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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언어에 대하여
∴ 甘彌忽 /kama-m i-kuru/
穴城 本 甲忽
'穴'의 새김과 '甲'의 발음이 대응한다. 유창균(1980:348)에서는 /kap-k l/로 읽었다. 이 자료로부터 고구려지명의 다음 예와 함께 '穴'을 뜻하는 고구려말을 찾을 수 있다.
穴口郡 (一云 甲比古次)
여기서 '比'는 어떤 문법적인 형태소와의 결합형을 보여주는 것이며, '穴'을 뜻하는 고구려말의 낱말은 '甲'의 발음과 유사했을 것이다.
甲 見 葉 kap k p kap keap 갑
이로써 추정되는 고구려한자음은 /kapa/이다. 따라서 '穴'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에 /kapa/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甲忽 /kapa-kuru/
遇王縣 本 高句麗 皆伯縣 景德王改名 今 幸州;王逢縣(一云皆伯 漢氏美女迎安臧王之地 故名王逢)
'왕을 만나다'라는 뜻의 고구려말 '皆伯'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이기문(1968)에서는 이를 부여, 고구려의 관직명인 '加'와 일치하며 신라의 '干, 翰'과 비교되는 자료로 보았다. 그러나 '皆'는 '加/ka/'와는 너무 차이가 크다. 한편 박병채(1968)에서는 '皆'를 /kai/, /kai i/로 읽고 중세국어 '것(主)'에 이어진다고 보았으며, 유창균(1980:301∼302)에서는 '皆'는 '王'의 고구려 새김이고 '伯'은 훈차자로 ' '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k r-m ti/로 분석하였다. 이와 관련된 자료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王岐縣 (一云 皆次丁)
여러 선학들의 분석결과를 종합할 때 '皆', '皆次'가 '王'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고 '伯'과 '逢'이 서로 대응된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추출할 수 있다.
皆 見脂 ked ker krer kei 개
상고음 제8운류 '脂質眞'부의 중심홀소리 [-e-]는 고대국어 홀소리체계상 / /에 가깝다. 그러므로 고대한자음에 / /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다(최남희 1999ㄷ:151). 이에 따라 '皆'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 /로 볼 수 있다.
次 淸脂 ied i r jier ei
최남희(1997ㄱ)에서는 향찰 표기에 쓰인 이 글자의 신라한자음이 남방방언음을 기층으로 하여 / /, / i/의 두 가지로 발음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고구려말의 닿소리체계상 붙갈이소리 / /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次'의 고구려한자음은 /s /, /si/로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두가지로 추정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첫닿소리가 잇소리일 때 이어지는 여는홀소리 [i]는 흡수되고, 중심홀소리 [-e-(<- )]는 / /로 반영되는 원칙(박병채 1971:182∼191)에 따라 /s /를 추정할 수 있다. 둘째, '支', '脂'부의 중심홀소리 [-e-]는 여는홀소리 [-i-]와 이어지면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상 가장 가까운 /i/로 반영된다는 원칙(최남희 1999ㄷ:150)에 따라 /si/를 추정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재구된 상고음의 홀소리로써는 두 번째의 추정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더욱이 이러한 상고음을 가진 글자들이 향찰표기에서 거의 한결같이 /i/로 읽히고 있음은 더욱 주목할 만한 증거라 할 수 있다.
