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그의 본명은 김병연이다
그렇다면 김병연 그가 왜 김삿갓을 자처하고 한평생을 방랑했는가!
1826년(순조 32년)에 김병연은 백일장을 보게 되었다.
백일장이란 초야(草野)에서 학문을 닦고있는 무명유생(無名儒生) 들에게
학업을 권장하기 위해 각 고을 단위로 글짓기대회를 하는 일종의 지방과거와 같은 것이다.
이때 김병연의 나이는 갓스물, 자(字)는 성심((性深)이요, 호(號)는 난고(蘭皐)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 살 전후에 이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 하였다.
게다가 시재(詩才)가 남달리 특출하고 역사에 각별한 흥미를 느껴 오고 있었던 그는
고금의 시서(詩書)와 사서(史書)를 닥치는 대로 섭렵(涉獵)해 왔기 때문에 모르는 글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시 글공부만 좋아했을 뿐이지 공명심이나 출세욕같은데는 관심이 없었던 김병연이
이날 백일장을 보러 온 것은 홀어머니 이씨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인데
오늘날의 공무원시험 과도 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날 백일장의 시제는 다음과 같았다.
論鄭嘉山忠節死 (논정가산충절사) 嘆金益淳罪通于天 (탄김익순죄통우천)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보라.
이 시제는 홍경래의 난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홍경래가 평안도 용강(龍岡)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순조 11년인 1811년 신미년(辛未年) 12월
홍경래는 평서대원수(平西大元帥)라고 자칭해 가면서 반란군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1대는 가산(嘉山).박천(搏川)을 함락 시키면서 서울로 남진(南進)하였고,
다른 1대는 서북(西北)으로 진격하여 곽산(郭山). 정주(定州) . 선천(宣川) 등을
불과 며칠 사이에 모두 석권(席捲)해 버렸다.
그 통에 가산 군수(嘉山郡守) 정 시(鄭蓍)는 반란군과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가산 군수 정 시는 문관(文官)이면서도 그러했건만,
선천방어사(宣川防禦使) 김익순(金益淳)은
국가 안보의 중책을 맡고 있는 무관(武官)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싸우기는커녕 즉석에서 항복을 해버렸다.
그런 까닭에 정부는 반란군을 진압시키고 나자,
김익순을 역적이라는 낙인을 찍어 참형에 처해버렸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시제로 나오자 김병연은 평소부터 반란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가산 군수 정 시를 천고의 빛나는 충신이라고 존경해 왔던 반면에,
김익순을 백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고 몹시 경멸해 오고 있었다.
비겁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김익순이란 놈을 백일장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마침 잘 만났다.
오늘은 나의 필봉(筆鋒)을 마음껏 휘둘러,
비겁하기 짝없는 네 놈을 뼈도 못 추리게 탄핵(彈劾)하리라
曰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將軍桃李陵西落 烈士功名圖未高
왈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장군도이릉서락 열사공명도미고
신하라고 불려 오던 너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적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이 릉(李陵) 같은 놈이요
정 시의 공명은 송나라의 악비(岳飛)처럼 길이 빛나리로다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死 宣川自古大將邑 北諸嘉山先守義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사 선천자고대장읍 북제가산선수의
시인은 이런 일에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칼을 어루만지며 물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자고로 대장이 지켜 오는 큰 고을이기에
가산보다도 의를 앞서 가며 지켜야 할 곳이 아니었더냐.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두 사람은 다 같은 조정의 신하였는데
죽어서야 할 곳에서 어찌 두 마음을 먹었더란 말이냐
태평 성대와 다름없던 신미년 그 해에
관서에서 풍운이 일었으니 그 무슨 변괴이더냐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募亮 同朝寯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모양 동조준신정충신 저장풍진립절사
주 나라를 존중하려고 충신 노중련이 나왔고,
한 나라를 돕기 위해서는 제갈량이 나왔듯이
우리나라에도 만고의 충신 정가산이 나와
풍진을 맨손으로 막아 내려다 죽지 않았더냐
嘉陸老吏揭名族 生色秋天白日下 魂歸南畝件岳飛 骨埋西山傍伯夷
가륙노리게명족 생색추천백일하 혼귀남무건악비 골매서산방백이
전사한 충신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 갈 것이니
그 이름은 가을 하늘에 태양처럼 빛날 것이요,
혼백은 남묘로 돌아가 악비와 같이 살게 될 것이고
뼈는 서산에 묻혀 백이 숙제와 이웃하게 될 것이로다.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綠客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객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행열순
서북으로부터 개탄할 소식이 들려 오기에
어느 가문에서 나온 벼슬아치냐고 물어 보았더니
문벌은 명성이 드높은 장동 김씨요
항렬은 장안에서 소문난 순(淳)자 돌림이 아니더냐.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가문이 훌륭하여 성은도 두터웠을 것이니
백만 대적 앞에서도 의를 굽히지 않았어야 할 것을
청천강물에 고이 씻긴 병마는 어디다 두고
철옹산에 간직했던 궁시(弓矢)는 어떻게 했단 말이냐.
