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설가 김성동 선생이 별세했다고 한다. 밤 여덟시 넘어서 인터넷 뉴스 보고 알았다. 한때는 그의 소설을 참 열심히도 읽었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먹고 사는 것에 매달리느라 그를 잊고 살았다.
어쩌면 이 시대의 마지막 순수문학을 했던 분이 아닌가 싶다. 충청도의 아름다운 우리말을 참 맛깔스럽게 살린 작가였다. 이문구 선생 떠나고 김성동 선생이 충청도의 글맛을 살렸던 작가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만다라였다. 언제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세로 쓰기로 된 책을 참 열심히도 읽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후 이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져 나의 인생 영화가 된다.
나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이창동의 박하사탕과 함께 만다라를 인생 영화로 꼽는다. 당연 여러 번 봤다. 한 네다섯 번은 본 것 같다. 전무송과 안성기의 연기 또한 그들의 인생 연기였다.
김성동의 대표작은 만다라지만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국수(國手)다. 國手라는 제목만 보면 바둑 소설로 생각하기 십상이나 국수는 당시 예인들의 삶을 그린 역사소설이다.
임오군란과 동학혁명 등, 조선 후기의 혼란기에 예인들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고 있다. 조정래의 아리랑이나 박경리의 토지보다는 장엄하지 못해도 어찌 국수를 폄하할 수 있으랴.
이 소설의 백미는 충청도의 옛말을 되살렸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란 생물과 같아서 시대 따라 변한다. 쉴드친다. 올드하다. 트렌디한 표현이다. 패셔너블하다 등 이런 말은 10년 전에 없었다.
심지어 내로남불까지도 최근에 유통되는 말이다. 듣보잡이란 말을 백년 전에 했다면 알아 들었을까. 김성동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충청도 사투리를 끊임없이 살려냈다.
그 노력의 결정판이 국수다. 김성동 작가는 10여년 전에 뇌경색으로 수술을 받았다. 언젠가부터 말이 어눌해지고 걸을 때 중심 잡기가 흔들리는데도 술을 자주 마셔서 그러려니 했단다.
어느 날 이 말을 들은 지인이 병원에 데려가 검사 후 바로 수술을 했단다. 이것도 대단한 행운이다. 이후 그는 술 담배를 하루 아침에 끊고 양평의 깊은 산골로 들어간다.
그 거처가 절 아닌 절이라는 뜻을 지닌 비사란야(非寺蘭若)다. 몸은 회복되었어도 말은 여전히 어눌했다. 그는 비사란야에 미륵불을 모셔 두고 아침 저녁 예불을 드렸다고 한다.
실제 김성동 선생은 출가해서 10년 넘게 승려 생활을 했다. 그때 만다라가 당선이 되었고 불교계가 반발을 하면서 그의 승적이 박탈된다. 이후 환속한 선생은 본격적인 소설가로 활동한다.
어깨동갑이란 말을 아는가. 나이가 한 살 정도 차이 나는 동무를 말한다. 나도 어깨동갑 친구가 여럿 있다. 소설가 김훈이 김성동과 어깨동갑으로 친구처럼 지냈다고 한다.
김성동에 비하면 한 살 아래 김훈은 훨씬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책도 많이 팔려서 김훈은 글 써서 돈을 버는 몇 안 되는 전업 작가이기도 하다.
김성동과 김훈은 한때 서울 불광동에서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곳에 살았다고 한다. 그때 틈틈히 만나 원없이 술을 마셨다고 했다. 마음이 통하는 두 도반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제 김성동 작가도 갔다. 향년 75세이니 요즘으로 치면 다소 이른 나이다. 나에겐 그냥 단순한 소설가가 아닌 형제가 떠난 것처럼 허전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 몰입을 했다.
내가 못 읽은 작품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작품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늘그막에 그의 거처 비사란야에서 쓴 글이 있어 옮긴다. 시처럼 읽힌다. 김성동 선생의 명복을 빈다.
눈 오는 밤 - 김성동
천지를 삼킬 듯 눈은 내리고 개울물은 꽝꽝 얼어붙었다
배는 고프고 목은 타는데 눈보라는 또 휘몰아친다
나는 왜 또 이 산속으로 왔나 물통은 또 어디 있나
도끼로 꽝꽝 얼음장 깨면 퍼들껑 멧새 한 마리
천지를 삼킬 듯 눈은 내리는데 나한테는 반야가 없다
없는 반야가 올 리 없으니 번뇌를 나눌 동무도 없다
산 속으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고
평안도 시인은 말했지만 내겐 버릴 세상도 없다
한 번도 정식으로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그립다 사람들이 보고 싶다
배고픈 것보다 무서운 건 외로움이고 외로움보다 더 무서운 건 그리움이다
눈이 내린다
염불처럼 서러워서 나는 또 하늘을 본다
첫댓글
위 김성동 소설가 충남 보령 출신.
위 글에서 나오는 이문구 소설가도 충남 보령 출신.
특히나 이문구 소설가는 보령지방의 말투를 살려서 글 썼지요.
위 글에서 나오는 김훈, 조정래, 박경리의 소설을 저도 좋아했지요.
사람은 가도 문학-글은 오래 남아서 독자를 감동시키겠지요.
만다라 소설을 쓴 김성동작가의 별세를 아쉬워 합니다.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엄지 척!
저보다 최윤환님께서 김성동 작가를 더 사랑하시네요.
이문구 소설 관촌수필을 표지가 닳도록 읽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내포 지역이 좋은 문인을 많이 생산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무척 공감이 가는 댓글이었습니다.
스무살을 갓 넘겼을 때 본 영화 '만다라'. 그영화가 던진 숙제가 무거워 술도 못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산 소주 한 병. 집에 돌아와 소주 찔끔찔끔 마시며 밤새 붙잡혀 있었던 그 화두.
