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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ZSvPjKnYB5k?si=ndgRR97a6ApVaTfV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 3:14~15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라 3:16~21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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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해지고,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하실 하나님께 영광이 무궁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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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 3:14~15
바울은 십자가로 하나 된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서서 기도했는데(눅 18:11), 바울이 무릎 꿇고 기도한 것은 전능자 앞에 항복하는 태도요 겸손함과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14~15절). 이는 아담이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 준 것을 연상시킵니다(창 2:19). 고대에는 국왕이 공을 세운 신하에게, 혹은 귀족이 노예를 입양할 때 이름을 주고 그를 소유로 삼아 권한을 행사하며 보호 책임을 다했습니다.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전능자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은 하나님을 어떻게 불렀으며, 그 호칭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기도할 때 내가 하나님 앞에 수식어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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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라 3:16~21
기도는 교회 연합의 힘입니다. 바울의 기도 내용은 첫째,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입니다(16절).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적 인격이 강건해지면 박해와 유혹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는 것입니다(17절). 말씀과 기도로 믿음이 자라 가면,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고, 하나님 뜻에 민감한 영성을 갖추게 됩니다. 셋째, 사랑 가운데서 뿌리와 터가 견고해지는 것입니다(17절). 사랑은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고 하나로 결속하게 합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18~19절). 바울은 그 사랑의 너비(만민을 품는 사랑)와 길이(영원한 사랑)와 높이(하늘의 유업)와 깊이(용납과 용서)를 깨달아 ‘하나님의 충만’으로 채워지길 간구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대할 때 교회는 하나 됩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내가 마음을 더 넓히고 용납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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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에베소서 3장 18~19절
꼭 필요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받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앓은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지식으로는 그분의 완전한 사랑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단번에 아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의 삶에 주어진 신앙 과제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총체적 삶에 응답하신다. - 빙햄 헌터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일상에 베푸시는 충만한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기쁘게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성령으로 제 속사람을 강건히 붙드셔서 세상을 이기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모시고 믿음 위에 든든히 서게 하소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아버지께 무릎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09 목마른 내 영혼)
하나님은 우리의 속 사람을 강건케 하여 주시고, 우리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잊지 말고, 그 은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우리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여 주시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는 주님께서 지금의 이 상황도 우리와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임을 굳게 믿고, 담대하게 이 상황들을 헤쳐 나가도록 하자
주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부어 주시고, 채워 주실 것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도록 하자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고, 그리스도가 성도들 가운데 거하여 그 사랑이 충만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하는 하나님에게 그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간구합니다. 본문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바울의 두 번째 기도, 성도들을 위한 세 가지 간구, 기도의 마무리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 여호와 하나님이 각 족속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주인이라는 것을 선포하며 그 이름을 주신 분에게 무릎 꿇고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대상의 존재를 인정해준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름을 부르심으로 인하여 각 민족과 족속이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낸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인정하며 부르신다는 뜻이지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폭과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고, 풍성하신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사랑이 아닌, 인간 지식의 한계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광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것임을 깨달으라’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너비는 온 인류를 품는 사랑, 길이는 끝이 없는 긍휼, 높이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 깊이는 이해할 수 없는 용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만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인간 스스로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바울의 중보 기도는 3개의 목적절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곧 세 개의 목적으로, 그것은 첫째, 성도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으로 성도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어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셋째,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충만한 것들로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즉,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구하는 것에 빠듯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차고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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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 ‘은혜가 풍성하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하게 하시기를 빈다‘는 말입니다. ‘영광의 풍성함’이란 ‘위력으로 역사하심’ 혹은 ‘다함이 없는 능력’과 같은 말입니다. ‘속 사람’은 새 사람과 같은 의미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의 내면을 말합니다. 그것에 비하여 겉 사람은 옛사람과 같은 뜻으로 여전히 죄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의 외면을 말합니다. 본문은 주의 풍성한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겉 사람은 거듭난 순간에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없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이 아니고, 자아를 입고 있는 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 안에 두 본질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새 사람이 능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 공존하고 있는 두 객체가 늘 대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 갈등을 호소합니다.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니’ 이는 자기 안에 여전히 거하는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칭의도 얻고 구원도 받고 은사도 받았지만, 인간의 죄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회만 되면 영락없이 올라옵니다. 여기에 신앙인의 모순이 있습니다. 영광의 길은 참 멀고 험합니다.
우리는 새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더는 겉 사람이 행세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속 사람이 겉 사람을 통제해야 할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겉 사람 역시 우리의 실제라 그렇습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해결방법을 제시합니다.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그 앞에 단서를 단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입니다. 그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했을 것입니다. 우리처럼 갈등을 겪고 내린 결론이 그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속 사람이 강건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겪은 실패들이 그 증거입니다.
