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를 지은 황안나 선생님이 가셨다.
내가 처음 황안나 선생님을 만난 것은 2005년 5월 28일 열시쯤이었다.
서울 남산 국립국악원앞에서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창립대회를 하기 전 남산 걷기의 출발점인
숭례문 앞이었다.
자신은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 퇴임하고 우리나라를 걷기를 소원했는데,
아들이 “이왕 걸을 바에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우리 국토를 걸었으면 좋겠다,”
<다시 쓰는 택리지>를 저술한 신정일 선생님이 이끌고 있는 우리 땅 걷기 창립대회가 열리니
그곳으로 가자고 해서 나왔다고 하였다.
그 뒤로 우리 땅 걷기에서 주관한 <민족의 젖줄 천 삼백리 <한강>과 <금강> <낙동강> <섬진강>
그리고 <해파랑 길>과 우리 국토 이곳저곳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걸었던 시절 인연이 있었던
황안나 선생님이었다.
그 뒤로 먼 듯 가까운 듯 살다가 언젠가 남편인 신정진(나와 같은 성씨辛)님과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하시기도 하셨다.
그런 선생님의 부음을 접하고 마음이 쓸쓸하다.
올해만 해도 유혜경, 서동성, 서명숙의 뒤를 이어 나하고 수없이 많은 국토를 걸었던 사람이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2005년 5월 대한민국의 걷기 문화를 활성화하고 선도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걷기 단체인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를 발족하고서 촬영한 단체 사진을 꺼내어 가만히 바라다 본다.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역사학자 이덕일, 강호 동양학 연구소 소장인 조용헌, 역사학자 김병기,
사람과 산 대표였던 홍석하, 국회의원을 지내다가 지금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김성주, 행사 발족식에 사회를 보았던 서향숙 아나운서, 경주의 답사가 이재호, 산악인 박기성, 문경시 학예연구사였던 안태현(공군사관학교박물관장) 전국 지리교사연합회 오기세 회장 그리고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수많은 사람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서 홍석하 대표도 가시고, 김지하. 김영주 선생님 내외, 그리고 황안나 선생도 가셨구나.
그때 우리땅걷기 발족 즈음의 상황을 「중앙일보」의 조우석 전문기자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현대인들은 일단 차만 버리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지요.”(문화정책연구소, 정희섭). “고속철도의 속도혁명을 말하는 요즘인데, 우리들이 펼칠 걷기운동은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요?”(재야역사학자 이덕일). “그렇죠. 확신하건대, 걷기야말로 진짜 웰빙이죠. 빠름에 길들여진 우리들이 느림을 재발견하는 계기이고요. 우리 땅과 물줄기를 스쳐 가는 주차간산 여행과 또 다른 국토사랑의 답사입니다.”(신정일).
2005년 5월에 발족한 <사단법인 우리땅걷기>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2007년에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이 발족되었고,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수많은 걷기 단체들이 생겨나 오늘에 이르렀다.
문득 함께 걸었던 그 무수한 길이 활동사진처럼 펼쳐지고, 목소리가 들릴 듯 싶다.
우리 땅 걷기 도반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였지만
가장 씩씩하고 의연하게 걸으셨던 황안나 선생님
부디 내세에서도 잘 걸으시고 행복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을 읊조리며 선생님(저승이 있다는 전제하에)은 저승에서 저는 이승에서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갈망하며 이만 마칩니다.
상향
2026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