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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1-3)
지난 주에 의인은 믿음은 살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가지 특징이 있
다고 하였습니다. 1)하나님의 은혜를 사모. 2)하나님의 영광을 사모 3)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합니다. 오늘은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제목으로 호세아 선지자의 메시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꽃을 파는 화원에 가보면 온갖 종류의 꽃들에서 피어나는 아름답고도 싱그러운 향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들 중에 어떤 가게는 아름답고 화려한 꽃들이 가득한데도 향기가 없는 가게가 있습니다. 진짜 꽃처럼 아름답고 화려한데 실제로 가까이 가서 만져 보면 조화입니다. 요즘 조화를 얼마나 잘 만드는지 언뜻보면 생화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어떻게 보면 조화가 생화보다 더 멋있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화와 조화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꽃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는 차이입니다. 조화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싱싱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습니다. 조화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꽃이기 때문입니다. 얼핏보면 생화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지만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화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벌이나 나비가 날아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삶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이 두 삶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요즘 묵상하는 요한복음을 보면 유대종교인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런데 성경의 약속대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습니다. 아니 시기하고 대적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에 관해서는 선생인데 정작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마치 조화와 생화와의 차이와 같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7:3에 보면 예수님께서 영생에 대해서 정의하시기를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 속에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은 "사데교회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으로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이처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성경에서 "안다"는 말의 의미는 인격적인 앎, 즉 체험적인 앎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을 안다고 말할 때는 그 사람의 외적 조건에 대해서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서 마음을 나누고 그럼으로써 그를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을 좀더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안에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연합의 체험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선지자는 호 4:6에서 말씀합니다."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힘이 없는 것이 아니요,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요, 지식이 없어서 망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죄는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무식이다." 알아야 될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유대인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까?
하나님에 관해서는 알았지만 정작 하나님 자신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달리셔서 당신을 못박은 군중들을 내려다 보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그렇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꼭 알아야 할 것을 창조자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아는 순간 피조물인 나 자신을 알게 됩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아는 순간에 구원받은 내가 얼마나 초라한 죄인중에 죄인인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않는한 내일에 대한 소망도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안다면 두려움도 내어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안다면 오늘 우리의 염려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왜 우리가 두려워합니까? 왜 염려합니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하박국선지자는 남유다왕국의 마지막 선지자였다면 오늘 살펴볼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중의 한 사람입니다. 북이스라엘이 가장 왕성한 시기인 여로보암 2세때부터 몰락기인 호세아왕까지 번영과 멸망을 모두 다 보았던 선지자였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멸망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번영의 복을 과신하고 세상을 좇아 우상을 숭배하며 각기 제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저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1.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1)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말입니다. 회개는 감상이 아닙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회개를 처음부터 말합니까?
호세아서에 나오는 고멜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하는 남편인 하나님을 외면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우상을 쫓아가고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그래서 영적으로 간음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의 삶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잘못된 세상 길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내 자신이 죄악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는 자기가 환자인 것을 아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환자인지 모릅니다. 정신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정신과 전문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이상하게도 정신병자들은 하나같이 교만하다고 합니다. 정신이 있건 없건 간에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 많이 알고, 잘 났고, 똑똑하다고 한답니다. 그래,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정신병자가 "나는 이순신장군이다"라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러니까 뒤에 있던 정신병자가 "네가 왜 이 순신장군이냐?"라며 따집니다. 또 다른 정신병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언제 너를 이순신장군으로 임명했느냐?" 전부 다 잘난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교만하면 마음이 굳어집니다. 자기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 앞에서 바라보십시다.
구약시대의 이사야는 절망적인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성전을 찾았다가 하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진정한 자신을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베드로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다가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 때 비로소 자신의 참 모습을 깨닫고 고백하였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이 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처음 초대교회가 성령강림을 체험한 후 베드로와 열한사도가 예루살렘 거리에 서서 복음을 외칩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제자들 앞에 와서 묻습니다. (행 2:37-39)“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응답은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저 앉아가지고 이러니저러니, 아니 모르느니, 이렇게 될 것이냐 저렇게 될 것이냐 상관할 것 없습니다. 그냥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이요, 진실입니다.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탕자가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메어주실 것임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2. 그 앞에서 살리라(2)
2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 앞에서 살리라’ 직역하면 '그의 얼굴 앞에서'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기꺼이 받아주시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섭리와 보호 아래서 살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그 안에서, 믿음안에서 경건한 자세로 주님의 사랑안에서 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면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입니다. 공동체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이 있습니다. 조금 부족하고 문제가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며 서로 격려하며 사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이 아버지의 장자 축복을 받고 형 에서의 칼을 피해 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도망을 갑니다. 그는 정말 이제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외가집을 찾아 갑니다. 사랑하는 모든 가족을 떠나 혼자가 되었습니다. 밤중이 되어 길가에서 노숙하게 되었습니다. 한없이 울었을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고 고향을 등지고 처량하게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길가에서 돌을 베개삼아 잠을 청하였을 때 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 보좌에서부터 야곱이 누워있는 그 빈들에 이르기까지 사닥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는 내가 결단코 떠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비로소 야곱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셨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구나.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야곱은 그 어떤 역경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고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성 앞에 왔을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수5:15)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발에서 신을 벗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찬344장)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느끼고 나아갈 때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 때 영적인 세계에 대해 눈이 뜨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앞에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사탄의 유혹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마귀를 물리치고 일어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응답하시고 상주시는 이심을 믿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은 담대합니다.
그 어떤 시험이 와도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 마지막 나의 달려갈길을 다 마치기까지 쉬지않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삽니까?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이제 정리해 봅시다. 호세아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세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여호와께로 돌아가자 2)여호와앞에서 살자 3)힘써 여호와를 알자
3. 힘써 여호와를 알자(3)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은 조금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른다는 것은 어둠속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선지자는 이어서 6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호 6:6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애입니다.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애이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인애입니다. 히브리어의 헤세드라는 말인데 이 말의 뜻은 언약적 사랑입니다.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 어떠한 상황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원하고 그 다음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보다 하나님께서 더 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아는 것을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면 영생이 없고 하나님을 모르면 구원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입니다. 감추어진 것을 깨우쳐주고 알려주는 것이 계시인데 바로 하나님게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 당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독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알게 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통독해야 합니다. 또 기회가 주어지면 성경공부에 참여해서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성도가 사는 길입니다.(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관심을 쓰지 않으면 초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기도의 더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저 입술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깊은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확신이 섭니다.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견고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처럼 말씀과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과 긴밀해지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져 가면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전에는 머리로만 이해하던 하나님이 이제는 몸으로 알기 시작합니다. 확신위에 서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삶으로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엇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어느 측면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나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 것입니까? 오늘의 성경은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주실 것임이라(1).”치료하시는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 세대를 '지식의 홍수' 세대라고 합니다. 5년마다 지식이 배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이치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쩌면 그렇게 모르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점점 더 어두워 가기에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 가고 있는 것입니다. 타고난 발명가인 아이작 뉴턴이 말년에 기억 상실증에 빠져서 모든 것을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자기 이름도 나이 마저도 잊었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내가 아는 것은 두 가지요.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께서 내 구주라는 것, 그것만 알 뿐입니다."여러분, 이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괜찮습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만을 똑바로 알고 하나님의 그 놀랍고 구체적인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에 내 자신을 알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또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나누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나의 아버지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힘이신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알고 순종하며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하나님앞에서 삽시다. 하나님을 힘써 압시다. 그래서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와 교제를 회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