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제목을 패러디한 말이다.
이 드라마에서 작가는 “창조자는 자신에게 없는 걸 만들어 내지 못한다.”라고 전제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창조자는 작가를 말한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 자신에게 없는 걸 글로 풀어낼 수 없다는 점을 비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재영은 마재영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없고, 박경세는 박경세에게 없는 것을 풀어낼 수 없는 것이다.
사주 명리에서의 창조자는 자연이다. 사주 명리에는 자연이 오롯이 묻어 있다. 자연에 없는 것은 사주 명리에도 없다. 그래서 자연을 알아야 사주 명리를 알 수 있고, 사주 명리를 통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선운이 “사주 명리는 계절학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드라마 <모자무싸>에서 등장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무가치함을 벗어나기 위해 매일매일 열심히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무가치함의 끝에서 자신의 빛나는 스토리를 만들어 낼꺼라고 모두가 아우성치고 있다. 그러면서 싸우는 것도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떼를 지어 싸우고 있다.
무가치함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나온다. 어려서 부모에게서 무가치하게 버려졌다는 자괴감.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서 타인의 글솜씨가 보태져야만 비로소 주목받는 글로 완성될 수 있다는 부족감. 혼자서는 작품을 만들 수 없어 타인에게 묻어가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감지덕지하게 받아먹을 수 있다는 패배감. 이 모든 무가치함은 주변인들과의 비교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스스로 무가치함을 인정해서는 살아갈 힘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함을 먹으면서 살아간다. 인간이 스스로의 무가치함을 지금 100% 인정하는 순간, 인간은 그 즉시 자신을 자기가 파괴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가치함과 싸운다는 것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해서 어떻게든 생존하려는 발버둥인 것이다. 생존 본능이다.
가치함은 자존감 우월감을 부른다. 반대로 무가치함은 무기력함 나약함 불안감을 부른다. 그런데 가치함과 무가치함은 자석의 N극 S극처럼 동전의 양면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릴 때에는 반드시 등수가 생기게 된다. 등수가 생기면 서열이 생기게 되고 잘난 놈 못난 놈이 생기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이치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바뀌게 되면 새로운 서열이 생기게 된다. 이제 AI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서열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새로운 서열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가치함과 무가치함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자신만의 가치함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는 시작은 타인과의 비교에서부터 나온다. 일반인들은 살아가는 일상에서 비교를 경험하지만, 사주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주 해석에서 경험하게 된다. 좋은 사주 나쁜 사주가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냥 내 것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려면 타인의 것도 보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다양하게 많이 보고 비교해 보아야 한다. 대체로 사주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사주가 많이 들어 있다고 본다. 사주공부를 해서 나쁜 사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주를 가진 자는 굳이 사주공부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사주에서 좋은 사주는 비견 식신 정재 정관 정인 등으로 나열되는 사주들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통해서도 충분히 자신의 가치함을 찾는 이들이니, 굳이 곁눈질을 할 필요가 없어서이리라. 사실 사주에는 문제가 없다. 그걸 해석하는 사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모든 사주는 다양한 자연의 한 모습일 뿐이다. 그래서 극 중의 황동만을 “내 인생이 왜 니 맘에 들어야 하니!”라고 외치게 만든다. 선운은 “사주 해석에서 좋다 나쁘다는 덕담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사주무늬와 싸우고 있지만 사주공부를 위해서는 싸움의 과정이 필수적이고, 이를 통해 각자 사주의 가치함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극 중에 다들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인물들로 표현되는 와중에, 유독 오정희만은 자신의 가치함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인물로 보인다. 무가치함에 매몰되고 그 무가치함에서 헤매지말고 깨고 나오라고 일갈한다. “그만 깨고 끝내고 나와!” 깨고 나와서 다음 작품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라고 한다. <모자무싸>에서 가장 상쾌한 인물이다. 사주 명리에서 선운이 기존 사주 통변의 관념(미신이나 믿음)을 깨고 나와 사주 해석(논리적)을 전파하고 있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첫댓글 모자무싸를 애정했던 사람으로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오 ! 글 잘봤습니다
글을 잘 쓰시네요 ^^
이 시리즈 마지막이 다소 뭔가 아쉬웠다는 의견도 있나보던데요...
작가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아슬아슬한 인물을 한명 넣더라구요
나의 아저씨에선 정희네 운영한 오나라 배우였고, (억지로 억지로 죽지못해 사는...)
모자무싸에서는 황동만의 형 박해준 배우 (계속 살자의 시도를 하는 불안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