㉠ 史 (生之) [-i -]
史毛達只 將來呑隱日(우적)⇒ 즈시 모 기 디녀오돈 날
臣隱愛賜尸母史也(안민)⇒ 臣은 실 어시야
耆郞矣 史是史藪邪(찬기)⇒ 耆郞 즈시 이시슈라
㉡ 賜 (心支) [-ie-]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史(모죽)⇒아 사ㆆ 됴히시온 즈시
吾 不喩 伊賜等(헌화)⇒ 나 안디 븟흐리시든
西方念丁去賜里遣(원왕)⇒ 西方 장 가시리고
㉢ 次 (淸脂) [-ie-]
栢史叱枝次高支好(찬기)⇒ 자시ㆆ 가지 놉호
또한 차자표기 용례에서도 잇소리와 결합한 '支', '脂'부 글자들의 고대한자음 홀소리가 /i/로 반영되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吉士(或云稽知, 或云吉次) <삼사38잡지>
思內(一作詩惱)樂 <삼사32악>
未叱希角干 一作未斯欣角干<유사1왕력>
尼師今, 言謂齒理也 <유사1기이>
第四脫解(一作吐解)尼叱今 <유사1왕력>
脫解齒叱今(一作吐解尼師今) <유사1기이>
居瑟邯(或作居西干)<유사1기이>嘉瑟岬(或作加西, 又嘉栖, 皆方言也. 岬, 俗云: 古尸, 故或云: 古尸寺, 猶言岬寺也. 今雲門寺東九千步許, 有加西峴, 或云: 嘉瑟峴…)<유사4의해>
佐阿 西川(一云沙 祗之那)<삼사47열전>
이 자료들에서 문제의 '士', '次', '思', '師' 등의 홀소리는 '知', '叱', '詩'의 홀소리와도 같았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들은 모두 /i/로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최남희(1999ㄱ:13∼16, 20∼22)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들 자료에서 '瑟:西, 栖'의 대응과 '斯, 師:叱'의 대응은 동음전사가 아니라 각각 '실: ', ' :속'의 유사음 대응인 것으로 논의되었다. 그것은 '賜, 次, 師, 子, 自, 慈' 등의 홀소리가 중세한자음에 / /로 나타나는 사실을 들어 상고음 단계의 고층 [- -(>-e-)]를 고대한자음에 / /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한 박병채(1971:182∼191)에서의 주장에 동의한 까닭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 본 여러 차자표기자료가 말해주는 것은 이들이 / /의 흔적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i/로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들 글자의 상고음도 /i/로 음대응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瑟 生質 set siet siet et 슬
西 心脂 sied si r ser siei 셔
次 淸脂 ied i r jier ei
斯 心支 set siet siet s e
叱 昌質 t iet t i t t jiet t t 즐
이는 상고음 운미 [d]류를 고대한자음에 /r/로 반영하였다고 볼 때 /siri/, /tiri/로 정확한 음대응이 된다. 상고음 제8류 '質'부의 [-iet]는 최남희(1999ㄷ:151)에 의거하여 /iri/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고음 '支', '脂'부의 중심홀소리 [-e-]는 고대한자음에 수용될 때, 잇소리와 결합할 때에도 /i/로 반영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에 따라 '次'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i/로 추정한다.
이로써 '王'을 뜻하는 고구려말 '皆次'의 발음을 /k si/로 분석한다. 이는 [광주본 천자문]의 '긔 왕(王)'에서와 같이 중세국어까지 이어지는데, 신라왕의 표기에 나타난 '居西干'의 '居西'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앞서 지적한 '높은 곳'을 가리키는 '古尸/kusi/'와도 관련이 있는 낱말로 중세국어 '항것(상전)'의 '것'에 이어진다. 따라서 이 자료에서도 역시 고구려말은 남방의 백제, 신라말과 같은 언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伯'을 새김으로 읽어서 ' '으로 보고 '맞-(迎)'과 같은 동음어였다고 보는 견해(유창균 1980)보다는 백제 지명 자료인 '壁谿郡 本百濟伯伊(一作海)郡'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음차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伯 鐸 p k prak peak
이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paka/이다. 이는 중세국어 '보-(見)'에 이어지며, 여기에 어떤 활용형의 씨끝이 붙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끝에 이어진 /ka/는 끝홀소리가 /i/ 형태로 변이된 '城'의 뜻을 가진 뒷가지로 해석된다. 따라서 '王逢'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어휘 /k (si)-pa/를 추정해 낸다. 이는 고구려말이 중세국어 및 현대국어와 같이 '부림말+풀이말'의 통어적인 순서를 가졌다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
∴ 皆伯 /k (si)-pa-ki/
心岳城 本居尸押
'心'을 뜻하는 고구려말 '居尸'가 추출되는데 이에 대한 다른 예가 발견되지 않는다. 유창균(1980:346)에서는 /k s r/로 읽고 일본어 'kokoro'에 연결지어 본 바 있다.