힘 빼고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 첩경은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그분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 빼는데 어떤 사람은 몇 년이 안 걸리는데 어떤 사람은 평생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좋은 것이 있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 있습니다. 겉 사람은 빨리 죽으면 죽을수록 좋습니다. 그 속도로 속 사람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기에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갈 것입니다. 그때 우리 삶의 흔적에 속 사람보다는 겉 사람의 흔적이 많다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자격의 문제가 아니고 열매의 문제입니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겉 사람은 다독거리며 위로하며 때로는 설득하며 다루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단호하게 물리치며 부정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늘 우리 발목을 잡는 죄의 덫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속 사람이 진정한 우리입니다. 속 사람이 우리 삶을 이끌기를 바랍니다. 영적 진전이 늦더라도 조급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 있으면 바울이 말한 그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가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비노니"(엡3:15) 무릎은 히브리어로 "ברך"(베레크)인데, 축복하다, 찬양하다를 뜻하는 "ברך"(바라크)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무릎에서 축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눅22:41~42)
다니엘은 원수들이 자신을 해하려고 왕 외에 어떤 신에게든지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지는 금령을 제정한 것을 알고도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엘리야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 때 큰 비가 내렸습니다
"땅에 꿇어 엎드려"(왕상18:42)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 때 죽은 다비다가 살아났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행9:40)
한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간청했을 때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막1:40~42)
하나님은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0~11)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95:6)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주께 무릎 꿇고 이렇게 간구하기 원합니다
"주의 성령으로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오며, 주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옵고,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그 은혜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엡3:16~19)
‘충만하심의 정도에게까지 충만하게 되기를(19절)’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세상적인 것들을 감당하기 위해 먹고 땀 흘리고 눈물 흘리며 때론 배우고 나누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 쉼도 필요하지만 더 풍성한 것으로 채워 더 많이 누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 이들이 많은지 주변을 돌아보면 언제든 알 수 있습니다.
또 일상의 그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돌아볼 때에도 존재의 이유에 대한 답변을 그 치열한 일상의 삶 이상으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며 돌로 죽을 뻔하고 죄 없이 감옥에 갇혀 말할 수 없는 매임과 고통 가운데 처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금 편지를 쓰는 로마와 땅끝까지 주님을 증거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비전을 깨닫고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하고 충만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인과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그 로마의 그 지하 감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이름을 지어주시고 세상적인 공급이 없이도 성령으로 속사람을 날마다 강건하게 하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매 순간 동행하는 것이 진정한 일상의 삶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고난을 통해 그분으로부터의 음성으로 깨달았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가 깨달은 깊고 크고 높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세상의 지식과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분의 권능을 체험하며
공급받는 성도의 삶의 수준이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소수의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로 어느 곳에서든지 그리스도의 사랑 위에 바로 서고
그 은혜를 진정으로 누리며 전하는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가고 그 복음을 그 자리에서 지켜내는 인생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 공동체의 영적성장과 믿음 안에 거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14~15절).
하나님 아버지의 신령한 은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의 비밀을 깨닫게 된 바울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합니다. ‘나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빕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이십니다...’(14~15절,새번역).
내 자신은 비록 부족하고, 받을 만한 아무런 공로 또한 없지만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아버지께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경외심과 복종과 겸손을 나타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아버지께 간구하셨습니다.
스데반 또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하늘의 아버지께 마지막 기도를 올렸습니다.
본문의 바울 역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스데반의 기도나 바울의 기도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그리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오늘 내 자신의 기도 역시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영적 성장을 위한 기도여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는 말만 남발하지 말고,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시도 때도 없이 당신과 대화하시는 것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사랑 안에 거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16~17절).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16절). ‘속사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이나 심령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것보다는 하늘의 것,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 육신보다는 영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무릎을 꿇고 기도(17절)하였습니다. 즉, 성령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고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거주하시면, 그 결과 사랑 안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견고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이나 보이는 것이나, 육신은 결국 병들고, 후패해지고, 무너지고, 썩어지고,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 자신의 마음이나 심령을 강건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속사람이 강건해질 때, 복음의 진리를 담대히 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고난과 역경을 견딜 수 있고, 오래 참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고, 때론 핍박과 조롱과 억압의 고통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을 버린 것(계 2:4)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영적인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사랑으로 충만함으로 소망 안에 거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18~21절).
바울은 계속해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아 하나님의 충만함이 그들의 마음속에 채워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18~19절)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사랑하고 그 어떤 죄인도 다 품는 넓은 품이 하나님 사랑의 너비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로질러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그 사랑의 길이입니다.
