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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어머니가 제게 전화를 걸어요. 공이 골망을 흔들자마자 제 핸드폰이 울리죠.
브라질에 계시든 경기장에서 절 지켜보고 계시든 그건 중요치 않아요. 매 번 전화를 거시니까요. 그러면 전 코너 플래그로 달려가 손을 귀에 대고 말하죠. "알로 마이!(Alô Mãe! / 여보세요 엄마)"
시티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이걸 재밌다고 생각해서 무슨 뜻인지 계속 묻더라고요.
짧게 답변하자면, 제가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늘 제게 전화를 걸고 계시죠.
그리고 긴 답을 드리자면, 제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요. 브라질에는 꿈을 꾸는 수 백만 명의 아이들이 있어요. 그들에 비해 전 행운아였어요. 몇 몇 영웅들을 알고 지냈으니까요.
전 상파울루 북부의 자르딤 페리라는 동네에서 자랐고, 그 곳의 일부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매우 벅차요. 전 운이 좋았어요. 어머니가 아주 열심히 일해서 우리 가족에겐 항상 먹을 음식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알던 대다수의 아이들은 더 힘들게 살았어요. 그 아이들은 하루에 축구장에서 받은 음식 한끼가 전부이곤 했죠. 솔직히 말해 대다수는 축구를 하러 온게 아니라 놀러와 공짜 햄샌드위치와 탄산음료를 먹으러 왔었어요. 늘 사이에 모르타델라 소시지가 들은 빵과 탄산음료캔을 받았죠.
가끔은 그냥 탄산음료 뿐일 때도 있었고요. 그걸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거예요.
제 모든게 시작된 곳은 클루브 페케니노스(Clube Pequeninos)였어요. "어린 아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사실 축구 클럽 그 이상의 곳이었죠. 바닷가와 야자수 이런 걸 상상하지 마세요. 페리는 그런 곳이 아니니까요. 우리 필드는 군사 감옥 바로 바깥에 있었어요. 잔디는 없고 소나무로 둘러쌓인 흙바닥이었죠. 그 곳을 쓰는 사람은 아이들과 교도관들 뿐이었어요.
9살 때 팀에서 뛸 수 있는지 알아보러 친구 파비뉴와 그곳에 찾아갔었어요. 겨드랑이에 축구화를 끼고 숲을 지나갔죠. 그 곳에서 우리의 인생을 바꿔준 사람을 만났어요. 주제 프란시스코 마메지(Jose Francisco Mamede). 어린 애들 팀의 코치였는데 "그럼, 다음경기부터 와서 뛰어도 된단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계약서 그런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 클럽은 아이들을 통해 이익을 창출할 목적이 아니니까요. 그저 아이들에게 좋은 걸 보여주려는게 목적인 클럽이었어요. 아이들에게 먹을 걸 주고, 뒷골목에서 벗어나게끔 하는게 목적이였죠. 페케니노스가 소규모 구단이라 당신에겐 낯설 거예요. 하지만 제가 한 가지 알려드릴게요. 페케니노스는 그곳에서 기적을 행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끼니와 코치들이 집에 가져가라고 주는 작은 푸드 케어 박스를 얻으려고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기도 해요. 거기엔 밥, 콩, 빵 등 한 달을 버티려면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죠.
이상했어요. 마메지 코치님은 70년대부터 썼을 법한 오래된 흰색 폭스바겐 비틀을 갖고 계셨으니까요. 코치님은 그걸로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어요. 우리 몸집이 작았어서 거기서 9~10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었어요. 거기에 축구화랑 공, 푸드케어 박스 등등 까지도요.
그 클럽이 어린이들을 위해 하는 행동들은 정말...대단해요.
브라질에서 마메지 같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 있어요. - Heróis sem capes.
"망토 없는 영웅"
그게 마메지 코치님이 많은 아이들을 위해 해오신 것들이에요. 마메지와 다른 코치님들은....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해주셨어요.
제겐 축구가 전부였어요. 공을 향한 사랑이 전부였죠. 페케니노스는 한 주에 두 번만 훈련을 해서 훈련이 없는 날엔 페리의 골목에서 축구를 하고 놀았어요. 때론 거기서 친구들과 자정까지 공을 차고난 후에 새벽 두시까지 여자애들 얘기와 장난을 치기도 했죠.
집에선 할 일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태어나자 마자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고, 그래서 어머니가 저와 형들을 키우려고 매일 일했어요. 청소부일을 하셨는데 하루 일과가 끝나 집에 돌아오면 저와 형과 침대를 나눠쓰셨죠.
