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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1 – 4:6 하나 됨을 지키는 성숙한 공동체
부르심에 합당한 삶 4:1~3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 됨을 지킬 이유 4:4~6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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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 우리는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한 몸이며, 우리를 부르신 만유의 아버지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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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에 합당한 삶 4:1~3
성도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 몇 가지 덕목을 제시합니다(2절). 첫째, 겸손과 온유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마 11:29). 겸손은 우월감을 버린 자기 낮춤이며, 온유는 다툼과 분노를 극복한 품성입니다. 둘째, 오래 참음입니다. 남의 잘못을 급히 정죄하지 않고, 그가 깨닫도록 기도하며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셋째,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의 약함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태도입니다. 성령은 평안을 끈으로 삼아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은 성도의 책무입니다(3절). 서로 연합하고 일치하는 삶을 추구하며 그리스도를 닮아 갈 때, 복음의 영향력은 강화됩니다.
● 더 깊은 묵상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성도가 실천할 덕목은 무엇인가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갖춰야 할 품성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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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됨을 지킬 이유 4:4~6
‘하나 됨’은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바울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교회)을 힘써 지켜야 할 이유를 설명합니다. 첫째, 성령이 한 분이시듯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기 때문입니다(4절). 교회는 성령 강림으로 탄생했고, 성령을 통해 세례와 은사를 받습니다(고전 12:11, 13). 둘째, 그리스도인은 ‘한 소망’(4절)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 소망’은 미래에 상속받을 영생을 의미합니다. 셋째, 주님도 한 분,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이기 때문입니다(5절).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신앙의 사도로 삼으며(히 3:1),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넷째, 하나님도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6절). 만유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 안에서 교회는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그리스도인이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힘쓸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삼위일체 하나님,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한 몸의 일부임을 고백합니다. 같은 방향의 길로 함께 가라고 부르신 지체들과 관계가 깨어지지 않도록 성령의 지혜와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제가 속한 곳에서 사랑의 전달자요, 막힌 담을 허무는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며,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고,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기 위해 열심을 다하자
매일매일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 믿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흔들림 없이 이 길을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에베소서 4장.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교회 공동체의 삶.
1. 성도가 은혜로 인하여 얻은 구원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교회의 비밀을 설명한 사도는, 이제 4~6장에서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교훈을 적용하여 권면합니다. 그것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거룩하고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삶은 그 신분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줄거리와 본문이해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즉, 아름다운 성품으로 서로 용납하고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하나됨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성령도, 주님도, 믿음도, 세례도, 그리고 하나님도 한분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부르심에 합당한 삶, 부르심의 목적, 하나됨을 지켜야 할 이유 등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 성도들을 향하여 한 말로, 구원을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독생자를 통한 새 생명으로의 초대를 말합니다. 그 부르심은 힘써 지켜야 하는데, 모든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여기서 ‘온유’는 ‘이해심이 깊은’, ‘한편으로 치우지지 않는’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이며 성령의 열매를 말합니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 ‘주님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이며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한 분이시라’는 말로, 바울이 하나됨의 근거를 제시한 것입니다. 따라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한 성령을 받고, 한 주님을 섬기며, 한 믿음을 가지고 아울러 동일한 세례를 받아 한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도 한 분이시오’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복종한다는 뜻으로, 주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고백한 초대 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됨은 하나님에게까지 확장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입니다. ‘만유의 아버지’라는 말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로서 인간을 구속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강조하는 표현이고, 기타 나머지 표현은 우주적인 아버지를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해 있고, 모든 것의 속안에도 있어 꽤 뚫어 보지 못하는 것이 없고, 그래서 그분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하나 됨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개척한 에베소 교회에 분열의 조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파로 나누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아볼로파’, 게바파; ‘바울파’ 그리스도파다.' 같은 것들입니다. 이는 매우 불경건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토록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3. 해설과 묵상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 하나님의 한몸 프로젝트로, 믿는 이들은 한 소망 안에서 하나라는 선언입니다. 이는 교회의 하나됨, 곧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성도들의 하나됨에 대한 설명으로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령이 하나이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지체가 몸과 분리될 수 없듯이 성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어 그렇습니다. 