그 사랑은 비천한 죄인을 하늘보좌에까지 끌어올릴 만큼 높으며, 창조주가 피조물의 자리로, 더러운 죄수의 자리로 내려가실 만큼 깊습니다. 그 사랑을 알면 두려움과 근심에서 벗어나 소망과 힘을 얻게 됩니다(옥한흠/이복다 좋은 복이 없다..중에서). 바울은 끝으로 우리 가운데 일하시고, 더 많은 것을 채워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교회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20~21절)으로 마무리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할 때, 하나님은 내 자신이 간구하거나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한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셔서 내 잔이 차고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세상적인 풍요를 추구하다가 정작 영적인 가난에 빠지지 않도록 매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 감으로 내 자신의 삶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충만함 가운데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인생이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내 자신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하심을 찬양하며 교회 공동체가 소망 안에서 든든히 세워져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사랑으로 깊이 감동 시키셔서 가정과 이웃, 교회를 위해 같은 기도로 간절히 무릎을 꿇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구하고 생각한 것보다 더 넘치도록 역사하시며, 성령으로 충만하여 두려움과 근심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엡 3:14~21절)...
10월20일 인천대공원역에서
14,15,20,21절 :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은 창조주, 통치자, 전능자, 구속자이십니다. 이름을 주시는 것은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일로,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고,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모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자녀 삼고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을 아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는 만큼, 깨닫는 만큼 우리 기도는 더 담대해지고 깊어지고 풍성해질 것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하나님은
-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셨다.
-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신다.
- 구하는 것은 더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 그의 영광이 영원하시다.
- 기도의 대상이 되신다.
나는 손으로 만들어진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생명도 아무것도 없는 그저 모양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게 복을 빈다.
자기의 생명을 그것에게 맡긴다.
내가 믿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시고 지금까지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오늘도 그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연약하여 그것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지만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매일 그 말씀을 접하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에서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려주신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14,15절 :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감옥에 갇힌 바울이 감옥 밖의 성도들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13절),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로마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참 주권자이심을 믿는 바울에게 '갇힘'은 사역의 장애물이 아니라 도리어 기도의 기회였습니다. 몸은 구속되었으나 교회를 향한 그의 생각과 심정만은 더할 나위 없이 깊고 자유로웠습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기도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하나님께만 기도해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다.
오늘도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한다.
모든 시간을 하나님과 더불어 호흡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16-17절 :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바울은 성도의 영적 성숙을 위해 기도합니다. 앞서 성도들의 '마음눈이 밝아지기를 구했던(1:18) 바울은 이제 성도들의 '마음'이 더 깊고 강건하고 충만해지기를 구합니다. 그 앎(1:19)에 걸맞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지도자의 관심이 향할 곳은 성도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기도는 그 열망의 표현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속사람의 강건함이 나에게도 필요하다.
연약한 모습일 때가 너무도 많다.
더욱 믿음 가운데 강건해져야 한다.
그리스도가 좌정하시도록 늘 내 마음의 왕좌를 내어드려야 한다.
그럴 때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질 것이다.
믿음은 세월이 얼마나 쌓였냐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교회 문을 드나들었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성경을 읽었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믿음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삶에서 나타나야 한다.
이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내길 간절히 다짐하며 소망해 본다.
10월20일 인천대공원역에서
17-19a절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17-19a 바울은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견고히 서기를 간구합니다. 이것은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할 때(16절),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실 때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충만과 그리스도의 내주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고(5:18),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6:17). 채움 없이는 사랑도, 세움도 없습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믿음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야 한다.
점점 더 견고히 서야 한다.
내가 주인이 되면 결코 설 수 없다.
오직 주님이 나의 주인으로서 나를 다스려 주셔야 한다.
나를 더 비워야 한다.
주님의 자리가 더 커지도록 비켜서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충만하도록 내어드려야 한다.
그런데 왜 자꾸 내가 주인이 되려 하는가?
왜 내 맘대로 하려 하는가?
왜 기도하지 않는가?
다시 주님 앞에 서 있는 하루로 살자.
18,19b절 :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완전한 수준까지 충만하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영적 성숙의 토양이 사랑이라면, 목표는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하나님을 본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16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기도해야 하며, 성도들과도 '함께'해야 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누구든지 실수를 하고 나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렇다.
사람이기에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실수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나의 힘으로는 안 된다.
연약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기도가 늘 부족하다.
오늘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
사도는 다시 기도를 합니다. 은혜의 경륜을 말하던 사도가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느껴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온 기도일 것입니다. 사도는 이제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은혜를 입은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한 아버지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표현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창세기 10장의 민족들의 목록을 생각하게 합니다(14~15).