어떤 아이들은 비디오 게임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겐 공과 상상력이 있었죠. 그곳에서 진정한 어린 시절을 겪었어요. 우린 길마다 있는 팀들끼리 토너먼트를 했고, 트로피는 탄산음료 한 캔이었어요. 그 탄산음료를 차지하기위한 쟁탈전이었죠. 그게 저희에겐 전부니까요. 진심으로 탄산음료는 우리에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남미의 챔피언스리그 트로피) 보다도 중요했어요.
우승하면 캔을 돌려마셨어요. 처음 맛 본 것과 같은 맛이었어요. 다들 한 모금씩 홀짝이고는 전해주는 거예요. 탄산음료 트로피. 그게 샴페인 보다 10배는 나아요. 진짜로 10배는 더 낫다고요.
13살 때 제게 잊지 못할 일이 있었어요. 우리 페케니노스팀은 상파울루의 큰 대회에 참여했어요. 정말 잘했었어요. 대회 초반에 상대를 12~13골로 이겼다니까요! 하지만 결승에서 프로팀인 포르투게사 지 데스포르투스(Portuguesa de Desportos)를 만났어요. 그 팀은 단순히 소규모팀의 아이들을 스카웃하기 위해 대회에 참여했어요. 그 경기는 영화와도 같았죠. 우린 감옥 밖에서 축구하던 작은 팀이었고, 그들은 진짜 유니폼과 모든 걸 갖춘 빅 클럽이었어요. 그럼에도 저와 친구들은 "우리가 이길 거야. 우리가 이 대회 트로피를 가져가겠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폭풍이 찾아왔어요. 그날 밤 많은 비가 내렸고 다음날 경기 취소에 대한 논의가 오갔죠.
킥오프할 때까지 경기장이 온통 진흙탕이었어요. 난리도 아니더라고요. 우린 달리기 시작했고 경기장 여기저기서 엎어졌어요. 다들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죠. 근데 왜 그런 건지 포르투게사 선수들은 괜찮더라고요. 잘 버티고 서있었어요.
그 팀 선수들은 비가와도 버티게 해주는 철 스터드였어요.
반면 저희는 플라스틱으로 된 싸구려 스터드였죠. 심지어 다 닳은 상태였고요.
'하 이게 인생이야'라는 걸 보여주더라고요.
그럼에도 우린 승리를 위해 모든 걸 바쳤고 결국 4-2패배로 끝났어요. 포르투게사가 트로피를 들고 축하하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축구는 삶과 같아요. 불공평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방법을 찾아야만 해요.
당시 딱 적절한 시기에 최고의 교훈을 얻었어요. 그 후 몇 년은 정말 힘들었거든요. 브라질에서 프로 축구선수를 꿈꾸면 대부분 12~13살 쯤에 빅클럽 아카데미에 들어가요.
하지만 전 일이 잘 안 풀렸어요.
상파울루가 제게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고 절 마음에 들어했지만 아카데미에서 숙식은 제공해주지 못하겠다 하더라고요. 집이랑 아주 먼 곳이라 매일 버스를 타고 다닌다면, 학교에서 정학 당했을테고, 그러면 엄마가 절.... 하하하하
엄마가 결사 반대했을 거예요. 엄마한텐 학교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 당시 엄마한테 많은 빚을 졌어요. 브라질의 어린이 대부분은 출신이 가난하면 가족을 돕기 위해 일을 시작해야 해요. 축구도 학교도 못하게 돼죠. 그 시점에서 꿈이 꺾여버려요.
하지만 저희 엄마는 절 믿어줬어요. 무슨 이유가 됐든, 절 신뢰했어요. 제게 무슨 일이 있든 너의 할 일을 계속 하라고 하셨죠.
덕분에 13살에 바르제아(Várzea)에서 성인들과 함께 뛰게 되었어요.
오케이. 상파울루 사람들은 이제 제가 하는 말이 무슨 얘기인지 알 거예요(그리고 아마 그저 웃기 시작하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명해 줄 게요.
바르제아는 미국 길거리 농구 혹은 유럽 준프로 축구리그와 같은 성향이에요. 경기장은 온통 흙이고, 마르만주(marmanjo)를 상대해야 해요. 난폭한 사람들 말이에요. 피지컬적으로 엄청 격하죠. 경기장에서 온갖 끔찍한 짓들이 일어나요.
한 번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일이 있었어요...
