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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5일(주일) 새벽설교 마태복음 11:20~30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 새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은 마태복음 11:20~30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을 마치 생의 목적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한 수집가가 있었습니다. 희귀한 골동품이 있다면 세계 어디라도 좇아가서 그 물건을 구입하였습니다. 어느 날 유럽 왕가에서 사용했던 아름다운 도자기 하나를 잡지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잡지에서 그 사진을 보는 동안 가슴이 뛰었고, 그 후로는 아주 정신을 거기에다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여행을 하면서 추적을 해보았지마는 그 도자기의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크게 실망하여 병이 날 지경에서 어느 날 잡지를 보는데 골동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 골동품이 어떤 사람에게 팔렸다고 쓰여 있습니다.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 하고 이름을 자세히 보았더니 자기 이름이더랍니다. 벌써 오래전에 그 골동품은 자기가 사들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었지마는 그것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다니면서 찾아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단 말입니다. 가져다 놓을 그 때뿐이었지, 지나고 나서는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때로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은 은혜도 그렇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 때만 비로소 은혜가 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 가장 소중한 자기 건강, 내가 지금 처하고 있는 이 현실의 귀중한 의미를 내가 깨닫지 못한다면 은혜도 은혜 될 수 없고 복도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삶을 뒤돌아볼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 무엇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 오늘 이 시간 이 자리까지 주님이 인도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고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해주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1)라고 고백합니다. 이 사도바울의 고백이 특별히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한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우리의 삶이 끝날 때까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이 고백은 늘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자는 삶의 모든 순간을 감사하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인 고라신과 벳세다와 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음을 보고 책망하시며 심판을 경고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나타내심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는 내용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은혜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나누기를 원합니다.
저도 올해 한해를 돌아보면서 ‘우리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교회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기도하게 하시고 특별히 10년이상이나 정치적 분쟁이 있었던 노회를 보면서 교단을 탈퇴하게 하시고 이제는 카이캄(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라는 교단에 소속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둘째는 우리 부부에게 올해 3월부터 일할 수 있는 곳을 허락하셔서 성도들의 삶을 이해하게 하시고 그런 삶을 통해서 복음을 삶 속에서 체험하게 하심도 감사드리고 부족한 재정도 채워주시며, 열두광주리 헌금 중 한광주리를 채워하게 하심도 감사드립니다.
셋째는 우리교회가 11월 마지막 주일이 되면 성전이전 6주년이 되는 데, 코로나로 모두들 힘든 시간들을 보냈지만, 저희교회도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이자만 갚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였는데, 코로나가 끝나면서 이자가 거의 두배가 오르면서 하나님께서 원금을 갚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열두광주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교회에는 3월 18일부터 열두광주리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 교회 기도제목을 고민, 고민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한 뒤에 결국 순종하여 공유한 날짜는 올해 2023. 6. 13(화)이었습니다. 우리교회 내부적으로도 한 광주리의 헌신이 있었고, 외부에서도 한 교회 선교부 권사님의 헌신과 성도들의 십시일반헌신으로 8월 첫째주에 한광주리의 헌금을 보내오셨고, 또한 이래 저래 헌신한 교회성도들과 외부 성도들의 헌신으로 이제 거의 4광주리가 채워졌습니다. 제가 기도하기는 내년까지 이 모든 일이 이뤄지기를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지요,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을 텐데, 하나님주시는 감동따라 순종하다보니 이런 은혜가 있었던 것이지요.
네 번째로, 그동안 우리 교회 실행위원으로 수고하시던 분들 중 4분이 11월 마지막 주 주일에 권사로 세워지는 일이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힘들어도 순종하면서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올해 참으로 많은 일들이 교회적으로도 있었고, 아마 성도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런 일들을 돌아보면 고난 중이었지만, 감사한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간 되시면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돌아보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일로 은혜을 베푸실까요?
첫째로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십니다(20~24절).
