해 있는 편백길을 따라 상현마을로 연결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갈맷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2년 전 여름 안내판이며 이정표를 설치하기 위해 몇 번을 걸었던 길이기에 내심 뿌듯함이 몰려왔다. 노선을 긋기 위해 답사하고 이정표를 설치하기 위해 걸었던 길에 흘린 땀방울이 그립다.
- ▲ 부엉산 정상에서 바라 본 회동호 너머의 풍경으로 회동6경에 속한다.
아직은 추운 계절, 우수를 앞두고 봄은 더디 오고 있다. 하지만 대한, 소한이 시나브로 지나갔듯 입춘, 청명이 차례로 올 것이다. 강물이 흐르듯 시간은 그렇게 가고 또 온다. 새삼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옛사람들의 표현이 실감난다. 그러자 강이 되묻는다. 뭘 했는가?
편백가로수 길 초입에서 세 그루의 나무를 만났다. 아직도 낙엽을 달고 있는 갈참나무와 털 보송보송 봄맞이를 앞둔 목련, 그리고 늘푸른 편백이다. 묘한 느낌이다. 각기 다른 성질의 나무가 겨울을 나는 처세가 이렇듯 다르다. 하지만 머잖아 하나의 색이 된다. 그 날을 고대하며 길을 살핀다. 편백가로수 사이 부들과 갈대가 펼쳐진 강안 풍경이 새롭다.
다시 길을 가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흔히 말하는 2% 부족한, 예컨대 10분 남짓한 이 구간에 편백이 줄지어 선 이 길 맞은편에도 짝을 이루어 편백이나 메타세쿼이어가 서 있다면 아치를 이룬 길이 더없이 정겨운 100% 만족을 선사할 것 같다는 바람이랄까. 더하여 닫힌 길이기보다 드문드문 창문을 달듯 조망공간을 틔워준다면 좋지 않을까.
입소문이 사람들 불러들이고 있어
직진하면 상현1길로 접어든다. 언덕을 넘자 강 건너 호두술산 골미골이 다가선다. 수영강이 회동호를 앞두고 유로를 꺾는다. 학송정을 지나자 푸른 담벼락이 길게 이어진다. 누군가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가이즈카 향나무를 촘촘히 심어 담장을 대신했다. 그 길이가 100여 m 골목을 이루고 있다. 구간 3경이다. 가꾼 정성이 보통이 아니거니와 보기에도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상적인 이 골목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사람을 머물게 하는 곳이다.
- ▲ (위부터) 땅뫼산 모래톱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민물가마우지와 흰뺨검둥오리들, 그들의 야생성을 존중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땅뫼산 모래톱의 겨울철새는 회동7경이다. / 길은 생명을 치유하고 세상을 살리는 통로여야 한다. 매년 연밭에 산란을 위해 두꺼비들이 길을 건너다 비명횡사한다. / 수원지 댐을 앞두고 굴참나무 아래서 만난 다람쥐.
금정구는 최근 마을길을 넓혔다. 수원지 개방 2년차, 입소문이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그 여파로 전에 없던 군것질 가게도 생겼다. 맥반석 오징어며 핫도그, 오뎅 따위를 파는 모양인데 주말 이용 인파가 급증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마을길의 확장은 이용객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분에 지역민원이 섞인 것이긴 하지만 그 수치가 마냥 좋은 것만을 뜻하진 않는다. 수용능력과 압(壓)은 늘 비례한다. 마을길의 확장과 주차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또 따른 공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상현마을 신선집 앞을 거쳐 수원지길로 들어선다. 선동(仙洞)은 조선시대 선리로 불렸다. 오륜대와 인접해 있어서 ‘신선이 노닐던 곳’ 또는 ‘신선이 사는 마을’로 그 연원을 가지고 있다. 또 두구동 임석(林石)부락과 같이 선돌이 있어 선돌을 한자음으로 표기하다 신선 ‘仙’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도 한다. 현재 선동의 자연부락은 상현마을과 하현마을, 신천마을, 하정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하정마을은 조선시대 동래부 북면 소산리로 불렸던 곳으로 동래부의 역원(驛院)이 있었던 곳이었다.
