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하느님 뭐라꼬예
‘삼손’,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2)조현권 스테파노 신부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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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찾으러 간 삼손의 복수
삼손의 혼인잔치는 결과적으로 신랑이 낸 수수께끼로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이방인인 필리스티아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를 아내로 맞아들이려 했지만 그녀의 배신으로 기만을 당했고, 그렇게 분노한 그는 서른 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필리스티아 여인의 매력이 철철 넘쳤던 것일까요? 데리고 오지 못했던 아내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삼손은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끌고 장인에게 가서 “아내의 방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장인의 대답은 “자네가 딸을 미워한다고 생각하여 이미 들러리를 섰던 동료에게 주어버렸네. 대신 더 예쁜 동생을 아내로 삼게나.”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삼손은 “내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해를 끼친다 해도, 이번만은 그들이 나를 탓할 수 없을 것이오.”(판관 15,3) 하면서 밖으로 나가, 여우 300마리를 사로잡아 두 마리씩 꼬리를 서로 비끄러매고서는 그사이에 홰를 매달아 불을 붙여 필리스티아인들의 곡식밭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곡식과 포도밭은 물론 올리브 나무들까지 홀랑 불에 타버리게 되었습니다. 수확을 앞둔 많은 것들이 홀랑 타버리자 화가 치솟은 필리스티아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야기한 삼손의 처와 장인(?)을 불태워 분풀이를 했습니다. “너희가 이런 식으로 한다면 좋다.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기 전에는 결코 그만두지 않겠다.”(판관 15,7) 삼손은 이렇게 말한 후 닥치는 대로 필리스티아인들을 쳐 죽이고 나서 ‘에탐’ 바위틈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필리스티아인들은 삼손의 확실한 원수가 되었고, 이로써 삼손과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이 준비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판관기는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손과 필리스티아인들의 전쟁
필리스티아인들이 유다에 진을 치고 ‘르히’를 습격한 후 삼손을 내놓으라고 하자 3,000명이나 되는 유다인이 삼손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르히’는 ‘턱뼈’을 뜻하는 곳으로 장차 삼손이 ‘당나귀 턱뼈’로 필리스티아인들을 쳐부수게 될 일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네를 묶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 넘기려고 내려왔네.”(판관 15,12) 이에 자신을 죽이지는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삼손은 밧줄에 묶여 바위틈을 빠져나와 ‘르히’로 끌려갔습니다.
묶여오는 삼손을 본 필리스티아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을 때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들이닥쳤습니다. 삼손의 팔을 동여맨 밧줄들이 녹아내렸고, 자유로워진 삼손은 근처에 있던 싱싱한 당나귀 턱뼈를 잡고 휘둘러 1,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을 압박하던 필리스티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 시작되었습니다.
들릴라의 배신과 삼손의 마지막 복수
시간이 흘러 삼손은 고향인 초르아 근처의 소렉 골짜기에 사는 ‘들릴라’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 필리스티아 제후들은 들릴라에게 가서 ‘삼손의 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어떻게 하면 그를 꼼짝 못 하게 잡을 수 있는지’를 알아주면 큰돈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몇 번이나 속였지만 날마다 들볶고 조르는 바람에 지겨워서 죽을 지경이 되어 결국 자기 속을 다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내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이 없소.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아 버리면 내 힘이 빠져나가 버릴 것이오. 그러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처럼 된다오.”(판관 16,17)
들릴라는 나지르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던 삼손의 고백을 재물의 유혹 앞에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힘을 잃어버린 삼손은 필리스티아인들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삼손의 눈을 후벼낸 다음, 일찍이 삼손이 그 성문의 문짝과 양쪽 문설주를 빗장째 뽑아갔던 ‘가자’로 끌고 내려갔습니다. 그곳 감옥에서 삼손은 청동 사슬에 묶여 연자매를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그의 깎인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이 모여 자신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흥이 고조된 그들은 급기야 삼손을 불러내어 조롱하였습니다. 포박된 채로 기둥 사이에 자리하고 있던 삼손은 하느님께 절규하였습니다. “주 하느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 저에게 다시 힘을 주십시오. 이 한번으로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저의 두 눈에 대한 복수를 하게 해 주십시오. … 필리스티아인들과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판관 16, 28-30) 그가 힘을 다하여 기둥을 밀어내자 건물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삼손은 모여있던 필리스티아인들과 함께 삶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판관기는 삼손의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이, 그가 사는 동안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판관 16,30) 삼손이 필리스티아인들의 시대에 판관으로 일한 기간은 20년 동안이었습니다.
들릴라가 잠이든 삼손의 머리털을 잘라냈을 때 삼손은 허약해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남은 힘마저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필리스타인들이 잡으러 오자 잠에서 깨어난 삼손은 “지난번처럼 밖으로 나가 몸을 빼낼 수 있겠지” 생각하였지만 그는 이미 힘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번처럼’은 늘 우리에게 보장된 말이 아님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우리에게 ‘어제처럼’ 또는 ‘저번처럼’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니,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늘 깨어 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싶습니다.
판관기는 이렇게 가련해진 삼손을 가리켜 “그는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라고 서술하였습니다. 여기서 ‘떠나다’라는 히브리 말은 힘이 ‘빠져나가다’와 같은 동사로 사용됩니다. ‘하느님께서 떠나심’과 ‘힘이 빠져나감’은 같은 맥락의 말이라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삼손을 떠나시니 그가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판관기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나를 먼저 떠나실 분이 아니십니다. 하지만 내가 하느님을 계속 떠나가면 하느님도 어쩔 수 없이 나를 떠나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하느님께 버림을 받게 된 나는 모든 힘을 잃고 지쳐버리고 말지 않을까요?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은 ‘끝까지 하느님만은 놓치지 않는 노력’, ‘어떻게 해서든 그분 곁에 머물려는 마음’, ‘조금이라도 더 하느님 가까이 나아가려는 열정’ 등의 자세 아닐까요? 지칠대로 지쳐버린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세상 모든 것이 무너져도 하느님만은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 바로 그것이라는 말입니다.
‘톰 존스’(Tom Jones)가 불러 크게 히트한 ‘딜라일라’(Delilah)라는 팝송 얘기를 잠깐 할까 합니다. 제가 참 좋아한 노래인데 나중에 가사 내용을 알고 그 끔찍함에 크게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눈 자신의 애인을 칼로 찔러 죽인다는 끔찍한 내용의 노래였다니요! 이 노래 속의 여자의 이름 딜라일라는 삼손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들릴라와의 유사성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나의 여인, 그녀가 나를 배신할 때 난 그걸 지켜보며 제 정신이 아니었지. 나의 딜라일라, 어찌하여 딜라일라여!”라고 외치는 톰 존스에게서 들릴라를 향한 삼손의 절규가 들려오는 듯하지 않나요? 노랫말 중에 “그녀는 내게 어울리지 않은 걸 알 수 있었지만 난 노예처럼 그녀에게 빠져버렸고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었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들릴라에게 빠져버렸던 삼손의 울분에 찬 정신상태를 당신 계획을 위해 이용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인생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나의 분노, 나의 슬픔, 나의 울분, 나의 우울함, 이런 것들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표출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나 자신의 지난 삶의 흔적을 돌아보며 하느님의 섭리하심을 헤아릴 수 있는 은혜를 구해보면 어떨까요?
다른 한편 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빠져 그의 노예가 되는 행위는 전혀 예기치 못한 파멸의 시작일 수 있음도 생각하게 됩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내가 자유를 점점 더 잃어버리고 그에 종속된다면 그건 잘못된 사랑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