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한겨레신문의 편집인이 재·보선 참패의 원인으로 조국 전 법무장관을 꼽으며 그의 사과를 촉구했다. 그의 권고에 따라 조국 전 장관이 사과를 했다. 하지만 말이 ‘사과’이지, 과거 청문회장의 면피성 사과를 재탕하며 거기에 76자를 덧붙인 것에 불과했다. 그의 ‘돌려막기 사과’는 대중의 분노만 샀다.
‘탄핵의 강’ 건넌 국민의힘은 재·보선에서 승리했지만
‘조국의 강’ 건너지 못한 민주당, 공정 이슈 맞물려 참패
진보의 보물이던 조국, 민주당도 손절 고민하는 애물 전락
윤리문제가 진영수호 문제로 치환…거대한 허구를 어찌할까
탄핵의 강과 조국의 강
작년 총선에서는 야당이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해 참패했다. 그 후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대위 하에서 두 대통령의 실정에 대해 사과를 했고, 그 결과 이번 재·보선에서 압승할 수 있었다. 아직 탄핵을 부정하는 발언도 더러 나오나, 적어도 공식적으로 국민의힘은 탄핵의 강을 건넜다.
반면 민주당은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해 이번 재·보선에서 참패를 했다. 민주당의 영원한 우군이라 믿었던 2030이 대거 국민의힘으로 돌아섰다. ‘공정’의 이슈에 민감한 젊은 세대의 눈에 스펙을 조작하여 딸을 의전원에 들여보낸 조국 전 장관이 ‘걸어다니는 불공정’으로 보였을 게다.
참패를 하고도 민주당은 여전히 조국의 늪에 빠져 있다. 그 당에서 조국은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 되는 야훼와 같은 존재. 초선 의원 몇몇이 ‘조국 책임론’을 들고 나왔으나, 이 반란은 강성 지지자들에 의해 신속히 진압당했다. 최종 선언문에서 ‘조국’의 이름은 빠졌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 없이 대선을 치를 수는 없다. 국민들은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제일 먼저 조국 사태에 대한 견해부터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조국을 부인하자니 집토끼가 달아나고, 끌어안자니 산토끼가 달아난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조국을 피해가는 방법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한겨레 칼럼은 이 딜레마의 출구를 제시한다. “사과하고 반성해야 할 이들은 대통령과 당 대표, 그리고 이른바 조국-윤석열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다.” 재미있다. 이른바 조국-윤석열 사태? 그 사태는 줄곧 ‘조국 사태’로 불렸지, 누구도 그것을 ‘조국-윤석열 사태’라 이른 바 없잖은가.
칼럼은 조 전 장관을 문제삼는 맥락에서 애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끌어들여 양비론을 편다. “조국과 윤석열 중 누가 옳은지, 누구 편에 서야 하는지를 묻는 것은 우문에 가깝다. 아마도 조국도 틀렸고, 윤석열도 틀렸을 것이다.” 결국 조국 편에 선 우리도 틀렸지만, 윤석열 편에 선 그들도 틀렸다는 얘기.
정말 그럴까? 정경심 교수는 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에서 검찰수사의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반면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는 무산됐고, 이른바 검찰개혁을 주도한 추미애 사단의 검사들은 이미 기소됐거나 곧 기소될 예정. 현실에서 조국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완패했다.
‘조국-윤석열 사태’는 민주당 지지층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신조어다. 지지자들은 조 전장관이 검찰의 희생양이라며 끝까지 그를 지키려 하나, 그럴수록 민주당 지지율은 떨어진다. 우리만이 아니라 그들도 틀렸으니 싸움을 비긴 걸로 치고 이쯤에서 조국 수호전쟁을 접으라는 주문이다.
적법이고 합법이었다
지지자들이야 이 아큐식 정신승리법으로 달래도 문제는 조국 본인이다. 이 지경이 되도록 그는 싸움을 그만둘 뜻이 없다. 한겨레 칼럼은 이렇게 권한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당사자인 조국 전 장관부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주문의 구체적 내용이 좀 이상하다.
“법정에서 무죄 입증을 하지 말란 말이 아니다. 형사 법정에서의 분투와 별개로 자신으로 인해 실망하고 분노했을 많은 촛불 세력, 젊은이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건넬 수는 없을까.” 4년의 중형이 내려진 불법에 대한 책임은 빼줄 테니 도의적 책임만 인정하고 사과하란 얘기.
