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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말씀/ 로마서 1:1-17 요절/ 로마서 1:17 | 2024. 6. 30 | |
주제 2 강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날 우리 시대를 일컬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그 시대와 집단에 일관된 가치관과 세계관이 있어 예측 가능한 삶을 살았지만, 오늘날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일관된 세계관이 사라져 어떻게 변할지 어디로 향해 가는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새롭게 등장한 인공지능 chatGPT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로써 항상 내면에 염려와 불안이 내재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로마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쓰고 있는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그는 먼저 자기 이름이 바울임을 밝혔습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교의 율법을 공부하였던 촉망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일에 관여하고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이름을 밝힌 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세 가지로 소개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밝혔습니다. 당시 종은 가장 낮은 신분으로서 전쟁포로나, 큰 빚을 갚지 못한 자가 종이 되었습니다. 종은 주인의 재산의 일부로서 한평생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되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되 노예같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경외하지만 주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감사함으로 순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은혜를 받았지만 ‘종’이라는 말 자체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지 않았다면 참으로 ‘자유인’이 되었을까요? 아마도 일생 율법의 종, 분노와 미움의 종, 탐심의 종, 죄의 종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고 귀한 것은 다른 것의 노예된 삶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도란 어떤 누군가에 의해서 다른 누군가에게로 보내어진 사람을 뜻합니다. 어떤 특정한 사명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 곧 특명전권대사라는 뜻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대해서는 종으로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었으나 세상에 대해서는 사도로서 당당히 자신을 나타내었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사람으로 소개했습니다. 복음이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살던 당시의 세상에서 복음은 지중해 세계가 초대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전쟁이 끝나고 평화와 통일과 질서가 이루어진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로마의 복음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오직 이 복음만을 위해 택정함을 입은 사람, 따로 구별된 사람임을 밝혔습니다.
이상 바울의 자기소개를 통해 나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소개해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양들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대해 내가 어떤 자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종에서 구원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고, 양무리들의 목자로 부르심 받았으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대를 믿음이 없는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자로 인식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목자요, 복음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까? 또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여기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킵니다. 이 아들은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어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에 대해 아주 먼 옛날부터 계획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해오셨습니다. 성경의 처음 책인 창세기부터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나옵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보내 원수 마귀를 멸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3:15).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모세오경, 시편, 선지서 등 구약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어느 날 갑자가 나타난 예수님이 놀라운 일을 보여주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 만큼이나 오랫동안 준비되고 검증되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어떻게 우리의 주 그리스도가 되셨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첫째,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는 것은 약속된 메시야로서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왕이심을 말해 줍니다(눅1:32). 둘째, 거룩한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결의 영이란 거룩한 영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람은 죄로 인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죽음 때문에 우리 인생은 허무하고 절망스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에 바울은 감격하여 말합니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절을 보십시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바울은 예수님께 신앙고백한 후 그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 무엇인지 증거합니다. 첫째로, 그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란 값없는 선물이란 뜻입니다. 값없는 선물이라고 해서 값싼 선물이란 뜻은 아닙니다. 이는 너무나 값비싼 것이라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어서 주께서 대신 갚아주시고 우리에게는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것이 무엇입니까?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은혜는 바로 이 생명을 다시 살려주신 구원의 은혜를 말합니다.