둘째는 한 소망안에서 하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곧 성도의 모든 소망은 하나로, 영원한 생명에 대한 부르심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한 분이듯이 그분에 대한 믿음 역시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분에 대한 믿음은 결단코 나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네 번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서 모든 것들이 나왔고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다 그분께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결코, 분리될 수 없으니, 만세전부터 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한 몸 프로젝트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 몸 프로젝트!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며 현재를 이끌어가는 힘이며 미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되어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 일은 초대교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로부터 약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 이런 일이 없을까요? 교회공동체 내에서 분열하고, 나뉘고, 떠나는 일 등입니다. 아닙니다. 없어지기는커녕 더욱더 불거지는 현실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나 단체가 아닌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로 구성된 모임입니다. 그 조건은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종, 성별, 신분, 학력 등에 상관 없습니다. 즉, 남녀노소에 상관 없이 부자가 가난한 자나, 많이 배운 자나 적게 배운 자나, 심지어 좋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관계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교회입니다. 따라서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모임은 유유상종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 루울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상처를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환경의 격차로 오는 열등의식이나 혹은 우월의식 등입니다. 또한, 성격과 기질의 차이로 오는 아픔도 있습니다. 즉, 상대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받는 고통을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다름아닌 빈부의 격차입니다. 이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초대 교회서부터 있었던 이 일은 여전히 내려오는 악순환적 피해입니다. 그래서 성도간 생기는 것이 갈등이요, 다툼이요, 멸시와 조롱 그리고 따돌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현상이 일어나고, 그것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교회를 떠나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떠난 사람 중에 연약한 지체는 다시는 교회공동체도 돌아오지 않는 비극이 발생하는 것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 그래서 우리는 바울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예수님의 용서를 받고 새사람이 되었다면, 그 한량 없는 은혜와 사랑 안에 살고 있다면 인간적인 면이나 세상의 것들을 모두 아울러 한 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한 몸)됨이 이 책의 핵심 주제인 것입니다.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우리 는 모두 성화의 과정으로 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결같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며 사명이며 또한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용납해야 합니다. 설령 상처를 준 사람이 있어도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나 또한 용서받은 죄인이고, 나도 모르게 또한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쇼핑몰이 아닙니다. 맘에 들면 오고 안 들면 옮기는 그런 장소가 아닙니다. 이는 마치 맘에 안든다고 가정과 식구를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는 영적 가족으로 장차 하늘나라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도간 금전거래나 투자 그리고 비즈니스 같은 것은 금물입니다. 처음에 의도가 좋은 것일지라도 나중엔 사악한 세력이 틈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들어오는 악한 예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떠날 수는 있습니다. 조용히 혼자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무리를 만들어 떠나는 자들도 있습니다. 정당성과 면죄부를 위한 것일지라도, 주동자나 동조자는 교회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영적인 책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멀리 이사를 가는 등 부득이한 일로 교회를 떠날때는 공동체의 축복을 받으며 헤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치 부모의 축복을 받으면 자녀가 결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몸이라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한 몸 프로젝트에서 일어난 역사입니다. 그 역사를 우리가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깨달은 사도 바울의 당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됨에 결단코 떠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믿는다면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1:27)
마찬가지로 회개한 성도라면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행26:20
) 또한 하나님께 부르심 받은 성도라면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엡4:1)
그러므로 우리를 부르신 주께서 겸손하시니 우리도 겸손하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
또한 우리를 부르신 주께서 한 분이시고 한 소망으로 부르셨으니 우리도 한 주만 섬기며 서로 하나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4~6)
그러나 합당치 않은 자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9:62)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38)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부르심에 합당히 행하기 원합니다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살전2:12)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기 위해 고난도 달게 받기 원합니다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1:5)
그래서 주의 날에 주께 합당하며 주의 나라에도 합당한 자라고 인정 받기 원합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3:4)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
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 되어야 하는 근거
