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마태21,33-43)
배은망덕하지 마라
사랑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십니다. 넘치도록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요한15,9). 그래서 하느님은 미리미리 사랑의 질타를 하십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가운데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기쁨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1독서를 보면, 포도밭을 가꾸는 주인의 노고와 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인은 산등성이에 밭을 일구어 돌을 골라내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운데 탑을 만들고 즙을 짜는 포도 확까지 만들어 놓고 포도가 송이송이 맺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이사5,1-2).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들포도가 열렸습니다(이사5,4). 온갖 정성을 다했건만 결과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결국 주인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담을 허물어 망그러진 채 내버려 두게 됩니다. 순을 치지도 않고 김도 매지 않고 황폐하게 두어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덮인 채로 두게 됩니다(이사5,5-6).
이사야 예언자는 이 비유 말씀에서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고,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이사5,4). 하느님께서 사랑을 주시는 만큼 사랑을 열매 맺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황폐한 밭이라는 의미입니다.
복음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훌륭하게 잘 가꾸어 소작인들에게 도지를 주고 멀리 떠났습니다. 그러고는 추수철이 되어 그 도조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이 소작인들이 간이 부었는지 종들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마침내 간이 배 밖으로 나왔습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주인의 아들까지도 죽이고 그 포도밭을 통째로 먹어버리려고 했습니다(마태21,33-38). 그야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그러니 그 주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 소작인들은 욕심으로 화를 자초하여 죽고, 새로운 소작인이 포도원을 경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종들은 예언자요, 아들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의 포도밭을 잘 가꾸어 소출을 내야 할 소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으니,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아무리 귀한 은총을 주어도 관리하지 않으면 그 권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이지만 자업자득입니다. 그러니 구원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결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고 (예레31,3)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5,8). 그리고 마침내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에페2,4).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에 대한 감사에 인색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두를 다 주셨음에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21,43). 결국은 걸맞은 삶으로 감사할 줄 모르면 죽음에 이르고, 소출을 내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는 돌판에 새기고, 베푼 것은 모래에 새겨라’ 했습니다. 우리는 거꾸로 사는 것이 아닌지요? 늘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갚기는 고사하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잘난 체하며 하느님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4,6-7)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면 그리스도의 평화가 선물로 주어집니다.
시편 50,14은 “사람이 하느님께 바칠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페5,20).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면 감사할 수 있는 일이 생깁니다. 억지로라도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감사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행실로써 감사드려야 합니다”(성 필립보네리). “모든 일이 당신의 생각에 가장 좋은 방향으로 되기를 바라지 말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되기를 바라십시오. 그러면 혼란에서 벗어나 기도 중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교부 실루스).
성경에서 감사를 드린 인물을 몇 명 보면,
아브람은 자기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던 자리에 제단을 쌓아 바쳐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하느님께 바치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내 마음은 주 하느님 생각으로 울렁거립니다. 하느님의 은덕으로 나는 얼굴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렇듯이 내 가슴에 승리의 기쁨을 주시니 원수들 앞에서 자랑스럽기만 합니다”(공동번역. 1사무2,1). 다윗은 하느님의 궤를 예루살렘에 옮겨 모시고 번제와 친교제를 바친다음 주 하느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복을 빌어주고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시켜 감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역대기 상16,7).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손을 들어 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습니다(루카24,51-53). 예수님도 죽었던 라자로를 살리신 후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요한11,41).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일을 찾으십시오.
내가 숨 쉬고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공짜로 숨을 쉬고 있으니 많은 빚을 진 것입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도 은총입니다.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은혜로움인지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이순간 미사를 봉헌하며 주님을 찬미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잔소리 많은 아내를 보고 남편이 말했답니다. ‘여보, 나 부탁이 있는데 당신 벙어리가 될 수 없겠소?’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어요. ‘나도 부탁이 있어요. 당신 귀머거리가 돼 줘요’ 벙어리가 되어달라는 남편이 있어서 감사하고, 귀머거리가 되어 달라는 아내가 있어서 감사하고요. 아내나 남편이 계시지 않는 분은 그런저런 부탁 받을 일 없어서 감사하고요. 자식이 말썽 피우지 않고 잘 자라주어 감사하고, 말썽 피우는 자식이라도 있어서 감사하고요. 무자식이 상팔자라 감사하고… 아픔을 느끼게 만든 자식이 있어서 가슴이 찢어졌지만 그래도 나를 철들게 하니 감사하고… 부모님이 계셔서 감사하고…… 감사합시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고 결코 배은망덕한 사람은 되지 맙시다. 무엇보다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하늘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