빅팀을 상대로 정말 중요한 경기를 치르고 있을 때였어요. 상대는 늘 바르제아에서 최고의 팀 중 하나였지만 제가 말려들고 싶지 않은 이유로 몇 년동안 리그에서 쫓겨나 있었어요. 혹시 어린 아이들이 읽고 있을지도 모르니😊
그 해가 그 팀의 리그 첫 복귀 시즌이었고, 중요한 대회 진출권을 놔두고 우리를 만난 거예요. 경기 전에 모든 선수들이 "이 조그만 X은 뭐야? 장난하겠다는 건가?" 이런 눈길로 절 쳐다봤어요.
장난이 아니었어요.
경기 시작 몇 분 후에 제가 그들의 수비 에이스를 드리블로 제치고 득점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다들 절 '그래 꼬마야.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이런 눈길로 절 보더라고요.
그러고서 제가 공을 잡을 때마다 절 때리는 거있죠? 진짜 절 다치게 하려고 쫓아오는 것처럼 미쳐있었어요. 그 팀에 골목대장으로 알려진 조그만 미드필더가 있었는데 계속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드리블로 또 날 제치는 순간 네 다리 부러질 줄 알아라."
그래서 전 공을 잡았어요...그리고 다시 한 번 드리블로 그를 제쳤죠.
NBA 장면 같았어요. 저 때문에 그는 발목이 꺾였고 엉덩방아를 찧었죠.
그러니 그들이 절 진짜 죽일 듯이 쳐다보더라고요.
하지만...제가 뭘 어쩌겠어요? 발에 공만 닿으면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인 걸요. 그래서 또 다시 공을 잡고, 동료에게 노룩패스로 어시스트를 해줬죠.
관중은 열광했어요.
경기는 2-2로 끝났고, 우린 승부차기로 승리를 거뒀어요. 상대는 엄청 화나있더라고요. 종료 휘슬 후에 그 골목대장이 제게 와 그러더군요. "야 내가 네 다리 부러뜨릴 거라 했지. 주차장으로 따라와."
진심이었어요. 진짜 진지했죠. '와...오늘 여기서 못 나가겠는데' 싶더라고요. 다행히 동료들이 절 보호해줬죠. 다들 절 둘러싸고 아무 문제 없이 절 주차장으로 데려다 줬어요. 집에 무사히 올 수 있었어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지난 크리스마스에 가족을 보러 집에 갔다가 서류 작업 때문에 은행을 가야 했었어요. 그래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티켓 부스의 사람이...
그 사람을 어디서 본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도 절 아는 듯이 쳐다봤죠.
그가 제 티켓을 건내줬어요.
그리고 계속 절 쳐다봤죠.
그러더니 "아 그 조그맣던 애!"그러더라고요.
전 뒤돌아 그를 보며 엥?이랬어요.
"나 기억나냐? 그 바르제아! 내가 네 다리 부러뜨리려 했었잖아!"
속으로 '큰일 났다' 싶더라고요. 그 사람이 뭘 하려할지 몰랐으니까요.
그러더니 그가 "야~내가 진짜 네 다리 부러 뜨리려 했었는데. 믿겨지냐?"라고 말했어요.
전 쿨한 척하려고 "아~안 그럴 거였잖아~농담한 거 다 알고 있어." 라 답했죠.
그랬더니 "아냐. 진지하게 네 다리 부러뜨리려 했었어. 근데 지금 네가 내 응원팀(*파우메이라스)에서 뛰고 있네! 믿겨지지가 않아! 내가 너의 다리 부러 뜨리려 했다는게 상상이 가냐?" 그러는 거 있죠.
결국에 우린 웃고 같이 사진을 찍었어요.
브라질에 그런 말이 있어요. 이게 제 삶을 나타내는 유일한 표현이에요. 제 인생은 물에서 와인으로 변했어요. 5년전 바르제아에서 생존과 빅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거렸어요. 지금은 버스 운전사 혹은 슈퍼마켓 직원, 공사를 하는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뛰었었죠. 그 사람들이 선수가 못 된 건 재능이 없어서도 노력을 안해서도 아니에요. 운과 기회가 없었던 거죠. 일부는 생계를 꾸려야 했어요. 계속 자신의 꿈을 좇을 수가 없었던 거죠.
엄마의 서포트가 없었더라면, 저도 똑같은 삶을 살았을 거예요.
전 15살 때 파우메이라스에서 테스트를 받을 기회가 있었고, 그곳에서 모든게 바뀌었어요. 설명할 수가 없어요. 운명과도 같았어요. 신이 모든 걸 완벽하게 도와주셨죠. 유스팀에 있다가 제 첫 진짜 계약을 얻어냈고, 그 이후 모든게 로켓선과 같았어요. 퍼스트팀에 들어갔고, 잘해서 리우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까지 됐어요.