4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3절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예정으로(1:11-14) 교회로 부름받은 우리는, 그 부르심(소명)에 합당한 ‘하나’로 살아야 합니다. ‘부르셨으니 책임져 주시겠지’라는 마음으로 손 놓고 있지 말고, 성령님이 우리를 묶으신 평화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힘써 지키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하고, 친절해야 하고, 끝까지 참아야 하고, 끝끝내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4-6절 ‘하나’라는 단어가 일곱 번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한 분이신 이를 한 고백으로 믿어, 한 세례로 연결되고 한 몸으로 연합하여, 한 소망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대상, 내용, 방식이 온통 ‘하나’인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반목과 분열은 불가피한 일이 아닌, 교회의 본질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1절)’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선교사역 중 가장 오랜 시간 정성을 들였던 에베소 교인들의 넘어진 믿음의 삶에 대해 여러 번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저를 포함안 그리스도인들도 말씀 안에서 성숙했다고 스스로 여기지만 오히려 더 교만해지고, 영적으로 갈급한 마음이지만 조바심과 성급함에 넘어져 쉬이 분노하며, 율법적인 잣대를 사랑보다 먼저 내세워 정죄하고 분리하고 용서가 없는 메마른 신앙생활로 그 시간을 채워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리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도구 삼아 우리의 욕심을 채워간다며 교회는 하나 되지 못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는 자는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결단하며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해주신 것을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진정한 신앙의 수준을 깨닫고 행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요.. 한 분이시니..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한쪽 눈은 왼쪽을 보면서 동시에 다른 쪽 눈은 우측을 바라볼 수 없고, 왼발이 오른발과 협력 없이 앞으로 걸어갈 수 없듯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 된 몸이므로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때론 역동적으로 서로의 다양성과 자유의지를 허용하면서도 성령 안에서 한마음을 품고 견디며, 가는 길은 달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소망을 품을 수 없는 성령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닮아가고 알아가는 구원의 이뤄가는 길이며 무소부재 하시며 전능하신 분의 날개 아래 믿음으로 거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온전히 주고 그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 되어 영원히 나라로 나아가는 복된 제자의 삶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은혜와 직분을 주신 목적
바울은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 뿐 이니라, 또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이 모두 히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도 각자에게 알맞는 은혜와 직분을 주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같은 은혜를 주신 것은 각자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각자가 받은 바 은혜에 따라 서로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며,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1~2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방법 제시
3~6 교회의 통일성, 하나 됨에 대한 도덕적인 권면과 일치의 원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부르심을 받은 일 (양자됨, 거룩함) 연합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 힘써 지켜야 할 것 ㅡ 온유, 겸손, 오래참음, 서로 용납, 평안
에베소서는 교회에 관련된 가르침을 그 주제로 합니다. 바울은 4장부터 본격적으로 교회에 속한 자들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4:1~16은 교회의 기본적인 속성인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데, 오늘 본문인 1~6절은 통일성에, 이후 7~16절은 다양성에 무게를 둔 설명이 이어집니다.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주 안에서 갇힌 내가” 직역하면 “주 안의 죄수인 내가” 에베소 성도들을 권한다고 합니다. NIV는 "a prisoner for the Lord"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원문은 정관사가 사용되고 있고, for 보다는 in으로 많이 번역된 전치사 ‘엔’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와 영어 단어를 1:1 번역을 한다면 “I, the prisoner in Lord”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를 ‘사도’(아포스톨로스)가 아니라 ‘죄수’(데스미오스)라고 지칭함으로써 “주 안에 있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권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사도의 권위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것을 통해 교회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기본적 태도가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말하자면 지금 바울은 ‘죄수’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말처럼 자기도 죄수로서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겸손, 온유, 인내, 사랑, 용납, 평안 등으로 설명되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즉 노력해서, 부지런히 지키라고 이야기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함”은 분명 서로 다른 부르심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저절로 하나가 되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한데, 특히 바울처럼 자기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 겸손, 온유, 인내 등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들을 용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이는 바울이 하나됨을 강조하기 위한 송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하나 됨은 절대가치라는 선언입니다. 앞에서는 바울이 자신을 “주 안에서 죄수”라고 부르는 등 ‘부르심’이라는 표현이 성도 각자의 다양성을 의미할만한 자리에 사용되었지만, 여기서는 “부르심의 한 소망”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 모든 다양한 부르심이 하나의 소망으로 묶임을 나타냅니다.
몸, 성령, 소망, 주, 믿음, 세례, 그리고 하나님, 총 7개의 단어들이 제시되며 하나 됨이 강조되는데, 특히 하나님은 만유, 즉 우주 모든 만물 위에 계시고 그것을 통일하시고, 또한 그 가운데 계신 분이라고 선포됩니다. 이는 교회의 하나 됨은 세상의 모든 것,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뿐 아니라 물질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에 이르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선언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생명의 위험까지도 감수했으며, 교회로부터 자기 생활을 위한 후원은 받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를 이방인 교회가 돕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통해 결과적으로 유대인 교회가 이방인 교회가 하나 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헌금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사람입니다(고후 8~9장 참조).
사실 바울이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도 마게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 아가야(고린도), 아시아(에베소)의 이방인 교회로부터 연보를 걷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함으로써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를 형제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죄수가 된 이유도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현대 교회를 섬기는 우리도 이런 마음과 노력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고, 더욱 강화시켜야 합니다. 원래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부족하고 죄인인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저절로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각 교회에서 이런 하나 됨을 위한 노력이 모든 성도들에 의해 이뤄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떠한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 합니까?