20절에서 24절은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인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이 교만하여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책망하시고 탄식하십니다. 21절에서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특별히 23절 말씀을 보시면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까지 낮아지리라”고 책망하십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주로 활동하셨던 곳이어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이곳 사람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선지자가 자신의 고향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곳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는 말은 번영과 특권을 누린다는 표현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많은 이적과 권능을 직접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고, 천국이 이곳에서부터 확산되고 있음에도 오히려 교만의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있었습니다.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는 말에서 ‘음부’는 헬라어로 ‘하데스’이고 히브리어로는 ‘스올’입니다. 이 말은 무덤이나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 가버나움은 로마군과 유대인 사이의 전쟁으로 초토화됩니다. ‘음부’는 죽음 이후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겪는 멸망과 심판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데,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심이 은혜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셔야만 합니까?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교만함을 깨뜨리시는 이유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 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뜨려주시지 않으시면, 우리가 패망하기 때문입니다.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지옥갈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아주 힘든 환경을 주시고 그곳에서 고통당하게 하시는 이유는 저와 여러분의 교만을 깨뜨리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착한 행실을 기록한 책인 중국 송나라 시대의 경행록(景行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있고, 남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을 만나게 된다.’ 18세기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도 같은 말을 했는데요, ‘긴 논쟁은 쌍방이 다 옳지 않다는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불필요한 논쟁에는 가담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또한 러시아의 극작가 고돌은 ‘논쟁에 귀 기울여라. 그러나 논쟁에 가담하지 말라.’ 고 말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실한 사람의 우정 어린 충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멸시합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의 지체들의 권면도 무시하고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다 얕잡아 보고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웁니다. 특히 위기가 닥쳤을 때 지혜가 없어서 넘어지기 쉬우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은혜임을 가슴 깊이 깨달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나의 교만함을 깨뜨리시려고 내 삶에 허락하셨던 삶의 터널은 무엇이었고, 내가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웠습니까?
둘째로,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은 잘난체 하는 우리의 지혜를 깨뜨리십니다(25~27절). 오늘 본문 25~27절에서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언급하십니다(25절).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오지 못하리라’(마18:3)고 말씀했습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단순하고, 경험이 없기에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처럼 주님의 품으로 파고드는 사람에게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고 자랑하는 자에게는 그것을 감추십니다. 예수님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단코…. 못하리라'라는 말씀은 이중 부정으로 천국 입성을 절대 불허하시겠다는 당신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도록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주님은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난의 사건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주님만 찾고 의지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게 하십니다. 어린아이에게서 주님이 드러내시고자 하는 것은 어린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겸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아이가 어떤 면에서 겸손하다는 것일까요? 어린 아이들은 본질상 연약하기 때문에 혼자 함으로는 살 수 없고 부모의 품 안에서만 평안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의 겸손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부모의 보호아래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겸손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거나 높아지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의 보호 아래서 천진하게 사랑스럽게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천국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뜻하는 말인 파이디온(paidivon)은 앞의 천진하고 순수함과는 달리 무기력하고 돌보아 주어야 할 대상으로서 어린아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뭔가 유익을 줄 수 없는 대상을 총칭하는 단어로 보아야 합니다. 그 당시 어린아이는 인수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홀대받던 시절이었는데요, 그런 시절에 주님은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그 하잘것없이 취급당하던 어린아이를 영접하라고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현재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은 ‘대가의 법칙’(give and take)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이렇게 베풀 때 ‘돌아올 대가’를 계산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어린아이는 그럴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고아와 과부’, 우리 시대의 노숙자들과 같은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흘려보내는 은혜의 강물헌금도 이와 같은 원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를 만들기를 원하고 이런 힘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도 아무런 대가 없이 도울 수 있고 영접할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원리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좋은 의미입니까? 부정적인 의미입니까? 이 의미는 여러분이 다 아시듯이 약간 ‘부정적인 말’입니다. 이 의미는 ‘겉으로는 아는 것이 많아 보이나, 정작 알아야 하는 것은 모르거나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우리 집 애는, 잘난 체는 혼자 다 하면서 순 헛똑똑이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헛똑똑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뿐 나빠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세상적으로도 그렇지만, 신앙적으로도 ‘헛똑똑이’라면 나의 신앙생활을 기본적으로 심각하게 다시 돌아보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헛똑똑이가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언급한 어린아이와 같은 ‘진짜 순 똑똑이’는 세상적으로보면 헛똑똑이 같이 보이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참으로 지혜로운 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적용) 나는 주님 앞에서 헛똑똑이입니까? 어린아이와 같이 똑똑이 입니까? 내가 잘난체 하는 헛똑똑이 같은 영역을 무엇입니까?