상현마을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수원지길이 시작된다. 데크가 설치된 새터골에서 바라본 수원지는 평온하다. 전체구간 중 3분의 1쯤 되는 지점으로 구간 4경이다. 크게 구분하자면 선동-오륜본동-금사동 정도 될 것 같다. 폭 1~1.5m의 길은 수변에서 불과 5~10m 내외로 조성되어 있다. 걷는 자 모두 만족하는 길이다. 소나무 숲길 한 구비를 돌아서면 땅목골이다. 회동호의 물결이 수변에 잔잔히 밀려와 그 흔적을 새겼다. 물가에 서면 사람의 마음은 차분해진다. 어머니 자궁 속의 평화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팔뚝 굵기의 개옻나무 한 그루가 바위를 받치고 섰느라 진이 빠졌다. 개옻나무가 아니었다면 바위는 시나브로 미끄러져 내렸을 것이다. 뿌리 내린 터가 하필이면 거기일까만 그 수고에 고마움을 표한다. 일대의 땅은 양달에 대부분 마사토라서 배수가 좋다. 때문에 소나무들이 수변의 주요 우점식물이다.
새터골 테크를 시작으로 윤산(倫山)으로 이어진 100m 내외의 구릉이 만든 땅목골, 고지미골로 이어지는 조붓한 오솔길이 휴일이면 시내 번화가처럼 번잡하다. 어쩐지 길이 안쓰럽다. 그러거나 말거나 방문객들은 전망데크에 올라 간만의 나들이가 주는 호사를 즐기며 수원지를 조망하느라 쉴 틈이 없다.
- ▲ 오륜본동 앞 습지대 오솔길을 걷는 시민들.
오륜대에서 마주한 청명산수는 실로 선경이었을 것
신현마을을 사이에 두고 작들과 암들을 지나면 취수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독뫼처럼 봉긋한 부엉산 아래 오륜대(五倫臺)가 모습을 드러내고 개좌산의 줄기가 물굽이를 따라 흐른다. 구간 5경에 해당한다.
동래부지(1740) 고적조에 따르면 ‘오륜대는 동래부에서 동쪽 사리 사천에 있고 대에서 4.5보가량으로 계(溪)에 접하고 암석이 기이하며, 아름답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대 부근에 사는 사람이 오륜을 갖추었기에 이를 기려 이름 했다’고 한다. 또 19세기 후반 동래부읍지 고적조에서는 ‘오륜대는 부(府)의 북쪽 15리에 있는데 천암(川岩)이 기이하여 옛날 다섯 노인이 지팡이를 꽂고 유상하였다고 하여 이름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에서 4.5보가량으로 계(溪)에 접하고’라는 표현과 수영강의 흐름을 추정컨대 계류 또는 시내처럼 좁다랗게 흘렀을 것으로 보인다. 또 장전구곡가(長田九曲歌)에서 일대의 풍광을 일러 ‘두 골짝 어우러진 물’이라 한 것도 이런 정황을 읽게 한다. 아, 그 시절의 수영강이 너무도 보고 싶다. 산천을 유람하며 이 골짝 오륜대에서 마주한 청명산수는 실로 선경이었으리라.
구곡가는 100년 전 추파(秋波) 오기영(吳璣泳, 1837~1917) 선생이 저물녘 마차를 타고 일대를 돌아 본 다음 쓴 것으로 서시 부분이 오륜대를 시작으로 펼쳐진다. 1곡 선동을 시작하여 금정구와 기장군의 경계지점인 장전2교 아래 기림바우와 만장봉 정경을 거쳐 3곡의 물매바우, 4곡 장전마을. 5곡, 6곡으로 이어지며 9곡 기장 철마산 홍류동천까지 기승전결의 문체로 구성된 칠언절구다.
