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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프로로 데뷔한 이후로 실력이 날로 강해져 적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중국의 문화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바둑은 반동들이나 하는 비생산적인 놀이로 치부됨에 따라 헤이룽장성의 돼지 도살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국가가 바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그는 다시 돌을 잡게 됩니다.
수천 년의 역사가 있는 중국은 바둑 종주국이지만 현대 바둑은 일본이 우위를 선점했지요. 중국의 4대 발명품인 인쇄술∙나침반∙화약∙종이, 이들이 훗날 19, 20세기 서구의 열강들이 이 기술을 발전시켜 거꾸로 중국을 위협했던 것처럼 바둑도 역시 문화 후진국이라고 여겼던 일본에서 꽃을 피운 후 중국을 압도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1985년 중일 양국 슈퍼 대항전에서 절대 우세를 자신하던
일본과 죽의 장막을 걷어 젖히고 세계 바둑계에 첫 모습을 드러내는 중국과의 일전은 결과를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400명 이상의 풍부한 프로 바둑 기사를 보유한 일본에는 고바야시 고이치∙고바야시 사토루∙다케미야 마사키∙가토 마사오∙후지사와 슈코 등 바둑계를 호령하던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즐비했기에 누가 나서도 중일 대항전의 우승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북송의,#여몽정(#吕蒙正, 944-1011) 이 지은
<#파요부(#破窑赋)>에서 유래한
중국의 다음과 같은 속담이 생각나게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우선 속담을 보고 가면,
天有不測風雲
(천유불측풍운)
人有旦夕禍福。
(인유단선화복)
직역을 하면,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풍운이 있고
인간사에는 아침 저녁으로 화와 복이 있다.
(화와 복이 아침 저녁 짧은 기간에도 있다.)
'세상일은 예측할 수 없으니 항상 변화에 대비하여야 한다'
는 의미이다.
여담이지만 고 한문은 이렇게 전후의 문장이 서로 대응을 하여 살피면,
그 문장의 정확한 의미 파악이 가능하고 글맛이 깊고 리드미컬하다.
천과 인을 대응하여 시작으로 삼았고,
불측과 단석 모두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요,
풍운과 화복 역시 서로 비슷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 속담처럼
대회는 일본의 예상과는 다른 전개가 나타났습니다.
중국의 강주구(江鑄久)가 5연승을 하며 일본의 기를 꺾어버린 것이지요.
그러자 일본은 당시 세계 최강이던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을 출격시켜 6연승을 기록, 대회 우승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산소통을 입에 문 섭위평 9단이 고바야시 고이치, 가토 마사오, 후지사와 슈코 9단을 연파하고 중국에 우승컵을 안긴 것입니다. 이후 그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게 되는데요,
이때 일본 최강의 3인방은 "우리가 모두 진다면 삭발하겠다 ."라며 배수 진을 쳤었지요
그러나 모두 패했으니 결국 삭발하는 수모를 주었습니다.
일본 바둑계는 이날을 바둑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수많은 별명이 따라다녔고 이로 인해 중국의 스타로 단번에 올라섰습니다.
20세기 80년대 국제무대에서 여전히 낙후된 이미지를 면치 못하던 중국인들이 세계 무대에 내세울 수 있었던 2가지 브랜드가 있었으니 바로 당대 최강 여자배구와 중국 바둑계의 녜웨이핑(聶衛平-섭위평)이었지요.
그리고, 1988년 3월 26일 그는 중국 바둑계 유일한 기성의 칭호를 받으며 국가 영웅이 되는데요,
그때 등장한 대회가 바로 바둑 올림픽이라는 응창기배인데,
응창기 씨는 바둑 애호가였던 대기업의 회장으로 당시의 기세로 보아 녜웨이핑의 우승을 당연시했고
그런 자신감으로 대회를 만들었답니다.
응창기 씨의 생전 모습과 동상
그런데 결승에 올라온 녜웨이핑의 상대는 일본 기사가 아닌
한국의 조훈현,
그래서 모든 사람은 너무 싱거운 승부가 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최후의 승자는 조훈현이었고, 여기에서 패한 것을 기점으로 그의 바둑 성적은 내리막을 걷게 되고 때마침
혜성 같은 #마샤오춘의 등장으로 자연스레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만약 그의 세계 챔피언 등극을 위해 만들어진
#응씨배(#應氏杯)에서 #조훈현(#曹薰鉉) 9단이 섭위평을 잡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지배한 기사가 되었겠지요.
응창기배, 여기서 섭위평은 조훈현 9단에게 통한의 패배를 당한다
그런 면에서 당시 아웃사이더이던 한국 바둑과 조훈현의 등장은 그의 바둑 인생 최대의 한으로 남을 듯합니다. 그가 기른 제자
창하오(#常昊ㆍ#상호) 역시 조훈현의 제자 이창호에 의해
오랜 세월 이인자로 남았으니 더욱 그럴 것입니다.
조훈현과 이창호, 섭위평과 상호
그로부터 18년 후 중국 화산 대회에서 응창기배의 설욕을
도모했으나 실패하고 맙니다.
화산대회, 섭위평은 여기서 조훈현 9단에게
설욕의 기회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한다.
응창기 배에서 패한 뒤에 누군가가 당시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오언절구 <#검객(#劍客)>의
" '십 년 만일 검(十年磨一劍)' 십 년 동안 칼만을 갈아 왔으니"의
구절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지요.
<검객(劍客)>
“십 년 동안 하나의 칼을 갈아왔으나
(十年磨一劍),
서릿발 같은 칼날은 아직 써보지 못했노라
(霜刃未曾試),
오늘 이 칼을 잡고 그대에게 보여주노니
(今日把示君),
불공평한 일 있는 이 누구인가가?
(誰有不平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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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年下方磨一劍,
(육년하방마일검)
6년 동안 인간 세상에서 칼만 갈았더니,
絕藝如君天下少。
(절예여군천하소)
그대처럼 뛰어난 기예 천하에 드물도다.
山外青山樓外樓,
(산외청산루외루)
산 넘어 푸른 산, 누각 넘어 누각이라 하니,
天既生聶何生曹。
(천기생섭하생조)
하늘은 섭위평을 태어나게 하고 어째서 또 조훈현을 태어나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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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로기사였던 그의 부인 공상명이 녜웨이핑이 결승에서 패하자 오열했던 일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이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내조 때문인 것을 중국인들은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후에 공상명과 이혼하고 두 번째 결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결혼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인과 나이 차이는 무려 23살이랍니다.
그의 인기와 명예는 상상을 초월하고
중국 공산당원 서열 400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로 중국 바둑계의 원로로 큰 힘을 보태고 있답니다.
2021년 9월 15일
가욕(可欲) 신희철이 정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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