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선지를 다시 써보겠습니다.
ㄱ. A: 재화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만 이전되는가?(노직 입장)
평가원은 위 선지를 오답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경로를 통해서도 소유권 이전이 발생한다는 뜻일 겁니다. 노직이 소유권이 발생하는 경로로 제시한 것이 ‘취득, 이전(양도), 교정’입니다. 취득은 소유권의 ‘이전’이 아니므로 제외될 테고, 그렇다면 ‘교정’에 의해서도 소유권이 ‘이전’된다는 뜻일 겁니다. 이것은 이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위 선지는 2017학년도 6평 11번 정답과 충돌합니다.
노직에서 ‘취득, 양도, 교정’이 발생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선지를 제시한 것입니다. 평가원은 ④번을 오답으로 발표했습니다.
S3과 S4는 교정이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평가원은 <④ S4는 S3과 달리 정의로운 분배 상황이다.>를 ‘틀린 내용’으로, <⑤ S4에서 정은 g에 대한 소유 권리가 없다.>를 ‘맞는 내용’으로 발표함으로써 소유권은 여전히 재화 g를 강제로 빼앗긴 을에게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선지 ③). 이 문제를 풀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교정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소유권은 여전히 재화를 빼앗긴 사람에게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소유권의 이전’이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2019학년도 6평 14번에서는 ‘교정에 의해서도 소유권 이전이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충돌하지 않나요?
저는 2017학년도의 위 문제가 나온 직후부터 줄곧 위 선지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교정을 통해 소유권이 이전되는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2016년)만 해도 평가원에서는, 노직의 경우 국가가 재분배를 위해 개입하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죠. 다음은 2016학년도 9평 13번입니다.
평가원은 ⑤번 선지(갑은 최소 국가를, 을은 복지 국가를 재분배의 실행 주체로 본다. - 갑은 노직, 을은 롤스)를 ‘틀린 내용’으로 발표했습니다. 여기에서 어디가 틀렸다는 것일까요? 롤스가 복지국가를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롤스의 공정한 기회균등 원칙이나 차등 원칙이 결국 복지국가를 지향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학계 통설입니다. 당시에 윤리교육과 내부에서도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제기도 없었고요. 따라서 평가원은 위 선지가 틀린 이유를 ‘갑(노직)은 최소 국가를 재분배의 실행 주체로 본다.’는 부분으로 생각하고 출제한 게 분명합니다. 당시만 해도 노직에 있어서 국가가 재분배를 위해 개입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평가원도 그렇고, 학교 교사들도, 인강강사들도 다들 그랬어요. 그래서 “그렇지 않다”고 제가 얘기했었고요(관련 글 있습니다.).
이렇게 노직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의 연장선에서 앞에서 얘기한 2017학년도 6평 11번이 출제된 겁니다. 그것도 S1, S2 어쩌고 하면서 거창하게 문제를 만들었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제가 당시 평가원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평가원은 2017학년도 9평 8번 문항에서 새로운 입장을 내놓습니다.
평가원은 ①번 선지(갑: 부의 소유와 거래 및 교정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배제된다. - 갑은 노직)를 ‘틀린 내용’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직은 ‘모든 국가 개입을 배제했다.’고 배워 왔던 많은 학생들이 이 문항을 틀렸습니다. 이어서 작년 수능완성 교재에서는 ‘노직은 재분배를 위한 국가 개입을 배제함(교정을 위한 재분배는 예외).’이라고 쓰더군요. ‘교정을 위한 재분배의 경우’에는 국가 개입을 노직이 인정했다는 사실을 슬그머니 연계교재에 실은 겁니다. 그 이후로 학교 교사들, 인강강사들은 노직에 있어서 ‘교정을 위한 재분배의 경우에는 국가 개입이 인정된다.’고 알고 있고 그렇게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6평 14번 ㄱ 선지에서 ‘교정을 통한 소유권 이전’도 가능하다는 것을 선지로 제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14번 ㄱ 선지와 2017학년도 6평 11번의 정답이 충돌하는 상황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요? 이런 일이 앞으로 자주 있을 거라고 제가 작년에 누차 강조했습니다. 제가 지적했던 그 숱한 오류들을 평가원이 답변도 제시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넘어갔기 때문에(오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원 문제들끼리 서로 충돌하는 일이 자주 발생할 거라고 제가 작년에 여러 사이트에서 말해 왔습니다. 이번에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한 거예요.