五倫坮下翠坤靈(오륜대하취곤령)
오륜대 솟아난 누리 정기 모인 곳
兩谷流波萬古淸(양곡류파만고청)
두 골짝 어어러진 물 예나제나 푸르구나
纔到鳴巖山日暮(재도명암산일모)
울바우 가뭇한 산머리로 해는 저무는데
耳醒樵笛兩三聲(이성초적양삼성)
아련히 들려오는 초동들의 피리 소리여
- ▲ (위)상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 구 신천교에서 바라 본 회동2경.
그런데 정작 오륜대는 어디를 말함인가. 부엉산 절벽? 아마도 이 또한 추정컨대 지금의 새내마을 할매집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지만 딱히 ‘여기다’라고 말해 주는 이도 없거니와 지도에서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다.
한편 동래고 역사관 안대영(75) 관장은 “회동수원지에는 조선 농민의 탄식과 울분이 서려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42년 회동에 댐을 건설하고 상수원 저수지를 조성할 당시 오륜동을 형성하고 있던 다섯 마을 중 4곳이 수몰되었다. 보상은커녕 어떤 생계 대책도 없었다. 참다못한 농민들은 봉기를 하기도 했다”며 1942년 1차 준공식 당시 경상남도 도지사였던 오노(大野)가 축사하고 준공 테이프를 끊을 때 어느 수몰민이 던진 피맺힌 말 한마디를 전했다. “오색 테이프를 자르는 저 가위는 우리들 창자를 자르는 가위며, 수원지에 저수된 저기 저 물은 우리들의 피눈물이다.”
현재의 회동수원지는 그 시절 오륜동에 있었던 냇가와 산기슭 마을, 논밭자리가 된다. 회동수원지 댐 공사는 3차례나 증고하면서 댐 수위를 높였는데 1차 공사 때는 오륜동 봉황대(부웅디)까지 물이 올랐고, 2, 3차 공사를 하면서 하현마을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 바람에 하현마을 사람들은 보상을 받고 신현마을 등지로 이주했다. 1971년 극심한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나 오륜고분군이 발견되어 석실묘, 옹관묘, 철제품 등 귀중한 유물이 발굴되었다. 사실 수영강 일원에는 많은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그만큼 삶의 터로서 적지였기 때문이다.
길은 부엉산으로 넘어가는 길과 야시골로 하여 오륜본동으로 빠지는 두 코스가 있다. 야시골은 예전 철마사람들이 30리 동래장을 보러 오가던 길이다. 1930년대 신작로가 생기고 수원지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 선동고개를 지나 지금의 브니엘 예술중고, 동래여고, 검단리, 기찰, 온천장을 경유해 동래까지의 코스다. 이때 주로 다루었던 것은 장작이나 마른 소나무 잔가지 등 화목이었다고 한다.
- ▲ (위)회동수원지를 관리하는 부산상수도사업본부 명장정수사업소 최근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사택을 화장실과 쉼터로 개조했다. / 구 신천교에서 바라 본 회동2경.
수리부엉이 살았을 오륜대 절벽
현재 부엉산으로 가는 길은 산사태가 나서 통제 중이다. 다시 열릴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숲사면은 오랫동안 사람의 접근이 없었던 터라 갈참나무며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류가 숲지붕이 제법 크고 바닥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해발 175m에 불과하지만 숨이 차다.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정상은 늘 시원스러운 전망 터를 제공한다. 구간 6경으로 앞뒤 좌우 사방이 다 보인다. 부산 산지의 주맥인 금정산 일대 연봉과 백양산까지 훤하다. 오륜본동 방향으로 시선을 두면 원경으로 해운대 장산 자락이 병풍처럼 서 있고 계좌산과 윤산이 수원지를 에워싸고 있는데 그 물그릇이 마치 한반도의 형상이라 그 지형의 신기함에 저마다 입을 모은다.
