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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서 개요
1.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본서에는 '브두엘의 아들'이라는 언급(욜 1:1) 외에는 선지가 요엘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성전과 제사에 관한 그의 지식이나(욜 1:13-14) 예루살렘에 대한 잦은 인용으로 미루어 보아, 요엘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제사장들에 대해서 신랄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것을 보면, 요엘 자신이 제사장은 아니었던 것 같다(욜 1:13).
요엘은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던 선지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2) 기록 연대
본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본서의 표제 속에도, 본문 속에도 연대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기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본서의 기록 연대에 대한 추측은 주전 9세기부터 마카비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유다 8대 왕 요아스 재위 기간(B. C. 835-796년)중 초기인 830년경으로 본다. 그러므로 크게 바벨론 포로 이전설과 바벨론 포로 이후설로 나누어진다.
(1) 바벨론 포로 이전설:
바벨론 포로 이전설은 다시 초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과 중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로 나누어진다.
① 초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요엘이 제사장과 장로들에 대해서는 언급한 반면, 왕과 방백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학자들은 그 사실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섭정을 통해 통치를 시작했던 소년 왕 요아스(B. C. 835-796)의 시대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② 중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요엘의 사역 시기를 주전 8세기 초엽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본서가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를 유다의 대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3장 가운데 등장하는 여섯 이방 국가들이 초기 8세기 연대설을 뒷받침한다는 점. 그리고 본서의 메뚜기 출몰 사건 등과 같은 내적인 강조점들이 웃시야 시대를 반영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2) 바벨론 포로 이후설:
바벨론 포로 이후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본서에서 북왕국에 대한 언급이 없고,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지도자로 언급된 점을 통해 본서가 주전 4세기 중엽에 기록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본서의 문학 형태, 본서의 계시적 성격들이 바벨론 포로 이후설을 지지해 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본서에서 제사장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요아스 왕 초기인 주전 830년경으로 기록 연대를 잡고 있다.
3) 연대
B.C. 853 – 아합의 전사
B.C. 848 – 엘리사 사역 시작
B.C. 841 – 예후 이스라엘 왕 즉위. 아달랴 왕후 유다 섭정
B.C. 835 – 요엘의 사역 시작. 요아스 유다 왕 즉위
B.C. 814 – 여호아하스 이스라엘 왕 즉위
B.C. 796 – 요엘 사역 종결
B.C. 793 – 요나의 사역 시작. 여로보암 2세 이스라엘 왕 즉위
2. 주제와 기록 목적
1) 주제
본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이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섭리로 열국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만이 구원받는 국가적 선민의식이 반영된 날이다.
여호와의 날 – 이제라도 회개하는 자에게 축복이 임할 것이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그 소망의 날이 죄로 인해 심판과 애통의 날이 될 것임을 선포한다. 죄가 있는 한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근거 없는 교만으로, 두려운 심판만이 그들의 목전에 있다.
그러나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은 여호와의 날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에는 이처럼 은혜와 심판이라는 양면성이 있다.
2) 기록 목적
(1) 유다의 죄로 인해 여호와의 날이 무서운 심판의 날임을 경고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하면 구원의 즐거운 날로 알았기 때문에 그날을 사모하였으나 요엘 선지자는 그날을 '멸망의 날'(욜 1:15), '캄캄한 날'(욜 2:2), '심히 두려운 날'(욜 2:11)임을 알리려고 하였다.
(2)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요엘은 겸손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권면하였다.
(3) 심판의 때를 깨닫게 하는 데 있다.
하나님이 주실 영적 축복을 체험하도록 준비하게 하면, 또한 여호와의 날이 온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때임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임을 만인에게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다.
3. 배경
1) 요엘 선지자 활동 시기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를 왕위에서 다윗 왕권을 복원함으로써 요아스가 남유다를 통치하게 된 때다.
이 시기는 앗수르가 근동지역의 강대국으로 등장하기 이전 시대여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남북이스라엘과 베니게, 블레셋, 에돔이 서로 팽팽하게 견재하고 남쪽에는 애굽이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있던 시대였다.
2) 이러한 때에 갑작스러운 메뚜기 재앙이 남유다 땅을 휩쓸게 되었다,
그 결과 남유다 전 국토가 황폐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게다가 극심한 한재가 겹침으로 말미암아 사태는 훨씬 심각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불안에 떨게 되고 재앙의 원인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되었다.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셔서 이 같은 재앙의 궁극적인 원인이 남유다 백성들의 불신앙과 죄악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셨다.
물론 본서에는 그 죄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추측건대 그것은 요아스의 선왕 아달랴의 바알 숭배 조장으로 말미암아 횡행하게 되었던 각종 죄악과 성전 제사를 소홀하게 한 점을 가르킬 것이다.
하나님은 메뚜기 재앙과 한재는 장차 임할 더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에 대한 심판 전조로 이날이 임하기 전에 속히 회개하여 영원한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권면하게 하셨다.
4. 특징과 내용 구성
1) 특징
(1) 메시야 예언의 책이다.