'居'의 상고음 '見 魚 kia kio kja k a'로 보면 고구려한자음은 /ka/였을 것이다. 이는 최남희(1999ㄱ:11)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는데, 고대한자음 형성시기에는 여는홀소리의 영향력이 미미했으며 상고운미의 영향도 대부분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居'의 고구려한자음을 /ka/로 재구한다. 앞서 기술한 '尸'는 표기관습대로 /rV/를 표기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음차자로 /si/를 표기하는 데 쓰인 것으로 본다. 따라서 '心'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居尸/kasi/'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신라말에 ' /m s m/'으로 나타나 대조적이지만, 오히려 중세국어 '가 (胸)'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 居尸押 /kasi-kusi/
瑞谷縣 本 高句麗 谷縣 景德王 改名今因之; 谷縣 (一云 首乙呑)
'瑞谷'과 ' 谷'은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 '이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한자로서 중국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김종훈 1983). 이 ' '과 '首乙'이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우선 '谷'과 '呑'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고구려 지명에서 '谷'이 나타나는 것은 다음과 같다.
永 郡本高句麗 大谷郡 景德王改名今 平州;大谷郡 (一云多知忽)
檀溪縣本高句麗 水谷城縣 景德王改名今 俠溪縣;水谷城縣 (一云買旦忽)
鎭瑞縣本高句麗 十谷城縣 景德王改名今 谷州;十谷縣 (一云 德頓忽)
五關郡本高句麗 五谷郡 景德王改名今 洞州;五谷郡 (一云 弓次云忽)
翊谿縣本高句麗 翼谷縣 景德王改名今因之;於支呑 (一云 翼谷)
習谿縣本高句麗 習比谷縣 景德王改名今 谷縣;習比谷 (一作 呑)
沸流谷, 帛愼土谷, 加太羅谷, 改谷, 梁谷<태왕비>
이들 예로부터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谷'과 '旦, 頓, 云, 呑' 등의 글자들이 대응하고 있는 점이다. '呑'이 '谷'을 잘못 쓴 글자라고 보기가 어려운 것은 이러한 대응관계 때문이다. 따라서 뒤엣것들은 음차자이고 '谷'은 훈차자임이 확실하다. '谷'의 새김에 대해서, 중세국어에서는 '골'이지만 고대국어에서는 이처럼 읽히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이기문(1972:64)에서 논의되었다. 이에 따르면 신라말에서 '谷'은 새김이 '실'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말에서는 신라말의 '실'에 해당하는 동의어가 따로 있었던 것로 생각된다. 천소영(1990:179∼180)에서는 '谷', '洞', '穴'에 해당하는 고대국어 어휘는 네 가지로 '고ㄹ, 시ㄹ, 단, 가비'가 있었으며, '단'과 '가비'는 고구려지명에서만 나타나고 대신 일본어와 비교되기 때문에 전형적인 북방계어라고 추정하였다. 각 글자들의 고구려한자음을 추정해 보겠다.
旦 端元 tan t n tan tan 단
頓 端文 tw n tw n tw n tu n 돈
呑 透文 t n t n t n t n
만일 이와 같은 상고음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면 고구려한자음은 각각 /tana/, /tunu/, /t n / 정도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이는 같은 말에 대한 여러 지역적인 방언차이거나, 표기의 차이일 것이다. 이를 유창균(1980:175∼176)에서는 '呑'을 대표형으로 잡아 /t n/으로 읽었다. 그런데 고대한자음에서 'ㄴ' 끝소리 글자들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 分津縣 本 高句麗 平唯{淮}押縣;平淮押縣 (一云 別吏波衣)
眞寶縣 本 柒巴火縣
賓汶縣 本 比勿
軍那縣 本 屈奈
㉡ 子春縣 本 高句麗 乙阿旦縣
海曲縣 本 高句麗 波旦縣;波旦縣 (一云 波豊)
貴旦縣 本 仇斯珍兮
㉢ 安賢縣 本 阿尸兮縣(一云阿乙兮)
道安縣 本 刀良縣
永安縣 本 下枝縣
喜安縣 本 百濟欣良買縣
㉣ irikasumi伊梨柯須彌(淵蓋蘇文) <일본서기23, 24>
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泉井郡 (一云 於乙買)
㉠에서 '分'과 '別', '眞'과 '柒', '汶'과 '勿', '軍이'과 '屈'이 서로 통하여 쓰인 것을 알 수 있고, ㉡에서는 '子'와 '阿旦'의 대응에서 중세국어 새김 '아 '과 이어짐이 확인되므로 '旦'이 /ㄹ/끝소리로 발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波旦縣 (一云 波豊)'에서 '旦'의 끝소리에 '豊'가 대응함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는 중세국어 '바 (海)'에 이어지는 낱말로 볼 수 있다. 더욱이 '貴旦縣 本仇斯珍兮'에서 '旦'과 '珍'의 대응이 확인되는데 '珍'은 차자표기에서 '돌, 돌오' 등으로 읽히는 글자이다. ㉢에서는 '安'의 발음에 대한 자료인데, 역시 /r/ 소리를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또한 ㉣에서도 '淵'의 고구려한자음이 끝소리에 /rV/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상고음에서 [-n] 끝소리를 가진 일부 글자들이 고대한자음에서 /-rV/로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첫소리에 올 때조차 /i/가 이어지는 조건에서는 /n/, /r/이 서로 통용되고 있다.