부엉산(부용산)이란 이름의 유래를 생각해 볼 일이다. 당연 부엉이가 살았을 것이고, 필시 수리부엉이일 것이다. 부엉이는 우리네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옛 추억을 물어 오는 친근한 새다. 생김새보다는 조금 을씨년스런 울음소리가 기억에 선명하다. 수리부엉이는 해가 지면 활동을 시작해 해가 뜨면 잠자리에 들어가는 전형적인 야행성 맹금류로서 날개를 펼치면 최대 2m, 몸무게는 4kg에 달한다. 이 육중한 몸으로도 수리부엉이는 뛰어난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 먹잇감을 소리 없이 낚아챈다. 주로 토끼, 꿩, 소형 포유류(고라니새끼) 쥐, 등을 주로 먹고 사는데, 매가 시속 300km에 달하는 ‘속도의 사냥예술’을 구사한다면, 수리부엉이의 사냥속도는 시속 약 20km로 ‘느림의 사냥예술’을 펼친다. 그리고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 살아가는 텃새로서 암벽의 바위 선반처럼 생긴 곳이나 바위벽 사이의 틈을 이용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오륜대 절벽은 이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음직한 곳임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마을주민들에게 탐문해 보았지만 더 이상 수리부엉이는 이곳에서 둥지를 틀지 않는 것 같다. 새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은 사람살이의 미래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어쩌면 먹이자원이 신통치 않아서일 수도 있다.
오륜본동으로 방향을 수정한다. 길을 따라 내려오며 분도 명상의 집과 늘푸른 농원 아래 연밭을 지난다. 새내마을로부터 약 1km 지점이다. 홍련과 백련이 필 무렵이면 ‘연꽃은 가까이서 만지거나 희롱할 수 없고, 멀리서 조망할 수 있다’는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돈의 애련설(愛蓮設)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그 아름다움을 기약하며 통미골로 가는 길, 지난해 목도했던 끔찍했던 기억하나 덧붙인다. 도로 곳곳에 비명횡사한 두꺼비들 때문이었다. 길에서 수없이 로드킬(Road-kill)을 보았지만 그렇게 많은 두꺼비들이 깔려 죽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충격의 정도는 매우 컸다. 로드킬에 대한 운전자들의 인식 제고도 필요하지만, 표지판 하나라도 세워 경각심을 주어야 할 것 같다. 길은 생명을 치유하고 세상을 살리는 통로여야 한다. 오륜본동으로 가는 도로는 그런 아픔이 서려있다. 다시 3월이 오고 있다.
오륜본동 입구 마을버스정류소 앞에는 1971년 세운 ‘오륜동흥학계영세불망비’가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런 비석을 그 시절에도 세웠다는 사실이 멋있다. 주민들의 주 수입원은 마을 방문자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이 대부분이다. 장어구이, 닭백숙, 오리불고기, 잉어, 향어, 메기매운탕, 잉어찜, 닭백숙 등이다. 평일인데도 자가용을 이용한 점심 손님들이 꽤 있다.
- ▲ (위)1930년대 철마사람들의 30리 동래장 길목인 야시골. / 회동3경 상현마을 가이즈카 향나무 골목길.
산책로 입구에 이도제(履道齊)가 있다. 건축가 김상진씨가 설계한 건물이다. 날렵한 지붕 추녀선이 한 마리의 나비처럼 앉아 있는 이 건물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부산금정성당 주임신부를 역임한 박승원 신부가 퇴임 후 여생을 보내고 있는 곳이다. 건물 서쪽 벽에 새겨진 ‘함께 여는 세상’이란 글귀가 발길을 멈추게 하고 되뇌게 한다.
수변길로 들어서자 적송들이 마중을 나왔다. 수영강이 오륜대를 휘감아 도는 지점이다. 갈참나무와 오리나무, 그리고 벚나무의 연리목이 눈에 띈다. 미루어 짐작컨데 예전에 숲의 밀도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숲은 남향과 서향 지형에 따라 종의 우점도가 다르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강 건너 아홉산이 성큼 다가선다. 모래톱에는 민가마우지며 흰뺨검둥오리, 백로들이 잔뜩 경계 태세다. 목을 세워 긴장하다 못해 급기야 간섭에서 벗어난 수면으로 날아갔다. 방문자들이 신경을 써야 할 대목이다. 회동칠경이다.