욜 2:23의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성격상 '의의 교사' 즉 메시야를 가리킨다.
(2) 성령 강림의 약속이다.
욜 2:28의 '내 신'은 성령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으로, 성령은 언약을 통하여 새롭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령 받은 사람은 다가올 심판을 견딜 만큼 강건해지며,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열려질 것이다(욜 2:28-29).
(3) 계시적 종말론의 책이다.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을 언급하면서 이 여호와의 날이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요엘서가 계시적인 종말론, 곧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들을 포함한 우주적인 종말론을 맨 처음 선포한 책이라고 본다.
2) 내용 구성
요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곧 히브리 성경의 1, 2장(한글 개역 성경은 욜 1:1-2:17)과 3, 4장(한글 개역 성경 욜 2:18-3:21)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메뚜기 재앙에 관한 내용으로, 여기에서 언급된 메뚜기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곧 실제 메뚜기 떼의 출현, 이방인들의 침략 물결에 대한 풍유적 표현, 유대인들이 가장 최근에 겪었던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계시적인 설명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둘째 부분은 '여호와의 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날에는 이방 나라들 위에 징계가 내릴 것이나 유다와 예루살렘 위에는 축복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부어 주시고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에 관한 소식이 마지막 그날에 들려올 것이다.
5. 요엘서가 주는 의미
여호와의 날은 준비된 자에게는 축복과 구원의 날이지만 준비되지 않거나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과 무서운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본서는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본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큰 기쁨의 날로만 알려져 왔던 여호와의 날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무서운 심판의 날이 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종말론적인 상황과 메시야와 성령의 약속을 대비시킴으로써 여호와의 날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회개하지 않고 악한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자에게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날은 구원과 은혜의 날이 아닌 무서운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수밖에 없다.
< 참고 >
1) 요엘서의 문학적 독자설
요엘서의 문학적 독자설에 대해서는 두 가지 예로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1)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 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욜 3:16)에서 나타난 사상은 분명히 암 1:2보다 이전의 것이다.
왜냐하면 요엘서에서는 이 구절이 계시의 절정에서 나오는 반면, 아모스서에서는 이 구절을 본문의 출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 욜 3:10에서 여호와는 열국을 권하여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라고 하였지만 사 2:4, 미 4:3에서 그 이후의 선지자들이 예언하기를 유다의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시기가 올 것이라고 하였다.
즉 이상보다 현실이 앞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유다의 적대국들(욜 3장)
본서에 열거된 유다의 원수국들은 북쪽으로는 두로와 시돈(욜 3:4), 서쪽으로는 블레셋(욜 3:4), 남동쪽으로는 애굽(욜 3:19) 그리고 남쪽으로는 에돔(욜 3:19)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는데, 이들 국가는 9세기 후반에 앗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처음 접촉한 이후로 순서대로 유다의 적대 국가들이 되었다.
또한 다메섹의 아람인들이 언급되지 않고 있음도 주목해야 하는데, 이들은 이스라엘의 예후와 여호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을 공격했으며, 결국 유다의 요아스로 하여금 그의 통치 말기에 무거운 조공을 바치도록 하였다. (왕하 12:17-18. 대하 24:23-24).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적대국들은(블레셋, 두로와 시돈, 애굽, 애돔) 시대적으로 유다의 초기 적대 국가들이라는 근거에서 설명될 수 있다.
3) 메뚜기 재앙
예루살렘의 메뚜기 재해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록은 1915년「National Geographic Magazine」 겨울호에 화이팅(John D. Whiting)이 쓴 글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그 재앙이 그해 2월 말부터 시작하였으며, 이집트 국경에서 타우루서(Taurus) 산맥에 이르기까지 전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전 지역에 걸쳐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이 예루살렘 재앙의 경우에서는 메뚜기 떼가 어김없이 동북 방향으로부터 와서 남서쪽으로 진행했는데, 이것은 욜 2:20을 정확히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재앙의 또 다른 증인인 아론슨(Aronshon)은 메뚜기 떼가 출몰한 이후 두 달이 못되어 모든 푸른 잎사귀들과 나무껍질을 뜯어 먹어서 나무들이 잎사귀 하나 없이 하얗게 해골처럼 벗겨졌으며, 초지도 남김없이 기습을 당해 맨땅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무 그늘에 눕혀 있던 아람인 아기들이 채 울기도 전에 그 얼굴을 뜯어 먹히고 말았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악함 때문에 이 재앙이 왔음을 받아들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 당시에 엄청난 양의 메뚜기가 잡혀서 생매장되거나 저수지나 지중해로 던져졌으며 그 시체들이 해변으로 밀려 나오면서 말려서 터키탕의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정부에서는 그해 4월에 성명서를 내고 16세로부터 60세까지의 모든 남자에게 매일 메뚜기알 5kg을 모아 담당 공무원에게 내도록 하였다.