그러니 평가원에 또 제안합니다. 평가원의 주도하에 기출문제 중 오류와 교육과정 이탈 선지들을 확인하고 발표하는 공개회의를 열어주세요. 그럼 제가 가서 그동안 오류라고 제가 말해왔던 것들을 관계자들에게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장담하건대 기출문제끼리 서로 충돌하는 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겁니다. 이번에는 모의고사라서 그나마 다행이지, 본수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사태를 감당하기 어려울 거예요. 물론 본수능에서 너무나 명확한 오류임에도 평가원이 묵살하고 넘어간 게 한둘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고액소송으로 대응할 테니 해볼 테면 해봐, 뭐 이런 태도인가요? 국민을 상대로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힉스 선생님~ 글을 읽으며 그 때 선생님께서 올리신 글을 읽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책장에 묵혀만 두었던 노직의 책을 꺼내 읽어보던 기억도 나네요. 학문적 자극을 주신 점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은 2017학년도 6평 11번의 ④번과 연관해서
'S3과 S4를 교정이 발생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풀면서 이것을 '국가에 의해 교정이 발생하는 상황'으로 보지는 않았거든요.
s3가 부정의하기에 그 연장선상에서 s4도 부정의하다고 해석을 했습니다.
'강제로 빼앗았다'는 내용이 있으면 이게 바로 '교정이 발생하는 상황'이지 뭐겠어요? 단순히 '빼앗았다'는 내용은 있는데 국가가 개입하는 내용이 없지 않느냐, 는 취지라면, 그럼 저 문제는 정말 코믹하게 됩니다. 지금 저것은 '취득, 이전, 교정'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빼앗았다'는 사실이 발생한 시점부터 교정이 발생하는 상황임을 보여주려고 해야 저 문제의 의의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빼앗았다'는 내용은 왜 집어넣느냐는 겁니다. 하나마나한 내용이잖아요?
말하자면, '취득, 이전'은 있는데, '교정'은 없는 상황이 되죠. 그럼 '빼앗았다'는 내용은 왜 집어넣느냐는 겁니다. '교정'을 얘기하려고 집어넣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죠.
내가 본글을 통해 하나 더 지적하고 싶었던 건, 당시에는 평가원이 노직에 있어서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개입하는 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평가원 선지와 연계교재 내용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줬는데, 그걸 보면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힉스 s3의 병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빼앗았다는 것은 교정보다는 '강도', '탈취' 등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지요?
@힉스 제 생각에도 당시 출제자들이 국가의 교정을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서도 병을 '국가'로 여기거나, '강제로 배앗았다'를 '국가에 의한 교정'을 의미하는 내용으로 출제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충 강도, 탈취를 노직이 당연히 얘기합니다. 근데 그 자체가 중요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교정이 발생하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강도, 탈취를 얘기한다는 거예요. 출제자가 교정이 발생하는 상황이 아니라 단순히 강도, 탈취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느냐는 겁니다. 그게 노직 이론에서 무슨 중요성이 있다고 그랬을까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에 평가원은 저것이 '교정을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 거고요. 그런데 교정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줄 알았다는겁니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려고 평가원 선지와 연계교재 내용이 어떻게 변하는지 본글에서 쓴
@이충 겁니다.
갑, 을, 병, 정은 당연히 '개인'이고, 평가원도 저 문제 출제 당시 당연히 '개인'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힉스 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