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랑 칠월칠석
물에 흠씬 불린 쌀을 돌 절구통에
콩콩콩 찧는 할머니를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다 쪼르르 달려간다.
"할머니 제가 할께요"
나이드신 할머니께서 떡방아 찧는 모습이
영 안쓰럽기만했다.
절구방아로 열 댓번 방아질했는데도
떡쌀은 끄덕도 하지않는다.
허리 쭉 펴고 깊은 숨 들여마시자
"떡 방아 찧는 것도 요령이 있어야 하는거란다"
하시면서 할머니는 다시 절구방아를 드신다.
어지간히 쌀가루가 되었다 싶으면
체에다 부어 떡쌀치기를 몇번이고 되풀이하신다.
교대로 할머니랑 떡방아를 찧던 손에
결국 물집이 생기고야 절구통에서 물러나며
혼자 생각한다.
'차라리 읍내 방아간에 가서 떡쌀을 빻아오면
이런 생고생은 안 할텐데....'
하지만 십리나 되는 읍내를 걸어 갈 수는 없다.
버스 타러가는 동구밖까지는 또 얼마나 얼기만한지...
생각으로만 끝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시루에 눈처럼 새하얀 떡가루를 앉히고
통팥을 고명으로 빼곡이 얹어 놓는다.
그리고 남은 떡가루를 물에 개어 시루뻔을 만든다.
소나무 장작의 샛빨간 불꽃이 이글거리는 모습을 보며
이미 마음은 통팥이 송송이 박힌 통판시루떡을 먹고있다.
피식피식 떡시루에서 눈물이 흐르고
하얀 김이 퐁퐁 솟아 오를 때면 빨알간 장작불꽃도
제 빛을 잃어버리고 검은 숯으로 잔재를 남긴다.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뒤안
장독대에 떡시루는 놓여지고
바람결따라 훨훨 춤을 추어대는 촛불앞에서
할머니는 자식들의 안위를 위해 제를 올린다.
그날은 견우와직녀가 만난다는 칠월칠석였다.
올 해는 유난히 늦어진 칠월칠석이기에
기억의 창고에 묻혀있던
내 어린 시절의 칠석날을 떠 올려본다.
방학이 시작되기 2주전 쯤 부터
고향집에 홀로 계신 할머니한테 갈 수 있다는
희망때문에 무던히도 가슴 졸인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쌩 하니
할머니한테 달려간다.
"아이구 울 애기 오네"
할머니는 양팔을 쫘악 벌리고
나를 끌어 안는다.
그 흔한 딸 하나 없이 아드님만 둘을 키우신 할머니는
어쩌면 내가 당신의 딸였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종교가 없으시던 할머니는
초하루와 절기마다 통팥시루떡을 하시여
뒤안 장독대에 떡시루를 가져다 놓고
제를 드리곤하셨다.
황토흙이 보초병처럼 대문앞에 이열종대로
놓여지고 떡쌀이 커다란 옹배기에 담겨지면
여름방학 속에 숨어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을 찾아 내고야만다.
밥보다 떡을 더 좋아하는 나는
통팥시루떡이 있는 서늘한 찬광을
팥바구니 쥐 드나들듯 들랑달랑하며
시루떡을 집어들고는
그때도 '아~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을했다.
꿈같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위해 기차를 타면
고향집이 건너다 보이는 창가에 앉는다.
긴 기적소리가 울리는 순간부터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아내지만,
과히 크지않은 들녁을 지나
큰감나무 언덕위에 고향집이 보이고
그때까지도 앞마당에 서 계신 할머니를 보면
기어이 눈물을 보일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나는 이미 열댓 살때부터
가슴 저미는 이별을 경험하면서 살었는지도 모른다.
견우와 직녀는 일년에 한번씩 오작교에서 만나지만
천하의 명가수 오르페우스도 아닌 나는
저승 신 히데스를 감동 시킬만한 재주가 없기에
저 세상에 계신 할머니를 만날 수는 없다.
일년에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는
견우와 직녀가 부러운것은 희망때문이다.
만날 수 있다는 희망.....