述 忽縣 (一云 首泥忽)
內乙買 (一云 內 米)
이는 고구려말에서 /n/과 /r/이 자주 통용되는 소리였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旦', '安' 등의 글자들이 /r/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旦', '頓', '呑'의 고구려한자음은 /t r /이고, 이에 따라 '谷'의 고구려말 새김을 '/t r /'로 추정한다.
다음으로 '首乙: '에서 '首'자는 음차자일 경우와 훈차자일 경우를 예상할 수 있는데, 다른 표기자료들에서도 음차자와 훈차자 양쪽 다 쓰인 것으로 보인다.
戍城縣 本 高句麗 首 忽
述 忽縣 (一云 首泥忽)
牛岑郡 (一云 牛嶺 一云 首知衣)
首知縣 (一云 新知)
牛首州 ( 首 一作 頭 一云 首次若 一云 烏根乃)
首原縣 本買省坪
유창균(1980:331)에서는 음차자로 보고 /sur l/로 읽었으며, 박병채(1968)에서도 음차자로 보아 /sjul/로 읽었고, 천소영(1990:34∼37)에서도 음차자로 읽어 '수리(峰)'계 어휘에 귀속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의 근거를 뚜렷이 제시한 부분을 찾을 수 없어 명확하다고 보기가 어렵다. 해결의 열쇠는 ' '에 있는데 이 글자가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글자임은 앞에서 말했거니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글자의 발음이 곧바로 '창고'를 뜻하는 고구려말이었음이 확실하다. ' '에 대한 상고음은 중국에 없던 글자이므로 당연히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고구려에서 이 글자를 만들 때 한자 형성의 원리에 의거해서 ' '을 뜻기호로 삼고 '京'을 소리기호로 삼았을 것이므로 ' '의 고구려한자음은 '京'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 글자가 만들어진 것은 상고음 시대가 분명하므로 중고음 [ki ]이 아니라 상고음 [kia ]을 반영했을 것이다. 즉 ' '의 고구려한자음은 /ka / 정도였을 것이며 따라서 '창고'를 뜻하는 고구려말도 역시 /ka /, /puka /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 '과 '首乙'의 관계는 같은 말의 표기가 아니라 다른 이름의 표기임이 드러나게 된다. 이에 따라 '首乙'에 대한 해석은 보다 명확한 증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루어 두도록 하겠다.
∴ 谷 /ka -t r /
喬桐縣 本 高句麗 高木根縣 海島也 景德王 改名今因之;高木根縣 (一云 達乙斬)
'高木根:達乙斬(→喬桐)'으로부터 '高, 喬:達乙'과 '木根:斬'의 대응을 추출해 낼 수 있다.
乙 影質 i t i t i t et 을
이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iri/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차자표기에서 독특한 표기자로 쓰인 것으로 논의되어 왔다. 우선 신라향가에 쓰인 것으로 보면 이 글자는 ' /을' 또는 '-ㄹ'을 표기하는 데 쓰였다. 지명표기에서 이 글자가 쓰인 자료들을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高烽縣 本 高句麗 達乙省縣
內乙買 (一云 內 米)
鐵圓郡 (一云 毛乙冬非)
高木根縣 (一云 達乙斬)
赤木縣 (一云 沙非斤乙)
子春縣 本 高句麗 乙阿旦縣
道臨縣 (一云 助乙浦)
仇乙峴 (一云 屈遷)今 州
安賢縣 本阿尸兮縣(一云阿乙兮)
加知奈縣(一云加乙乃)
이를 종합해 볼 때 乙'은 음차자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대체로 지명 표기에서 /iri/, /ri/ 정도의 소릿값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손명기(1993:15∼16)에 의하면 '乙'은 오히려 '木'에 대응하며, 고구려말에서 '高, 山'을 뜻하는 말은 오직 '達' 하나로만 표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의 문제점은 '乙'과 '木'이 대응한다는 근거가 '赤木縣 (一云 沙非斤乙)'에 있는데, 이것이 좀 막연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음의 자료와 비교할 때 오히려 '赤:沙非, 木:斤乙'의 관계가 추출되기 때문이다.
