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개들(鬪狗行)
衆狗若相親(중구약상친)-뭇 개들 사이좋게 지낼 때는
搖尾共行止(요미공행지)-꼬리 흔들며 잘도 어울려 다니지
誰將朽骨投 (수장후골투)-누가 썩은 뼈다귀를 하나 던져주면
一狗起衆狗起(일구기중구기)-한 마리 일어나자 우르르 달려들어
其聲狺狺狋吽牙(기성은은의우아)-으르렁 거리며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네
大傷小死何紛紛(대상소사하분분)-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물려 죽어 어지럽다
所以貴騶虞(소이귀추우)-그래서 추우(騶虞)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高臥天上雲(고와천상운)-구름 위에 높이 누워 유유자적하기 때문이라
*추우(騶虞)-신령스런 상상의 동물
조지겸(趙持謙)
술맛은 좋은데 삽살개가 무서워 술이 팔리지 않는다 !
필자 어렸을 적 고향 이야기다.
동네에 술과 밥장사를 하는 집이 있었다.
지금처럼 음식점 가게를 차려놓고 장사하는 것이 아니고 가정집에서 막걸리를 담가서 팔았다.
그 시절에는 진주세무서에서 허가난 양조장(도가)외에는 술(密酒)을
만들지 못하게 하여 몰래 관청과 남의 눈을 피해 가면서 술을 담가 팔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만든 강제규정을 광복이후에도 그대로 이어 온 것 같다.
이집에 술맛이 매우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술맛은 좋다고 소문 났는데 술이 잘 팔리질 않아 막걸 리가 오래되면
식초(食醋)로 변하는 신맛이 생겨 그 귀한 쌀과 누룩으로 만든 술을 버리기가 일쑤였다.
주인이 하도 답답하여 한번은 가까운 친구에게 물었다.
-왜 우리 집 술맛이 좋다고는 하면서 팔리지 않느냐-고
친구가 대답하기를
-자네집 탁주(막걸리)맛이야 최고로 좋지.
하지만 자네집 삽살개가 사납고 무서워서----
알고 보니 개가 무서워 손님이 오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그런 삽살개를 볼 수 없지만 필자 어렸을 때 한국의 토종 삽살개는 온몸이
털로 덮여 있고 낯선 사람을 보면 정말 이를 악물고 사생결단으로 달려들며 짖어대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택도 없는 삽살개 때문에 술이 팔리지 않은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가 있었다.
당시에 군주(君主) 환공(桓公)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사성어(故事成語)에서 조건이나 이해에 상관없이 친구를 무조건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말할 때 “관포지교(管鮑之交)”라 말하는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가 이때의 인물이다.
하루는 제환공(齊桓公)이 측근인 관중(管仲)에게 물었다.
-국정을 수행하는데 걱정거리가 있는가?-
관중(管仲)이 대답하기를
-사당(祠堂)의 쥐 때문에 걱정입니다.
쥐란 놈이 사당(祠堂)에 구멍을 뚫었는데,
연기를 쥐구멍에 피워 쥐를 없애려 해도 불이 날까 겁나 어쩌지를 못합니다―
▲역시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위(衛)나라는 영공(靈公)이 군주(君主)로 있었다.
위령공(衛靈公)은 내시 환관인 옥저(癰疽)와 대부(大夫)인 미자하(彌子瑕)를 가까이
두었다.
두 사람이 권력을 농단(壟斷)해서 임금의 눈과 귀를 가렸다.
충신인 복도정(復塗偵)이 위령공(衛靈公)에게 나아가 말했다.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무얼 보았더냐?-
-꿈에 부뚜막 신(神)인 조왕(竈王)을 보았습니다-
-조왕(竈王)을 보고서 어째 나를 봤다고 말하는가?-
-앞사람이 불을 쬐면 뒷사람은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왕의 곁에서 불 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볼 수가 없고 불 쬐는 사람을 뵈었다고 했습니다-
조선 명종 때의 문신(文臣)인 신흠(申欽)이 쓴 “거폐편(去蔽篇)”에 나오는 글이다.
*거폐(去蔽)-눈에 티가 들어가 가린 것을 걷어 내는 것
술이 안 팔린 것은 맛 때문이 아니라 사나운 삽살개 탓이었다.
