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懷 마음을 서술하다 서경덕(徐敬德)
(술회)
讀書當日志經綸 글을 읽던 젊은 시절에는 경륜에 뜻을 두었고,
(독서당일지경륜)
晩歲還甘顔氏貧 늦은 나이에는 안회의 가난을 달게 여기게 되었네.
(만세환감안씨빈)
富貴有爭難下手 부귀는 다툼이 있어 손대기 어렵고,
(부귀유쟁난하수)
林泉無禁可安身 산수에는 금할 이 없어 몸을 편히 둘 수 있네.
(임천무금가안신)
採山釣水堪充腹 산에서 나물 캐고 물가에서 낚시하면 배 채울 만하고,
(채산조수감충복)
詠月吟風足暢神 달을 읊고 바람을 노래하니 정신이 넉넉히 즐겁구나.
(영월음풍족창신)
學到不移眞快活 배움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니 참으로 즐겁고,
(학도불이진쾌활)
免敎虛作百年人 헛되이 백 년 인생을 살지 않게 되었네.
(면교허작백년인)
[의역]
젊은 시절에는 세상을 다스리고
큰일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품고 공부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안회처럼 가난해도 도를 즐기는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부귀와 권세에는 다툼이 따르니
쉽게 가까이하기 어렵다.
반면 자연 속에는
나를 구속하는 것이 없으니
몸과 마음을 편히 맡길 수 있다.
산에서 나물을 캐고,
물가에서 낚시를 하며 살아도
먹고사는 데 부족함이 없다.
달을 벗 삼고 바람을 친구 삼아
시를 읊으니 정신은 더욱 맑아진다.
배움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얻는다면
비로소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것이다.
[한자 공부]
讀(읽을 독) 書(글 서) 當(마땅할 당) 日(날 일) 志(뜻 지) 經(다스릴 경) 綸(벼리 륜)
晩(늦을 만) 歲(해 세) 還(도리어 환) 甘(달 감) 顔(안회 안) 氏(성씨 씨) 貧(가난할 빈)
富(부유할 부) 貴(귀할 귀) 有(있을 유) 爭(다툴 쟁) 難(어려울 난) 下(내릴 하) 手(손 수)
林(수풀 림) 泉(샘 천) 無(없을 무) 禁(금할 금) 可(가할 가) 安(편안할 안) 身(몸 신)
採(캘 채) 山(메 산) 釣(낚을 조) 水(물 수) 堪(견딜 감) 充(채울 충) 腹(배 복)
詠(읊을 영) 月(달 월) 吟(읊을 음) 風(바람 풍) 足(족할 족) 暢(펼 창) 神(정신 신)
學(배울 학) 到(이를 도) 不(아닐 불) 移(옮길 이) 眞(참 진) 快(쾌할 쾌) 活(살 활)
免(면할 면) 敎(가르칠 교) 虛(빌 허) 作(지을 작) 百(일백 백) 年(해 년) 人(사람 인)
[작자]
서경덕(1489~1546)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호는 화담(花潭)이다. 벼슬에 나아가기보다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자연 속에서 학문과 수양을 실천하였다. 그의 사상은 이황과 이이 등 후대 성리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서경덕은 물질적 성공보다 정신적 자유와 학문의 완성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러한 삶의 철학이 이 시에 잘 드러나 있다.
[감상]
이 시는 서경덕의 인생관과 학문관이 응축된 작품이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을 경영하겠다는 큰 포부를 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귀보다 도를 즐기는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특히 「晩歲還甘顔氏貧」은 공자의 제자 안회를 떠올리게 한다. 안회는 가난했지만 도를 즐기며 살았던 인물로, 서경덕은 그의 삶을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바라본다.
중간 부분에서는 부귀와 자연을 대조한다. 부귀에는 다툼과 욕망이 따르지만 자연 속 삶은 자유롭고 평화롭다. 산에서 나물을 캐고 낚시를 하며 살아도 부족함이 없고, 달과 바람을 벗 삼아 시를 읊는 삶은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준다.
마지막의 學到不移眞快活 免敎虛作百年人은 이 시의 핵심이다. 학문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을 세운다면 비로소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시는 출세와 성공보다 학문과 수양, 그리고 자연 속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 화담 서경덕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 주는 명작이다.
"부귀는 남과 다투어 얻지만, 참된 즐거움은 스스로의 마음에서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