사도는 먼저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기를 구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하심만큼,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16). 둘째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성도들의 마음속에 계시기를 구합니다(17). 셋째로 그 믿음이 사랑으로 표현되어,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모든 성도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구합니다(17~18).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도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그 사랑을 드러내기를 구합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정도에 비례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지식과 이해를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 길이, 높이, 깊이를 깨닫기를 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저들을 충만케 하시는 것, 이것이 교회를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19; 1:23). 하나님께서는 그 풍성하심을 따라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베푸실 것입니다(20). 사도는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구하는 송영으로 기도를 마칩니다(21).
사도가 ‘그리스도 안에서’라고만 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라고 말하는 것은 놀랍습니다. 교회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예정이 실현되는 현장입니다. 교회는 하늘과 세상에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를 선포할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세상에 그리스도의 모든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실존(몸)이 교회입니다. 이 점에서 사도는 교회와 그리스도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교회의 외양이 아니라, 교회에 주어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교회됨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을 가지게 됩니다. 만일 교회가 이런 영광스러운 가르침을 성경에서 얻지 못한다면, 교회는 세상의 한 조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영광이 회복되고 그 영광을 세상에 비추기를 구하십시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교회로 불러주시고 교회가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힘을 얻게 하옵소서. 또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풍성한 복음을, 주님의 교회에 맡겨주셨으니, 이 복음의 사명을 영광스럽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에베소서 3:14~21 크신 하나님, 큰 기도
비록 이방인이라 할찌라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이 복음을 위하여 내가 일군이 되었다라고 선포하며
그리스도의 비밀과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하려고
이방인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일 때문에 갖혀있는 바울이다.
바울은 감옥에 갖혀 있어도 에베소 교인을 잊지 못하고 있고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바울의 기도의 사이즈가 나의 기도의 사이즈와는 너무 차이가 있다.
바울의 기도는
첫째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16)
바울의 첫번째 관심은 속사람이구나.
돈, 권력, 인기, 명예, 외모에 많은 관심이 있는
나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르구나.
속사람이 강건하여 지려면 성령의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고
성령의 능력은 그분의 풍성함을 따라 오는 것
주여!!! 성령으로 말미암는 속사람이 강건하게 하옵소서.
속사람에 관심을 같는자 되게 하옵소서.
바울의 기도 두번째는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소서(17)하고 있다.
에베소의 믿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이니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말씀을 넘어서
거룩한 신앙생활, 능력있는 신앙 생활을 위해서
성령의 거룩한 영이 불편함이 없이 내 마음에 편안히 계시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내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그 분께 인생의 운전대를 내어 드리는 것
중심되신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여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자.
성령님이 근심하지 않도록 하자.
세번째 바울의 기도는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길 기도한다.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려야 가뭄에도 비 바람에도 견딜수가 있고
집은 반석 위에 세워야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든든하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이와 같이 외부적인 어려움과 상관없이
환경과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고 자라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도 환경과 관계없이
어떤 상황과 관계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뿌리가 깊이 박히고
믿음의 터가 더욱 곤고해 지기를 기도해 본다.
바울의 네번째 기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18)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길이가 어떠한지(19)
그분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그리스도 사랑의 넓이는 얼마일까?
나는 미운 사람, 싫은 사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사귀고 싶은 사람이 구별된다.
그러나 그분은 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 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는 얼마일까?
나는 강건하면 80평생 살면서도 구별하고 차별하는 사랑인데
그분은 창세 이전 부터 영원 이후까지의 길이의 사랑이다.
그분 사랑의 높이는?
내가 하늘에 올라 갈찌라도 거기 계시며(시139:8)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시는 아버지의 사랑이시지 않은가
그분 사랑의 깊이는 얼마인가?
음부에 자리를 펼찌라도(시139:8) 그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지 않는가
입체적 아버지 사랑의 크기는 측량 할 수 없는 크기이고 영원한 크기이시다.
잠시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근심과 염려와 걱정에 매여 있었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되어 주시고 영원하시며 무한하신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을 다시금 부어 주시옵소서.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사랑하기로 결정합니다.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바울의 다섯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한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충만하길 기도함과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참 크기를 충분히 알 수만 있다면
천국은 물론이요, 지옥도 천국과 같이 됨을 알고 중보기도를 하자.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충만해 지도록......
구원과 능력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과
믿음의 선진을 통해 쉬지 않고 일하시고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열심과 능력을 입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날마다 그 구원의 충만한 기쁨으로 누리고
감사하며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삶을
이어가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신음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모든 세상적인 욕심과 죄악들을 아버지 앞에 내려놓고
깨어 기도하며 주신 사명을 전심으로 감당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