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스밍 / 구수현
학창시절 음악을 즐겨 들었다. 자연스레 가수들의 생애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커트 코베인’과 ‘짐 모리슨’. 그들은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27년의 짧은 생을 살았다. ‘톰 요크’는 ‘creep’이란 노래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그 노래는 앨범 녹음 직전 단 10분 만에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에도 이루지 못할 것들을 짧은 시간에 이루어낸 그들은 천재다. 천재들은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자기계발서 종류의 도서를 싫어했다.
가수 H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혼자 사는 생활을 다룬 예능 프로에서였다. 죽 늘어진 민소매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평범한 동네 총각이라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가 중국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1등을 했다는 기사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가수였어? 중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널렸을 텐데….’
호기심이 일어 유튜브를 검색했다. 붉은 조명과 강렬한 인트로를 가르고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동네 총각이 아니었다. 앞머리를 시원하게 넘겨 세우고 하얀 정장을 입은 동양의 제임스 본드였다. 우리나라 노래를 중국어로 부르는데 꽤 유창해 보였다. 게다가 다섯 명이 부르는 노래를 혼자 댄스까지 하면서도 음정에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가수는 많을 텐데 운이 좋았던 모양이라 생각했다.
한 달 뒤, 또다시 그가 1위를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또 1등?’
다시 무대 영상을 찾아 봤다. 그는 지난번 보다 더욱 세련되고 과감한 댄스로 관객들을 기립하게 했다. 스튜디오 안의 열기는 개인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고난도 춤 실력에 가창력까지 받쳐주는 가수는 월드스타 ‘B’정도를 빼고는 없을 것이다. 이런 가수를 내가 여태 몰랐다니!
1차 경연 영상부터 다시 찾아보았다. 1차는 발라드 곡이었다. 2차도 발라드, 3차도…. 의외로 그는 발라드 가수였다. 보통 발라드를 들으면 마음이 촉촉하고 잔잔해 진다. 그런데 그가 부르는 발라드는 달랐다. 슬픔보다 깊은, 오히려 한恨에 가까운 감정이 가슴을 후벼 팠다. 비 맞은 듯 흐르는 그의 땀이 가슴에 스며들어 감동의 샘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베개를 베고 바르게 눕기보다, 팔을 접어 베고 옆으로 쪼그리고 누워 슬픔을 끌어안고 싶었다.
나는 원래 발라드를 즐겨 듣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노래를 듣는 5분 동안은 그의 이야기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경연 날이면 웨이보를 뒤져가며 무대를 기다렸다.
놀랍게도 H의 발성과 창법은 무대마다 달랐다. 노래의 분위기에 따라 거친 동굴 저음을 내기도 하고, 맑은 고음을 내기도 했다. 바이브레이션을 넣을 때도 목, 가슴, 머리… 온 몸이 울림통이었다. 성대 근육과 호흡이 저렇게 자유롭다니. 이 사람, 천재잖아!
그의 무대를 보는 중국 관객들은 넋을 놓기도 하고, 머리를 저으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주먹을 꼬옥 쥐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기까지 했다. 특히 밑바닥에 가라앉은 소리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온 몸을 떨면서 소리 낼 때는,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도 온몸의 털들이 일어서서 환호하는 것 같았다. 숨조차 턱턱 막혔다.
나는 그의 음원을 모두 듣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학창시절 ‘짐 모리슨’의 목소리에 이끌려 종로 4가의 레코드 가게를 뒤지고 다니던 설렘이 되살아났다. 9년 전 데뷔곡을 찾아 재생시키는 순간에는 신세계가 열리리라는 기대에 내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런데, 어? 이게 누구지? H 앨범 맞나?
기대했던 목소리 대신 야생마 같은 거친 소리가 나를 흠칫하게 했다. 앨범 전곡이 비슷한 분위기였다. 노래를 잘하긴 하지만 그 정도 실력의 가수는 지천이다. 그럼 지난 번 들었던 목소리는 뭐지?
어렵사리 그가 3년 뒤 2인조 그룹으로 발표한 앨범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또 달랐다. 음색은 여전한테 심하게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성대에 망사를 씌워 거친 소리만 걸러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도 경연 무대에서 들었던 H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탐험을 하듯 그의 과거를 뒤적였다. H는 첫 번째 데뷔 앨범을 발표한 뒤 소속사 사정으로 활동을 접었다. 그 뒤 지인의 집에 얹혀살기도 하고, 먼지와 곰팡이가 가득한 반지하 방에서도 지냈다. 손바닥만 한 창문이 의무처럼 뚫린, 마치 감옥 같은 곳에서도 지냈다.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가 한창인 주택가의 옥탑이 그나마 가장 집다운 집이었다. 발만 겨우 뻗을 수 있는 공간. 키보드는 남이 쓰던 것을 얻고, '만 원'짜리 피아노 악보는 카메라로 몰래 찍어왔다. 연습에 지치면 커피생각이 간절했다. 그것마저 동네부동산에 집 보러 다니는 척하고 얻어 마시면서 하루 10시간씩 노래 연습을 했다. 그러나 그런 피나는 노력도 동네 사람들에게는 시끄러운 민원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럴 때면 한강에 나가 자동차 소음에 노래를 실어 보냈다. 그곳이 차라리 마음 놓고 노래할 수 있는 최고의 연습실이었다.
그의 특유의 거친 음색으로는 두 곡 이상 부르기 힘들었다. 숨을 온몸으로 돌리는 연습을 하며 발성법을 익혔다. 정자세로 앉아 목을 푸는 것으로 하루를 열고 걸을 때도 누워 있을 때도 대화할 때도 온 신경을 목소리에 집중했다. 목을 부드럽게 하는 데는 돼지고기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너무 비쌌다. 궁리 끝에 식용유로 대신하기로 했다.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을 견디며 한 숟가락씩 먹었다. 꺼질 것 같은 심지에 붓는 기름이었으리라.
중국에도 겨우 인사말 정도만 배운 채 건너갔다. 중국어 가사를 한글로 적어 벽에 붙인 다음, 밥을 먹을 때조차 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본무대에 서기 전, 눈을 감고 100번 이상 모의 무대를 그려본 뒤에야 무대에 올랐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 있어 견딘 게 아니라, 견디다 보니 희망이 보였다.”
다시 그의 노래를 들었다. 느낌이 달랐다.
‘그래, 이런 평범한 목소리였지.’
‘지독하게 자신을 달구고 두드렸구나.’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니….’
H의 노래를 발표한 순서대로 스밍하다 보니 건널 수 없는 강에 9년간 차근차근 디딤돌을 놓아가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치열하다 못해 처절했을 모습.
자기계발서에 흔히 나오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하라’ 따위의 문장은 그저 내 눈을 스쳐가는 글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H의 노래는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은 토기 같은 나의 글을 반들거리는 자기로 구워낼 수 있을까? 기막힌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로 무늬까지 넣을 수 있다면…. 나도 그를 따라 디딤돌을 하나하나 놓다 보면 강 건너편에 도착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오늘도 열공하듯 그의 노래를 열스밍한다. *
첫댓글
온몸으로
터져나온
치열처절
다이돌핀
녹아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