'목이 좁은 병 속에 든 새를 어찌 꺼낼까?'
책에 답이 있을까 싶어 뒤늦게 책도 사보고, 냉담했던 천주교 신자가 석가의 가르침에 큰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었던 '만다라' 그 책을 쓰신 김성동 작가님이 돌아 가셨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 글쓰기의 근본이 시와 영화에서 나옵니다.
그렇지만 시와 영화를 알기 전에 김성동 소설도 한몫 거들었답니다.
하나씩 좋은 문인들이 떠날 때마다 저의 나이 먹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쓸쓸하네요.
마음자리님의 착한 심성이 댓글로 온전히 전해져서 좋습니다.
만다라...우주, 내가 속한세계 그 화두 하나 잡고 죽어라 매달려서 얻은게 뭔지 원효의 무애가를 듣는 듯 책을 잡았지요
소설 속 생각나는 한 장면 창녀와의 하룻밤 아침에 본 창녀의 음모가 칫솔같이 뻣뻣한 어쩌고 운운 생각나요 국수는 못읽어 봤지요 김훈 선생과 친하셨다니 제가 김훈 작가 광펜이거든요 젊을 땐 짝사랑으로 상상속 소설 한편 펴내기도 ㅎㅎ 김성동 작가님의 무진기행인가 그리고 이문구 작가 관촌수필 이문구씨는 김동리 문하에서 오래 수업하시다 뒤늦게 등단하셨지요 다들 그리운 이름 입니다 3년전 강릉 카톨릭대학에
김훈 작가 오셨지요 그때 펴낸 산문집 연필로 쓰기 홍보차 제가 맨앞에 앉아서 말씀 듣고 질문하고 귀한 시간였어요 요즘 하얼빈이란 신작을 냈더군요
현덕님 이 밤 문학 산책하게 해주셔서 고마버요 ㅎㅎ
운선님 이 글 읽고 다시 편두통 심해지면 어떡하나요.^^
맞아요. 그 창녀와의 관계 때문에 당시 불교계의 반발을 샀고
승적까지 박탈되었다고 하데요.
김훈 작가는 저도 참 좋아합니다.
그의 산문집 풍경과 상처, 밥 벌이의 지겨움 등을 탐독했던 때도 있었네요.
이래저래 운선님은 저의 글벗입니다.ㅎㅎ
저의 독서량은 15년 전까지가 전부인데다
문화생활이 전무라서
이런 글이 얼마나 고맙고
또한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지
글은
감성만으로 쓸 수 없다는 걸
절감하게 됩니다
저는 글보다는
소리꾼 되었으면 가슴의 웅어리는
풀고 살았으라 봐요
유현덕님 덕분에
잊고 있던 김성동 작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ㆍ별세라니요
내년 이 때 쯤이면
돼지 우리에서 탈출하여
흠흠
코로만 읽었던 책을 읽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윤슬님은 이 댓글 하나만으로 글솜씨를 알 수 있습니다.
댓글 또한 즉석에서 써야 하기에 이렇게 맛깔나게 쓸 수 없지요.
윤슬님 댓글을 읽을 때마다 작가가 신분을 숨기고
돼지우리로 위장취업을 한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여, 윤슬님은 이미 가슴 속에 시인의 감성을 담고 삽니다.
모쪼록 코로도 눈으로도 이 감성 계속 유지하시길,,^^
별세를 하셧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움이 유족에 비하겠습니까마는
제가 유독 탐독한 작가였기에 애틋한 마음이 더하답니다.
고운 밤 되세요.
눈오는 밤이라는 시를 보니
말년에 많이 외로우셨나보네요
평안도 시인 백석이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라고 했던 건
사랑하는 나타샤랑 흰당나귀가 곁에 있으면
그러하다는 것이고..
번뇌를 나눌 동무조차
없는 산골, 절아닌 절에서
자신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세상사람들을 그리워 하다 가신 듯 하여
괜스레 죄스러워 지네요ㅜㅜ
아사코님께서 김성동 선생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셨군요.
평생을 작가는 문학에 모든 것을 바쳤지만
독자는 TV 채널 돌리듯 무심할 때가 있지요.
문학하는 사람의 운명이자 짊어져야 할 고독이기도 합니다.
펑안도 시인 백석까지 언급하신 님같은 분이 계셔서
김성동 선생님은 가시는 길이 덜 외로울 것 같네요.
책과는 거리가 멀은 사람이라
이렇게 글 올려주시는 것으로도 감동하고 읽습니다..
눈 오는 밤..
배고픔, 그리움.. 고독..
마음 아프네요.
어차피 잠깐 머물다가
떠나는 인생인데
왜그렇게 자신과 처절하게
싸우다가 가는건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것이 문학인의 숙명 아니겠는지요.
이런 것을 누가 시킨다고 되겠습니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고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수명을 단축시키기도 하겠지요.
샤론님은 책과 거리가 있으시다니
제가 종종 올리는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하네요.^^
나는 유명한 단편소설은 몇 편 읽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남아돌아도~
단편소설보다 긴 글은 읽지 못해요...
문학작품에서 단편소설을 제외하면
긴 글을 읽은 것은 딱 하나 있어요.
박경리의 토지...
시는 짧아도 어려워서 읽지 못하고...
시는 외국어를 읽는 느낌...
솔직한 말씀이군요.
그래도 짧은 글이라도 읽으신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제가 이곳에 올리는 글도 저는 꼭 읽고 싶은 사람만 읽기를 바란답니다.
피케티님이 이런 댓글 다신 걸 보면 저의 긴 글을 읽으셨나 보네요.ㅎㅎ
네 그려셨군요.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