吾王庭下進退背 背向西域凶賊股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代王
오왕정하진퇴배 배향서역흉적고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임금님 앞에 꿇어 엎드리던 바로 그 무릎으로
서북 흉적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으니
너는 죽어 황촌에도 못 갈 놈이라
저승에는 선대왕이 계실 것이니 말이다.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 번 죽어서는 너무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다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치욕적인 이 사실은 역사에 남겨 길이 전해야 하리라
이런 시로 그는 장원급제를 했고 술한잔 걸쭉하게 걸치고 행복한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그의 홀어머니에게 자랑을 시작하였는데 이게 웬 일인가!
이야기를 듣는 도중 어머니가 갑자기 기절하시고 이내 정신을 차리시며
이제까지 숨겨오셨던 그의 집안 내력을 눈물 흘리시며 가르쳐 주시니
바로 김익순이라는 사람이 김병연의 할아버지이였던 것이다.
반역자는 3대를 멸하라는 그때의 법에 따라 마땅히 김병연도 죽어야 했지만
어머니가 김병연을 데리고 깊은 곳에 숨어사시고 때로는 도망도 다니시면서
김병연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신 것이다.
언젠가는 그가 집안을 다시 일으켜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집안내력을 숨겨왔는데
오늘과 같은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장원급제를 하였으니 그것도 반역자의 후손으로 말이다.
뒤에 어머님이 말씀해주시길 그의 할아버지는 술취해 주무시고 계시다가
갑자기 쳐들어온 반란군에게 포로로 잡히신 것이였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반항하실 틈도 없으신 것이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 말에 김병연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을 생각도 하며 울기도 하다가 문득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고
그의 아내와 이제 낳은 지 얼마안되는 아이와
김병연만 바라보며 한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와 가슴아픈 눈물을 뒤로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으니..
앞으로 하늘을 우러르지 못하는 죄인이니 삿갓을 쓰도록 하며
이름도 김병연을 지우고 김삿갓으로 스스로 부르리라..
漂浪一生嘆 (표랑일생탄)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我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아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집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거처도 없는 내 평생을 회고해보니 이내 마음 한 없이 서글프구나.
짚신신고 죽장 짚고 가는 초라한 나의 인생여정 천리길 머나 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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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게시판 5번 끝말잇기에서 미다리님께서 이 노래를 선물 하셨습니다. 하여 한때 김삿갓의 글에 빠져 있었던 시간이 떠 올라 만들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한주간은 김삿갓의 시를 올려 보겠습니다. 방랑시인..김삿갓과 함께 그의 슬픔 감춘 방랑길에 동참해 보시기를..
사랑하는 새아침님 !!! 진리의손 17세에 어머니 앞에 음치를 느끼며 김삿갓의 노래를 부르니 !!! 아주 잘부른다고 하셨습니다. 만감이 스쳐가는 이추억에 얽힌 사연 !!! 슬픔인가? 아픔인가? 다시한번 눈을 적십니다. 행복의 생수가 또다시 !!! 가슴이 멍클거리는 맛을 님의 덕분으로 !!! 지난 날을 회상함은 편안한 ~~~
사랑하는 님이시여 !!! 주신 귀하신 말씀 !!! 김삿갓의 생애와 그옛날의 진리의손의 서린 생애를 심오하게 느끼며 벙벙한지, 서늘한건지 혜아릴수 없는 마음으로 자상히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님의 평안하심을 빕니다.
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집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거처도 없는 내 평생을 회고해보니 이내 마음 한 없이 서글프구나. 짚신신고 죽장 짚고 가는 초라한 나의 인생여정 천리길 머나 먼데
구비구비 생각하니 김삿갓의 아픔이 마침 나의 아픔 다음은 가는구나 !!!
"와"....! 산행이나 해야지 노래가 좋아서 .......하엿더니 싹 가시네요 이 기구한 운명앞에 난들 무슨재미로 차라리 저녁에라도 볼것을 그런들 잠이나 잦겟수.....님 화이팅 난세의 영웅도 때를 잘만나야 한다는 생각이드네요
김삿갓의 시를 좋아하는데 덕분에 김삿갓에 대해서도 잘 알게 돼 감사드립니다. 그저 방랑시인인가 했더니 오늘도 좋은글에 감사합니다.
