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선교활동의 두 본질적 요소 “성령과 환대”<사랑은 아름다워라!>
2026.5.11.월요일 성 오도(878-942), 성 마오로(910-994),
성 오딜로(961-1049), 성 후고(1024-1109),
복자 베드로 베네라빌리스(1092-1156), 클뤼니 수도원의 아빠스들 기념일
사도16,11-15 요한15,26-16,4ㄱ
“사랑은 아름다워라!”
오늘 이런저런 묵상중 저절로 떠오른 찬탄의 말마디입니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란 말마디와 일맥상통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5월 성모성월 신록과 온갖 꽃들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정말 사랑할수록 화장품도 성형수술도 불필요해집니다. 오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중세기 교회는 물론 수도생활 개혁에 기초를 놓았던 프랑스 클뤼니 수도원의 위대한 성인 아빠스들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참 놀랍고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런 기라성綺羅星같은 아름다운 성인 아빠스들을 거의 200년 동안 배출함으로 클뤼니 수도원의 전성기를 이루게 했습니다. 정말 어느 공동체든 리더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당대 성인 아빠스 하나도 힘든데 무려 5명이 줄줄이 이어지니 참 경이롭습니다. 성 오도 2대, 성 마욜로 4대, 성 오딜로 5대, 성 후고 6대, 그리고 복자 베네라빌리스 9대로 이어집니다. 복자라지만 다음 설명이 완전히 성인 급입니다.
‘온화한 성품과 탁월한 학식으로 수도회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공경받을 만한 분(Venerabilis)‘이라는 칭호로 널리 알려진 아빠스입니다.’
새벽에 읽은 <다산> 현자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이의 눈에는 부모의 품격이 깃든다. 자식은 곧 부모의 거울이다.”
다음처럼 말마디를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성인의 눈에는 하느님의 품격이 깃든다. 성인은 곧 하느님의 거울이다.”
인생 유일한 목적인 성인으로 불림 받았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념하고 기억 할뿐 아니라, 성인을 보고 배워 성인이 되라 있는 성인 축일입니다.
제가 수도원 집무실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아름다운 만세칠창 기도 바치기 4년째입니다. <하느님 만세-예수님 만세-성령님 만세-대한민국, 한반도 만세-가톨릭교회 만세-성모님 만세-요셉수도원 만세>, 이 또한 제 사랑의 표현입니다. 요즘은 만세칠창에 세편의 아름다운 고백시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산 앞에 서면/당신 앞에 서듯/행복하다
꽃같은 하루/꽃같이 살자”
여기에 한 절 “시같은 하루/시같이 살자” 추가하고 싶습니다.
“평생/꽃같은 아내 없어도/언제나 나를 반가이 맞이하는
주님의 집/집무실 안
불암산 배경의 배꽃 만발한 그림에/꽃같은 주님 늘 함께 계시니
이 행복에 삽니다”
“하늘님 그리울 때/보고 싶을 때
하늘길/하늘 향해 쭉쭉뻗은/하늘의 사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들/사열받으며
하늘보고 하늘기운 숨쉬며/하늘품위 되찾고 하늘의 왕자되어
가슴펴고 힘차게/하늘님 예수님 따라
나는 듯 걷는다/이 기쁨에 이 행복에 산다”
만세칠창 기도대로, 사랑의 고백시대로 이뤄지는 듯,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22년동안 수도원의 기반을 닦아온 제 후임으로 최파코미오 신부가 12년 동안 원장직을 훌륭히 수행했고, 이어 고이사악 신부가 훌륭히 원장직을 수행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답은 기도뿐입니다. <요셉수도원 만세> 기도가 그대로 이뤄진다 싶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운 수도공동체의 형성으로 표현됨을 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느님의 겸손한 <사랑>은 교회 선교활동의 두 본질적 요소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됩니다. 바로 파라클레토 성령과 환대입니다. 교회활동의 숨겨진 두 본질적 요소인 성령과 환대의 성격을 뜻하는 영어 말마디가 참 좋습니다.
“self-effacement;(겸손하여)표면에 나서지 않음”
얼마나 매력적인 표현인지요! 그대로 하느님의 겸손한 사랑을 닮은 성령이, 환대가 참 아름답습니다. 가톨릭교리서의 설명이 아름답고 은혜롭습니다.
“하느님을 계시해 주시는 성령께서는 자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시는’ 진리의 성령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신다.” 참으로 하느님다운 이런 숨김은,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분을 아는 것은 그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교리서687항>
하느님의 겸손한 사랑은 교회 선교활동의 두 본질적 요소, 파라클레토 성령으로, 환대로 아름답게 표현됩니다. 숨겨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아름다움입니다. 어린왕자에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란’ 일화도 연상됩니다. 오늘 요한복음이 강조하는 바 역시 보호자, 진리의 영, 성령입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께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제가 이렇게 강론을 쓸 수 있는 것도 겸손한 사랑의 아름다운 파라클레토 성령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저를 통해 성령께서 쓰시는 강론입니다. 하느님을 그대로 닮은 겸손한 사랑의 아름다운 환대의 모범이 바로 사도행전의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던 리디아입니다. 이어지는 리디아의 아름다운 환대 장면입니다.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리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령님의 인도 따라, 각자 삶의 자리에서 겸손한 사랑의 표현인 아름다운 환대의 영성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시편149,4).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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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시편149,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