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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고향 풍기 원문보기 글쓴이: 배규택
시보네 에세이 28
죽계에 머문 하늘의 기운
— 죽계구곡과 죽계별곡—
소백산 자락을 흐르는
죽계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물은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같은 자리에서 흐르며
무엇을 보았을까.
누구의 눈물을 받아주었을까.
누구의 웃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오늘 이야기는
그저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죽계구곡
어딘가에 살아 숨 쉬는,
우리가 잊고 있던 위로의 기억입니다.
1. 역사의 발자취가 새겨진 계곡
'죽계구곡'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처음 이 계곡에
깃들게 된 것은 조선 중종
38년(1543년)의 일입니다.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고려의 명유(名儒) 안향이
거처하던 자리에 백운동서원을 세우고,
중국 남송의 대학자 주희(朱熹)가
무이산 아홉 굽이를 이상 세계로
노래한 '무이구곡가'에서
영감을 받아 이 죽계의 아홉 절경에
이름을 새긴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또 한 사람의 거대한 발자취가
이 계곡에 깊이 새겨집니다.
퇴계 이황은 기유년(1549년)
소백산을 유람하며
『유소백산록』을 남기고,
각 곡마다 시문(詩文)을 지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치 묘사가 아니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도를 닦고
학문을 익히려는 선비의 정신,
계곡의 물소리에서
우주의 이치를 읽어내는
혜안이 담긴 작품들이었습니다.
훗날 영조때
순흥부사 신필하가
바위에 구곡의 이름을 석각(石刻)하면서,
이 이름들은
계곡의 몸에 영원히 새겨지게 됩니다.
이제 아홉 굽이를 따라 걸으며,
퇴계가 이 물가에서 읊었던
시어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제1곡 금당반석(金堂磐石)
"바위는 불당의 기단 같고,
물소리는 법음(法音) 같도다."
바위와 물소리를 불법에
비유하여,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경지를 표현했습니다.
초암사 위쪽 숲속 깊이 자리한
이 너른 화강암 반석에서는,
수십 명이 앉아 놀 수 있을 만큼
넓은 바위 위로 맑은 물이
석경(石鏡)처럼 흘러내립니다.
죽계구곡 중
가장 넓은 반석이 품은 곳입니다.
제2곡 청운대(靑雲臺)
"옥같은 샘물 흘러내려
맑음이 천지에 가득하니,
마음 또한 씻겨 맑아지네."
이 곡은 원래
주세붕이 '백운대'라 명명하였으나,
퇴계가 인근에 이미
백운동·백운암이 있어 혼동된다 하여
'청운대'로 고쳐 부를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청정한 물을 통해 인간의 심성을 닦는
수양의 뜻이 깊이 담겨 있습니다.
제3곡 이화동(梨花洞)
"푸른 소나무 숲 그윽하니,
바람결에 학문을 논하는 소리 들려온다."
초암사 앞 너른 공지에
산벚나무와 산동백, 산사나무들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5월 중순 꽃이 활짝 피면
장관을 이루며, 자연과 학문이
하나로 만나는 선비들의 풍류를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제4곡 용추비폭(龍湫飛瀑)
"학이 노니는 듯 고고한 바위,
선비의 마음 또한 학과 같도다."
깎아지른 6미터 높이에서
물기둥이 몇 단으로 꺾여 떨어지고,
수정구슬이 어지럽게 흩어지며
검푸른 못을 이루는 곳입니다.
『순흥지』에도 '가뭄에 여기에 빌면
곧 영험이 있어 비가 온다'고 전해지는,
죽계구곡의 심장과 같은 절경입니다.
퇴계는 이곳에서 학의 고결한 이미지로
선비의 기상을 상징했습니다.
제5곡 청련동애(靑蓮東崖)
"용이 누운 듯한 깊은 소,
그 속에 장엄한 기운이 감도네."
물 건너 동쪽 바위 벽이
병풍처럼 단애(絶壁)를 이루고,
위쪽 폭포에서 쏟아진 물이
큰 소(沼)를 만드는 곳입니다.
자연의 장엄함을 용의 형상에 빗대어
표현한 퇴계의 웅장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제6곡 목욕담(沐浴潭)
"맑은 바람 불어오니 번뇌가 씻기고,
마음은 고요히 맑아진다."
선녀가 숨어서 목욕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30도 경사의 너른 반석에서 물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려
자연 풀장을 이루고,
앞쪽 큰 바위가 이 공간을 살짝 가려주어
마치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비밀의 쉼터와 같습니다.
협곡의 청풍으로 마음의 수양을 강조한
시어가 이곳과 꼭 어울립니다.
제7곡 백자담(栢子潭)
"흰 구름 걸린 봉우리,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네."
7미터의 와폭이 70도 경사를
세차게 흘러 깊은 소를 이루는 곳입니다.