길은 땅뫼산 수제부를 따라 들쭉날쭉 이어진다. 삼거리 방향으로 미나리꽝과 갈대밭 사잇길이 나 있고 회동댐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도제에서 1.2km 지점 길은 습지화된 묵정밭을 지나 삼삼오리촌집으로 이어진다. 그늘이 많아 대개 여름 나들이에는 쉬어 가는 코스다.
부디 안 오신 듯 다녀가소서
얼마 못 가 윤산길과 수원지길이 나뉘는 삼거리가 나온다. 윤산(輪山)이란 지명은 동래부의 진산으로 옛날 자주 불이 났고, 또 산이 둥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구월산을 비롯 대머리산, 둥굴산 등 여러 이름이 있다.
산자락을 한 모롱이씩 돌 때마다 회동호가 얼굴을 바꾸며 다가선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지난해 길손들의 다리쉼을 돕기 위해 물가에 정자도 세웠다. 수면이 고요하기 그지없어 잠시 삼매(三昧)에 든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이니 스스로 운치에 젖어 세상 부러울 일 없다. 눈만 내려준다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강천모설(江天暮雪)이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서자 난데없이 자동차 소음이 날아든다. 인근 도시고속을 이용하는 차량들이 회동호에 소음을 투기하는 것 같다. 직선거리로 약 300m 자동차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순전히 물소리 바람소리에 잠시나마 젖어 있던 귀가 화들짝 놀라며 경계한다.
데크를 지나자 현수막 하나 붙어 있다. ‘안 오신 듯 다녀가소서’ 지난해 갈맷길 축제 때 ‘인문학과 함께하는 사포지향 갈맷길 200리 걷기’ 참가자들이 걸어둔 것이다. 정말 안 오신 듯 다녀가소서, 라고 부탁드린다.
길이 ‘ㄴ’자로 끝나는 지점 꿀밤나무(굴참나무) 아래서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다. 한참을 지켜보았다. 사람을 겁내지 않아 한참을 마주 보았다. 마침 호주머니에 땅콩이 있어 한 줌을 건넸다. 사전 교감이 없었던 탓인지 순간 놈은 잽싸게 은신처로 사라졌다. 다람쥐 굴을 뒤로하고 마지막 데크에서 오늘 나들이를 정리한다.
머리 위 정관~철마 간 신설도로 교각을 지나 명장정수사업소로 내려선다. 회동팔경은 사업소 안쪽 댐에서 여름날 폭포수로 떨어지는 방류수의 장관이다. 아쉽게도 여름 한철 하고도 며칠만 볼 수 있다. 명장정수사업소는 최근 사택을 개조해 화장실과 휴게실을 만들었다. 수원지가 공식적으로 끝나는 지점이다.
정문을 벗어나면 댐 조성 전 일대를 흘러 내렸을 수영강의 원형이 일부 보인다. 강이 아니라 조잘조잘 흐르는 시내이자 계류로서 다시금 오륜대의 옛 정경을 추측케 한다. 수영강은 부일레미콘에서 크게 한번 휘어진다. 동대교 우측편에 동대마을과 동대가 있다. 부산 8대 중의 한 곳으로 이름난 곳이지만 지금은 주변에 난립한 공장들과 주거지로 그 의미가 한참이나 퇴색됐다. 동래부사 윤훤이 노래했던 동대(東臺)처럼 ‘…황폐한 원장(垣墻)엔 주인 없이 풀만’ 우거졌다.
길잡이
도시철도 1호선 종점 노포역-(0.8km)- 노포연꽃수련농장-(2km)-구신천교-(1.45km)-선동 상현마을-(1.4km)-오륜 새내마을-(1.45km)-온륜본동 삼거리 -(1.8km)-삼삼집-(2.5km)-회동댐-(1km)- 동대교 약 13km
교통
■도시철도 1호선 종점 노포역 / 고속버스터미널
■버스 회동동 179, 42, 99, 99-1 종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