셋째,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짐을 지는 어리석음을 깨뜨리십니다(28~30절).
오늘 본문 28~30절은 성경에서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입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를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의 인생의 고난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입니다. 어떤 분은 우리 인생을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인생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짐을 벗어버리기 보다는 짐을 지고 가는 인생이 나름 행복합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은 강을 건널 때 일부러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들은 ‘큰 돌덩이’가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요. 헛바퀴가 도는 차에는 일부러 무거운 짐을 싣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짐 자체가 마냥 나쁜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자식이 짐이지만, 자식들이 눈에 밟여서 인생을 살아갈 힘을 다시 얻는 경우가 많이 않습니까? 이렇게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인데요.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주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삶 속에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그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지고 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9절에 ‘멍에’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인간은 자신의 멍에를 다른 사람에게 지우려고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우러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원해서 짐을 지셨고, 각각의 사람들이 떠밀어 버리기 좋아했던 모든 무거운 짐을 지셨습니다. 그것은 죄의 짐입니다. 심지어 인류 홀로 질 수 없었던 무거운 짐인 무거운 짐인, 인류의 죄짐을 홀로 지셨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것을 지기 어렵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버림을 받았고, 경멸을 받았고, 박해를 받았고, 모욕을 당하고 채찍질과 십자가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전생애는 다른 사람들의 짐을 지는데 다 바쳐졌습니다. 그러면서 그 예수님은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런데 사람들은 그 초청에 응하질 않습니다.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그 초대를 거부하고 조롱합니다. 냉소를 보냅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짐을 질려고 합니다. 헛똑똑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기도로 인생의 짐을 맡겨야 합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바리새인처럼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것은 정말로 쉽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짐을 져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예수 믿는다고 우리들에게 닥치는 삶의 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 받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뀝니까?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고, 병든 사람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자녀들은 모두 1등을 하고, 어렵던 사업에 한 방이 터져 ‘대박 ’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살아도 세상사는 사람으로서의 짐이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져야 할 짐들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참아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짐, 그 부담을 기꺼이 기쁨으로 지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시는 이유는 그것을 주님께 어린아이와같이 맡기고 기쁘게 지고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적용) 내가 지금 주님께 나의 모든 짐을 맡기고 기쁘게 가야할 문제는 무엇입니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손경민 ‘감사’라는 찬양의 가사에 보면 1.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 내 뜻대로 안되도 주가 인도하신 것 모든 것 감사 2. 내게 주신 모든 것 감사 때론 가져가심도 감사 내게 고난주셔서 주 뜻 알게 하신 것 모든 것 감사
3. 항상 주 안에 있음 감사 참된 소망주심도 감사 나 같은 사람도 자녀 삼아 주신 것 모든 것 감사 후렴 :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로 스스로 지혜있는 헛똑똑이에서 벗어나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갖도록 은혜를 베푸시며, 또한 우리로 스스로 졌던 짐을 하나님께 맡기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렇게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주님께 늘 감사하시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산수정교회 열두광주리 프로젝트]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 교회 헌금 시작일 : 2023.3.18(주일) 2) 외부에 기도제목 공유일: 2023. 6. 13(화)
이제 코로나가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6월 1일부터 전환되었습니다. 한국교회와 저희교회도 지난 3년여 코로나 19 기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실 제목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저희 수정교회가 6년 전(2017.12) 하나님의 은혜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그동안 무료임대건물에서 나와 예산 신례원에 아름다운 현재 교회 건물을 주셨습니다. 무료임대로 있던 그 교회에서 갑자기 주인의 사정으로 갑자기 교회를 비워주고 이사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믿음있는 많은 분들의 기도와 헌금을 사용하셔서 기적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저희 교회는 그동안 모아놓았던 성전대지헌금 794만원을 그 당시 화재로 전소된 함평진양교회(당시 허기녕담임목사)에 오병이어의 소년의 도시락으로 드렸고, 그것을 사용하셔서 30배의 복을 주심으로 현재 신례원의 교회로 이사하였습니다.
