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염시태의 신심과 교리 그리고 그 사회적 의미
창세 3,9-20; 에페 1,3-12; 루카 1,26-38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 2020.12.8.; 이기우 신부
사회교리 주간의 둘째날인 오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오늘 전례의 주인공이신 성모님을
수호자요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기에 이 미사는 각별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것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음사가는 물론, 예수님도 심지어 성모님 자신도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이것이 믿을 교리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순전히
초대교회 시절부터 신자들 사이에 내려온 신앙 감각의 발로입니다.
그리고 이를 존중하여 믿을 진리로 드높인 주역은 1854년 12월 8일에
무류성 수위권이라는 고유한 권한을 발동한 비오 9세 교황이었습니다.
신학자들도 반대했고, 고위 성직자 관료들도 망설였으며, 그 이전의 역대 교황들까지도 주저했습니다.
피조물은 신이 아니므로 마귀의 지배에 노출되어 있어서 원죄에 물들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라고 해서 예외를 둘 수는 없다는 것이,
신학자들이 반대하고 역대 교황과 고위 성직자 관료들이 망설이고 주저했던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의 신앙 감각을 이끄시는 성령께서는 이러한 신학적 논리보다
더 명쾌하고 단순한 이치로 이 무염시테의 신비를 믿어야 할 진리로 만드셨습니다.
이 신비가 성모님 한 분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예외적인 역사적 사건이라면,
굳이 믿을 교리로 반포할 것 없이 전례상 축일 중의 하나로 기억하면서 경축하기만 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동정의 몸으로 잉태하시고 다윗 가문에 속한 요셉의 아내로서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낳아 기르실 어머니라는 고유한 소명을 받으셨기에,
하느님께서도 그에 걸맞는 준비를 하셨을 것이 틀림없다고 신자들은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하여 오실 구세주를 낳으실 어머니가 되실 분도 원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세상에 오시게 각별히 보호하셨으리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구세주의 어머니이시라는 품격에 맞는 준비를 하느님께서 하셨으리라는 신앙 감각이었습니다.
무려 천 8백 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여 이어져 내려온 이 신앙 감각 속에
담긴 진리를 알아본 비오 9세 교황은 가톨릭 교회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권위있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이 반포된 이유입니다.
따라서 무염시태 교리는 인성을 취하신 하느님께서 인성을 신적인 품위로 드높이신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원죄에서 벗어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열린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인간의 품위가 예수님처럼 존엄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형제애의 계명을 하느님을 흠숭하는 길이라고 가르치시면서,
친형제만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이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이들에게도 실천하라고 분부하시고, 성체성사로 이 사회적인 사랑의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마다 우리는 이 계약에 동의하는 것이고,
그 지향대로 사랑을 실천할 때마다 세상의 죄를 없애는 것입니다.
이 신비에 따라서 한국 교회의 수호자요 주보가 되신 때는 믿을 교리로 반포되기도 전인 1836년이었습니다.
이 당시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소 브뤼기에르 주교가 입국을 시도하다가 길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후임 교구장으로 임명된 엥베르 주교가 교황청에 그렇게 청원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황청에서는 기왕의 주보이셨던 요셉 성인과
무염시태 성모 마리아를 함께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정해 주었습니다.
엥베르 주교의 청원에는 박해받는 조선 교회를 성모님께서 보호해 주십사 하는 의미와 함께 요셉 성인을
주보로 모시고 있었던 북경 교구로부터 조선 교구가 정신적으로 독립하기를 원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황청에서 요셉 성인과 무염시태 성모를 공동 주보로 정해준 결정에는
북경 교구와의 정신적 유대가 단절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고 봐야지요.
그 결과, 한국 가톨릭 교회는 무염시태 신심이 성가정 신심과 함께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심이 무염시대 교리로 선포됨으로써, 신자들이 박해가 종식된 후에도 세상의 죄에
물들지 말고 오히려 세상의 죄를 없애는 대속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청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요청이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반포한 새 회칙의 취지였습니다.
바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로 사회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죄에 물들지 않음은 물론,
신성에로까지 드높여진 존엄한 인성을 갖추고 세상의 죄를 없앨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제1원리로 가르치는 ‘인간의 존엄성’ 원리입니다.
이제껏 이 원리는 인권이 유린당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 강조되어 왔습니다만,
이들이 세상에서 인권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들의 인권을
무시해 온 세상의 죄를 없앨 각오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도 이 교리에 담긴 신앙감각을 갖추어야 하며,
아울러 무염시태 성모님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신자로서 이에 걸맞게
인간을 무시하는 세상의 죄를 없애려는 지향을 지녀야 하고,
그 열매는 사회적 사랑의 행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인권이나 인간 존엄성을 말하는
세상이 비로소 그 근거와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