흰 화강암 암석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큰 소나무와 산동백이 어우러져
자연과 합일하는 초월적 세계를
느끼게 합니다.
제8곡 금성반석(金城盤石)
"높은 산 정자에 앉아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니,
풍광과 도가 함께하네. "
크고 긴 바위들이 성곽처럼 쌓여 있고,
수마로 윤이 나도록 닦인
너른 반석이
20여 명을 품을 수 있는 곳입니다.
오랜 세월 물결이 바위를
어루만져 만든 산수경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를 담고 있습니다.
제9곡 중봉합류(中峯合流)
"배꽃 흐드러지게 피어 봄빛 가득하니,
구곡의 끝은 청아한 아름다움이로다."
국망봉 서쪽 석륜골에서
내려온 물과 비로봉 동쪽 하가동에서
내려온 물이 중봉 아래에서 비로소
하나로 만나는 곳입니다.
죽계의 시작이자 구곡의 마지막이며,
배꽃의 청아함으로 장식된
이상적 세계의 끝자락입니다.
이 아홉 편의 시문을 통해
퇴계는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연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스승이라고.
바위 하나, 물소리 하나에서
도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선비라고 말입니다.
2. 죽계에 깃든 전설
1막. 용추비폭(龍湫飛瀑)
깨어나지 못하는 용
그해 여름은 잔인했습니다.
해가 뜨면 논바닥이 갈라지고,
해가 지면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갈라졌습니다.
마을의 우물은 바닥을 드러냈고,
죽계수마저 가느다란 실처럼
가물어갔습니다.
한 노인이 손주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얘야,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말이다...
가뭄이 심하면 사람들이 용추로 갔단다.“
"용추요?"
"그래. 죽계구곡 제4곡 말이다.
깎아지른 6미터 높이에서 물기둥이
몇 단으로 꺾여 떨어지고,
수정구슬이 어지럽게 흩어지며
소용돌이치다가 검푸른 못
한복판의 바위에 부딪치는 곳이지.
마치 안개 구름을 머금고
토하는 용의 모양 같다 하여
용추비폭(龍湫飛瀑)이라 했단다.
거기엔... 용이 산다고 했지.“
『순흥지』에도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가뭄에 여기에 빌면
곧 영험이 있어 비가 온다'고.
퇴계도 이 앞에서
학처럼 고고한 바위를 바라보며
선비의 기상을 떠올렸겠지요.
폭포 아래 스무 명이 앉아
놀 수 있는 너른 암반에는
한낮을 제외하고는 햇빛이 들지 않아,
어떤 무더위에도
서늘한 기운이 맴돕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용추로 향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용추만은 깊고
검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숨을 쉬듯,
물결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지요.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용신이시여..."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절박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간절함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당신을 잊고 살았습니다.
풍요로울 때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했고,
편안할 때는
당신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하오나... 이제는 정말...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그의 눈물이 용추에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용추의 물이 크게 출렁였습니다.
차가운 안개가 피어올라
사람들을 휘감았습니다.
"용신께서 응답하셨다!"
누군가 외쳤습니다.
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했습니다.
촛불을 끄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몰랐습니다.
용추의 용이 깨어나지 못한 것은
그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용은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온갖 탁함과 번뇌가
용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욕심, 미움, 질투...
그 모든 것이 물과 함께 흘러들어와
용을 묶어버렸던 것이지요.
2막. 목욕담(沐浴潭)
달빛이 품은 비밀
그날 밤, 한 젊은이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죽계구곡을 따라 걸었습니다.
제1곡, 제2곡을 지나 제3곡...
발걸음은 저절로 물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제6곡 목욕담에 이르렀을 때,
그는 숨을 멈췄습니다.
퇴계가 '맑은 바람 불어오니
번뇌가 씻기고,
마음은 고요히 맑아진다'고
노래했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30도 경사의 너른 반석에서
물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려
자연 풀장을 이루고,
앞쪽 큰 바위가
이 공간을 살짝 가려주는,
마치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비밀의 공간이었습니다.
달빛이 이상했습니다.
평소의 달빛이 아니었습니다.
물 위에 쏟아진 달빛은 마치
액체처럼 출렁이고 있었고,
그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바위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하늘에서 일곱 가닥의 비단 자락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무지개보다 고운 색,
별빛보다 은은한 빛깔...
그 비단 자락을 따라
일곱 명의 선녀가 목욕담으로
내려왔습니다.
"자매들이여, 오늘은
보름달이니 마음껏 즐기자꾸나."
선녀들은 목욕담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 순간, 물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선녀들이 웃을 때마다 물결이
퍼져나가며 은하수 같은
빛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한 선녀가
갑자기 웃음을 멈췄습니다.
"자매들, 이상하지 않은가?
오늘따라 물의 기운이 탁하구나."
"그러게 말이야. 마치...
