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암빠 빰빠바바아!
음악 소리가 들린다.
명화극장 오프닝 음악이다. 나에게는 그 음악은 항상 깊은 밤이다. 최면에 걸리듯 나는 깊고 고요한 밤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골의 밤은 까맣고 깊다. 달도 별도 없는 밤이면 눈을 떠도 감은 것 같다. 시골에 밤이 내려오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잠이 들고 사람도 모두 잠든다. 천정을 내달리는 쥐와 마루 밑의 개만 깨어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깨어 있으니 바로 나다.
일요일 밤, 까만 어둠 속에 일곱 살이던 나는 마루를 지나 마당을 건넌다. 셋방 사는 희숙이네 집으로 간다. 작은 마루를 올라 방으로 들어가면 키 큰 아저씨와 뚱뚱한 아줌마, 그리고 얼굴 하얀 삼 남매가 한방에서 자고 있다. 아저씨는 항상 텔레비전을 켜고 잔다. 나는 그들 맨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일요일 밤이면 내가 주인인 양 홀로 텔레비전을 본다.
명화극장이 시작된다. 오프닝 음악이 흐른다. 깊은 밤, 희숙이네 식구들이 깰가 봐 텔리비전 소리를 낮춘다. 낮은 음량일지라도 명화극장 오프닝 음악은 웅장하다.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가 깰까 봐 쉰 듯 작고 낮은 목소리로 엄마는 나를 부른다. 재촉하듯 협박하듯 한다.
“숙아, 숙아, 얼른 나와. 빨리 나오지 못해?”
엄마의 목소리는 텔레비전 소리보다 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엄마는 다그치듯 나를 부르지만 나는 안다. 엄마는 희숙이네 방문을 열지 않는다. 달빛에 엄마의 그림자가 창호지 문에 어른거리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 오로지 텔레비전만 쳐다본다. 결국 엄마는 ‘집에 오기만 해 봐라, 혼날 줄 알아.’ 하고는 사라진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어서 툭하면 희숙이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놀았다. 성격 좋은 아줌마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거의 우리 집처럼 드나들었다. 저녁이면 밥도 먹고 텔레비젼을 보다 같이 잠들곤 했다. 그러던 어는 날 한밤중에 깨어 보게 된 명화극장 네겐 별천지였다. 희숙이 네가 미국 LA로 이사 가기 전까지 주말이면 그렇게 명화극장을 차지했다. 명화극장이 끝나면 파란 불빛을 끄고 조용히 우리 방에 들어와 꿈처럼 잠을 잤으니, 명화극장의 오프닝 음악은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이끄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어렸기에 영화 내용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영화의 장면이 있다. 한 아저씨가 도둑질했다. 이 아저씨가 어떤 여자 집에 들어간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저 아줌마가 위험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도둑을 보 아줌마는 나의 예상대로 놀란다. 하지만 곧 둘어서 뽀뽀하고 자전거를 타고 논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아줌마는 아저씨를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일까.
커서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영화는 「내일을 향해 쏴라」였고 그 남여는 연인이었다. 이처럼 이해 못 하는 영화를 왜 그렇게 신나게 보았을까. 상상처럼 추측하건대,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 아름답고 신기한 이국의 풍경, 성우들의 좋은 목소리, 좋은 음악에 빠졌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세인, 장고, OK 목장의 결투, 서부의 사나이, 자이언트 등 서부영화를 많이 좋아했다. 정의가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항상 통쾌하고 속이 후련했다. 말 달리는 소리는 신났고 총소리는 시원했다. 사춘기 시절엔 서부영화 음악 테이프를 카세트에 꽂아놓고 보낸 날이 많았고, 총잡이와 먼지 나는 길을 달리는 꿈도 꾸었으니...., 존 웨인, 케리 쿠퍼, 록 허드슨과 율 브리너, 그래고리 팩을 유독 좋아했다.
명화극장을 보면서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말을 하고 사는 줄 알았다. 영화 속의 사람이 모두 한국말을 했기 때문이다. 조금 자라서는 그것이 더빙이란 것을 알았고, 잠깐 나도 성우가 되고 싶었다. 나와 달리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더빙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할머니는 영화를 볼 때며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양놈들이 조선말을 잘하네.”
“그게 아니고 저 사람들은 영어를 말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한국말로 바꾸어 대신 말해주는 거예요.”
하고 설명을 해 드렸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다음 주에는 다시 양놈들이 조선말을 잘한다고 하셨다.
대가족의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자란 내게 가끔 지인들은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아마도 그건 깊은 밤 명화극장을 비롯하여 토요명화, 주말의 면화 등을 통해 외국영화를 많이 보아서일 거라고, 추측한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방식과 표현하는 방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내게는 좋아 보였고, 여러 면에서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 유심히 지켜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굳이 아메리칸 스타일 같다는 말에 이유를 찾는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일곱 살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명화극장은 끝났다. 이제는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깊은 밤이 아니어도 원하면 아무 때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명화극장을 보며 느꼈던 황홀함과 밤보다 깊었던 설렘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시골 어린아이에게 다를 세상을 열어, 주었으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가르쳐 주고, 보이지 않은 세상을 꿈꾸게 한 명화극장,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은 무한히 넓었고 나는 행복했다. 그래서일까, 명화극장의 오프닝 음악이 들리면 나는 일곱 살의 깊은 밤으로 빨려 들어가며 다시 영화 같은 꿈을 찾아 마당을 건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