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 평생 책임진다던 큰소리 그립구나… 엄마는 매일밤 네 교복을 덮고 잠든다
‘엄마의
바리스타’였던 준민에게 |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한복음 15:4-5) |
무릇 삶의 가장 중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 결코 풀 수는 없으며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연구를 계속하다 보니 이 '벗어남'에는 새로운 의식 수준이 필요함이 입증되었다. 어떤 더 높거나 더 넓은 관심이 환자의 지평에 나타났고, 이렇게 시야가 확장됨으로써 해결될 수 없던 문제가 절박성을 잃었다. 문제가 그야말로 논리적으로 풀린 것은 아니고, 새로이 더 강한 삶의 충동과 마주할 때 퇴색한 것이다. (칼 융) |
집회와 시위를 '돈'으로 막으려는 자들
|
"불편하다"는
말 나는 불편하다는 말이 불편하다. 언젠가부터 이상하게 다른 사람의 주장이 맘에 안들면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서 비판하는게 아니라 그냥 "불편하다"라고 말하면서 퉁쳐버리는 경향이 늘어났다. 게다가 비판을 무시하지 않고 그래도 신경써서 응답을 할때는 "애정어린 비판이라고 믿습니다." 라는 이상한 수식어를 꼭 붙인다. 사실 독일에서 유대인을 박해한 것도 유대인이 구체적으로 뭐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불편해서" 아닌가? 일본에서 재일동포 박해하는 것도 그냥 "불편해서" 인거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1인당 GDP 떨어지는 나라 사람들을 마구 무시하는 것도 그냥 "불편해서" 이다. 다른 사람 비판할때 절대로 선의만 가지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난 선의의 비판이니 애정어린 비판이니 하는 말이 제일 어이가 없다고 본다. 아니 그러면 비판하는 포인트가 정확한데 그 배경에 악의나 공격적 의도가 깔려있으면 그건 그냥 반사! 하고 무시할건가? 건전한 비판과 그렇지 못한 비판의 차이는 비판 대상에 대한 애정유무가 아니다. 악의를 가지고 비판해도 괜찮다. 단, 악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일단 상대방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서 정확한 포인트로 공격한다면, 그리고 진짜 논의의 큰 줄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소한 부분을 트집잡아서 마치 야구에서 수도 없이 타임 부르고 타석 들어갔다 벗어났다 반복해서 고의로 시간 끄는거 같은 반칙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을까? 선의를 가지고 하는 것만 좋은 비판이면 결국 같은 학교를 나왔거나 같은 고향인 사람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연고주의로 뭉친 사람들끼리만 적당히 봐주면서 비판하고 있게 될 것 아닌가? (남충현) |
아이들에게
사과하기 아이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것 하나는 사과다. 제아무리 처신이 훌륭한 사람도 제 아이 앞에선 틈이 생기고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랬을 때 망설이지 않고 솔직하게 사과해야 한다. 조금 지나서 깨달았다면 더 늦기 전에 사과해야 한다. 아이에게 사과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미루거나 생략해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적 존중, 즉 관계의 실체는 여지없이 파괴되어간다. (김규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