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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4: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맥스 루케이도 목사가 지은 ‘은혜’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아버지 토드와 어머니 타라, 그리고 테일러라는 딸을 둔 행복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13살 난 딸 테일러가 친구들과 스키를 타러 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의학적으로 회생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이 엄청난 일을 당한 테일러의 부모는 많은 고민 끝에 다시 회생이 안 될 아이라면 우리 딸의 장기로 많은 사람을 살리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여러 경로를 거쳐 사랑하는 딸 테일러의 심장은 애리조나주에 사는 윈토스라는 아이에게 이식하게 되었습니다. 윈토스는 심장이 너무 약해서 누워서 음식을 주는 것을 받아먹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심한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윈토스는 테일러의 심장을 이식받으면서 6개월간의 재활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여 정상인처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윈토스가 건강을 회복하자 윈토스의 어머니는 장기를 기증한 테일러 부모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을 했습니다. 공항에서 두 어머니는 감격의 포옹을 하고 윈토스가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한 테일러의 부모는 건강을 회복한 윈토스를 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때 윈토스는 자신에게 새 생명을 준 테일러의 부모님께 선물을 드렸습니다. 테일러 어머니는 선물을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선물 상자 안에는 청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윈토스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우리 가정이 준비한 선물입니다. 아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심장 박동 소리를 들어보세요.’ 테일러의 어머니는 청진기를 윈토스의 가슴에 갖다 대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금 윈토스의 가슴에서 죽은 사랑하는 딸 테일러의 심장 소리가 울려 나오는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은 부활하시며 제자들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 계신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양을 절대로 혼자 두지 않으시며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지금도 저와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 후에 예수님의 하신 일과 성령님과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함께 받고자 합니다.
첫째 부활 후에 예수님이 하신 일은 흩어진 제자들을 한마음과 한뜻이 되게 모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가장 중요한 일로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다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계속하길 원하셨습니다. 도마가 흔들리자 직접 상처 부위를 만지라고 하면서까지 그가 다시 힘을 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길 원하셨습니다.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이 두렵고 미안하고 고통스러워 어부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자 예수님은 직접 제자들을 찾아가 물고기를 구워 대접하며 그들로 하여금 실망스럽고 죄송스럽고 치욕적인 생각들을 지우고 다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길 원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직접 가셔서 동행하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확신에 차 다시 내려가던 길에서 돌이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을 하나가 되게 하도록 기꺼이 수고를 멈추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덕분에 제자들은 한곳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제자들이 500명 가까이 됩니다.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사도 바울 역시 이러한 예수님의 의중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먼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탄의 역사가 분열이면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1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5장에서 바울은 끝을 맺는 것 같은 단어를 씁니다.
롬15: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그리고 16장에는 추신에 해당하며 바울이 개인적인 친 분자들을 이야기하며 문안 인사를 나눕니다. 거기에 소개된 사람들을 보면 로마서 교회가 어떤 이들이 함께 하나가 되어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당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하나가 되어 함께 교회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로마서 교회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혐오했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결혼을 하면 장례식을 치를 정도였습니다. 옛날에 양반 집 부모가 상놈 집의 자녀와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하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호적을 파라고 하면서 내 자식이 아니라고 죽은 자식으로 치겠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 공동체는 주인과 노예가 즉 자유인과 노예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바울이 영적 아들로 삼은 오네시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상상 그 이상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였습니다. 바울이 거론한 17명 중에서 10명이 여성입니다. 그중 6명은 칭찬받는 여성으로 집사입니다. 선교사입니다. 당시에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는 여인들과 사람 숫자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함께 로마 공동체를 함께 이끌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이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유대의 법으로 불가능합니다. 로마의 법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하나로 묶어 국가와 신분과 성을 뛰어넘어 “같은 사명”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하나입니다. 지극히 당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각자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면 너무도 당연하게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은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아 한 곳에서 함께 기도하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복음의 증거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실이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사실을 믿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같은 부활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전하는 목표 의식을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정하게 하는 일을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12: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12: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이렇게 성령께서 능력을 부어주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부활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축복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시 태어나 영원히 함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축복을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의 복음은 병 고침이나 사업 성공이나 자녀들 좋은 대학이나 세상 출세가 아닙니다. 진짜 복음은 부활의 소식입니다. 죽음 후에 다시 살아 완전한 몸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큰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였더니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부활을 증언 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서 강조하는 것이 뭘까?