赤城縣 本 高句麗 沙伏忽
赤鳥縣 本百濟所比浦縣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천소영(1990:28)에 의해 이 '乙'이 끝소리 /rV/의 표기로 매김꼴의 문법적 구실을 하는 것으로 분석하는 관점을 수용하기로 한다.
'木根:斬'의 대응은 '楊根縣 (一云 去斯斬)'에서도 확인되는데, 이는 훈차자로서 중세국어 '불휘(根)'와 '버히-(斬)'에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 즉 고구려말에서 [ ], [ ]는 변별이 되지 않았으므로 / /로만 쓰여서 '根'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 /p r ki-/였고 이는 '斬'을 뜻하는 낱말과 동음어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표기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는 설명이 된다. 이는 앞서 논의된 바, /h/이 전기고대국어의 /k/에서 발달한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더욱 개연성을 가지게 된다. 이로써 '根, 斬'을 뜻하는 고구려말 동음어 /p r ki/가 각각 'p r ki>*p lki>*p lh i>pulhuj>p uri(根)'과 'p r ki>*p r hi>p hi>p i>p j>pe-(斬)'의 변화과정을 겪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추정의 근거를 다시 정리해 보면, ① '根:斬'의 대응이 두 번 확인되어 그 개연성이 높다는 점과, ② 고구려말에서 / /, / /가 변별이 되지 않고 홀소리에 / /만 있었던 점과, ③ 우리말의 /h/는 전기고대국어에서는 /k/였다는 점, ④ '善射:朱蒙', '復舊土:多勿' 등에서처럼 풀이씨 줄기가 이름씨처럼 자립성을 가졌던 점, ⑤ 고대국어에서 'r>/V__V' 및 'V>/C__#'의 변화는 일반적이었던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말에서 '根'과 '斬'을 뜻하는 낱말은 동음어로서 /p r ki/였음을 도출해 낸다.
∴ 達乙斬 /tarari-p r ki/
玉馬縣 本高句麗古斯馬縣 景德王改名 今奉化縣
'馬'가 겹쳐 나타나므로 옛지명의 '古斯'는 '玉'의 새김에 대응한다. 이는 이기문(1968) 및 박병채(1968)에서도 현대국어 '구슬'에 이어지는 어휘로 논의되었으며, 박병채(1968)에서는 /kosa/로 읽었고 유창균(1980:326)에서는 /k s r/로 추정하였다. '古斯'는 여러 선학들의 연구결과에 따라 음차자로 보는 것이 온당하므로, 이 글자들의 당시 발음을 추적해 보도록 하겠다.
앞서(3) '古'의 당시음이 /ku/였음은 이미 논의되었으므로 여기서는 '斯'의 발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斯 心支 sie sie sie s e
이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고구려한자음은 앞에서의(7) 논의에 따라 /si/로 추정된다. '斯'는 지명자료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松峴縣 本 高句麗 夫斯波衣縣
松山縣 本 高句麗 夫斯達縣
松岳郡 本 高句麗 扶蘇岬
火王郡 本比自火郡(一云比斯伐)
壽同縣 本斯同火縣
完山(一云比斯伐 一云比自火)
여기서도 '火:比斯:比自'의 대응에서 중세국어 '빛(光)'에 이어지는 /pisi/를 추출해 낼 수 있기 때문에, '斯'는 /si/의 소릿값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玉'을 뜻하는 고구려말 '古斯/kusi/'를 추출해 낸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계림유사]의 '珠曰區戌(208)' 및 중세국어 '구슬/구 '에 이어지는 낱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구슬'의 /ㄹ/이 어떻게 해명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는 원래 /kusiri/이었던 것이 '馬'와 결합되면서 /ri/가 탈락되었다고 본다. 이는 '馬'의 해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고구려 지명표기에서 '馬'는 '買省郡 (一云 馬忽)'에서 '買와'의 대응을 보여주는데, '綠驍縣 本 高句麗 伐力川縣'에서도 '驍'와 '川'이 그 새김이 같았음을 알려준다. 또한 다음의 자료에서
駒城 (一云 滅烏)
臂城郡 (一云 馬忽)
'滅烏', '臂'와 대응하는데, 여기서 '馬'의 고구려말 새김은 중세국어 ' '에 이어지는 낱말이었을 것이다. 이는 다음의 자료들로부터 '水', '川'의 새김과도 대응하고 있어서 그 개연성이 크다.