집안에 온통 구멍을 내고 곡식을 먹어 치우며 설쳐대는 쥐를 쥐구멍에 연기를 피워
잡아야겠는데 혹시나 집을 태울까 조심스럽다.
부엌이나 모닥불에서 곁불 쬐는 자가 앞자리를 가려 막으면 뒷사람은 추워도
불을 쬘 방법이 없다.
신흠(申欽)의 말이 계속된다.
播糠眯目 天地易位 一指蔽目 太山不見
-작은 겨나 잡티가 날려 눈에 들어가면 눈을 뜰 수가 없어 온 세상의 위치가 뒤바뀐다.
작은 손가락 하나로 눈을 가리면 태산도 안 보인다.
왜 그런가?
故天地太山在遠 糠與指在近也
천지(天地)와 태산(泰山)은 멀리 있고, 겨와 손가락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제왕(帝王)시대만 겨와 손가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 시대의 대통령의 곁에도 겨와 손가락이 있다.
대통령 가까이는 측근(側近)과 신임(信任)과 총애(寵愛)를 받는 자가 있고,
밖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관료가 이들이다.
이들이 대통령 눈을 가리고 있다.
▲하나더 고사(故事)의 예를 들겠다.
중국 진(秦)나라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은 진시왕의 아들 호해(胡亥)가 있었다.
호해(胡亥) 황제 옆에는 중국역사에 그 이름이 회자(膾炙)되는 이사(李斯)와 조고(趙高)가 겨와 손가락역활을 하여 호해(胡亥) 황제의 눈을 가려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하늘과 태산(泰山)같은 인물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다.
대통령의 측근 중에서 대통령에게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측근이 얼마나 있을까?
대통령의 지시를 백번 수첩에 적어서 뭐 할 것인가?
국민을 위하는 공복(公僕)의 정신은 찾을 수 없고 그 자리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
눈에 들게 하는 것에 정신을 쏟는 것으로 보인다.
정의를 위하여 바른발 하기 보다는 통치자의 비위를 맞추고 측근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말을 통치자가 할 수 없도록 사전에 입막음을 할 것이다.
통치자를 위해 눈을 가리는 잡티와 손가락을 없애려 하는 자가 어찌 없었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통치자들은 어둡고 가려진 것에 익숙해져서 천지와 태산을 가리는
겨와 손가락을 하루아침에 없애려 들지 않는다.
그것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잡티와 손가락에 가리어
모두 불행한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을 국민들은 보고 있다.
멀리 볼 수 있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이 우리국민의 불행이다.
▲중국역사속에 통일국가로서 가장 강력하고 문화의 꽃을 피운 나라는 당(唐)이다.
당(唐)나라를 창업(創業)한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고구려와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 양만춘(楊萬春) 장군의 화살에 한쪽 눈을 잃은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중국역사에서 최고의 군주(君主)로 꼽히고 있다.
당태종(唐太宗)에게는 “아니 되옵니다”로 유명한 충신(忠臣) 위징(魏徵)이 있었기에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이 오늘날 세계역사에 빛나고 있다.
당태종(唐太宗)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신하(臣下)인 위징(魏徵)이었기 때문이다.
위징(魏徵)은 당태종(唐太宗)이 멀리 보고 많이 들을 수 있게 눈과 귀를 열어준
명신(名臣)이다.
당태종(唐太宗)은 위징(魏徵)의 충언(忠言)을 들어 주었기 때문에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도 선조 때의 이순신(李舜臣) 장군이나 연산군의 환관 김처선(金處善) 충신이 있었지만 선조나 연산군은 충신의 말을 들어 주지 않은 것이 다른 점이다.
필자의 옛날 고향 이야기에서 술집 주인은 문제의 삽살개를 집에 두지 않았다.
얼마나 삽살개를 좋아 했는지는 모르지만 먹고 살기위한 돈벌이 보다 소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읍참마속(泣斬馬謖)” 이다. 마속(馬謖)은 제갈량이 자식같이 사랑한 장군이었다.
그러나 제갈량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 눈물을 흘리면서 참형(斬刑)을 내린 것이다.
또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춘신군전(春申君傳)에
“當斷不斷 反受其亂(당단부단 반수기란)”이 있다.
마땅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재화(災禍)를 입게 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국토와 국민을 위해서 눈을 어지럽게 하는 잡티와 장사를 못하게 하는
삽살개를 없애는 통치자의 혜안(慧眼)없이 국민의 행복은 없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