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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관찰] '조금박해'는 왜 그럴까 2
지난번 칼럼이 좀 시끄러웠기에 한 번 더 쓴다. ‘조금박해’는 하나의 현상이다. 비평할 가치가 있다. 지난번 글을 「조금박해1」, 이 글은 「조금박해2」라고 하자. 필요하면 「조금박해3」도 쓸 생각이다. 어떤 기자들이 「조금박해1」에 없는 말을 지어내 보도했고 관련자들이 즉각 반응했다. ‘진보논객’에서 ‘친윤논객’으로 전향한 대학교수도 한 마디 보탰다. 어떤 신문과 방송은 늘 하던 ‘제목장사’를 했다. 놀라거나 화낼 필요는 없다. 그런 것도 ‘조금박해 현상’의 일부다.
밥과 비평 사이
「조금박해1」에 대한 관련자와 제3자의 반응을 일일이 평하지는 않겠다. 논쟁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토론할 만한 쟁점을 내놓지 않아서다. 조금박해와 기자들은 내가 제기한 문제의 핵심을 외면했다. 독해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논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내가 글을 잘못 쓴 탓일지도 모르니 초점을 가리는 곁가지를 정리하자.
첫째, 왜 칼럼을 쓰는가? 시민들이 보라고 쓴다. 비평의 대상이 된 사람도 독자일 수 있지만 특별히 고려하지는 않는다. 「조금박해1」을 쓸 때 조금박해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낱 칼럼 따위로 사람의 생각을 어찌 바꾸겠는가. 누가 뭐라 해도 조금박해는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자신을 비판한 칼럼을 읽고 성찰하는 정치인은 극히 드물다. 대개는 씨근덕거리며 욕을 한다. 그게 정상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비평가한테 화를 내서 좋을 건 없다. 화난 티를 내지 말고 유권자의 호감을 얻는 데 도움 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나랏일 하는 정치인은 감수해야 하는 ‘불공정’이다.
둘째, 어떤 정치인이 달라지기를 기대할 때는 어떻게 하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편지를 쓰기도 한다. 여의치 않으면 문자나 톡을 보낸다. 젊은 사람이면 만날 때 내가 밥값을 낸다. 그래 놓고서 칼럼으로 까는 건 뭐냐고 항변하지 말라. 기대가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비평한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주권자의 권한과 비평가의 정체성을 절충한다. 누구나 그렇게 하는 건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비평을 대통령이 보라고 쓰는 칼럼니스트도 있다. 불러달라고 대통령에게 소리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언론 자유를 빙자해 대통령의 정적과 비판자에게 대놓고 침을 뱉는다. 그렇게 해서 어떤 이는 대통령의 참모가 되었고 어떤 이는 여당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슬기로운 비평생활’이다.
비평가의 책임과 마이크 파워
셋째, 비평가는 무엇을 책임지는가? 비평가는 자신의 논리와 관점에 대해 책임을 진다. 나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와 평가에 도움을 주려고 칼럼을 쓴다. 내 시각과 논리와 해석이 옳다는 증거는 없다. 세상의 여러 견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만 논리의 정합성과 철학의 일관성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니 비평가인 내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말라.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 경험이 있는 비평가일 뿐이다. 유권자로서 민주당을 지지한다. 하지만 당원은 아니다. 민주당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도 없고 하지도 않았다. 민주당이 내가 하라는 대로 무언가를 한 일은 과거에 없었고, 지금 없으며, 앞으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유시민 때문에 민주당이 잘 되었느니 어쩌니, 민주당을 얼마나 사랑하느니 마니 하는 말은 접어두시라. 나는 그런 것에 관여하지 않는다.
넷째, 마이크 파워를 키우는 게 비난할 일인가? 아니다. 마이크 파워는 말과 글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치인이든 비평가든 작가든, 마이크 파워는 누구나 원한다. 마이크 파워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나는 조금박해의 의도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이 유명해지려고 민주당에 ‘쓴소리’를 한다고 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조금박해1」을 왜곡해서 내가 그렇게 말한 것처럼 쓴 것이다.