買忽 (一云 水城 )
德水縣 本 高句麗 德勿縣
水谷城縣 (一云 買旦忽 )
이는 신라 지명 '泗水縣 本史勿縣', '淸川縣 本薩買縣' 및 백제 지명 '其買縣(一云林川)'에서도 확인되어서 '水', '川'을 뜻하는 고대국어가 '買', '勿'의 당시 한자음과 같이 발음되었음을 실증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買'는 '勿'이 그 원형이고 도수희(1999)에서 지적된 것처럼 'r>/V__V'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들 '馬', '臂', '水' 등을 뜻하는 낱말이 다 동음어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비슷한 음상을 표기한 유사음 대응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馬'의 고구려 새김은 /m r /로 추정된다. 이는 '駒城 (一云 滅烏)'가 가장 원형에 충실한 표기로 볼 때, 뒤에 홀소리가 하나 있어서 두 음절로 발음되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古斯馬'는 고구려말 /kusim r /를 표기한 것이 되며, '玉'의 새김 /kusiri/의 끝 음절 /r /가 /m r /와 연결되면서 탈락된 형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古斯馬 /kusi(ri)-m r /
朽岳城 本骨尸押
앞에서 논의된 '押'과 '岳'의 대응으로부터 '朽'와 '骨尸'의 대응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유창균(1980:347)에서는 /k s r/로 읽고 '朽'의 중세국어 새김 '석-'과 부합되지 않는다 하여 일본말 'kusaru'과 연관지어 분석하였다.
그러면 '骨尸'의 발음을 추적하여 보도록 하겠다.
骨 見物 kw t kw t kw t ku t 골
여러 학자들의 재구음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는데, 상고음 [w ]는 합구음인 여는홀소리에 이끌려 /u/로 반영되는 원칙(1)에 의하여,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uru/ 정도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앞서(1) 논의된 표기자료 ' 城縣 本 骨' 및 '骨正(一作忽爭)'과 연관지어 볼 때 '忽'의 고구려한자음과 동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된다.
'尸'는 앞서 본 것처럼 약음차자로 /rV/를 표기한 것으로 본다면 약음차자 '尸' 앞의 글자 끝소리는 무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骨尸'는 /kuru/를 표기한 것이 된다. 그런데, 최남희(1999ㄴ:212∼213)에서는 '尸'에 대하여 고구려지명 ' 川郡 (一云 也尸買)'에서 '尸'는 고구려한자음 /si/로 읽혔음을 논증한 바 있다. 즉, 고구려에서는 이 글자가 상고음 기층의 /s r /와 중고음 기층의 /si/ 두 가지로 읽혔다는 설명이 된다. 이러한 논의에 비추어 본다면 '骨尸'의 '尸'는 /si/로 읽혀서 /kurusi/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朽'의 고구려 새김이 중세국어 '곯-(膿)'과 관련된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낱말은 그 원형을 '곯-<*고 ㅎ-<고로시-'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것은 이름씨 '고롬(膿)'이 '고 +(ㅗ)+ㅁ'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骨尸'는 '朽'를 뜻하는 고구려말 /kurusi/를 표기한 것으로 해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낱말은 소리의 바뀜과 더불어 뜻 범주도 바뀐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나무가 썩은 상태'를 뜻하던 낱말이 '동물의 육질이 썩은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그 범주가 옮겨진 것이다.
∴ 骨尸押 /kurusi-kusi/
荒壤縣 本高句麗骨衣奴縣 景德王改名 今 壤縣
이 자료에서 '荒-骨衣' 및 '壤-奴'의 대응을 얻을 수 있는데, 우선 '壤-奴'의 대응은 다음과 같이 지명자료에서 비교적 풍부하게 나타난다.
