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중 만나는 미켈란젤로와 르네상스
피렌체의 아침 공기는 유난히 무겁고도 향기롭다. 돌바닥을 적신 비 냄새 위로 커피 볶는 냄새가 엷게 감돌고,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커다란 돔이 마치 르네상스의 심장을 품은 듯 도시를 감싼다. 이곳에선 시간조차 과거를 되풀이하는 듯, 한 걸음마다 예술의 흔적이 발밑에서 깨어난다.
미켈란젤로. 그 이름 하나로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단지 조각가도, 화가도, 건축가도 아닌, 신과 인간 사이를 잇는 해석자였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은 단순한 미술 기행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탐험하는 여정이었다.
피렌체 – 천재의 시작
‘다비드’는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우뚝 서 있다. 전신을 감싼 대리석의 살결은 당장이라도 숨을 쉴 듯 생생하고, 눈빛은 고요하지만 도전적이다. 적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사실, 바로 인간의 한계와 싸운 미켈란젤로 자신의 눈빛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앞에 섰을 때 나는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의지’에 압도되었다. 그는 돌에서 신을 꺼낸 게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저항을 꺼냈다. 르네상스란, 그저 꽃 피운 시대가 아니라 피로 물든 시대였다. 미켈란젤로는 그 모든 갈등을 조각했다. 아름다움은 그에게 고통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렌체는 곳곳이 그의 숨결이다. 메디치 예배당의 무덤조차, 그는 단순히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 아닌, 죽음 너머의 생을 조형했다. 낮과 밤, 새벽과 황혼을 형상화한 그의 조각들 앞에서 나는 시간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로마 – 신과의 싸움
그리고 바티칸. 로마에서 만난 미켈란젤로는 한층 더 고통스러웠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그리고 최후의 심판.
그곳에선 목이 아프도록 천장을 올려다보며,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창조자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느님이 아담에게 손가락 하나를 뻗는 그 장면. 그러나 그 간격은 닿지 않는다. 미켈란젤로는 아담을 잠든 신의 피조물이 아닌, 스스로 깨어난 인간으로 그렸다. 인간이 신과 맞닿을 수 없지만, 끝없이 손을 뻗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최후의 심판 벽화 앞에서 나는 발끝이 저릿했다. 구원받는 자들의 환희보다, 지옥으로 끌려가는 자들의 고통에 시선이 멈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진실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았다. 그는 진실을, 두려움을, 죄책감을 그렸고, 그러기에 영원히 살아남았다.
미켈란젤로와 르네상스, 그 황혼 속에서
이탈리아 곳곳에서 만나는 르네상스는 찬란함보다는 고뇌에 가깝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것은 화려한 색채보다 고요한 울림이었다. 그는 예술가였지만 동시에 철학자였고, 삶의 어두운 단면을 껴안은 신앙인이었다.
내가 르네상스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부흥'이라는 말 속에 슬픔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버린 고대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는 과정은, 다시 말해 죽음과 싸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서 미켈란젤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고뇌하고, 고독 속에 새겨 넣었다.
돌아와 다시 생각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 나는 피렌체의 골목을 다시 떠올렸다. 우산 아래에서 다비드를 올려다보던 순간, 바티칸의 붉은 천장 아래에서 숨죽이며 올려다본 천장. 그리고 그 모든 예술이 말없이 말하던 문장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을 때 가장 위대해진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내 삶의 지도를 바꾸었다. 그는 과거의 예술가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동시대인이었다. 나 역시 그처럼, 무언가에 맞서며 하루를 깎아내고 싶어졌다. 내 안의 돌을 깎아, 나만의 형상을 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