누군가 슬퍼하는 것 같아."
제일 나이 많은 선녀가 눈을 감았습니다.
"아래쪽 용추로부터
번뇌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구나.
용이... 고통받고 있어.
세상의 탁기가 너무 짙어져서
움직일 수가 없는 거야.
비를 부르고 싶어도
하늘로 오를 수가 없는 게지."
선녀들은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도와드리자.“
3막. 청정함과 강인함이
만나는 순간
선녀들은 목욕담의 물을
정성스럽게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서 가져온
정화의 기운이 담긴 물,
선녀들의 자비로운 마음이 녹아든 물,
세상의 모든 번뇌를 씻어낼 수 있는
신성한 물이었습니다.
"이 물을 용추로 보내자.
용의 몸을 감싸고 있는
탁기를 씻어줄 수 있을 거야."
선녀들은 비단 자락을 펼쳐
목욕담의 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용추 쪽으로
천천히 흘려보냈습니다.
달빛을 머금은 물은 은빛 실처럼
계곡을 적시며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물이 용추에 닿는 순간
콰아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용추의 물이 하늘 높이 솟구쳤습니다.
검은 안개를 뚫고
눈부신 청룡이 나타났습니다.
용의 비늘 하나하나가
별처럼 빛났습니다.
용은 몸을 비틀며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수백 년 동안 억눌려 있던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쁨이었습니다.
해방의 환희였습니다.
"고맙소, 선녀들이여! 고맙소!"
용의 목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용이 승천하며
토해낸 구름이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젊은이는 바위 뒤에서
그 모든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두려워서? 아니었습니다.
경외감 때문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깊이 위로받은 영혼의
눈물이었습니다.
4막. 비가 내리던 날
첫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젊은이의 뺨에, 어깨에, 손등에...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그 빗방울에는 온기가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눈물처럼 따뜻했습니다.
곧 하늘이 열렸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파괴의 비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의 비였습니다.
용의 은혜와 선녀의 자비가 만나
내리는 축복의 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비다! 비가 온다!"
사람들은 춤을 췄습니다.
울고, 웃고,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아이들은 빗속에서 뛰어놀았고,
노인들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았습니다.
젊은이는 목욕담 쪽을 돌아보았습니다.
선녀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하지만 물가에는
은은한 빛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 밤, 비가 그치고
나서 젊은이는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침묵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어떤 기적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은혜는 입 밖에
내는 순간 빛을 잃습니다.
그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대신 그는 자주 죽계구곡을 찾았습니다.
용추에서는 용기를 얻었고,
목욕담에서는 마음의 때를 씻었습니다.
에필로그:
지금도 흐르는 위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젊은이는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죽계구곡을 찾았습니다.
손주들을 데리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할아버지가 너희에게
비밀 하나를 알려줄게."
"비밀이요?"
"이 물은 말이다...
그저 물이 아니란다. 이
물에는 용의 기개가 흐르고 있어.
그래서 마음이 약해졌을 때
이 물을 바라보면 다시 용기가 생긴단다.
그리고 이 물에는
선녀의 자비도 흐르고 있지.
그래서 마음이 답답할 때
이 물에 손을 담그면
모든 근심이 씻겨 내려간단다."
"정말이에요?"
"그럼. 할아버지가 직접...
본적이 있으니까.“
노인의 눈에 먼 빛이 어렸습니다.
그날 밤의 기억... 달빛과 비단 자락,
청룡의 승천과 축복의 비...
그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선명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죽계수를 봅니다.
너무 익숙해서
특별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기억해주세요.
용추에는 지금도
용의 기운이 살아 있습니다.
당신이 힘들 때, 용기가 필요할 때,
그곳에 가서 깊은 물을 바라보세요.
목욕담에는 지금도
선녀의 자비가 머물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지쳤을 때,
번뇌에 시달릴 때,
그곳에 가서 물에 손을 담그세요.
3. 죽계구곡(竹溪九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
이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만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고려 시대 문인
안축(安軸, 1287~1348)은
죽계의 풍광에 깊이 취해 경기체가
『죽계별곡(竹溪別曲)』을 지었습니다.
700년 전 선인도
이 물소리 앞에서
같은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퇴계 이황은
아홉 굽이마다 시를 읊으며,
이 계곡이 단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스승임을 온몸으로 증명했습니다.
죽계구곡과 죽계별곡은
같은 계곡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시대와 방식으로
이 땅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두 개의 빛나는 유산입니다.
죽계별곡은 주세붕이
죽계구곡을 명명하기 200여 년 전에
이미 이 계곡의 경관과
사람들의 풍류를 노래했습니다.