전화를 받았을 때 정말 벅차더라고요.
상황 이해를 돕자면...올림픽 대표가 되기 2년 전 전 2014 월드컵을 위해 페리의 길을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칠하고 있었어요. 동네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벽에 다비드 루이즈, 네이마르 등 브라질 선수들의 얼굴로 거대한 밑그림을 그려놨죠.
하지만 2년 후에 전 네이마르와 올림픽에 뛰고 있었죠. 처음 대표팀 옷을 입었던 순간이 생생해요. 꿈을 이룬 기분이었어요.
2016년 올림픽은 축구에서 한 번도 금메달을 딴 적이 없기 때문에 브라질 사람들에겐 정말 특별했어요. 개최지가 리우인 건 물론이고 지난 월드컵때 대표팀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대회의 부담감이 엄청났죠. 우리 팀이 초반 두 경기때 부진해서 비판이 정말 거셌어요. 특히 네이마르를 향한 비판이 심했죠. 전 진심으로 네이마르가 상황에 대처하고, 우리 팀을 이끄는 모습을 대단하다 생각해요.
알다시피 대회전에 전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네이마르의 팬에 불과했었어요. 모두가 인정하는 훌륭한 선수예요. 하지만 그 당시 네이마르를 알아가는데....그의 사람 됨됨이가 정말 특별했어요. 모든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정말 놀랍더라고요. 제가 축구를 하는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선수로서 훌륭하지도 않고 우승도 안 해봤는데 마스카라두(mascarado)처럼 구는 사람을 정말 많이 봤어요. 마스카라두는 가면을 쓴 사람을 뜻해요. 그 사람들은 언론에 보이는 모습과 드레싱 룸에서 보이는 모습이 달랐죠. 하지만 네이마르는 모든 사람을 자신의 형제처럼 대했어요. 우리팀이 단합하고, 부담감을 이겨낸 것, 그리고 서로를 위해 뛰었던 건 네이마르의 공이 커요.
금메달 획득의 순간은 믿을 수가 없었어요. 대회 전 네이마르가 타투를 새겼는데 저도 비슷한 걸 새겼어요. 한 사진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더라고요. 어린 아이가 언덕 아래 서서 파벨라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아이는 손에는 축구공을 들고, 꿈을 꾸고 있었죠.
이 그림은 저, 그리고 네이마르만을 의미하는게 아니에요. 많은 브라질 사람들을 뜻하는 그림이에요. 그리고 그게 금메달이 저희에게 의미하는 바이기도 하고요.
2018 월드컵 스쿼드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하지만 브라질은 브라질이에요. 경쟁이 치열하고 확실한 건 없어요. 월드컵이 맨시티행의 주된 이유예요. 제가 선수로서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이 곳에서의 삶은 브라질과 매우 달라요. 맑은 날이 거의 없죠. 따뜻한 날씨의 다른 클럽들에게도 오퍼를 받았었지만 결정에 있어 펩 과르디올라 밑에서 뛴다는게 정말 중요했어요.
춥고 언어가 안 통하는 곳으로 온 건 처음이에요. 하지만 행선지를 결정할 당시 과르디올라 감독님이 제게 전화해서 절 믿는다고, 제가 시티의 미래에 중요한 선수가 될 거라 말해주셨어요.
이를 통해 감독님이 제 미래를 신경 써주신다는게 느껴졌어요. 그러한 대화를 충분히 나눠보면 이 사람이 나한테 진실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게 돼요. 과르디올라 감독님이 제게 그리고 축구에게 진실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게 큰 의미가 돼요.
감독님이 그런 말을 하셨을 때, 제 결정은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시티였어요.
하지만 맨체스터로 떠나기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하나 남아있었죠. 인생의 챕터 하나를 마무리 지어야 했어요.
그래서 9살 때처럼 손에 축구화를 들고 페케니노스를 찾아갔어요. 이번에는 그때와 달랐죠. 아이들을 위해 좋은 축구화 250켤레를 들고 있었거든요.
이제 어떤 빅클럽이든 페케니노스를 축축한 경기장에서 상대한다면 조심해야 할 거예요. 더 이상 봐주지 않을 거거든요.