둘째로,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사도의 직분은 구원의 은혜와 함께 주께서 바울에게 주신 부르심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은혜와 직분은 구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은혜와 직분을 구분하고자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은 은혜만 누리고 직분은 거부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도의 직분은 우리를 괴롭히는 직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았을 뿐 아니라 사도의 직분까지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영적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사도의 직분은 구체적으로는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는 일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양들을 도울 때 순종의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제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그 이름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즉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할 때 순수하게 일할 수 있고, 동시에 우리도 영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살면 금방 피곤해 지고 지칠 수밖에 없지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지치지 않고 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의 목적이 그 이름을 위해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8-13절에서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방문하고 싶은 소망을 피력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당시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습니다. 로마는 제국의 중심지요 온 세상의 수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로마에 가고자 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사업에 성공하고, 정치에 뛰어들어 자기 이름을 내고자 했습니다. 최신 문화와 유행을 누리기 위해 로마로 몰려들었습니다. 로마는 오늘날 뉴욕과 같은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 성도들이 그런 곳에서 살면서 믿음을 지키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로마황제보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며,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섬긴다는 소문이 세상에 퍼졌습니다. 바울이 볼 때 이런 그들이 너무나 귀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9). 그들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했습니다(10).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길 원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견고히 세우기 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무슨 빚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진 것입니까? 그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갚겠다고 하고 빌린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없습니다. 다만 받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요,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것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드로와의 대화가 나오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깊은 죄책감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찾아오셔서 세 번의 질문을 통해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도 모두 빚진 자입니다. 그 빚을 갚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은혜의 빚을 진 자들에게 주신 명령,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따라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양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여기서 ‘능력’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두나미스’(dunamis)인데 영어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어원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강력한 힘이라고 합니다. 무슨 능력입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질병이나 가난, 세상에서의 억압이나 폭력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부터 구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로 인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문명에 제사 제도가 있습니다. 인류는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며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여러 종교와 철학, 도덕과 윤리를 통한 자기 향상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수준에 이르고자 애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철저히 실패하였습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 자체가 타락하여 선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율법과 도덕의 기준이 아니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바로 그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사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치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여 그를 의롭다 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진수입니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이 주어집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의로운 분이이라는 것이 나타나고, 그 의로운 하나님과 우리가 어떻게 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 있는가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의로 결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를 수 없으며, 오직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덧입음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의란 법정 용어로서 무죄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죄를 지어 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벌을 받으시므로 우리에게 무죄가 선언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죄의 소욕을 이기고자 경건 훈련과 기도에 힘썼습니다. 어느 날 그는 로마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스칼라 상타(Scala Sancta) 라고 불리는 28계단을 손과 무릎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계단마다 입을 맞추면서 올라갔으나 그의 마음에는 아무런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는 탄식하였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로마에서 돌아온 루터는 나중에 십자가를 묵상하던 중 문득 로마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람이 의인이 되는 길은 율법적이고 도덕적인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루터가 재발견한 ‘이신칭의(以信稱義)’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단지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영원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그러면 이러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노력, 나의 의지, 나의 공로에 기초하여 생활하기 쉽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였다가 점점 행위신앙으로 변해갑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시작도 믿음이요 과정도 믿음이요 마지막도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근심과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대상이 누구인지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늘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은 믿음으로 살면 생명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었지만 우리의 삶은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면 우리는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저의 유일한 기쁨은 무협지와 만화책이었습니다. 운둔형 외톨이처럼 방에서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38년된 중풍병자처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군 전역 후 목자님들을 통해 성경을 공부하고 신앙 훈련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며 죄사함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저의 어두운 영혼에 생명의 빛이 임하였고 인생의 목적과 존재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수의직 공무원으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잦은 인사발령과 늦은 시간까지 비상근무, 초과근무를 하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복음역사에도 주변인으로 사는 것 같아서 고민이 컸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춘천에 있는 보건환경연구원 공무원 시험을 다시 준비하며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계속 암송하며 믿음으로 도전했고 결국 3번째 시험에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말씀을 믿는 믿음을 주시고 다시금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로마서 말씀을 통해서 목자로의 부르심과 정체성을 새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저 그리스도의 종 김마가는 목자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습니다. 제게 주신 은혜와 목자의 직분을 따라 그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올해 제게 주신 은혜를 따라 JBF 자녀들을 말씀으로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보내어 주신 강안나 자매님을 동역자와 함께 사랑으로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을 자기 의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 외에 어떤 것으로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 다시 말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믿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