나는 조금박해가 옳은 일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라 생각한다. 달리 판단할 근거가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대중의 신뢰를 받아야 할 정치인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예컨대, 유시민에게 관심을 끊은 지 오래고 유시민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도 못한다면서 「조금박해1」을 반박하면 득 될 것이 없다. 귀는 막고 입만 여는 정치인이라는 오해를 받기 딱 좋다. 자신을 비판한다고 해서 독재자 아니냐며 발끈할 거라면 남한테 툭하면 사퇴하라고 소리치는 행위만큼은 그만두어야 한다. 젊은이가 그렇게 하면 더 이상해 보인다.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비평가더러 짠하다느니 불쌍하다느니 따사로운 말을 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다. 성정이 야비하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 충고로 오해하지 마시라. 남이 듣게 말하는 건 충고일 수 없다. 비평가의 직업병이 도져서 하는 말이다.
조금박해가 외면한 것
어떤 민주당 정치인이 있다. 그는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는 말과 행동을 했다. 그렇지만 옳고 그름을 가리는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게 아님을 안다. 독선에 빠지지 않으려고 여론을 살핀다. 그래서 언론 보도를 본다. 언론이 여론을 반영하고 또 여론을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문방송이 긍정적으로 보도했고 기사 건수도 많았다. 자신을 가리켜 비주류나 소수파가 아니라 ‘소신파’라고 했다. 진영논리가 판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소신파’가 오만과 독선에 빠진 의회 다수당을 건강하게 만들고 우리 정치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는 믿음을 품고 신문과 인터뷰하고 방송에 출연한다. 그러자 우호적인 기사가 더 많이 나왔다. 정신 건강을 위해 당원과 시민들이 쓴 문자나 댓글은 보지 않는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당을 망치는 ‘악성 팬덤’이라고 훈계한다. ‘악성 팬덤’에서 민주당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태운다.
나는 조금박해의 언행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들이 민주당의 다수파를 공격하거나 주류 정치인을 공격해서 이익을 얻었는가? 그렇지 않다. 손해만 보았다.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떨어졌고 당직 선거에서 참패했다. 문자폭탄과 악성댓글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렸다. 그런데도 왜 줄기차게 ‘쓴소리 노선’을 밀고 갈까?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박지현 씨가 자신의 마이크 파워가 누구 못지않다고 말하는 걸 듣고서야 나는 그걸 깨달았다. 그래서 「조금박해1」에서 박지현 씨를 함께 다루었던 것이다.
나는 언론사의 90퍼센트가 ‘친윤석열’인 상황에서 그래도 되느냐고 물었다. 기자들은 그 질문을 못 본 척했고 조금박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을 50:50으로 지지했고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은 국힘 지지율보다 적어도 낮지 않다. 그런데 언론은 90퍼센트가 ‘친윤석열’ ‘친국힘’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 보도량이 많다고 해서 마이크 파워가 크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 아닌가? 언론이 우호적으로 보도한다고 해서 옳은 일을 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비난 문자를 보내는 당원들이 옳을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가? 지난번에도 이렇게 물어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다 내 잘못이다.
신문 방송의 정치적 사유화
친윤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리한 일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나는 공영방송과 극소수 신문을 제외한 온오프라인 신문 방송이 거의 다 친윤이라 본다. 친윤언론이 90퍼센트라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난여름 어느 새벽 대통령이 강남의 술집에 있었다는 의혹이나 대통령 부인의 주가조작 의혹을 대하는 언론의 행태를 보면 그 정도로 추산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날 새벽 술집에 있지 않았다면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이 부재증명을 하면 된다. 2003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의원은 내가 2002년 12월 대선 직전 중국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가서 이회창 씨 부친 관련 자료를 받아 나왔다고 폭로했다. 목격자가 있다면서 ‘친북세력이 국회까지 들어와 암약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나는 중국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음을 출입국기록과 여권으로 즉각 증명했고 김무성 의원은 사과했다. 고소 고발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공직자는 때로 부당한 의혹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도 부당한 의혹 제기에는 그렇게 대응하면 된다. 일정표, 자택 CCTV, 휴대전화 접속기록 등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재증명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부재증명을 요구하거나 사실 여부를 심층 취재하는 신문 방송은 거의 없다. 국회에서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을 비난하고 제보자와 「더탐사」의 신뢰성을 공격하는 기사만 앞을 다투어 쏟아낸다. 수사기관이 언론사인 「더탐사」를 마구잡이 압수수색해도 일절 비판하지 않는다. 대통령 부인의 주가조작 의혹은 한술 더 뜬다. 탐사전문 매체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거나 다른 피고인 재판에서 중대한 범죄 혐의가 드러나도 친윤언론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는 신문 방송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친윤언론은 또한 야당 대표를 정치적 시체 안치실로 보내기 위해 검찰 조직을 총동원해 벌이는 ‘정적 제거 수사’에 적극 협력한다. 법률적 사실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카더라 발언’을 중대한 사실인 양 포장해 비리의 증거가 나온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어떻다는 게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언론이 대부분 친윤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뉴스를 소비하자는 것이다.