안축의 노래가 있었기에,
후대의 선비들도
이 계곡의 가치를 알아보고
아홉 굽이마다
이름을 새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죽계별곡이 죽계구곡의
구체적인 지명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죽령 남쪽 소백산 아래
순흥 땅의 산 높고 물 맑은 경관,
사찰과 누정에서
펼쳐지는 선비들의 풍류,
향교에서 경서를 외는 학문의 소리—
이 모든 것이 훗날 퇴계 이황이
각 곡마다 시를 남기고
주세붕이 구곡에 이름을
새기게 된 정신적 토양이었습니다.
죽계별곡은
죽계구곡의 서막이었던 셈입니다.
죽계별곡은
한림별곡·관동별곡과 함께
고등 검인정 교과서의 문학 파트에서
경기체가를 다룰 때,
본문에는 <한림별곡>을 싣고
비교 감상용 지문으로 <죽계별곡>을
싣기도 하였으며
고려 경기체가의 대표작으로
문학사에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700년 전 안축이
소백산 자락 죽계에서 품었던 감동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죽계구곡을 찾는 발길이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학적 뿌리를
직접 밟아보는
소중한 경험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도 죽계수는 흐릅니다.
안축의 죽계별곡의
노랫가락과 퇴계의 시어를 싣고,
용의 힘과 선녀의 마음을 실어서.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2026.2.26.
배규택
[참고]
죽계계곡을 배경으로,
아홉 굽이의 절경을 노래한 작품.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선비의 삶과 풍류를 즐기는
이상적 세계를 표현한 노래
후렴구에 “경기하여(景幾何如)”를
반복적으로 하는 ‘경기체가’ 형식의
“죽계별곡” 내용 소개합니다.
글 이해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죽계별곡(竹溪別曲)
근재 안축(謹齋 安軸) 지음
죽계별곡은 고려 후기의 문신
근재 안축이 지은 경기체가입니다.
안축은 충숙왕 11년(1324)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첨의찬성사
흥녕군에 이르렀으며,
고향을 오가며 이 고장의
산천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가 죽계의 풍광에 취해 남긴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소중한 문학 유산입니다.
죽계별곡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죽계 일대의 경관과 사람들의 삶,
학문과 풍류,
그리고 태평한 시대를 노래합니다.
제1장
죽령의 남쪽과 영가(안동)의 북쪽,
소백산 앞에 자리한 순정성(순흥)의
지역적 위치와 경관을 노래했습니다.
천 년의 흥망 속에서도 한결같이
풍류를 지닌 이 고을의 기상,
충렬·충숙·충목 세 왕의 태(胎)를 안치한
유서 깊은 땅임을 읊었습니다.
竹嶺南 永嘉北 小白山前
千載興亡 一樣風流 順政城裏
아! 산 높고 물 맑은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제2장
숙수사 누각, 복전사 누대,
승림사 정자, 초암사, 부석사 취원루 등
소백산 일대의 사찰과 누정에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붉고 흰 꽃이 핀 산에
비가 내리는 속에
반취반성(半醉半醒)으로 노니는
선비들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宿水樓 福田臺 僧林亭子
草菴洞 郁錦溪 聚遠樓上
半醉半醒 紅白花開 山雨裏良
아! 절에서 노니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제3장
채봉(彩鳳)이 날고
옥룡(玉龍)이 서린 듯한
산세 아래 향교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봄에는 경서를 외고 여름에는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노래했습니다.
자연과 학문이 하나로 어우러진
선비 정신의 진수를 담고 있습니다.
彩鳳飛 玉龍盤 碧山松麓
紙筆峯 硯墨池 齊隱鄕校
心趣六經 志窮千古 夫子門徒
아! 봄에는 경서를 외고 여름에는
거문고를 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제4장
꽃이 만발한 동산에서
노닐던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워하며,
천리 먼 곳에서 서로 사모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고향과 사랑하는 이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애틋하게 배어 있습니다.
楚山曉 小雲英 山苑佳節
花爛 爲君開 柳陰谷
아! 천리 먼 곳에 두고 서로
그리워함을, 또 어찌 하겠습니까?
제5장
봄의 붉은 살구꽃,
여름의 거문고 위로 부는 훈풍,
가을의 노란 국화와 단풍,
겨울의 눈 위에 비치는 달빛—
사철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중흥하는 성스러운 시대에
길이 태평을 누리자고 마무리합니다.
紅杏紛紛 芳草 樽前永日
綠樹陰陰 畵閣沈沈 琴上薰風
黃國丹楓 錦繡靑山 鴻飛後良
아! 사철을 즐거이 놉시다 그려.
※ 죽계별곡은 안축이 죽계구곡의
각 절경에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세붕이 구곡을 명명하기
200여 년 전에 이미
이 계곡의 아름다움과
선비들의 풍류를 노래했다는 점에서,
죽계가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안축의 노래에서 주세붕의 명명으로,
퇴계의 시문으로 이어지는
죽계의 문학적 흐름은
이 계곡을 단순한 자연이 아닌,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