조국이 이를 마다하겠는가? 그의 76자짜리 사과는 딱 이 수준에 맞춰졌다.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따르는 것이 기득권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는 제 행위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당시 적법이었고 합법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할 수 없었던 사람에 비하면 저나 저희 아이는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사과의 형식으로 외려 그 행위가 “적법이었고 합법”이었다고 재차 강조할 뿐이다. 이걸 사과라고 하는가.
결코 끝나지 않은 싸움
한겨레 칼럼의 제안은 문제의 참된 해결이 아니라 은폐 혹은 봉합일 뿐이다. 조국 지지 부대에는 명분 없는 패배를 무승부로 호도하고, 조국에게는 국민 앞에 사과하는 시늉만 하라고 주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과 못하겠으면 사과하는 척이라도 하라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런다고 지지자들이 조국수호 전쟁을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싸움에서 비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반복된 세뇌와 선동으로 본말이 전도되어, 어느새 그들에게는 조국을 지키는 것이 민주당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래서 문제 아닌가.
조국 본인도 싸움을 멈출 수가 없다. 이미 현실에서 설 자리를 잃은 그는 어차피 광적인 지지자들의 머릿속의 환상 속에 거처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절대로 지지자들의 믿음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그마저 파괴되면 버림받은 영혼이 거주할 유일한 장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해괴한 얘기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심 첫 공판에서 정경심 변호인단은 “PC에 외부 USB가 접속한 흔적이 있어 증거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 판결문에 굳이 그 PC가 아니어도 표창장 위조는 충분히 인정된다고 적혀 있는데,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효용이 다한 조국 카드
조국 사태는 쉽게 끝날 일이 아니다. 열린민주당의 김의겸 의원은 “검찰이 증거를 소극적으로 은폐한 정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증거를 조작했다”며 “검찰의 증거 훼손 가능성에 대해 공수처가 직접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심 변호인단도 차마 하지 못한 주장까지 한 것이다.
1심에서 사실을 다투고 2심에선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형량을 다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유무죄 판단과 아무 관계 없는 ‘외부 USB 접속 흔적’을 언급하고,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이를 1심 판결을 뒤집는 증거로 둔갑시켜 법정 밖의 지지자들을 현혹하고 결집하려 한다.
조국의 이 파렴치한 태도는 그의 장관 임명이 민주당의 대선 기획의 일환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 때문에 제 개인의 윤리적 문제를 진영의 공적 문제로 치환하여, 자신과 가족의 비위를 부인하고 은폐하는 게 곧 진영수호라는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허위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가 실존적 막장에 내몰린 것은 그 자신의 책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 무조건 그를 사수해 온 민주당 전체의 책임이다. 결국 자기들의 이해를 위해 한 개인을 카드로 철저히 활용해 먹고는, 그 카드의 효용이 다하자 이제 와 우아한 손절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보물에서 애물로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뻔뻔한 거짓말을 한다. 풍기에서 있었다는 아이의 카드가 서울과 부산에서 사용됐다. 조민이 양자(量子)인가, 동시에 두 장소에 출현하게. 국민들은 이런 양자역학적 규모의 궤변을 들어주느라 지쳤다. 이젠 민주당에서도 내심 손절을 원하는데 대체 왜 그럴까?
조국 수호의 정치적 이득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남은 것은 그의 사적 동기뿐. 훤칠한 외모, 최고의 학벌, 앙가주망을 하는 진보적 법학자. 그 허상은 이미 파괴됐는데, 지지층의 집단 환각 속으로 들어가 밖에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그 나르시시즘을 유지하는 게 그렇게도 중요한가.
한때 진보의 보물이었던 그가 이제는 민주당마저 부담스러워하는 애물로 전락했다. 문제의 한겨레 칼럼에는 그 짜증이 잔뜩 묻어난다. 하지만 조국 하나를 손절한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조국사태는 애초에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함께 구축한 집단 환각. 이 거대한 허구는 어찌할 것인가.
조국은 ‘사과 아닌 사과’를 한다. 대통령은 ‘만류 아닌 만류’를 한다. 양념 치는 대깨문들은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고, 양념 당하는 이들은 그 양념을 달게 맞으란다. 게다가 송영길 대표 아래 민주당은 ‘친문 아닌 친문’ 당. 이 양자 중첩들은 민주당이 처한 동일한 딜레마의 상이한 얼굴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