내가 꿈꾸는게 자연인이 되는것인데 용기가 없어 아직 이렇게 젖어있지만 머지않아 결단을 내릴수 있을것입니다. 김삿갓에 일주일 젖어보게된다니 고맙습니다.
재미 있슴니다!...어떻게 해서 떠돌이 중의 주옥 같은 시들이 이처럼 잘 보존 되어 왔는지 신기 하기만 함니다!...황진이에 견줄 만한 멋쟁이 로다!...
나 자신를 돌이켜 보건데 하늘우러러 보고 한점 부끄럼없는 삶을 살아야 될텐데... 새아침님 좋은 글 감사하게 보고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걸 버리고 떠나야하는 그의 마음 나 자신이 삿갓이 되어 생각 해본다 선뜻 모든걸 버리고 떠날수 있을까 ? 김 삿갓 한 인간의 애뜻한 삶이 지금은 이 시대에 살아 가는 우리에게는 무언가 올바른 삶의 지표가 되면서도 어느땐가 모든걸 버리고 훨 훨 떠나고픈 불현듯 내일의 내 모습?
화순에가면 정씨들살고있었는데 선천들의 원한은 모른체 김삿갓이 화순고을에 이르렀을때 김삿갓의 글솜씨가 뛰어나다는 소문을듣고 정씨사당 현판을 부탁하였다하더구만요貴樂堂이라 지어주고 떠낫는데 뒤는게야 당나귀라는 라는 모욕적인 글인줄 알았답니다 그뒤부터 鄭씨들을 당나귀정이라 부른다는구만요
가장 멋진인생 !!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방랑시인 감삿갓..글과 함께하니 슬픔으로 다가옵니다...강원도 영월땅에 난고 김삿갓시인을 기리기위한 문화 큰 잔치가 열린다지요..어제 오늘을 걸쳐 어느카페에서는 문화행사에 참여하여 시 낭송도하고 문학의 밤과함께 아름다운 밤을 보낸다는소식을 들었습니다.일주일동안 그의 슬픈 방랑생활과 함께하기를 기대해요
새아침님..오늘 나들이길에 잎들이 조금씩 색을 바꾸며 가을을 재촉하는듯 했습니다 마음은 좋은데 가을이면 심장이 조금더 아파지는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립니다 은행잎이 물드는것이 두렵답니다 지금은 좋은 마음으로 새아침님을 떠올렸어요 어쩌면 일일이 피곤하고도 고단한일을 하루도 쉼없이 답글을 올려주시고..
애정을 품어 즐거움과 기대를 주실 수 있는지....답글을 올리면 또 새아침님이 올려주시는 답글이 기다려지고...그 마음을 닮고싶습니다 그러나 전...아마..못할것 같아요 마음헤아림...고마워요..사랑해요~새아침니~임...^^*
시선 김병연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가슴아픈 사연이 있었군요..한주간의 인생여정을 겸한 시를 기대해 봅니다...^^
진리의 손님 언제 한번 노래 들려 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잊고 있었던 김삿갓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의 시를 즐겨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모든 물욕을 떨쳐버린 그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 갔는지..그의 지혜와 해학이 한주간 님들을 기쁘게 하였으면 합니다. 뛰어난 시인을 만나다는 것은 즐거움이지요.
늦은 오후님 죄송하다 말씀 올려야되는지..허나 누구보다 김삿갓의 글을 사랑해 주실 님이라 여겨집니다. 난국을 해쳐 나가는 김삿갓을 분명 좋아하고 그의 글을 가슴에 품어주리라 확신합니다. 몇시쯤 보셨을까..밤잠 도망가는 일 없기를 간절한 마음에 담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하늘로님 그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속내용을 알 것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한 방랑시인으로 기억에 담고 있지요. 김삿갓의 시를 좋아하신다니 한주간 작업 시간이 즐거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一枝님 우리는 그를 방랑시인이라고 부르지요. 시인은 시인이되 전국 팔도를 떠돌며 접했던 사람이나 자연에 대해 노래를 했기 때문에 그런 칭호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연인의 꿈을 꾸시는군요. 저 역시 반푼 자연인이라도 되고 싶답니다. 글..감사드립니다.