부활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사는 것들입니다. 없어지고 말 것들을 이야기하며 교회로 나오라고 합니다.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입니다. 이 말씀은 없어질 말씀이 아니라 앞으로 올 말씀입니다. 앞으로 확인될 약속의 말씀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능력을 주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것인데 그 핵심은 “부활”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가장 두려웠던 것은 부활입니다. 사탄이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에 대해 관심이 줄었습니다. 그냥 죽음 후에 어떻게 되겠지 하고 뒤로 미뤄놓은 것 같습니다. 마치 어떤 것을 결정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특히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볶음밥을 먹을까? 짜장밥을 먹을까?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옆에 사람에게 “네가 시키는 것 같은 거로 시켜줘”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거의 십중팔구 네가 시키는 것 따라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키는 것에 대해 결정장애가 있는 것쯤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부활을 믿는 것에 대해 결정장애가 있으면 안 됩니다. 부활은 너무도 분명하고 초대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핵심은 부활이었습니다. 그걸 많은 사람이 보고 증언을 하며 기꺼이 증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부활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증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령께서 하시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부활하여 영원히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남은 생애를 다 바치겠다는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도우신 것입니다.
세 번째 제자들은 하나가 되고 목표 의식을 가진 후에 기꺼이 전 삶을 드리는 헌신을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목표이고 그 목표를 위해 달음질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행 13: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세례요한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았습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는 사명을 받았고 그 사명 후에 그의 삶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았습니다.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했고 주변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달려간 것입니다.
여기 초대교회에 하나가 되어 성령으로 목표 의식을 갖게 된 제자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삶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존재하며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조항조 가수가 부른 만약에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 누구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을 위해서 무얼할 수 있나
텅빈세상 살아가는 이유가 만약에 너라면 어떡하겠니 사는동안 단 한 번의 사랑이
만약에 너라면 허락하겠니 얼마나 더많이 외로워해야 널 끌어안고서 울어볼까
이제는 더이상 지칠 몸조차 비워둘 마음조차 없는데 또다른 이유로 널 못본다면
나 살아가는 의미도 없지 만약에 널 위해 나 죽을 수 있다면 날 받아 주겠니
이 가사 중에 텅 빈 세상 살아가는 이유가 만약에 너라면 어떡하겠니?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칠 몸조차 비워둘 마음조차 없는데 또 다른 이유로 널 못 본다면 나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널 위해 나 죽을 수 있다면 날 받아주겠니?
뜨거운 사랑은 무섭습니다.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으로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가진 제자들은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아까울 리가 없습니다.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과 재능과 자녀와 모든 것을 드리고 아까워하지 않고 더 드릴 것이 없으므로 봉사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사랑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식을 낳아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저 먼 나라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남은 삶을 다 드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 재산을 사회에 혹은 교회를 통해 드리고 복지와 선교를 위해 사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온전하게 전달되어 그 사랑에 사랑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전달자로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되며 그를 통해 부활의 소식이 흘러넘쳐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복음의 소식 “부활”을 힘있게 전하여 보지 않겠습니까?
우리 분명한 신앙의 목적을 가지고 삶을 온전하게 드리기 위해 힘을 쏟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부활이며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 어떻겠습니까?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리며 행복했던 초대교회 제자들처럼 그런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있길 기도하며 바라봅니다. 주님 우리를 도우시고 성령님 역사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