언론사는 대부분 사기업이다. 언론사의 대주주들은 대한민국 0.0001퍼센트 부자이며 최고 특권층이다. 대기업이 큰손 광고주다. 대주주와 광고주가 ‘친국힘’ ‘친윤석열’이니 경영진과 데스크도 당연히 그런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은 국힘당이 부자와 강자의 이익을 지킨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안다. 국힘당을 지지하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기자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회사원이다. 기자가 자본과 정치권력에 맞서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예전의 신문 방송은 사회의 공론장을 자처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이젠 그런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신문 방송의 정치적 사유화’로 이해한다.
대주주와 경영진이 정치적으로도 사유화한 신문 방송은 민주당을 적으로 간주한다. 민주당에 해가 되는 정보는 사실이 아니어도 최대한 키우고 대통령과 여당에 해가 되는 정보는 사실이라도 무시한다. 민주당 정치인과 진보 지식인에 대해서는 부정적 기사만 낸다. 민주당을 포함해 진보진영에 발끝이라도 걸쳤던 사람 가운데 자기네가 원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특별히 우대한다. 귀순자를 내세워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들은 민주당을 북한 정권만큼 싫어하는 듯하다. 친윤언론에게 조금박해는 북한 내에서 김정은을 비판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용도로 조금박해의 말과 행동을 소비한다.
다시 말한다. 나는 조금박해가 ‘이적행동’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고 믿는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조금박해의 주관적 동기와 무관하게 친윤언론이 조금박해를 자기 목적 달성에 활용하려고 ‘조금박해 현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친윤언론은 내가 박지현과 조금박해의 인격을 공격한 것처럼 조작하고, 그에 대한 관련자와 제3자의 반응을 다루는 기사를 냈다. 이 글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나 기사를 써도 ‘신문 방송의 정치적 사유화’ 문제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데 오백 원을 건다. 조금박해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도 오백 원을 건다. 그러다 돈 천 원을 잃으면?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사족을 하나 달자. 나더러 ‘맛이 갔다’고 한 ‘친윤논객’에 대해서는 비평하지 않겠다. 그는 사실과 데이터를 무시한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판단한다. 글과 말로 감정을 배설한다. 친윤언론이 그것을 퍼나른다. 배설물을 어찌 비평하겠는가. 피하는 게 유일한 대책이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26
박지현과 '조금박해'는 왜 그럴까
“언론에서의 마이크 파워나 유명세로 따진다면 제가 그 두 분께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직후 짧은 기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데위원장으로 활동했던 박지현 씨는 7월 7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행자가 “박지현이 본인을 이준석이나 김동연 급으로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한 김남국 의원의 말을 인용해 질문하자 내놓은 대답이었다. 포털 뉴스의 대문에 관련 기사가 걸린 것을 보고 KBS가 제공한 대담 전문을 찾아 전후 맥락을 살펴보았다.
박지현과 ‘조금박해’
머릿속에 번쩍 불이 켜졌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박지현 씨는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구나.’ 박지현 씨만 이해한 게 아니다. 대다수 신문방송이 ‘민주당의 소신파’라고 한 ‘조금박해’의 생각과 감정과 사고방식을 이해할 실마리도 찾았다. ‘조금박해’는 20대 국회에서 고비마다 민주당의 당론과 다른 주장을 하곤 했던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의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금’은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자 민주당을 떠났고 ‘해’는 재선에 실패해 원외 정치인이 되었지만 ‘조’와 ‘박’은 21대 국회에서도 활약하는 중이다. 지위는 달라졌지만 민주당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태도는 여전하다. 어떻게 아느냐고? 모를 수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민주당과 민주당의 정치인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기자들이 거의 비슷한 기사를 앞 다투어 쏟아내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조금박해’와 사적 인연이 없어서 속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고달프다고 하는 당내 비주류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직접 듣지 못했다. 왜 그랬고 왜 여전히 그러는지, 언론 보도나 인터뷰를 보아도 알기 어려웠다. 박지현 씨가 솔직하게 말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혼자 혀를 끌끌 차기도 했고 속으로 욕을 하기도 했다. 잘못했다. 미안하다. 그래도 면전에서 욕하진 않았으니 용서해 주기 바란다. 나는 박지현 씨와 ‘조금박해’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혹시 비판할 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비판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겠다.