낭인님 시 한수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놓았기에 이토록 긴 세월이 지나도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요. 그의 글엔 기지와 해학이 들어 있기에 또한 사회적 물질적 욕망을 털어 내었기에 40여년의 방랑의 시간속에 남겨진 글이기에 아마도 그에게 미친 누군가가 남겨 놓았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처음 뵙는 님..반가움
아..황소.황우님 오늘 찾아냈습니다. 분명 님 계신 곳을 들었는데..酒가 잠시 기억을 잠들게 하였습니다. 진리의 손님께 들었지요. 부끄럼..후회하는 삶보다는 반성하는 삶을 가져 봅니다. 하늘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는 차마 부끄러워 고개 떨굴 것 같은 새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소월님 훌쩍 아주 떠나지는 마시옵고 간간히 떠나시옵소서. 그래야 우는 사랑님도, 우는 벗도 없을테니..사랑님과는 벽 허무셨는지요? 들려 오는 소식에 의하니 사랑싸움이라 하시니..그건 계속 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다시 열리는 월요일 한주간 활기차게 그리고 늘 담으시는 그 웃음 놓치지 않으시길..
나현님 다시 뵈니 반가움이 더욱 큽니다. 처세의 중요함을 깨우쳐 준 내용이지요. 화순인가요? 저는 함경도로 알고 있었는데..한부잣집에 들어 갔는데 그 주인 인색하기 짝이 없었으며 문간방 하루 빌려 주고 하룻밤 묵었으니 보답하라 하여 귀할 귀자와 아름다울 나자를 써서 귀나당이라 지어 주었지요.
주인은 귀하고 아름다운 집이라 좋아했지만 후에 거꾸로 읽으니 당나귀 인 것을 알게 되었다지요. 전해 오는 이야기이니 장소가 어디면 어떻겠는지요. 글 감사드립니다.
아..미다리님 고맙습니다. 정말 님 덕분으로 김삿갓을 다시 만나고 더불어 여러 님들이 그의 글속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모자란 실력에 한문 찾아 올리기는 힘들지만 즐거움이 큽니다. 올려 드리고 싶은 글은 많은데..일주일이 짧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들꽃러브님 그런 행사가 열리고 있나요? 하하 제가 몸담고 있는 곳의 체육대회에만 신경 썼나 봅니다. 잠께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냥 잠들었으면 오늘밤 뜬눈으로 보냈을텐데..아직 약간의 피곤끼있어 님들 만나고 나면 다시 잠자리 들 것 같습니다. 감기 빨리 멀리 보내시고요..
바다님 벌써 옷갈아 입는 나뭇잎들을 보셨나요? 전 오늘 파란 하늘과 초등학교 한편에 핀 들국화를 만나고 왔습니다. 초등학교 빌려 저희 복지관 체육대회를 했거든요. 투호 던지기도, 굴렁쇠 굴리기도 하였답니다. 모르시는 것 같아 큰소리로 알려 드립니다. 님이 주시는 글로 마냥 행복해 하고 게으름 찾아와도 쫓아주는
사랑 담긴 글을 주시는 분..바다님 이시랍니다. 자신이 베푸는 것은 모르시고 다른이의 사랑을 칭해 주시니 이제 제 큰소리 꼭 담아 주시기 바랍니다. 알 수 없는 님의 병..물리칠 수 있는 분..당연 님이시겠지만 저도 두팔 걷어 한몫하겠습니다. 고은꿈 꾸세요.
한영지님 시선하니 떠 오르는 글있지요. 김삿갓이 금강산에 첫발을 디뎠을 때 만난 스님이 그를 시선이라 칭하며 글 한자락을 주었지요. 아..내친김에 한번 올려 볼까요? 스님은 김삿갓에게 먼저 시를 지을 테니 화답해 보라 했지요.
찾는 이 없어 오랫동안 사립문을 열지 않았소.. 오늘 아침 우연히 시선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으니..학을 불러 암자를 보이게 하고 시 한수를 청하오..
김삿갓 화답하길..우뚝우뚝 뾰죽뾰죽 기기괴괴한 가운데..인선과 신불이 함께 엉겼소.. 평생 금강산 위해 시를 아껴 왔건만.. 금강산에 와 보니 감히 시를 지을 수가 없소.,님께 드리는 선물로 해 주세요.
이곳을 들리시는 모든 님들!! 넘 박학다식 하셔서 전 감히 뭐라 드릴 말씀이.... 그냥 조용히 배우는 맘으로 다녀 갑니다. 새아침님 !!! 존경 합니다.
소슬바람임 이곳부터 함께 하셨군요. 글속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마음을 그저 대화 나누신다 생각하시면 아마도 편하지 않을까요? 존경이란 단어는 당치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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