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나무 밑둥에 찔린 발바닥에 끓는 들기름을 부어서 치료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커다란 고통을 느꼈던 것은 열일곱 살 여름이었다. 지금은 진안고원치유원으로 변신한 선각산 자락에서 풀을 베던 어느 날이었다. 며칠간의 여유가 있었던지 아버지는 풀을 베다가 말고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 며칠 쉬다가 올라오자고 했다. 아버지 외엔 어느 한 사람도 만나지 않고, 하루 종일 풀만 베고, 저녁에는 풀벌레 소리만 들으면서 밤을 지새는 산골 생활에 지쳐 있던 나는 날아갈 듯 기뻤다.
기쁨에 들떠서 기거하던 움막으로 뛰어가다가 무언가에 발바닥을 찔렸다.
몹시 아파서 내려다보니, 거의 발을 관통할 만큼 날카로운 싸리나무 나무 밑동에 발을 찔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빼낸 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자, 심각함을 눈치챈 아버지가 내 곁에 오셨다.
“피를 멎게 하는 데는 쑥이 좋단다.” 아버지는 쑥을 돌로 짖이겨서 피를 멎게 한 뒤 “어서 내려가 치료하자” 하고 아픈 나를 재촉했다.
어떻게 그 먼 길을 아픔을 참으며 내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같으면 당장 엠블런스를 불러서 병원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병원은 진안읍에나 가야 있지, 내가 살고 있던 백운에는 겨우 약방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어쩐다냐, 어쩐다냐?”
크게 놀라 사색이 되신 할머니를 진정시킨 뒤 아버지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치료를 시작하였다.
“어머니, 들기름 있지요?”
“있지.”
“어서 가져와요.”
“냄비에다 들기름을 넣고 끓여요.”
“무우(무)는요?”
“무우도 있지.”
“그것도 가져와요.”
“응!”
발이 찢어지게 아프면서도 어떻게 나를 치료하실까 눈여겨보았다. 우선 들기름을 냄비에 끓이면서, 무우를 잘라 가운데를 도려냈다.
기름이 팔팔 끓자, 무우를 내 발바닥에 꽉 밀착시키고 끓인 기름을 들이붙는 것이었다. 여름이라 상처가 덧날지도 모르니까 소독 겸,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지지지직?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도 소리지만, 기름이 상처 난 내 발자국으로 스며드니 그 아픔이 얼마나 절절했겠는가?
“크나큰 아픔이 가시면 의젓한 틀로 느낌이 오나니?”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절과 “상처의 아픔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상처의 깊이나 상처의 만연 이상으로 그 상처의 연령인 것”이라는 <카프카의 편지>에 실린 글을 이해하게 된 것은 그 뒤로도 오랜 나날이 지나간 뒤였다.
그때 그 아픔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산길을 걸을 때마다 엇비슷하게 낫으로 잘린 나무 밑둥을 보면 겁부터 났다.
‘조심 해! 다시 끓는 기름 맛을 보고 싶지 않으면?’
2026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