마이크 파워와 유명세
마이크 파워는 말의 힘 또는 말의 영향력이다. 자신의 마이크 파워가 이준석이나 김동연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박지현 씨의 주장은 맞는 것인가? 예전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명세가 두 사람 못지않다는 주장은 어떤가? 그건 반대다. 예전에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두 가지를 종합하면 이렇게 된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박지현은 마이크 파워가 강했고, 아주 유명해진 후의 박지현은 마이크 파워가 약하다.”
마이크 파워와 유명세는 다르다. 관계는 있지만 늘 같은 쪽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박지현 씨는 그걸 모른다. 박지현의 마이크 파워는 대학생 때 했던 ‘추적단 불꽃’ 활동의 성과에서 생겼다. 박지현은 2019년부터 텔레그램 n번방에 잠입해 실체를 추적함으로써 경찰이 다음해 조주빈을 비롯한 주범들을 체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는 그때 박지현이 보여준 용기와 신념과 능력에 대해 크고 변함없는 존경심을 지니고 있다.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는 국민일보가 연재한 <n번방 추적기> 시리즈를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2022년 1월 이재명 후보 선대위는 그런 업적을 보고 박지현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겸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그때까지 ‘익명의 활동가’였던 박지현은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청년 세대와 여성의 존엄과 정치적 요구를 체현한 신진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박지현은 선거 막판 다양한 여성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진 2030 여성의 정치적 궐기와 결집에 동력을 제공함으로써 대선의 승패를 바꿀 뻔했다. 그런 마이크 파워가 유명해서 생긴 건 아니었다. 그때 박지현은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뭘 좀 아는 사람이나 박지현을 알았다.
박지현 씨는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되면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명해졌다. 이런저런 사유로 이재명, 최강욱, 김의겸 등 민주당의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자신에게 당대표 출마자격을 특별하게 부여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주당 지도부를 공격했을 때는 언론이 엄청난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마이크 파워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앞에서 소개한 KBS 라디오 대담은 수많은 기사를 낳았지만 댓글이 많지 않았다. KBS가 공식 유튜브에 올린 15분짜리 영상도 재생 횟수가 매우 적었다.
한마디로 오늘의 박지현에게 대중은 관심이 없다.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정치인의 말은 힘을 가질 수 없다. 박지현 씨는 그저 언론에서 시끄러운 정치인일 뿐이다. 그런데도 왜 자신의 마이크 파워가 이준석이나 김동연 못지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착각이다. 언론에 많이 나오면 마이크 파워가 크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착각을 하는 이유는 뭘까? 정치 경험이 빈약한 박지현 개인만 놓고 보면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조금박해’와 묶어서 살필 경우에는 기울어진 언론 지형이 주요한 원인으로 떠오른다.
‘조금박해’를 위한 ‘쓴 소리’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내가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난했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톨릭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로, 한 톨의 사심도 없이, 오로지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복리를 중심에 두고, 매우 훌륭하게 국정을 운영했다고 판단한다. 이재명 대표는 남다른 노력으로 불운을 딛고 세속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대한민국을 복지사회로 만들겠다는 이상을 가슴에 안고, 날마다 더 배우고 생각하며 발전해 가는 정치인이라고 본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기자들은 보도할 가치가 없다고 할 것이다. 보도한다고 해도 원래 친문재인 친이재명인 사람이 아부성 발언을 했다고 조롱히는 게 전부일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이유를 들어서든 문재인과 이재명과 민주당을 비난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사실의 근거가 없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해도 아무런 검증을 하지 않고 내 말을 그대로 중계할 것이다.비슷비슷한 기사를 하루에 수백 개씩 쏟아낼 것이다.
