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최근 「불교와 문화」(12월호)에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큰 논란이 일고 있다.<본지 977호 19면> 이런 가운데 전 한국외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이자 현 남방문화연구소장 송위지 박사가 한형조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보내와 이를 게재한다. 편집자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불교와 문화 12월호)라는 단정적인 제목으로 시작된 한형조 교수의 글을 별견하면서 쓴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한 교수께서 의도하고 기대했을 수도 있는(?) ‘당장 모욕감에 주먹을 부르쥐는’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고 이 글이 지니고 있는 무책임성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 교수의 글 전체를 보면 모두 여섯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의 제목으로만 볼 때에도 네 곳의 제목은 불교를 충분히 폄하할 수 있는 제목이며 나머지 두개의 제목 역시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목임을 볼 때 마치 배타성을 강하고 철없이 행동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는 어느 종교의 전도사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한 교수는 본인이 쓴 글의 시작에서부터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으며 용어의 혼돈에 빠져있다. 『금강경』 ‘지견불생분’의 진리와 일반적으로 말하는 종교가 동일의미를 지닌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교수는 마치 이 두 단어가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글을 시작하고 있다.
다음 한 교수는 오리엔탈리즘의 질곡을 내세우며 지금 우리가 말하는 종교(宗敎)라는 말은 19세기 일본학자들이 신과 인간의 재결합이라는 의미를 지닌 ‘religion’의 번역임을 내세우며 종교는 ‘religion’이라는 것으로만 한정하려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의미가 진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정한 의도를 관철하기 위함인지 끝까지 종교와 ‘religion’만을 동일시하면서 불교가 종교가 아님을 주장하려 하는데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한 교수와 인식을 공유하고 싶은 것은 역사적으로 불교는 단 한 번도 스스로 ‘religion’이 되고 싶어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이다.
나아가 불교가 종교인 것 역시 사실이다. 여기서의 종교란 ‘religion’이란 용어의 번역의 종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religion’이 생기기 이전부터 ‘religion’이 보여주고 있는 편협적인 의미를 극복한 그런 의미의 종교는 존재해 왔다. 실제로 현재 통용되고 있는 ‘religion’의 의미조차도 초기의 기본적 의미가 진화되어 다양한 의미의 단어가 되었음을 볼 때 ‘religion’이란 말이 얼마나 처음부터 부족함이 많은 단어인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조적으로 생각하여 초기의 의미로만 고집하려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는 한 교수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의 질곡에 함몰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어린아이의 옷을 성인에게 입히려는 시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 교수는 그의 글에서 불교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의 평등’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 한 교수가 인용한 책들은 대승경전 그리고 노자, 중용 등이다. 이들만 가지고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고 논하는 데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불교를 꼬집을 때는 적어도 원시경전의 내용을 확인하고 꼬집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장님 코끼리 더듬기가 될 것이다.
언제부턴지 한국불교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틈을 타서 적지 않은 외부의 실체들이 한국불교에 대해 치고 빠지면서 불교를 폄훼하고 스스로 우쭐되고자 하는 현상이 적지 않다. 국가 통치를 책임진 사람조차도…. 이는 한국불교 스스로 지은 업의 결과이다. 하지만 불교의 업의 결과는 아니다.
한 교수가 마지막으로 바라고 있는 것처럼 전략부재, 우왕좌왕, 무기력, 타성으로 대변될 수 있는 한국불교의 이런 상황을 승속을 막론하고 스스로 뼈저리게 되돌아보는 한국불교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바른 인식을 가진 이의 눈으로 보던 그렇지 않은 이의 눈으로 보던 떠있는 눈으로 본다면 분명 불교는 종교이다.
978호 [2008년 12월 11일 20:26]
첫댓글 반박하는 뜻이 다 전달되는 않았지만 매우 의미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엄연히 종교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 에드워드 사이드가 주장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인들이 동양을 볼 때에 선입견을 가지고 본다"는 것으로,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동양이 서양인의 정체성을 확립해 주는 대상으로, 열등한 동양이 존재하기에 우월한 서양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열등하며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며, 자신들보다 두뇌나 신체 면에서 열등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검색----
밝은 눈이 많아 반박도 하고 시정해야 할 것도 고쳐나가고 불교의 장점을 재 인식하고 다양성 인정과 타종교 연구하는 불자와 우리 불교 연구 분석하는 불교학자가 많아 불교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송위지 보살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열이면 열이 다 제각각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불교, 이것이 불교의 열린 마음이자 진정한 힘이 될 날을 고대해 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