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직접 하사한 현판이 있었던, 공자가 살던 노나라 마을 이름인 궐리 라는 명칭을 사용한 오산 궐리사
오산시 맛집들이 모여 있는 먹자골몰이 있는 궐동에 명숙이밴댕이회집을 찾아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유적지가 조선 전기 문신이자 공자의 64대 손인 공서린(1483∼1541) 선생이 은행나무를 심고 그주변에 서재를 세우고 후학지도를 하던 사교육기관 이였다.
공서린 선생이 사당을 세운지 이백여년이 흘러 정조가 1792년(정조17년) 수원에 화성을 세우고 인근을 돌아보는데 은행나무에 많은 새들이 모여 들어 기쁨을 노래하는 듯 슬픔을 전하는 듯 감정이 서린 지저귀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이 은행나무는 공서린선생이 후학을 지도할 때 북을 달아 놓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깨우쳤던 은행나무로 공이 돌아가시자 잎이 열리지 않다가 정조가 지날즈음 다시 새순이 돋으면서 이주변으로 새들이 모여들어 지저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모습을 목격한 정조는 사당의 명칭을 공자가 살던 노나라의 마을 이름을 따서 궐리사 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공자를 모시는 사당으로 현판을 직접 어필로 적어서 하사한 사액사당이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00년 다시 세우고 1981년 강당을 세웠으며, 1993년 중국 산동성에서 기증 받은 공자의 석고상을 모시고 대성 공자의 영정을 모시고 해마다 지방 유림들이 모여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논산의 노성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궐리사로 오산 궐리사의 사당은 앞면3칸·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동쪽으로는 학문을 배우는 공간인 강당 건물이 있어 동학서묘의 전형적인 서원 건축 양식으로 조선 후기 사당형식을 잘 보여 주는 곳 이다
1901년 (광무5)강당 6칸을 신축하고 공자의 76대손이자 공서린선생의 후손인 공재헌이 중국에 건너가 “여성부”가 손수 조각한 진품 성적도를 들여와 다시 판각으로 조각하였는데 1974년 9월 26일 경기도 지방문화 재 제62호로 지정되었다.
공자를 모신 사당 왼편에 공자상을 모신 성역에 성적도를 모사한 형상이 조성되어 있다.
궐리사 - 도기념물 제147호
경기도 오산시 매홀길 3 (경기도 오산시 궐동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