➲ 온전한 마음과 섬김으로 교회는 하나 돼야 합니다(1~6절).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은혜를 경험한 성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겸손함과 온유하며, 마음을 너그러이 하여 참아 주고, 서로 사랑으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킴으로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 명(1~3절)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모든 삶에서 선한 행실로 나타나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합니다(4~5절).
한 분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아버지시고,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는 분(6절)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어떤 경우에도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 됨을 지키지 않고 서로 대립하고 반목한다면, 그것은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임을 아울러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은총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면 온전한 성품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무엇보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공동체가 하나 되도록 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소한 일로 다투고 작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소중한 나의 삶을 허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갈등이 있고, 분열의 조짐이 보일 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하나 됨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성령의 능력에 의지할 때, 비로소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하나 됨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눅 11:17) 무너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지체로써 하나가 되도록 온전한 마음과 섬김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1절-16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 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성도가 하나 되도록 하시려고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분량에 맞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 나가야만 합니다.
1절-16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라
바울은 주님께 직분을 받은 자라면, 헌신과 봉사를 통하여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가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주께서 주신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는 믿음과 삶의 모습이 일치해야만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성실하게 믿는다면, 세상 속에서도 그 믿음대로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 가며 주님을 닮아 가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모두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도록 말씀을 공부하고 훈련을 받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가 전부가 아닙니다. 봉사와 헌신과 양육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는 주의 백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1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영성 개발은 부르심을 받은 삶을 살아가는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부르심은 자비롭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계시론)과 기꺼이 경청하는 사람(성화론)을 전제로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 듣는 것은 영성 개발을 위해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행위입니다.
4절,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것은 문자적으로 ‘한 몸’을 의미합니다. ‘한 몸’은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뜻합니다(1:23, 2:14-22). 이러한 ‘한 몸’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온전히 하나로 묶인 유기체로서 통일성을 이룹니다(고전 6:15, 10:17, 골 1:18).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성령을 영접하였다고 선언합니다(1:13, 14).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사이의 공통적 근거로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유기체적인 통일성을 이룬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믿음을 위하여>
엡 4:1-6
오늘 본문은 믿음의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구체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로서 일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하나됨의 중요성
에베소서는 크게 1-3장과 4-6장으로 나뉩니다. 앞 부분은 신학적이고 이론적인 부분이라면 뒷부분은 적용부분이고 실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창세 전부터 계획하고 일하신 것에 대해 말씀하였습니다. 그 구원은 하나님과 다시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말하였습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영광스러운 믿음에 대한 사람의 반응으로서 우리는 사람과의 연합을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Eph 4:1) 신앙인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지극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라면 사람과의 연합은 지극히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지극히 큰 것임을 알기에 그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서 이제 우리는 지극히 낮은 곳까지 낮아져서 사람과 연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낮아짐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낮아짐은 사실 하늘 보좌로 이르는 통로가 됩니다. 세상에서 낮아짐이 하늘의 높은 자리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위하여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Eph 4:2–3) 겸손, 온유, 용납, 평안 모두 얼마나 부드러운 것인지 모릅니다. 사나움을 벗고 부드러움을 가지십시오. 세상에서 높아지려면 사나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낮아지고자 한다면 충분히 부드러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너무 사나운 사람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빙자한 자신의 일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Eph 4:4–6) 일곱가지의 하나됨을 이야기합니다. 교회로서 몸, 신앙인 안에 거주하는 성령, 영원한 천국을 향한 소망, 우리의 영원한 대장 주, 모두가 공유하는 믿음, 믿음을 가지고 고백하는 거룩한 의식으로서 세례, 만물의 주되신 하나님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이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하나됨은 꼭 한 교회, 한 교단, 한 지엽적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공동체라면 그 안에서 서로 교통하는 하나 되어야 하며, 서로 다른 공동체라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하나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됨은 신앙인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공동체로 있는 사람이 마음에 않들면 헤어지면 끝이 아닙니다. 헤어져도 사랑해야 합니다. 말을 걸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공동체는 서로 교통해야 합니다. 그것이 매우 힘듭니다. 그러나 그래서 철저히 낮아지는 훈련이 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그 낮아짐이 없이는 믿음으로 높아지는 영광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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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예정으로 (1:11-14) 교회로 부름받은 우리는, 그 부르심(소명)에 합당한 '하나'로 살아야 합니다. '부르셨으니 책임져 주시겠지'라는 마음으로 손 놓고 있지 말고, 성령님이 우리를 묶으신 평화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힘써 지키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하고, 친절해야 하고, 끝까지 참아야 하고, 끝끝내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 겸손이다.