거짓말하지 않을 게요. 처음 맨체스터 시티에 왔을 때, 모든 걸 잃은 기분이었어요. 엄마가 잉글랜드와 브라질을 계속 왔다갔다 하셨는데 엄마랑 떨어져 있는게 정말 힘들었어요. 어머니는 제게 전부거든요. 제겐 어머니가 엄마와 아빠 둘 다였어요.
페케니노스에서 뛸 때, 경기가 끝나면 어떤 아이들은 아빠랑 있는데 전 혼자더라고요. 어린 제게 너무나 버거웠어요. 그 모습이 마음 속 깊이 남았죠.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제게 아버지에 대해 묻는다면, 제 대답은 저희 엄마가 제 아빠이다예요. 저와 형들을 위해 모든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녀는 또 다른 망토 없는 영웅이에요.
그래서 이제 제가 득점을 하면, 경기장에 안 계시더라도 전 '수화기를 들고' 엄마에게 말해요.
어릴 때 엄마는 늘 제가 어딨는지 찾으려고 계속 전화하시고, 제가 안 받으면 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거셨어요.
"알로 마이!(Alô Mãe!)"
제가 수화기를 든다면 그건 엄마와 우리의 투쟁을 기리는 거예요. 그리고 제 친구들, 가족, 마메지 코치님, 그리고 제가 이곳에 오도록 도움을 준 브라질의 모두를 위한 것이지요.
항상 꿈을 꿔왔는데 제 최고의 꿈에서마저도 오늘날 제 모습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해봤어요. 이번 여름 월드컵을 위해 많은 아이들이 길에 페인트칠을 할 거예요. 게중에는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듣는 아이들도 있겠죠.
그들에게 싸움을 멈추지 말라 말하고 싶어요.
에티하드의 터널을 들어서기 4년 전, 전 바르제아에 있을 때 주차장에서 다리를 부러뜨리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현재 당신의 삶이 모르타델라 샌드위치와 탄산 음료의 삶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계속 꿈을 좇다보면...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아나요?
물은 와인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 모든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 끝까지 읽는데에 성공했다면, 너희에게 하고픈 말이 있어. 중요하니까 잘 들어야 해...
꿈 꾸는 걸 포기하지마.
그리고 내가 한 가지 부탁이 더 있는데 들어줄 거지?
엄마한테 전화를 걸으렴. 널 그리워하고 계시단다.
GABRIEL JESUS / CONTRIBUTOR
출처: https://www.theplayerstribune.com/gabriel-jesus-call-your-ma/
포어알못이라 발음은 틀릴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요!
아시는 분은 제대로 된 발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맨유팬이지만 오..어렵게 성장해서 이렇게 큰성공을 이루기까지 과정이 눈에 아른하게 보이네요 리스펙하게되네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ㅎㅎ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우 된 놈일세
정독했습니다. 제수스 세레모니 뜻이 저거였군요. 번역 감사드려요!
그냥 어머니께 바치는 세레머니인 줄만 알았는데 속에 저런 사연이 숨어있는 줄 몰랐어요ㅠㅠ앞으로 제수스가 수화기 드는 모습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응원한다
멋있습니다 으어
원래도 멋있었지만😉이 얘기 알고 나니까 더 멋있어보여요ㅠㅠ
근본의 표준. 진정한 근본의 모범을 보는거같음. 얜 진짜임
감사합니다.
저야 말로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세레모니였네요 잘 읽었습니다
그러게요ㅠㅠ잘 읽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이렇게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아 진짜 우리 제수스다 멘탈도 좋고 종신하자!!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수스 실력도 멘탈도 다 마음에 들어요! 재계약 협상 하는 것 같은데 잘 됐으면 좋겠네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수스 발롱도르 가자
오랜만에 투팍 dear mama 들으면서 눈물 흘려야겠다
와대박....
번역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보고 가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그냥 갑자기 나타난 잘나가는 유망주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오늘부터 팬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이적 당시에는 그냥 운좋게 뜬 유망주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 수록 늘 밝고, 나이에 비해 생각이 성숙해서 뜰 수 밖에 없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ㅎㅎ
정말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잘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긴 글인데 이렇게 시간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수스 멋쟁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직리버풀님 프사에 있는 아게르도 진짜 멋있어요😍 아게르가 리버풀 향해 가졌던 충성심을 제수스가 시티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FM 맨시티 시작합니다...
아 잘 읽었습니다!!
답글이 늦었네요ㅠㅠ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제주스 좋네요 그렇지 않아도 제주스 좋아했는데 더 좋아졌어요. 글 잘봤습니다ㅎㅎ
제수스 진짜 여러모로 매력적인 선수인 것 같아요ㅎㅎㅎ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수스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