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3. 주일예배설교
스가랴 10장 1~12절
푸성귀도 약속하셨지만, 회복의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
■ 어떤 사람이 평생 식탁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식탁에 초대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신이 났습니다. 오늘 저녁 맛난 식탁이 약속된 것에 신이 난 것입니다. 사실 오늘 저녁 식탁 약속은, 평생 식탁 약속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럴 수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지엽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을 약속하셨지만, 영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곳을 보증하셨지만, 천국을 보증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약속에 흥분하고, 이곳의 보증에 신나합니다. 영원을 약속받고, 천국을 보증받은 것은 잊은 채 말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놓치고, 지엽적인 것에 흥분하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내버린 적 없었던 것처럼 될 것이다!”
■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단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10지파는 북 이스라엘로, 2지파는 남 유다로 나라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주전 722년에 멸망하였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주전 586년에 멸망했습니다. 이러한 멸망 과정에서 유다 백성들은 3차례에 걸쳐 바벨론 포로가 됐습니다. 주전 605년, 597년, 586년이었습니다.
멸망도 수치였지만, 포로로 잡혀갔다는 것은 이스라엘 남과 북 모든 백성의 굴욕이었습니다. 선민의 자부심이 처참히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전 538년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주전 538년에는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귀환하였고, 주전 458년에는 에스라를 중심으로 귀환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전 444년에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귀환하였습니다.
도대체 이 놀라운 일이 어찌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1~32절에 이 약속이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그리고 오늘 본문 6절입니다.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셨고, 그것을 지키셨습니다. 포로 귀환이 그 예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돌아오게 하신다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마치 내버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하셨습니다. 완전한 회복을 주셨습니다. 약속대로 이행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잊거나 놓치는 순간, 비참한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불안과 공포에서 헤매게 됩니다. 세상과 사건에 겁을 먹게 됩니다. 삶이 두려워집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약속, 당신의 자녀를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약속,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회복시키신다는 약속을 잊거나 놓치는 것은, 삶의 손해이자 영혼의 손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늘 되새기시길 바랍니다. 그 방법이 소소하지만,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1절입니다.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는 것인가요? 간구입니다. 그리고 간구한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1절은 봄비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자연법칙에 의해, 봄에는 식물의 성장을 위해 비가 내립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가 오더라도, 적절하지 않은 때 올 수도 있고, 적당량이 아닌 부족하거나 과하게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알아서 주시겠지하고 가만있으면 안 됩니다. 때마다 지금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봄비를 간구해야 합니다. 햇빛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간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데, 필요한 때 밭의 채소-푸성귀를 받는 경험을 합니다. 이는 아주 소소한 경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소한 경험을 매번·매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일종의 ‘약속 빌드업’입니다. 이러한 빌드업을 통해,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인 “너희는 내가 내버린 적 없었던 것처럼 될 것이다!”를 경험하게 됩니다. 놀라운 회복의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 그런데 회복의 역사에서 놓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회복은 하나님의 분노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유다 백성이 귀환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회복의 약속이 지배적이었지만, 포로로 잡혀가게 된 이유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의 침공으로 북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멸망하였고, 바벨론에 의해 남 유다가 주전 586년에 멸망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만 보자면, 2절과 3절입니다. “드라빔(집안우상)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무슨 말씀인가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지도자들의 타락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게 하고, 하나님의 비전이 아닌 거짓 꿈을 남발하는 지도자들에 분노하신 것입니다. 물론 악한 지도자들의 꾐에 빠진 백성들을 향한 분노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위력과 꼬임에 의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의 분노는 지도자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분노가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멸망에 이르게 하였고, 포로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결론은 여기까지가 아니셨습니다. 멸망과 포로가 끝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결론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영원히 지켜주심>과 <반드시 회복시키심>입니다. 영원히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반드시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멸망되고 포로 된 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지켜주심과 회복하심의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끝나자, 약속하신 대로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7~10절입니다.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으려니와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이 살아서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흩으셨지만, 완전하게 다시 모으셨습니다. 사지로 모셨으나, 오히려 생명과 풍요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와 화해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결론은 생명이시고, 회복이십니다. 이것을 누가복음 15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잃은 양’, ‘잃은 동전’, 그리고 ‘잃은 아들’입니다. 이 비유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누가복음 15장 4절)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누가복음 15장 8절)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누가복음 15장 24절)
공통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입니다. 하나님은 내버리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반드시 찾아내시는 하나님,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나는 포기해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 약속을 하신 분이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하나님은 단지 회복만 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회복과 함께 회복의 삶을 살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주십니다. 11~12절입니다.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통치 지팡이)가 없어지리라.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여기저기 다니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단지 회복만 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바다를 만든 거친 바다 물결을 잠재우십니다. 깊어진 곳을 마르게 하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를 없애주십니다. 이렇게 환경을 만들어주시고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당당히 여기저기 다니도록 해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하신 약속의 결론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 자만이 복이 있습니다. 아멘.
■ 그러니 어느 한순간도 “너희는 내가 내버린 적 없었던 것처럼 될 것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구원받기로 된 사람은 반드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당당히 여기저기 다니십시오. 참으로 복음의 백성과 전사로 사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