* 참고기사 (https://cafe.daum.net/churchofcrystal/CGwk/38 이루는 교회 포커스/ 제목: 오병이어의 기적을 전하는 교회 /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https://cafe.daum.net/churchofcrystal/CGwk/34). 크리스찬포커스 제56호, 2017.8.11~24 『예산수정교회 3년 모은 건축비 794만원 진양교회당 복원비 후원』). 그 때 2억 4천의 전체 매입금액 중 교회 땅과 건물을 담보로 1억 2천만원의 대출을 아산 새마을금고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5년동안 이자만(약 3천만원)을 갚았습니다. 많은 이자를 생각하면서 올해부터는 이제 원금도 갚아 이 빚을 청산할 마음도 주셨습니다. 그동안 이자만 해도 적을 때는 매월 35만원에서 최근에는 68만원까지 치솟아 작은 교회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얼마되지 않는 성도로 코로나 기간동안 이를 감당한 것만도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하나님 주신 감동을 따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마감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올해 3월 18일부터 열두광주리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한광주리에 천만원씩 모여 12광주리에 담긴다면 충남 예산의 시골 소도시의 작은 교회가 재정적으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성도 한 분이 힘든 중에 향유옥합을 깨뜨리듯 한 광주리(천만원)를 곧바로 드렸고, 저희 가정도 한 광주리(천만원, 매월 50만원씩 20개월)를 감당하기 위해서 담임목사인 저는 생애 첫 풀타임으로 올 3월부터 초등학교 급식실에 조리원으로 1학기까지 근무를 마치고 이제는 예산군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는 운전원으로 7월 18일부터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내도 양신 초등학교 특수교육실무원(단기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도 모두 매월 얼마씩 힘을 다해 열두광주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12광주리를 장년성도 10여명으로는 다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열두광주리가 채워지도록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기도해 주실 뿐 아니라 오병이어의 기적의 말씀을 이루는 열두광주리 프로젝트와 헌금에 함께 동참하고자 감동되시면 적은 금액이어도 괜찮습니다. 작정해서 매월 얼마씩 나누어 드려도 괜찮습니다. 여유 있는 교회와 개인들은 한 광주리의 헌신을 드린다면 이를 통해 주님께서 기뻐받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헌신들이 모아 모아 12광주리가 모두 다 넘치도록 채워질 때 시골의 작은 교회가 힘든 중에 주저앉지 않고 일어서게 되고, 수정교회를 향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이 완성될 줄 믿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또 다른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준행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기도와 또한 믿음으로 헌금으로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교회들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복이 임하게 될 줄 믿고 기도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언 19장 17절)
* 참여계좌 농협 351-0294-5850-73 예금주:예산수정교회
◆ 열두광주리헌금 상황보고
● 2023.7.2 현재 헌금액 17,760,000원 / 120,000,000원
● 2023.7.9 현재 헌금액 20,360,000원 / 120,000,000원
● 2023.7.16 현재 헌금액 20,460,000원 / 120,000,000원
● 2023.7.23 현재 헌금액 21,890,000원 / 120,000,000원
● 2023.7.30 현재 헌금액 31,890,000원 / 120,000,000원
● 2023.8.13 현재 헌금액 33,390,000원 / 120,000,000원
● 2023.8.20 현재 헌금액 33,520,000원 / 120,000,000원
● 2023.8.27 현재 헌금액 33,570,000원 / 120,000,000원
● 2023.9.3 현재 헌금액 34,695,000원 / 120,000,000원
● 2023.9.17 현재 헌금액 35,225,000원 / 120,000,000원
● 2023.10.1 현재 헌금액 35,525,000원 / 120,000,000원
● 2023.10.8 현재 헌금액 36,185,000원 / 120,000,000원
● 2023.10.15 현재 헌금액 36,215,000원 / 120,000,000원
● 2023.10.22 현재 헌금액 37,365,000원 / 120,000,000원
● 2023.10.29 현재 헌금액 37,865,000원 / 120,000,000원
● 2023.11.5 현재 헌금액 38,865,000원 / 120,0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