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3년 성가대 서며 주일 성수 합격에 대한 믿음 깨지자 낙담 재수 시절은 따뜻한 기도·격려 속 교만 꺾고 장래 성찰한 훈련의 시간
김동해 비전케어 이사장이 고등학생 시절 서울 서대문구 신촌 자택 책상에 앉아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천체물리학자를 꿈꾸던 문학 소년에게 고등학교 3학년의 현실은 매서운 폭풍우와 같았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고생 끝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확실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며 공대나 의대 진학을 강권하셨다. 평생 가난과 거듭된 사업 실패에 시달렸던 아버지로서는 장남인 나에게 안정적인 삶을 물려주고 싶은 절박함이셨겠지만 내게는 그 강요가 숨이 막힐 듯한 압박이었다.
당시 나는 입시 스트레스와 부모님과 팽팽한 갈등 속에서도 신앙의 끈만큼은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신촌교회 고등부 성가대를 섬기며 3년 내내 주일 성수를 생명처럼 여겼다. 주중에 하루를 온전히 내어 성가대 연습을 하고 주일 아침 일찍 교회에 가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시간을 쪼개 썼다. 교회 선배들이 보여준 ‘신앙과 학업 모두에 충실한 모범’을 나 역시 따르고 싶었다. 이렇게 헌신하고 예배의 자리를 지키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내가 원하는 대학과 원하는 학과에 당당히 합격시켜 주실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당시 서울대 물리학과 커트라인은 웬만한 의대보다 훨씬 높았다. 원하던 성적이 나오지 않자 결국 부모님과 선생님의 거센 권유에 등 떠밀려 원치 않던 의대에 지원서를 냈다. 결과는 참담했다. 1차 지망 대학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2차로 지방 의대에 합격하긴 했지만 상처받은 자존심과 부모님을 향한 깊은 반항심에 결국 합격증을 찢고 재수의 길을 택했다.
재수 학원에 등록하던 날부터 내 마음은 캄캄한 광야로 내동댕이쳐졌다. 부모님과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무엇보다 내가 철석같이 믿고 매달렸던 하나님을 향한 배신감과 원망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하나님, 제가 주일을 어겼습니까. 남들 공부할 때 성가대 연습하며 주님을 찬양했는데 돌아오는 결과가 고작 이것입니까.’
마치 마귀가 귓가에 대고 “그것 봐라. 네가 잘난 척하며 유별나게 신앙생활 하더니 무슨 소용이냐”라고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으신 하나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앉아있었지만 내 영혼은 차갑게 식어갔고 깊은 회의감 속에서 방황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처 입고 반항하는 나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곁에서 묵묵히 기도해 주던 교회 선배들과 어머니의 따뜻한 격려였다. 그들의 위로 속에서 나는 서서히 원망을 거두고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처절했던 재수 시절은 실패와 좌절의 시간이 아니라 내 교만을 꺾고 장래를 향해 깊이 성찰하게 하신 하나님의 훈련기였다. 내 고집대로 천체물리학과에 갔더라면 평생 밤하늘의 별만 바라봤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꺾으셔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잃어가는 가난한 이들의 눈망울을 보게 하시려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던 것 같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의대 진학을 준비했다. 알 수 없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내 삶의 방향키를 내어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