기자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민주당에 해가 된다고 보거나 해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라야 그들한테는 보도 가치가 있다. 내가 언론 보도가 많을수록 마이크 파워가 크다고 믿는다고 하자. 그런 의미의 마이크 파워를 키우는 게 내 목표라고 하자. 나는 그 목표를 손쉽게 이루는 방법을 안다. 문재인과 이재명과 민주당에 해가 될 말을 하는 것이다. 말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언론이 알아서 다 해준다.
어쩐지 익숙한 장면 같지 않은가. 한때 넓은 의미의 진보 진영에서 활동했던 교수, 회계사, 변호사, 평론가들이 그런 방식으로 마이크 파워는 없지만 시끄럽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언론의 총아가 되었다. 언론이 왜 이런지는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겠다.
‘조금박해’의 언행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박지현 씨와 비슷한 착각을 하고 있다. 무슨 나쁜 마음을 먹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오로지 민주당에 해가 되는 말과 행동만 하는 것도 아니다. 가끔 그런 말을 할 뿐인데도 언론이 그것만 대서특필하니까 오로지 그런 일만 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것이다. 기자들은 그들이 근거가 없거나 논리에 어긋나는 말을 해도, 심지어 민주주의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해도 비판하지 않는다. ‘쓴 소리’ ‘소신’ ‘용기’ 같이 멋진 말로 치장해준다. 정치하는 사람이 어찌 유혹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조금박해’의 모든 행동을 용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민주당과 민주당의 다른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처럼 다른 정치인이나 시민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폭력적 팬덤’이니 어쩌니 하는 ‘폭력적 언어’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배척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만 더 하자.
‘조’는 국민의힘 후보를 당선시킬 수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표를 준 유권자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활동할 경우 다음 총선에서 어떤 경쟁자가 경선에 참가해 노선투쟁의 기치를 들고 지역구의 민주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조의 퇴출’을 호소하는 사태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금’은 후보 경선에서 졌다고 당을 나가 정치적 반대 진영으로 가는 반칙을 저질렀다. 그래놓고도 민주당에 ‘충고’라는 걸 하고 기자들은 그걸 ‘쓴 소리’라고 보도한다. 앞으로는 충고 말고 공격을 하는 게 그나마 덜 위선적이지 않을까?
‘박’은 ‘쓴 소리’ 전문 ‘소신파’로 대선후보 경선과 당 대표 선거에 나가서 참혹한 수준의 득표를 했다. 시끄럽게 한다고 해서 마이크 파워가 생기는 게 아님을 이젠 알 때가 되었지 않았는가.
‘해’는 지역구가 부산이라 어지간히 ‘쓴 소리’를 해도 지지자들이 양해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아예 없는 건 아님을 한번쯤은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50:50 vs. 90:10
우리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을 거의 50:50으로 지지했다. 그런데 언론은 어림잡아 90퍼센트가 친윤석열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뿐 아니라 문화일보를 비롯한 다른 신문사들과 거의 모든 경제신문, 뉴시스를 위시한 민간 통신사들이 대부분 그렇다. 나머지 10퍼센트가 공영방송을 포함한 중립 성향 언론사들이다. 친민주당 또는 친이재명 성향 신문 방송은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자기편이 아니라고 MBC를 적대시한다. 확실하게 편들어주지 않는다고 YTN의 공공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려 한다. 김어준이 ‘쓴 소리’를 많이 한다고 교통방송의 돈줄을 끊었다.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태도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대했다.
언론 지형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기적을 이룬 나라’임을 실감한다. 대한민국의 기적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이 윤석열과 팽팽한 대결을 한 것도,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30퍼센트 수준인 것도,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 지지율에 뒤지지 않는 것도 모두 기적같은 일이다. 민주당에 ‘조금박해’와 비슷한 언행을 하는 정치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기적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같아서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모이는 시민들한테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일종의 자구책으로 낙관주의를 선택했다. 현실이 어둡고 혼돈스러운데 생각마저 비관적이면 이 정권의 기나긴 시간을 어찌 멀쩡한 상태로 견뎌내겠는가.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4
첫댓글 명확한 분석과 판단이네요!
연예인의 속성과같다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