4) 메뚜기 떼에 대한 해석
메뚜기 떼에 대하여 가장 좋은 해석 방법은 역사적, 문자적 해석이다. 이것에 의하면 요엘서는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선지자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나온 실제적 사실로서 이스라엘을 소동케 한 메뚜기 재앙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만약에 시대적 상황을 버린다면 요엘서는 단지 이전의 에언 문학에 대해 박식한 소론(小論), 즉 탈무드의 미드라쉬(Midrash)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요엘이 장로들에게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욜 1:2)고 엄숙히 묻는 장면, 제사장들에게 "너희는 굵은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욜 1:13)라고 꾸짖는 장면, 또 백성들에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 2:13)라고 엄히 권면하는 장면들을 볼 때 그가 가상의 청중들에게 연설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더욱이 그가 실제의 군인들을 '용사같이'라고 묘사했다든지 실제의 기병을 '기병같이'라고 표현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욜 2:4-9).
이상에서 볼 때 요엘은 사실상 군병들과 다름없는 실제의 메뚜기 떼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또한 욜 2:20의 '북방'으로부터 온다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1915년 예루살렘을 덮쳤던 메뚜기 떼도 바로 그 방향으로부터 날아왔었고, 다른 많은 기록도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6. 중심 교훈과 영향
1) 중심 교훈
(1) 하나님께서 여러 증거로 경고를 주실 때에 증거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2) 죄로 영안이 어두어지면, 하나님의 책망의 손길도 보지 못하니 항상 밝은 영안을 가질 수 있도록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한다.
(3) 성도가 범죄할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성도 자신이 조롱을 받음은 물론 하나님의 영광까지 훼손하는바 범죄치 않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4) 하나님의 징계로 일시적으로 고난 가운데 처할지라도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회개하면 징계의 손길을 거두시고 회복의 은총을 주신다.
(5)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항상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가 받을 축복이 얼마나 큰가를 알려서 많은 사람이 그 축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진정한 신앙 부흥의 기초가 진실한 회개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을 찢으면 휘장이 찢어지고 하늘이 갈라진다. 즉 진정한 회개 후에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고 오순절의 축복이 임하는 것을 알자.
여호와의 날은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두려워해야 할 심판날 임을 알아야 한다.
2) 영향
(1) 본서는 전체가 3장 73절 밖에 되지 않는 매우 적은 분량의 예언서이면서도 신, 구약의 많은 부분에서 이사야, 예레미야, 베드로, 요한, 바울 등에 의해 인용되고 있을 정도로 그 영향이 지대하다.
(2) 예언서에서 흔히 나타나는 개인적 경험이나 환상이 전혀 소개되지 않는다. 요엘은 단지 남유다 백성 전체가 메뚜기 재앙과 한재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당시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예언을 전개해 나간다.
(3) 자연 현상을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주는 매개 중 하나로도 이해하는 '자연 계시'의 신학적 지평을 열어놓았다.
(4) 메뚜기 재앙 예언을 통해 죄가 인생과 전 피조계에 미친 결과의 심각성을 어떤 예언서보다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5) 신약의 성령전인 사도행전과 비견되어 구약의 성령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령 강림에 대하여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다.
문서 선지자 중 처음으로 여호와의 날의 심판과 회복에 대하여 예언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종말에 있을 최후 심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예언하고 있다.
7. 내용 분해
1) 대분류
(1) 메뚜기의 습격과 가뭄 및 그 회복 욜 1:1-2:27
① 메뚜기의 습격과 가뭄 욜 1:1-20
② 여호와의 날의 임박과 메뚜기의 습격 욜 2:1-11
③ 민족의 회개와 권고 욜 2:12-17
④ 재앙의 제거와 풍년의 약속 욜 2:18-27
(2) 장래의 축복과 외국들의 심판 욜 2:28-3:21
① 성신을 부어주심 욜2:28-29
② 여호와의 날의 징조 욜2:30-32
③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이유 욜3:1-3
④ 최후의 결전과 심판 욜3:9-17
⑤ 유다가 받을 축복 욜3:18-21
2) 소분류
○ 욜 1 : 메뚜기의 재앙
욜 1:1-7 재앙의 선포
욜 1:8-12 슬퍼하며 금식하라
욜 1:13-15 성전에서 부르짖으라
욜 1:16-20 부패와 타락
○ 욜 2 : 여호와의 날과 회복의 약속
욜 2:1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황폐
욜 2:12 회개의 호소
욜 2:18 회복의 약속
욜 2:21 회개하면 받게 될 축복
욜 2:28 여호와의 준비된 날
○ 욜 3 : 여호와의 날의 심판
욜 3:1 이스라엘 원수에 대한 심판
욜 3:9 심판의 형편
욜 3:14 여호와의 심판의 날
욜 3:16 유다의 영원한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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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대의 꿈이 한번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엾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정말 가엾은 것은 자신의 미래 대한 꿈을 한번도 꾸어 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원대한 꿈을 한 아름 안고 희망과 웃음 꽃이 활짝 피는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과 행운이 가득한 아름다운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잠 26:10).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