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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로마인 이야기 14권 바로잡기 - 콘스탄티우스 2세~ 테오도시우스
마법의활 추천 0 조회 1,211 08.01.10 11:25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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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1.10 12:53

    첫댓글 좋은글 감사요~

  • 08.01.10 13:00

    뭐 군사사 상으로는 율리아누스의 역활이 중요하긴 하죠.. 사실 그 시기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군사지도자이기도 하구요..(하지만 지휘하는 병력의 안습..-_-;; 말이 부제지 실제로는 전성기 로마시절의 1개 군단 총독수준에 불과한..) 여타 군사사 서적 중에서는 히드리아노폴리스 전투를 꽤 높게 평가하는 책들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 시오노도 거기에 영향을 받았는지도..(사실 기병이 보병에 승리한 전투라고 하긴 참 거시기한 전투이긴 한데..-_-;;) 그렇다고 해도 발렌스가 그렇게 능력있는 황제 같지는 않습니다. 세금과 관련된 로마의 징세업자 문제는 심각한 고질병이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심각한 반란이 터졌고 진압에 실패하고

  • 08.01.10 13:01

    패사까지 했으니 대략 난감한..

  • 작성자 08.01.10 16:22

    최소한 내정에 있어서는 볼만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율리아누스의 합리적인 감세 정책이 발렌스 시대에도 이어졌는데, 당시 상황에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합리적인 과세 정책은 발렌스가 죽은 이후 테오도시우스가 비상 조치를 내려서 로마군을 재건할 때도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역사가들이 꼽는 동로마 제국의 존속 이유로, "상대적으로 건전한 재정"을 꼽는 데 이는 의미심장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 08.01.10 17:04

    워낙 동로마 지역이 워낙 달걀 노른자위라는 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동로마의 경우 소아시아,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같은 지중해 최대의 부유지역이 전부 포함되어 있기도 했구요.. 아나톨리아는 인구가 많고 콘스탄티노플은 당시에도 무역 중심지 중 하나.. 발랜스가 내정 부분에서 아무리 능력을 발휘했다고 해도 민간 징세업자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한 결국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도 하구요.. 발랜스가 아주 무능한 인물은 아니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 거 같습니다.^^

  • 08.01.10 17:30

    그리고 결과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위시하는 발칸 반도와 오늘날의 시리아 북부, 이집트 등은 상대적으로 라인강 전선을 무력화시키고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바바리안' 들의 위협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죠.

  • 08.01.10 19:38

    발렌스는 가장 큰 실수를 하죠. 그 전력으로 고트족을 이긴다는 것이 무리였죠

  • 작성자 08.01.10 21:28

    이길 수 있는 전력이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가 모아들인 로마군은 발렌스의 로마군에 비해서 그렇게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병사들이었습니다. 물론 테오도시우스의 제너럴로써의 역량이 발렌스보다 훨씬 우수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가진 자원이라면 별반 더 나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발렌스가 조금만 더 정보에 밝았더라면...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는 말그대로 사고지, 저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처럼 상대적으로 우수한 고트족의 전투력과 전술이 로마군을 압도한 결과는 아닙니다.

  • 08.01.12 13:41

    사고라기엔 동로마 제국의 삽질이 컸죠. 그전까지는 유능하던 장수들이 서로 전공을 다투느라 휘하부대를 이끌고 속도 경쟁을 해서 초전에는 오히려 고트족에게 각개격파당하는 형국이 됐고, 가까스로 전선을 추스린 직후에도 발렌스 황제가 전선을 이탈하면서 그 사실을 지휘부에 알리지 않아 퇴각해야 할 상황에서도 황제를 구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오히려 전선에 뛰어드는 상황(...). 독전하던 트리야누스, 세바스티아누스 장군이 전사하자 서로마에서 지원왔던 리코메데스, 빅토르 두 장군이 가까스로 군을 지휘해 퇴각했지만 리코메데스, 빅토르, 바쿠리오스 세 장군을 제외하면 율리아누스시절부터 명성을 떨치던 최고지휘부 장군까지 모조

  • 08.01.12 13:42

    리 떼몰살당했으니...

  • 08.01.12 08:39

    뭐 -_-; 사고 치곤 너무 대사고이긴했죠 ㄲㄲㄲ

  • 08.01.12 13:16

    테오도시우스는 교활함으로 치면야 콘스탄티누스수준보단 떨어지지만 설령 콘스탄티누스나 콘스탄티우스라 해도 암브로시우스를 가볍가 날려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그야말로 '강한 기독교를 위해 로마를 강하게 한다.' 은 일념으로 정책을 수행했기에 다른 황제라 해도 암브로시우스를 어쩔 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테살로니카 대학살로 테오도시우스가 짊어지게된 정치적 리스크를 파문-철회라는 간단한 쇼로 없애준 인물 아닙니까. 거기다가 그당시 카톨릭 내에서 암브로시우스를 어쩔 수 있는 인물도 없고.

  • 08.01.12 13:22

    14권에서 시오노 할머니가 취한 가장 큰 잘못은 마그누스 막시무스 반란-아르보가스테스 반란 이연타를 별로 다루지 않고 빼버린 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하드리아노폴리스전투보다 더 후세에 미친 영향력이 컸다고도 볼수 있는 건데 말이죠.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로 입은 동로마 제국 야전군의 피해는 테오도시우스가 복구해 냈지만(스틸리코가 물려받은 동로마 야전군 규모가 8만. 이건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당시 동원된 동로마군 야전군 규모보다 크죠. 이걸 몽땅 빼앗아갔으니 동로마 제국이 버틸 힘이 있었던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반란 2연타로 날라가버린 서로마 야전군은 끝내 복구하지 못했으니까요.

  • 08.01.12 13:49

    프리기두스 결전에 참전한 서로마 제국 야전군 중 살아남은 건 1만 내외(...) 스틸리코가 다른 지역에 있던 야전군을 싹 긁어모으고 그당시에는 2선취급받던 전선군까지 몽땅 긁어모아서 가까스로 2만에서 3만 정도만 동원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서로마 제국의 군사력이 어디까지 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다 아르보가스테스가 레누스 방위선을 개방해 버려서 프랑크족, 알레만니 족이 갈리아로 부족째 건너들어오기까지 했습니다. 덕분에 갈리아는 쑥대밭이 되 버렸죠. 테오도시우스의 의도는 반란을 제압하고 자신이 끌고온 야전군으로 이지역 방위선을 재구축하는 거였지만 그전에 죽었고.

  • 작성자 08.01.14 10:21

    음....저는 "동맹 야만병"들에 대한 통제가 이완된 것이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를 이유로 생각했는데, 진정한 이유는 아르보가테스트의 반란이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08.01.14 18:01

    '동맹 야만병'들의 통제가 이완된 건 서로마니까요. 말을 안들으면 혼내줄 힘이 있어야 통제를 하는데 그게 없었죠. 동로마는 야전군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혼내줄 힘이 있었고. 알라리크가 날뛴 건 루피누스, 이후 가이니스와 에우트로피우스 콤비가 오히려 유도한 감까지 있고. 알라리크가 날뛰는 건 가만히 묵인히면서 진압하려온 스틸리코에게 '관할구역 넘어왔음. 안돌아가면 국가반역죄, OK?' 때려주는 센스는 대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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