겸손에 얼마나 약한 모습인가?
겸손한 자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다.
온유함으로 대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다.
오래 참아주고 상대방을 세워줄 수 있다.
용서할 수 있고 받아줄 수 있다.
겸손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
말에서, 눈빛에서, 손짓에서, 태도에서 다른 사람을 누르지 말아야 한다.
빈 수레가 되지 않도록 겸손을 배워야 한다.
겸손한 태도로 다가가는 하루가 되길 다짐, 또 다짐해 보자.
4-6절 :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하나'라는 단어가 일곱 번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한 분이신 이를 한 고백으로 믿어, 한 세례로 연결되고 한 몸으로 연합하여, 한 소망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대상, 내용, 방식이 온통 '하나'인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반목과 분열은 불가피한 일이 아닌, 교회의 본질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하나 되어야 한다.
한 하나님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나뉘어진다.
교회도 그렇다.
교파도 그렇다.
자꾸 나누고 있다.
조금만 맞지 않으면 갈라진다.
갈라지니 더 편하다 한다.
색깔이 같은 자끼리 뭉쳐야 한다고 한다.
너와 내가 갈라진다.
마음이 맞지 않는다 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 되라고 강조한다.
가정에서부터 하나 됨을 힘써야 한다.
양보하고 배려함이 없이는 될 수 없는 하나 됨!
네가 아니라 내가 먼저 힘써야 한다.
에베소서 4:1~6 하나됨을 힘써 지키기
복음을 위하여 일군이 된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갖혀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에베소 교인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다.
(바리새인들은 서서 기도했었는데...)
중보기도의 내용도 참 감동이였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 속에 그리스도께서 내재하시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체적으로 깨달아 알아 충만하기를 기도하고
모든 영광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돌렸었다.
오늘은 특별히 에베소 교인에게 몇 가지를 권면하고 있다.
당연히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첫째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신다.(1)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릭 워렌 목사님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탁월한 삶을 기대하시고 계시는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하셨다.
주님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열매들이 있게 하옵소서.
둘째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라고 하신다.(2)
겸손과 온유 예수님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겸손이란?
낮출수록 커지는 삶의 지혜라고 했던가!
기독교를 혹자는 사랑의 종교라 하지만
그 사랑은 겸손을 뿌리로하고 피어난 꽃에 불과하다고 했다.
내가 겸손해야 할 이유는 피조물이기 때문이요, 죄인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세째도 겸손이라 했나보다.
온유란?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지만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엄청난 부와 명예와 지식이 있어도 잘 절제되고 통제가 될때 온유하다고 하는 것이다.
온유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다.
주님이 겸손하신 것 처럼 주님이 온유하신 것 처럼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성품들이 삶을 통하여 나타나게 하옵소서.
세번째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라고 하신다.(2)
주님이 나를 향해 오래 참으신 것 처럼
멸망치 않기를 오래 참으신 것 처럼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 서로 있는 모습 그되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내에게도 오래 참기 힘들고 자녀들에게도 오래 참기 힘들고
내 마음에 들면 받아 들이고 기분 나쁘면 거절하고
신경질 나고 짜증나면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내가 하나님의 걸작품이면 상대방도 위대한 걸작품인데.....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이 받아 주시듯이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오래 참기로 결단합니다.
네째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신다.(3)
새롭게 보는 것은 하나 되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해 놓으셨으니 나누지 말고 힘써 지키라고 명령하신다.
그렇군요. 이미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네요.
가족이 그렇고, 교회가 그렇고 내거 속해 있는 모든 조직이 그렇군요.
깨어짐과 나누어 짐과 분열과 찢어짐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네요.
바울은 최소한 7가지 근거를 제시 한다.
1. 몸이 하나다.(4)
2. 성령이 하나다.(4)
3. 한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다.(4)
4. 주님도 하나요.(5)
5. 믿음도 하나요.(5)
6. 세례도 하나요.(5)
7. 하나님도 한 분 이시다.(6)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택하시고 부르시어 하나님 자녀 삼으신 은혜를 감사드리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고
성령으로 보증하사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고
성령의 은사를 주시고
주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셨으니
그 은혜를 감사 찬양합니다.
구원과 능력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미리 아시고 또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이끌어 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며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날마다 고백하는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높이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