槐壤郡 本 高句麗 仍斤內郡
於斯內縣 (一云 斧壤)
黑壤郡 (一云 黃壤郡 )本 高句麗 今勿奴郡
穀壤縣 本 高句麗 仍伐奴縣
休壤郡 (一云 金惱)
이들 자료에서 '壤', '城'을 뜻하는 고구려말에 해당하는 표기자가 '內, 奴, 弩, 惱' 등으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낱말의 의미에 대하여 이기문(1972), 유창균(1980), 이병선(1975) 등에서는 중세 및 현대국어 '나라(國)', '누리(世)', '내(壤, 土)' 등의 동원어임에 동의하고 있으며, 천소영(1990:74)에서는 하늘(天)에 대칭이 되는 막연한 땅(壤)이나 세상(世上)을 나타내는 말로, '川'을 뜻하는 고대국어와 동음어 관계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글자들이 어떻게 읽혔는지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內 泥微 nw d nw d nw nu i
弩 泥魚 na no na na 노/누
奴 泥魚 na no na na 노
惱 泥宵 n -- naw nau 노
첫소리가 /n/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홀소리가 각 글자마다 차이가 있다. '內, 惱'와 '奴, 弩' 사이의 차이는 매우 큰 것으로 모인다. 최남희(1999ㄱ)의 논의결과에 의하면 '內'의 상고음 기층 신라한자음은 /n l/이며, 중고음 기층 신라한자음은 /n i/이다. 위의 고구려지명 표기에서 나타난 음 대응을 같거나 거의 비슷한 발음의 표기라고 전제한다면 '奴', '弩'는 상고음 기층일 때 고구려한자음은 /na/일 것이므로 '內'와 '惱'는 /nu/로 재구될 수 밖에 없다. 이는 같은 말의 방언적인 차이를 반영한 표기로 본다. 이로써 '壤, 土'를 뜻하는 고구려말 /na/, /nu/를 재구할 수 있다.
'骨衣'에 대하여, 경덕왕의 고친이름은 '荒'으로 되어 있고 고려초 지명은 ' '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경덕왕의 개명의 경위에 여러 가지 임의성이 개입된 것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을 임의로 반대되는 뜻의 글자로 써서 바꿔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창균(1980:301)에서는 고려초 지명 ' '의 중세국어 '걸-(肥)'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는 ' '이 원래 뜻일 수도 있고 '荒'이 워래 뜻일 수도 있어서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荒'이 더 가까운 시기의 개명이다. 글쓴이는 '荒'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이 '骨衣'로 표기된 것으로 본다.
'骨'은 고구려한자음 /kuru/임을 앞에서(12) 밝혔고, '衣'의 당시음을 추적해 보겠다.
衣 影微 i d i r j r i 의
이와 같은 상고음의 기층을 반영했다면 여는 홀소리와 끝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는 그 중심홀소리가 [ ]이므로,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에 따라 / /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 글자가 향찰표기에서 거의 한결같이 ' /의'로 읽히는 것은 중고음의 영향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 자료에 상고음의 고층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1), 한자음의 [t]끝소리는 처음 받아들일 때 입성으로 나지 못하고 뒤에 홀소리를 붙여서 /tV/로 소리났음을 밝혔다. 그러한 흔적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述川郡 (一云 省知買)
單密縣 本武冬彌知
玄雄縣 本百濟未冬夫里縣
加知奈縣(一云加乙乃)
바로 이러한 /tV/의 흔적이 일부 한자들에 남아 있음을 상기할 때 '骨'의 고층음은 /kutu/가 된다. 또한 '衣'의 상고음 입성끝소리 [d], [r]를 받아들여 고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가정할 때, 이 글자의 발음은 / r /가 되므로, '骨衣'를 그러한 음대로 읽게 되면 /kut r -/가 된다. 한편 신라말 표기자료인 '居柒夫(或云荒宗)'에서 '居柒'을 찾아낼 수 있는데, 이것이 고구려말 '骨衣'와 같은 어휘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임병준(1999)에서 논의된 것처럼 't→ /-i,j'의 센입천장소리되기가 일어나지 않은 고구려말의 특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며, 고대국어에서 '荒'을 뜻하는 그림씨 줄기가 센입천장 붙갈이소리 / /의 생성으로 인하여 '/kut r -/>/k ir-/'로 변화해 갔음을 보여 준다. 이는 다 같이 중세국어 '거츨-'에 이어지는 고대국어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