09.8.26
NaMu
첫댓글 나무님..난 거기다 일찍 포기하는거 한가지도 더 터득하고 살었나봐요...
포기는....얼마나 많은 절망끝에 ...얻어지는 부상인지 잘 알어요...순맘언니^^
저두 일 년에 한 번 딱 한 번 희망을 갖고 있답니다.ㅎㅎ
뭔데유^^ 무쟈게 궁금하네여... 좋은거 맞는거쥬
코끝이 시큰하네요... 칠석에도 제를 지내는군요.. 아직 못 봤는데... 기차길가 언젠가 사진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초하루하고 절기 있잖아요...그때마다 통팥시루떡을 하셔서 뒤안 장독대에 놓고 ...제를 지내셨어요... 작년에 제가 고향집에 갔다와서 포토에세이 한 적있죠.....잊지 않고 기억해주셔서 감사드려유^^
할머니 시루떡 만드는것 글처럼 기억에 잘 담아 두셨네요 소녀같은 나무님 마음 변함없이 이쁘게 간직하세요
많은 걸 기억하면 좋으련만....기억 할 수있는게 많지 않다는게 늘 아쉽곤해유^^
그림으로 그려지는 할머니와 소녀의 얘기를 가슴 따뜻하게 잘읽고갑니다 ㅎ 직접 찌는 그 시루떡이 억수로 맛나기도 하구요 ㅎ ^^*
정말 맛있져...통팥시루떡... 겨울방학때는 호박고지떡도 많이 해 주셨어여^^
어린날 칠월칠석날은 목욕을 해야한다하여 친구들 세숫대야들고 집을 나서던 생각이 납니다.
그랬군여....근데말예여...세숫대야 들고 어디가서 목욕해유?
섬마을 귀퉁이에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가두는 작은 셈터가 있었지요. 생각만해도 오싹 추워 지려 합니다. 그만큼 물이 차가웠지요 한여름에도... 이젠 섬이 육지로 개발 되는 바람에 흔적이 없어져버려 많이 안타깝답니다.
오늘도 할머니생각에 눈물 지으시겠네요~~~
할머니 생각하면...가슴이 많이 아프죠....효도라는걸 못 해봤으니까요....
까마귀와 까치가 놓아준 오작교는 아니지만 마음 가득 담아둔 어떤 그리움을 청계천 어느 다리에서라도...철딱서니 없는 희망도...ㅎㅎ 할머니의 시루떡이 장독대에 놓이던 날 은 우리 칠 남매의 생일 날 이였다는...
청계천 잘 꾸며 놓았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아직 못 가봤어요....청계천 다녀 오셨나유^^
자주 갑니다.직장이 청계광장 근처라...모전교에서 고산자교까지 한 번 걸어보세유...ㅎ
할머니와 시루떡 !!소녀..추억여행 하게 되네요.
추억여행에 .... 같이 참여 해 주셔서 감사드려여^^
가슴 찐한 고향의 추억이네요 누구나 한번쯤있을듯한 그런 추억 아 그립다
그러게요...누구나 한번쯤 있었던 추억인거쥬^^ 아~ 옛날이여
희망을 잃지 마세요~ 칠석날과 재삿날엔 꼭 할머니께서 님을 찾아 오실거에요~~잊지않고 염원 하다보면 히데스 신께서 감동하여 꿈에라도 확실히 보여 드릴거에요~~ㅠㅠ
옙^^ 그럴께여~~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로또에 당첨될 것이라는 희망, 암튼 희망은 존것이여. ㅎㅎ
희망은.... 참 좋은 존재임에는 틀림없어유^^
희망..좋긴 좋죠. 음~~ 제 생각에는 일년에 한번 그것도 겨우 하루만 만나느니 그냥 안 만나는 게 오히려 나을 듯! ㅋ
써놓고 다시 보니 좀 경솔했나 싶네요. 질질 끄는 희망보다는 슬프지만 차라리 포기하고 덮어두는 것이 홀가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할머니는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시고..
착하게 살면....나중에라도 만날 수 있는거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