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행복이라오
몇해 전 한국교회안에 널리 불렸던 행복이라는 찬양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을 주었던 이유는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삶의 가치관에 질문을 던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가? 입니다.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한 개념 역시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행복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행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서 복이란--의 조건을 말하기 보다 존재론적인 차원을 말씀합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시편1편에 나오는 복있는 자입니다.
복있는 이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에세르라 합니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행복하여 곧장 전진하는 자라는 뜻>이라 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자는 만세 전에 내가 구원에 대한
예정을 입은 것에 확신을 가지고 감사하는 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됨의 감격과 기쁨이 있다는 말은 곧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환경과 조건(여건)을 넘어 설수 있는 사람입니다.
한국기독공보 25년 12월 17일자에 실린 평택대학교 교회사 교수인 권평님의 한국교회 초기 이야기 한 토막을 읽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의 행복에 대한 기준이 얼마나 세속화가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옥분이! 아니 송안나(Anna Song)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소녀이다. 1892년생의 그녀는 어느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계집애'로 태어났다.
1901년 대기근이 닥치자 추위와 계속되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부모들은 그녀를 어느 부잣집에 하녀로 팔아 버렸다. 어린 옥분이는 하녀로서 비참한 나날을 보냈다.
어린 나이에 중노동을 해야 했고 수시로 주인의 매질을 견뎌야만 했으며, 그럼에도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얇은 옷밖에 없던 그녀는 여러 시간 동안 추운 곳에서 일하다 그만 동상에 걸리고 말았다. 치료받을 형편이 못되었기에 고통을 참고 수 주일을 버티자 그녀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고통이 엄습했고 동상 부위가 썩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옥분이는 일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이 썩어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분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주인은 급기야 서울의 한 선교병원으로 옥분이를 데려갔다.
그녀를 살펴본 의사들은 그녀가 살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상처는 심각했다. 옥분이를 치료해서 다시 일을 시키려 했던 주인은 더 이상 옥분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녀를 병원에 남겨둔 채 매정하게 떠나버렸다.
병원에 홀로 남겨진 이 어린 소녀는 8개월 동안,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고통과 싸워야만 했다. 사경을 헤매던 그녀가 유일하게 편안한 시간은 수술을 위해 마취를 했을 때뿐이었다.
그녀는 그 고통 속에서도 가끔 정신이 들 때면 자신을 버리고 떠난,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주인에 대해 묻곤 하였다. 옥분이의 마지막 수술은 1906년 9월에 완료되었다. 의사들은 그녀의 두 팔과 한쪽 다리를 잘라야만 했다.
1906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간호사들은 병원에 조그마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고 아름다운 장식물로 장식했다.
옥분이에게 이 크리스마스 트리는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녀에게 크리스마스와 트리는 새로운 세상이요 희망이었다.
어느 날 미국 감리교 선교사이자 간호사인 미네르바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이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 때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옥분이가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고 자신의 인사도 편지에 넣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구타펠은 이 가난하고 불쌍하기만 한 소녀가 어떻게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인지 깜짝 놀라서 물어보았다. 옥분이는 구타펠에게 여섯 가지나 되는 이유를 말한다.
의사들이 옥분이의 모든 고통을 없애 주었으며, 병원에 온 이후 한 번도 매를 맞은 적이 없고, 더 이상 굶주리지 않으며, 자신이 종으로 있던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병원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을 과거에는 본 적이 없으며,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두 손이 없고 발이 하나밖에 없는 나 옥분이도 예수님이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기도했더니 그분이 정말 들어 주셨어요.
내 죄를 다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나를 사랑하세요. 나는 진심으로 그걸 알아요. 이만하면 충분하겠죠. 가장 행복한 이유가."
옥분이는 진심으로, 자신이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옥분이는 세례를 받으면서 송안나란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녀는 잘려나간 손에 연필을 묶어 글 쓰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자신을 돌봐주다 미국으로 돌아간 간호사들에게 편지를 썼다. 안나의 삶은 병원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많은 의사, 선교사, 간호사, 환자들에게 그리고 편지를 받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안나는 병원에서 통역자로 봉사하며 환자들에게 "고통과 슬픔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항상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110여 년 전에 실재했던 옥분이 혹은 안나의 이 이야기는 구타펠 선교사의 'The Happiest Girl In Korea'란 책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졌고 절망에 빠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다.
너무나 심한 경쟁 속에서 더 나은 것, 더 높은 것만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주 절망에 빠져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송안나, 곧 옥분이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본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까요?
<당신이 꿈꾸고 생각하는 행복은 조건 때문인가요?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인가요?>
이 물음에 저와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