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지 시절
229 수송자동차대대에는 5개 중대가 있다. 본부중대, 701중대, 800, 801, 802중대다. 이중 701중대는 10 TON 트레일러 중대고, 나머지 중대는 GMC 중대다. 각 중대는 매일 20여대 GMC가 작전 나간다. 중대장이 맨 앞 찦차 타고, 소대장이 GMC 조수석에 분승한다. 라이트 켠 백여대 GMC 캄보이 대열 UN묘지 옆에서 나와 문현동고개 넘어가는 모습은 영화 ‘워털루부릿지’ 한 장면 같다. 800중대 중대장 신현표 중위는 얼굴이 희고 키도 후리후리하고, 녹색 바바리코트가 멋있었다.
K대 선배가 중대 인사계라 나는 처음엔 대대 3종계에 배치되었다. 1종은 쌀이고, 2종은 피복이고, 3종은 기름이다. 자동차대대는 기름 많이 소비한다. 매주 GMC 두 대가 구포 코스코로 가서 경유, 희발유, 엔진오일, 씨오일, 구리스 실어온다. GMC 한 대에 드럼 20개 싣는다. 그러면 헌병 백차가 와서 휘발유 한 드럼 가져가고, 3종계는 중대 불출할 정량 55갤런 휘발유 한 드럼에서 5갤런씩 빼서 한드럼 만들어 놓는다. 3종계 사수는 병장이고 조수인 나는 이등병이다. 사수는 기름 빼돌려 고향에 논도 샀다. 3종계는 그런 자리다. 조수인 나는 작업만 해주고, 배 출출하면 유류창고 옆 철조망 밖 보리밭 속에 숨어있던 ‘도꼬다이’하고 거래한다. 종이에 싼 구리스 한 뭉치 던져주고 떡 한 뭉치 받아먹는다.
유류창고 근처는 후미진 곳이다. 작전 나갔던 고참들이 이 근처에 차 대고 철조망 밖 ‘도꼬다이’와 온갖 거래한다. 척하면 삼척이다. 포바이포 목재 던져주면 떡뭉치 날라오고, 탱크비어링 던지면 고무줄에 묶은 돈뭉치 날라온다. 탱크 베어링은 최고로 비싼 것이다.
달구지들은 대대 3종계를 돈방석에 앉은 것처럼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사무실에 앉아 펜대나 굴리는 신선노름 할려고 군에 온 게 아니다. 229대대 왔으면 지옥 맛 봐야 한다. 한겨울에 시다마리 밑 기면서 물세차 해봐야 하고, 주차장에서 원산폭격 해봐야 한다. 밤마다 내무반에서 엉덩이 불이 나도록 맞아봐야 한다. 그래야 실존주의를 알 수 있다 생각했다. 그래 3종계 1년 한 뒤 자진 반납하고 중대로 귀대했다. 800중대 30호 GMC 차 배정받았다.
3부두는 미국 상선이 일주일에 두어척 입항한다. 군수물자 싣고오는 배인데, 굴뚝에 ‘TWIN DRAGON’이라고 용 두마리 그려놓은 배도 있고, ‘BLUE BIRD’라 쓰고 파랑새 그린 배도 있고, 그냥 ‘미시시피’라고 쓴 배도 있다. 대개 7천톤, 만톤급 배라 선체 길이가 백 미터 넘고, 굴뚝 높이가 5층 빌딩 보다 높다. 물 속에서 웟모습 들어낸 스크류는 날이 세쪽인데, 하나 길이가 보트만 하다. 부산 내항은 수심이 얕아 큰 외국 상선들은 엔진 끄고 예인선이 예인하여 접안시킨다.
우리 달구지 부대는 부두 도착하면 소대장이 화물서류(Tally)에 명시된 창고 앞에 차를 정열시킨다. 302대대 지게차는 창고에서 물자 싣고나와 차에 실어준다. 이렇게 한 대 한 대 20여대 차에 화물 상차하는데 반나절 소요된다. 그동안 고참들은 차는 졸병에게 맡기고 창고 안을 휘젖고 다닌다. 넓은 창고엔 목재, 양모, 의약품, 병기창 갈 비싼 자동차 부품과 비어링 있다. 고참들은 파손된 박스를 찾거나, 새 박스를 파손시켜 물건을 자기 차에 빼돌린다.
도둑질한 물건 감추는 데는 229대대 운전병이 전문가다. 포바이포 각목 정위치는 적재함 밑이다. 거기 각목 6개 들어간다. 양모는 운전석과 조수석 씨트 쿠션 속이 제자리다. 부드러워서 꽉곽 쑤셔넣으면 한푸대 들어간다. 페니실린이나 의약품 박스는 적재함 호르 속에 감춘다. 비어링은 철사로 묶어 연료탱크 속에 숨긴다. 나중에 철사만 당기면 굴비처럼 달려나온다. 양풍길 병장이 감만동 병기창 정문 통과할 때 일화 유명하다. 그는 인잭션펌푸 신품을 구리스 잔뜩 묻혀 기존 인잭션펌프 옆에 달고나왔다. 빤짝빤짝 밧클 딱고 하얀 완장 찬 헌병은 멋만 부렸지 아무 것도 모른다. 본넷트 열고 이게 뭐냐 묻자, ‘고물차는 인잭션펌프 두 개 달아야 되는 거 상식적으로 몰라?’ 말도 않되는 상식 운운하고, 헌병이 수신호로 차 통과시키자, 입가에 회심의 미소 지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 뒤로 손을 올려 왼손으로 오른손에 용개질치고 왔다.
졸병들은 3부두 쓰레기통 뒤진다. 쓰레기통은 말이 쓰레기통이지 GMC 한 대가 그냥 들어가도 될만치 크다. 대양을 항해하는 상선은 항해일지가 있다. 음식을 날짜별로 칸칸이 저장한다. 날짜 지난 음식은 중간 기항지에 지게차로 다 버리고 간다. 그래 3부두 쓰레기통은 뜯지않은 C레이션, 닭고기 돼지고기 깡통 산처럼 쌓인다. 졸병들은 이 미제물건 팔 데가 있다. 영도에서 '뗀마' 타고 건너오는 밤의 여인들 이다. 넓은 바다는 달빛이 곱고, 멀리서 뱃고동 소리 들린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이 Prostitution(매춘)이라 했던가. 여인들은 맨몸으로 와서 뱃고동 울리는 달빛 아래 뗀마 위에서 뭔가 제공하고 군수품 얻어간다. 그 중 몸매 늘씬하고 짚씨처럼 치렁치렁한 머릿결 고운 여인 있었다.
'죄 많은 이 가슴에 멍을 들이고, 추억은 안개처럼 사라져 갔네. 뒷골목 그늘에서 눈물 지우며 내일 없이 살아가는 여인이지만, 태양이여 나에게 빛을 주소서.'
나는 그를 보며 당시 유행하던 <검은 머리>란 노래 생각했다. 육체는 슬픈 것인가. 3부두에 관련된 기억 중에 잊히지않는 부분이다.
60년대 그 당시 부산은 무법천지 였다. GMC 한 대가 한시간 내에 완전 해체되어 흔적 없어진다는 말 있었다. 서면 일대 군수품 다 모우면 일개 사단 무장할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실제로 당시 부산 모 부대 GMC 한대가 증발되어 큰 소동이 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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